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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날,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남의 집에서-그것도 일본사람들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지라-몇 박을 한다는 것이
아무리 넉살좋고 배짱좋은 대한의 아줌마들 일지라도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쯤 자유스럽게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이요
저들 눈 밖에서 일초라도 사라지지 말라는 말씀이니 왜 아니 그러겠는가.
당당하게 경제적 가치를 주고 받아 숙식을 해결하는 것과는 뭔지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피곤하였다는 말씀.
어쨋거나 또 다시 아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앞치마를 둘렀다.
그렇지 아니하면 또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할 것이 뻔하고 마지막인데 오고가는 시간이 아까워
그냥 부엌을 점령하여 전날 마트에서 사온 빵과 치즈와 그 집의 냉장고를 뒤져 푸짐한 샌드위치를 만들고
커피와 우유, 후식으로 과일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매일 성찬이니 그들이 놀라고도 남을 일이다.
사실 집에서는 그렇게 까지 성탄은 아니더라도 알려주고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도 기를 쓰고 세팅까지 신경쓰며 준비.
마지막날까지 가가와현의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애쓰는 구보다상 내외의 노력이 가상하여 또 다시 이동.
문화재이기도 하고 돌로 쌓은 댐이 워낙 절경인지라 안 가보면 손해고 가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라 오케이.
그 당시에 일일이 사람 손을 이용하여 돌로 댐을 쌓았을 때는 51800엔이 들었으나 지금 다시 새로 현대 공법으로
댐을 조성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7조엔이 든다는 사실,.
아직은 강수량이 많지 않을 시기라 댐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졸졸졸...그래도 맘껏 웃으며 한 컷 날려주는데
구보다상 왈, 가끔 친구들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들고 찾아와 그곳에 자리한 정자에서 바람과 함께
여유만만하게 놀다가는 장소라고 하니 곳곳에 편히 쉴 공간을 무상제공하는 시민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다시 차를 타고 댐의 윗쪽 등성으로 올라가 잠시 한컷 날리려는 순간 구보다상이 갑자기 박쌤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놀라 사진 찍어주려다가 뒤쪽 절벽 울타리 밑으로 고꾸라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겼으나 한참을 웃어대느라 온 몸이 아픈줄도 모르고
다시 몸을 추스려 기세좋게 훌쩍 뛰어 올라왔어도 사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몇 날 며칠 그 후유증으로 시달려 몸이 고달프기도 했다.
갑자기 왜 그랬을까? 웃자고 하는 행동 치고는 약간 오버.......장난치고는 너무 심했다 싶은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댐을 거쳐 찾아든 곳은 일년 내내 한 나무에 3가지 색, 빨강, 노랑, 초록색 단풍을 지니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절
법천사는 또 반딧불이가 많기로 유명하다고 하며 절 경내를 설명하는 구보다상.
사실 구보다상은 처음부터 말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물론 개인적인 말은 많았지만 어딘가에 나서서 자청하여
설명하거나 선뜻 나서는 법을 몰랐던 그녀가 당당하게 변하였다.
당연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장부터 복장 말하자면 맵씨까지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당당하고 자만감 넘치게 행동하는 박쌤과 쥔장을 보면서 마인드가 달라졌다고 한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여자들과 다니려면 자신도 그렇게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나서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나오시마를 비롯하여 어느 곳엘 가더라도 돌발행동을 차처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경우에도
미리 나서서 한국에서 온 우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한참 웃기도 했다.
특히 사진 촬영이 필요할 때나 사인과 이름을 받아야 할 때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주어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화되는 그녀와 그녀의 부군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암튼 다음 코스는 일본 전역에 능력있는 현마다 지니고 있다는 마츠리 축제시 사용하는 물품들을 보관하는 전시장.
언젠가 케이블 티비를 통해 일본 전지역의 마츠리 물품을 보관한 전시관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흥미롭고 관심이 있었던 터라 마을의 작은 곳이지만 전시관을 간다는데에 흔쾌히 예스다.
일본 전 지역의 모든 마츠리 축제용품을 모아 전시한 곳의 그 규모는 얼마나 대단할 것이며 소품 자체가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것들을 아껴가며 보존하는 관민들의 노력과 그들의 문화를 전수하는 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여 부럽고
귀하고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 전시관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번은 찾아가 보고 싶다며 부러워 했었는데
전체 전시관은 아니더라도 조촐하지만 그중에 한 곳을 찾아갈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만족스러웠다는 말이다.
그들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애를 쓰는 진행 요원을 보면서 감탄스러웠다.
안내원의 말 왈, 서로 역사를 알고 문화 교류의 디딤돌이 되어달라는 의미로서 자신이 충실하게 설명해주겠노라는데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전시관은 주입식으로 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홍보하고도 모자라
다시 일일이 쫓아다니며 설명을 해주는 적극성을 발휘하니 저절로 입력되긴 하겠더라.
들으면서 내가 왜 남의 나라 역사를 이렇게 열심히 듣나 싶기도 했지만 문화라는 것이 또 뭐냐.
서로 알고 대하면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던가 싶어 열심히 경청하고 질문까지 해가며 받아적었다.
높이 5미터, 무게 2톤...상상을 초월하는 무게를 100명의 남자들이 어깨에 맨다.
맨 위에 서 있는 선두지휘자까지 올라 진행하려면 그날을 위해 전선줄을 걷어내고 행진을 하며 주민들은 기꺼이 불편을 참아야 한단다.
하늘의 구름 모양에 빨간색 잠자리 리본...일명 구름안의 잠자리, 신이 앉는 방석 이야기며 액막이 역할을 하는 용,
하늘을 지키는 개까지 다양한 설명이 이뤄졌으나 거기까지.
단 마츠리 축제용 가마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상징적으로 새긴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구마모토 성주를 보호신으로 선택하였다.
그 상징인물이 우리 역사에 둘도 없는 웬수같은 구마모토 성주가 아니던가 싶어 울컥 했지만 모르쇠로 열심히 들어주고
또 지나간 역사에 연연할 일은 아니다 싶어 흥분으로 치솟는 극도의 울컥을 자제하며 진정하였다.
안내원이 직접 착용해가면서 보여 주는 마츠리 악마 가면을 보면서 우리네 " 치우천왕-축구, 붉은 악마 원천-"이 생각났고
등은 양쪽으로 49개씩 달려 있어 왜 굳이 49개냐는 질문에는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마츠리 축제 때 100명의 남자들이 입는 옷은 마을마다 고유 문양과 색깔이 정해져 있고 해마다 진행되는 순서와 책임은
마을 자치현에서 정하여 준 순번에 의해 첫 번째로 쥬도할 정해진 마을이 한 해 마츠리 스케줄을 모두 책임지고 진행한다고.
가을에 열리는 마츠리 축제에 반드시 다시 와달라는 부탁의 말을 들었지만 확답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 길, 안내를 자청했던 여인이 우리가 그녀의 시양에서 사라질 때까지 마츠리 깃발을 들고 잘가라며
끝까지 깃발을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다....어찌 보면 문화를 알리겠다는 집념같은 것이 보여 무섭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에 미장원엘 들렀다.
구보다상의 머리를 변신시키기 위해서 였지만 구보다상의 머리를 만져주던 여자 미용사는 구보다상을 변화시킬
머리모양새를 참견하는 우리를 싫어했던지라 말은알아들었다는 듯이 '하이 하이' 하면서 상냥하게 해도 사진은 노탱큐.
허락받은 남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오히려 좋아하고 그 남자의 가위질 솜씨는 가히 놀랄만큼 정교하였음이니
박쌤의 머리 또한 한결 달라졌다.
돌아나오는데 구보다상이 희희낙락, 이유인즉은 3500엔 짜리 커트가 연장자라서 1000엔으로 할인 받을 수 있었다는데.
전에 다니던 미용실에서는 할인을 해주지 않아 3500엔에 머리를 커트하였노라며 미용실을 바꾸겠단다.
어느 나라나 할인에는 두말할 것 없이 환호성인지라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뒤이어 스시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거리는 얼마큼이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따져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 엄청나게 큰 마트에 들려 신선하고도 고급스러운 회와 유부 초밥과 김밥을 사와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개인적으로 사온 접시를 그냥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세팅을 다시 하려고 했으나
끝나고 설걷이 하기도 귀찮아 그냥 모르쇠로 먹었다....그래도 소소한 것은 접시를 이용하였으니 결국엔 설겆이를 피하지 못했다.
사실 아직 짐을 다 챙기지 못한고로 마음이 바빴다고나 할까?
일정을 마무리하고 짐을 챙기려는데 구보다상이 각자에게 알맞는 선물을 건넨다.
타월...일본의 타월은 참으로 보드랍고 좋아서 겉으로는 "아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 못 이기는 척 받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옷 중에서 각자에게 어울릴 옷들을 챙겨주고 특히 쥔장에겐 요리하느라 애썼다며 그동안 사용했던 앞치마와 도마를 선물로 줬다.
알다시피 워낙 앞치마를 좋아하는 고로 낼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유독 눈에 들어와 요리하는 내내 사용하였던
이동 가능한 도마 역시 두 말도 아니하고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쓰"를 연발하며 받아 챙겼다.
일요일, 오후 6시 35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지만 부부가 다시 우울의 극치로 눈물을 보인다.
할 수 없이 마지막까지 웃음을 선사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박쌤과 쥔장.
두 분이 모두 너무 많이 달라져서 고맙기도 하고 우리 떠난 다음에 두고 두고 이야기꺼리로 남겨질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우리가 바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계절이 지나도록 즐거울 소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 였다.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좋은 기억으로....그리고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촌지를 마련해
슬쩍 구보다상의 핸드백에 넣어주었는데 의외로 사양하지 아니하고 받더라는 말씀.
사실 그것, 촌지라는 것이 의미가 많이 변질되어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좋은 으미로 생각해보자면
일본인의 집에서 혹은 일본에 여행 가서 그들에게 신세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사용한 액수의 일정부분을 현찰로 돌려주고 오는 것이 일본식 예의라는 박쌤의 말.
그게 아니라도 우리가 여행지의 호텔이나 식당을 5박 6일 동안 이용하고 가는 곳 마다 티켓을 제 돈으로 전부 구입하였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여행 경비가 들었을 터이니 두말 하지 아니하고 촌지를 건네 주는 것이 옳은 일 일 것이다.
원래 3박 4일의 여정이 5박 6일로 길어졌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쿨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음이니 감사할 일이요
이런 저런 게획을 세워 시간을 할애해준 구보다상 부부에게는 더욱 고마워 할 일 이겠다.
하늘의 풍광으로 보아서는 무슨 비? 였으나 인천공항에 내리니 억수같은 비가 내린다.
어렵게 어렵게 안성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잠을 청하니 새벽 세 시.
피곤이 물 먹은 솜처럼 몰려온다.
잘 놀고 잘 먹고 신나게 다닌 여행의 흔적, 충만한 행복감이 이불 위를 덮는다.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나오시마를 찾아가고 다 보지 못한 다카마쓰의 명물을 확인해 보리라 마음 먹으며
곤한 잠으로 빠져 들었다.
.....쥔장 혼자 흥에 겨워 긴 이야기를 썼다.
아니라도 숨겨진 비화도 많지만 지면상 생략이라 시간이 지나 책으로 쓰여질 날을 기대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을에 발간하게 되는 책에 슬쩍 끼워넣을 요량이다.
긴 글을 읽느라 다들 수고하셨을 터...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첫댓글 길지만 재미있는 기행문이었네요. 마치 함께 다닌듯~!
자세하고 즐거운 일본여행이었습니다. 그려~! ^ ^
ㅎㅎㅎㅎ 다행입니다.
다시 가고 싶은 곳 중에 하나입니다.
여유롭게 퍼지르고 앉아 다시 내어 보리 합니다^^당신의 당신만의 구성진 흥타령을^^
여유로운 일상,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날이 오거들랑
천천히 음미하시길....혼자 겨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