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35-1]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2)
어원에 관한 책들을 제법 읽은 편이어서 조금은 안다 생각했는데, 장인용 님이 지은 <사연없는 단어는 없다>를 접하며 나의 무지에 대해 새삼 놀라고 창피했다.
∆뜻이 바뀌어 새로이 쓰는 말 ∆뜻이 역전되는 말 ∆유래를 알면 더 재밌는 말 ∆한자로 바꾸거나 구별하여 오해를 부르는 말 ∆우리말이나 진배없는 말 ∆공부가 쉬워지는 말 ∆종교에서 유래한 말 등 7부로 나누어 펼쳐지는, 500여개의 우리말 ‘탄생’의 뒷이야기는, 말과 글이라는 게 늘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 왔기에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그 중에 더욱 재밌었던 것은, 첩어(疊語) 형태로 이루어진 우리말 ‘알록달록’의 설명부분. 알록달록은 나의 어릴 적 별명. 한동안 필명으로 쓰기도 했다. 본디말이 ‘알로록달로록’이라는데 ‘로록’을 줄여 ‘록’이 된 듯하다. ‘알’은 무슨 뜻일까? 알롱알롱, 아롱지다 등의 말로 미뤄보면 시각의 빛깔이나 무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달로록’은 ? 혹자는 다르다, 많다(다)로 풀이도 하지만 ‘울긋불긋’ 의 울처럼 그저 짝을 맞추기 휘한 첨가어인 듯. ‘갈팡질팡’의 ‘갈’이 ‘가다’에서 나왔지만 ‘질’은 대구(對句)를 위해 별 의미없이 덧붙인 것같이 말이다. 알록달록은 들에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다면 ‘알록달록하다’로도 쓸 수 있다. 하지만 모습만 바뀐 ‘얼룩덜룩’은 단순히 어감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세월에 찌든 흔적이나 오염된 부정적인 표현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추석이나 설빔을 해줄 때 아들 막동이라고 유난히 때깔이 좋은 옷들을 해준 것같다. 동네 아저씨가 얼굴까지 곱상하고 예쁘게 생겼다며 ‘알록달록’ 또는 ‘알록아’라고 불러준 게 내 별명의 유래이다. 30년도 더 넘게 뵙지 못한 그 아저씨는 고향을 떠나 전주에서 사시다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데 안타까웠다. 지금도 꾀복쟁이 친구들이 ‘알록아’라고 불러주는데 그게 얼마나 정감이 있고 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옷이 문제가 아니고 ‘마음까지 알록달록(알로록달로록)하다면’(마음결이 비단결같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7부 ‘종교에서 유래한 말’ 부분은 佛敎가 우리말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해줘 유익했다. ‘恒茶飯事’을 줄여 쓰는 茶飯事(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과 같이 일상에서 늘 일어나 대수롭지 않는 일)나 이판승, 사판승으로 쓰인 ‘理判事判’이 지금은 막다른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으로 쓰이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玄關’이 원래 절에서 차원이 다른 두 경계의 문을 뜻하다 절 건물의 문을 넘어 지금은 민간집의 문을 일컫는 것과 ‘脫落’이라는 말이 집착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해탈을 이루는 것이었는데, 뜻이 변하여 '기록이나 성적이 모자라 낙오되는 것'을 뜻함도 알게 됐다.
이밖에도 ‘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우리말에 깊이 스며든 불교용어가 많은 줄을 알게 된 것도 수확. 觀念, 食堂, 天堂, 長老, 아수라(阿修羅) 등이 그것인데, <야단법석(惹端法席)>의 어원을 살펴보자. 惹端은 야기료단(惹起鬧端)의 준말. 惹起는 어떤 사건을 불러일으키다, 惹鬧는 생트집을 잡고 시비를 일으키다, 惹端는 떠들썩하고 부산하게 일을 벌이는 것을 뜻한다. 또한 法席은 法會席中의 준말. 야단법석은 여러 사람이 몹시 떠들고 소란스럽게 법석을 떠는 상태를 말한다. 덕분에 어려운 한자 몇 개를 알게 된 것도 재미.
게다가 基督敎에서 불교 용어를 빌려 써오다 완전히 기독교 용어로 생각되는 낱말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정말 몰랐다. 애초에 기독교가 중국으로 처음 넘어오면서 ‘聖經’을 번역할 때, 먼저 들어와 귀와 눈에 익숙한 불교 용어를 빌려쓰는 것이 낯선 것을 크게 줄여주는 효율성 때문이었을 듯하다. 지은이는 친절하게도 한 문장을 예로 들어주고 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올려 신앙이 깊어짐을 느꼈다.” 이 문장에 쓰인 敎會, 禮拜, 說敎, 讚頌, 祈禱, 信仰 등이 당초 불교용어였다는 것.
<교회: 예불하고 법문을 듣는 모임, 부처나 보살하에 합장하고 절하는 것, 설교: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르치는 것, 찬송: 부처님을 칭찬한 노래, 기도: 부처와 보살에게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빎, 신앙: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을 믿고 받드는 일>
천사:(불교)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사자.
(신의) 섭리(攝理): 신이 다스리는 이치. 승려의 신분 또는 직책을 말함. 고려때는 승려 가운데 으뜸가는 계급, 조선에선 僧軍을 통솔하는 승려를 지칭.
聖堂: 법당 또는 불당.
修道: 修行, 巡禮: 부처나 보살과 관련된 곳을 찾아다니는 것.
傳道: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퍼트리는 일.
聖者: 번뇌를 떨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
信徒: 그 절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다른 절의 대중을 이르는 말.
弟子: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악마를 뜻하는 鬼神이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救世도 불교용어로 시작됐다니, 이쯤 되면, 불교든 기독교든 宗敎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게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그 境界를 다투고, 자기의 종교만 至高止善이라며 고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어떤 일이나 事物 그리고 人間과 말의 ‘根源’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70년대 후반 알렉스 헤일리의 <Roots>라는 소설(?)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쿤타킨테’의 7대 외손인가가 祖上들의 ‘뿌리’를 찾아나선 긴 ‘여행’ 끝에 마침내 현지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던 감격적인 장면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그때 같은 과 4살 위 華僑형에게 <Roots>를 漢字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물어 알게 된 단어가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시며, 이 물이 어디로부터 왔을까? 한번쯤 생각해보는 인간적인 餘裕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걸까? 誕生과 죽음 사이의 우리의 삶(生命)은 무엇이고 어떤 뜻이 있을까? 영원히 알 수 없는 '話頭'이긴 하지만, 나는 그것이 늘 궁금하다.
전라고6회 동창회 | [뫼루니통신 7/190508]tatoo(文身)를 한 우리 아들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