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925
신심명125
동봉
제3칙
제7장 진여眞如
제2절
둘아니면 그모두가 한가지여서
포용하지 못할것이 전혀없나니
시방삼세 누구든지 지혜로운이
한결같이 이종지에 들어가도다
불이개동不二皆同
무불포용無不包容
시방지자十方智者
개입차종皆入此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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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한 젊은이의 방문을 받았다
'큰스님, 제가 방금 찍은
사진 한 장을 스님께 보냈는데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뭘 찍었는데?'
'미륵보살상이오'
장난기 어린 표정이다
'다실에 있는 보살상인데
바로 스님 뒤에 모셔져 있습니다'
내가 몸을 돌려 돌아보니
우리절 산문山門을 열었을 때
이천에 산다는 한 젊은이가
방문 기념으로 손수 빚은 것이다
하긴 1995년도 가을이면
하마 25년 전이라
마흔셋이니 나도 젊었다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자신을 '도예가'라기보다는
그냥 '반주기'라고 했다
흙을 반죽한다 하여 반주기란다
반주기는 그때 이 조형물을
내 모습이라고 했다
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여기에는 수염이 없는데?'
'이는 스님의 전생 모습이고
또한 내생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금생도 아니고
전생 모습과 내생 모습이라니
어쩌면 그래설까 더 정감이 간다
그런데 이 젊은 친구가
어느새 조형물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미륵보살상이라 했다
무학 효과moohak effect일까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왕사였던 무학 대사가
마주 앉아 농을 주고받았다
태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짐의 눈에 우리 왕사께서는
꼭 돼지처럼 보이십니다그려'
그때 무학 왕사가 말을 받았다
'빈도 눈에는 대왕께서는
분명 미륵보살로 보이십니다'
태조가 놀라며 되물었다
'짐은 왕사를 돼지와 같다 했는데
왕사는 짐이 보살로 보이신다?'
무학 왕사가 말을 받았다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이고
보살 눈에는 보살로 보입니다'
두 사람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나는 여기에 심리학 용어를 붙여
'무학 효과'라 명명命名하였다
무학 대사야말로 보살이다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주변이 다 행복하게 보이고
마음이 우울한 사람에게는
세상이 온통 우울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서로 농을 하기로 했으나
농 속에서도 그가 쓰는 용어에
마음이 은근히 배어있다
젊은이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어떤가? 자네 보기에는
이 조형물이 미륵보살상 같아?'
그가 자연스럽게 답했다
'네, 큰스님. 미륵보살 맞습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친구가 미륵보살이구먼!
내가 화제를 바꿔 물었다
'카톡으로, 아니면 문자로?'
젊은이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네, 큰스님,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내 스마트폰 바탕화면 카톡에
빨간 표시 숫자가 보인다
젊은이가 보낸 게 확실하다
내가 카톡을 막 열려는데
어쩌고저쩌고 문자가 뜬다
가까이 들고 들여다보니
배터리가 방전discharge되어
겨우 1% 남았다는 정보다
실은 '겨우'가 아니라 '아직'인데
배터리 잔량이 1%라면
완전 방전은 아니기 때문에
작은 데이터는 열어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접으며 물었다
'만약 배터리 방전으로 인해
스마트폰이 꺼지면 어떻게 될까?'
젊은이가 정색을 하며 묻는다
'어떻게 되다니, 뭐가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어봐도 될까?'
젊은이가 내게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배터리 방전으로 인해
스마트폰이 꺼진다면
저장된 데이터는 괜찮을까?'
그러자 젊은이가 말한다
'아유, 큰스님. 난 또 뭐라고요
배터리 나간다고 데이터까지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폰맹이지만 그럴 것 같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윤회라고 하는 것도 이럴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된다 해서
데이터까지 없어지진 않듯이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정전되고 방전된 상태일 것이다
이를테면 죄를 지은 사람이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지은 죄마저 사라질까
스마트폰 데이터가 그 답이다
불이개동不二皆同이다
둘이 아니면 모두 다 한가지다
한가지와 한 가지는 뜻이 다르다
한가지는 숫자 개념이 아니다
생각이 한가지라든가
마음이 한가지다 따위다
금강경 제18 <일체동관분>의
일체一體와 동관同觀이
모두 '한가지'의 뜻이다
보살 마음을 동체대비라 한다
나의 63번째 저서 <내비 금강경>
일체동관분에서 언급했듯이
띄어쓰기 한 몸이 아닌
붙여쓰기 한몸이 일체一體요
띄어쓰기 한 가지가 아닌
붙여쓰기 한가지가 동관同觀이다
신심명의 '불이개동不二皆同'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일이다
사물은 숫자로 셀 수 있으나
마음은 숫자를 떠나 있다
나와 너
또한 너희들
나와 그
또한 그들
나와 저
또한 저들
우리와 저, 저들
우리와 그, 그들
우리와 너, 너희들처럼
그저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금강경에서 자주 말씀하신
네 가지 상四相이 있다
첫째 아상我相이요
둘째 인상人相이며
셋째 중생상衆生相이고
넷째가 수자상壽者相이다
이들 네 가지 상이 지닌 뜻이
나에 대해서 또는 다른 이에 대해서
중생이나 또는 수자에 대해서
드러내는 상相이 맞을까
드러냄 외에 다른 것이 있다
나我는 남과 다르고
남人은 나와 다르다
중생衆生은 모자라고
꼰대壽者는 갑질한다
당연히 나는 다른 이가 아니고
다른 이는 으레 내가 아니다
중생이 부처가 아니라면
꼰대는 아랫사람이 아니다
이태 뒤면 나도 종심從心이다
세상은 이렇게 편을 나눈다
본래부터 하나였는데
주의ism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이익을 좇아 편을 가르며
권력이 있는 곳에 아부한다
뽑기는 유권자가 뽑아주었는데
공은 권력자에게 돌린다
그런 거 보면 사람 사는 게
반드시 공평한 것만은 아니다
죄는 필히 참회하고 공덕은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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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v=O6oRiB8mog8
http://m.newskorea21.com/39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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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생과 내생 모습/사진 꾸밈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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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2/2020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