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백종원(37회. 더본코리아 대표)
“우리 외식업 인재들이 해외 나가는 게 한식세계화”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23호(2018. 12. 09)
백종원(37회. 52세) 더본코리아 대표
사업실패 딛고 외식업 진출...... 좋아하는 일해야 탄력 받아
“인생 1막을 위한 취업준비를
과거 얼마나 열심히들
했습니까?
2막 대비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죠.
외식업 창업은 왜들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적성도 안 따져보고
그저 ‘치킨 집이나 한 번 해볼까’하고 시작하니 실패하는 겁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37회)는 “치킨 집 창업이 얼마나 실패확률이 높은지는 30분만 따져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식당가맹점을 하더라도 브랜드를 고르려면 공부도 하고, 조사도 해봐야죠. 등 떠밀려 하는 식당창업은 말이 안 되고 성공확률도 낮아요.”
백대표는 요즘 가장 지명도가 높은 우리학교 동문이다. 지난해엔 SBS연예대상 공로상을 받았다. 공중파TV에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진행 중이고,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한식대첩-고수외전’ 등의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백종원의 식당조리 비책],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 밥 메뉴55] 등 11권의 음식 만들기 책을 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봉급쟁이가 때 되어 퇴직을 하면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재취업, 프리랜서의 길, 자영업창업. 백동문이 인생2막에 시도하는 식당창업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특히 프랜차이즈가맹점은 음식을 만들어본 경험이나 조리노하우 없이도 점주가 될 수 있습니다. 퇴직 후 창업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거죠.”
백동문에 대해서는 미식가를 위한 요리가 아니라 합리적 가격의 음식이나 집에서 만들어먹는 그럴듯한 요리를 즐기게 하려는 게 목적인 거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종원 브랜드의 음식은 값은 저렴하지만 맛은 뛰어나지 않다는 평판도 있다.
+혹시 'B급'내지는 ‘싼 마이’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B급이라기보다 서로 시장이 다른거죠. 가격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니까 식당을 레벨로 구분하는 거예요. 편의점(음식), 프랜차이즈식당, 혼을 담은 개인식당, 음식을 즐기는 게 목적인 3~4대 가업형 식당으로 범주화할 때 사람들이 이들 식당을 이용하는 목적이 각각 달라요. 고액 연봉자도 때로는 편의점 음식을 찾고,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도 2만원짜리 곰탕 집에 갈 때가 있습니다. 가격 말고 음식이 제공되는 속도를 기준으로 식당을 구분할 수도 있고요.”
+미슐랭 가이드가 선정한 정평 있는 식당을 해볼 생각도 하나요?
“그런 꿈도 있지만 저 스스로 절제합니다. 저까지 그런 식당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아니 저는 하면 안됩니다. 저는 다른 역할이 있고, 프랜차이즈식당을 돈을 벌기 위해서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단적으로 저희 프랜차이즈브랜드가 외식비의 ‘저점’을 잡아줘야 합니다. 마지노선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올리면 덩달아 올리기에 나름의 사명감도 있어요.”
11개 브랜드로 1,400개 프랜차이즈 가맹점 거느려
그는 1992년 외식업계에 진입했다. 이듬해 대패삼겹살을 선보인 백종원의 원조 쌈밥 집을 시작으로 본가,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빽 다방 등 11개 브랜드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맹점수는 전국적으로 1,400개에 이르고 일본, 중국, 미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741억원. 그는 우리나라 외식업 생태계가 다양성을 띠려면 이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야죠. 사람들에게 음식 만들어 먹이는 걸 좋아하든지, 먹는 걸 좋아하든지 하다못해 홀에서 사람 만나는 거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식당을 차려야 돼요. 돈 버는 게 목적이다 보니 식당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음식장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치관이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준다면 돈을 좀 덜 벌어도 좋다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해야 단 한 가지 음식으로 승부를 보려는 식당도 생깁니다.”
+우리 외식문화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요?
“음식을 만들거나 서빙하는 사람들을 우리사회가 존중해줘야 합니다. 돈이 안 벌리는 것보다 함부로 대하거나 엉뚱한 불평을 하는 손님들 때문에 식당을 접는 사례가 적지 않아요. 특히 젊은이들이 그래요. 외식업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수익이 날 때까지 이들이 나름의 역량을 식당에 쏟을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외식업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져야 합니다. 외식문화 발전의 출발점이죠.”
그는 이렇게 역량을 키운 외식업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는 게 진정한 한식세계화라고 주장했다.
“저희 회사처럼, 해외로 나가 교민사회가 아니라 현지인을 상대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연예인 뺨치는 높은 인기가 삶의 활력소가 되나요? 대중의 높은 기대치로 압박감을 느낄 때도 있나요?
“압박감 같은 건 없어요. 말을 조심해야 하고,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잘 못 다녀 부담은 좀 있죠. 방송을 한 덕에 시야는 넓어졌습니다. 회사는 커졌지만, 어쩌다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기업의 목표와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왔죠.”
더본의 본(本)은 본래 근본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Born의 의미로 사용한다. 회사 홈페이지에 백동문은 자신이 ‘음식탐구가’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정작 그는 기업인을 자처했다.
“저는 우리나라 외식문화가 발전했으면 하는 외식기업인입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보려 식당을 차렸는데, 가성비가 높다는 칭찬을 듣다 보니 외식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앞으로도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외식브랜드를 런칭하려 합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사학재단을 운영했다. 그도 현재 예산고 이사장을 맡고 있다. 외식업에 진입할 때는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외식업에 올인하기 전 그는 수입 건축자재로 집을 짓는 목조주택 사업을 했었다. 한 때 잘됐었지만 IMF관리체제 당시 환율이 급등해 말아먹었다. 환율은 불가항력적인 외생변수였다.
“주택사업이 잘될 때도 어째 겉도는 거 같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죠.”
외식사업을 벌인 후에도 잘 안 되는 브랜드가 있었다. 그러나 런칭하는 프랜차이즈브랜드의 70~80%가 시장에 안착했다. 경쟁자에 비해 뚜렷하게 큰 성과였다.
백종원 브랜드는 인테리어 마진 없는 프랜차이즈
+고교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진짜 평범했습니다. 먹는 거 좋아했고 친구들과 잘 몰려다녔죠. 술도 먹었어요. 그 그룹에서는 리더였다고 할 수 있죠.”
+그 시절 무엇을 얻었습니까?
“동창생 친구들이죠.”
+‘서울고는 나에게 ○○이다’라고 할 때 ○○를 어떻게 채우고 싶나요?
“좋은 흔적?”
+젊은 후배들에게 어떤 일을 해보라고 권하겠습니까?
“무조건 좋아하는 일하세요. 특히 잘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을 땐. 좋아한다면 탄력이 붙고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일이 아닙니다.”
+아빠가 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우리나라 학제랄까, 교육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고교졸업 후 한 3년 사회경험을 쌓은 후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때 군대를 가거나,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인생의 목표도 설정해보고요. 대기업 취업 등 목표를 이룬 사람이 전체의 10%가 채 안 되는데, 이들조차 상당수가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합니다. 나머지 90여%는 목표도 못 이루고 직사하게 고생만 하죠. 이렇다 보니 우리사회의 분노 게이지가 높은 겁니다.”
백종원의 프랜차이즈식당은 가맹점 인테리어로는 마진을 올리지 않는다. 가맹점에 공급하는 식자재· 소스의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식자재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공급처와 장기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맹점 수를 유지해야 하고, 가맹점이 문닫지 않게 하려면 가맹점을 살려야죠.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상생이 본사도 사는 길입니다.”
+만일 ‘백종원의 인생사용설명서’랄까 레시피 같은 게 있다면, 거기에 뭐라고 적혀있을까요?
“입밖에 낸 말은 책임을 지려 나름 노력합니다. 방송에 나가 떠든 말도 뱉었으면 그대로 살아야죠.”
글; 이필재(29회) 편집인, 사진제공: 더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