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드래곤볼 슈퍼 최종화의 스포일러가 유출되었던 때, 사실 저는 슈퍼의 깔끔한 엔딩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낚시였던 걸로 밝혀진) 오공의 탈락 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스토리 구성 그 자체 때문이었는데요. 마지막화까지 싸움을 끌어놓은 시점에서 여기에 소원 빌고, 다른 우주들 비춰주고, 프리저 문제 해결하고, 제 7우주의 모습도 보여주고 등등 해야할 게 산더미인데 과연 슈퍼가 엔딩다운 엔딩 느낌을 낼 수 있을지 저는 의문이었습니다. 살짝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풀어야 할 게 쌓여있었죠. 그리고 131화를 생방으로 본 저는 이러한 의심을 한 데에 대해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131화 연출감독을 맡은 사람은 ‘이시타니 메구미’였습니다. 이시타니는 이 회차가 방영되기 전까지 많은 트윗을 올렸었는데요, 그녀의 말로는 스케줄이 워낙 바쁜 관계로 늘 오전 3시에 일어나 작업을 하고 바쁘게 마무리를 하느라 130화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시타니는 아주 젊고 유능한 인재입니다. 도쿄 예술대학 진학 과정, 일본에서 상당히 명망이 높아 일 년에 약 10명 정도밖에 학생을 안 받아준다는 프로그램인 ‘GEIDAI Animation Program’에 참여하기도 한 그녀는 2015년에 졸업을 따내고 2016년, 5번째 엔딩(요카요카 댄스) 연출을 맡으며 드디어 드래곤볼 슈퍼에 데뷔합니다. 평소에 여러 방면으로 적지 않은 비판에 시달리는 토에이지만 젊은 자원을 많이 등용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들은 모두에게 찬사를 듣는 편이죠.
곧 7번째 엔딩(악의 천사와 정의의 악마) 연출을 맡은 이시타니는 우주 서바이벌 편에 들어 대다수 회차의 조연출을 담당했으며 최고의 각본이 쓰여진 힘의 대회 편들 중 하나인 107화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그녀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슈퍼 최종화를 지휘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무시되어선 안 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졸업한지 단 3년만에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의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죠.
이 회차에서 이시타니의 콘티와 각본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콘티는 애니메이션의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콘티가 얼마나 잘 짜여져 있는가로 애니의 비주얼이 얼마나 좋게 나올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인데요. 콘티는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카메라 앵글의 구도를 설치합니다. 이것은 드래곤볼을 비롯하여 멋진 포스와 다이나믹한 액션씬을 뽑아내야 하는 배틀물 만화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하죠. 또한 감독은 이 과정에서 명암과 컬러 설정, 배경음악을 담당하기도 하는데요. 이시타니는 이것을 아주 훌륭하게 해냅니다.
개인적으로 몇 장면을 얘기하자면 우선 이 부분입니다. 프리저의 데스빔으로 주변이 어두워지며 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은 프리저와 무릎을 꿇은 지렌에게 집중되는데요. 이것은 여유로운 프리저의 입장과 전의를 상실하고 무력함에 고개를 숙인 지렌의 입장, 양 쪽의 상황을 한 눈에 표현해주는 순간이죠. 신뢰를 부정하던 당시 지렌이었기에 저 죽이는 등빨 역시 한없이 외롭고 초라해보입니다.
인조인간 17호의 소원으로 소멸되었던 우주들이 부활하고 각자 짧게 한 씬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모두 위처럼 전부 하늘의 한 눈부신 빛을 보고 있는데요. 우리는 30화가 넘는 기간동안 우주의 운명이 걸린 어두운 배경 분위기의 싸움을 지켜봐왔죠. 그런만큼 그 끝에 드디어 다시 마주하게 된 저 빛이 주는 아름다움은 배가 될 수 있었으며 특히 내내 엄청난 포스를 보여온 지렌의 멋진 뒷모습을 보여줄 때 이시타니의 카메라 구도 설정은 더더욱 효과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팬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사이어인 편 오마주가 나옵니다. 그 다음엔 앞으로도 계속 강해질, 힘의 대회가 벌어진 이후에도 싸움을 즐기는 오공과 베지터를 보여주며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되는데요. 사실 이 장면은 드래곤볼 팬들이 엔딩이라 하면 많이들 떠올릴 GT의 마지막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일들을 짧게씩 보여주며 ‘드래곤볼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라는 대사와 함께 진짜 말 그대로 드래곤볼 스토리를 완전히 끝내버린 GT와는 달리 ‘잠시의 휴식, 모두 또 보자’라는 훗날을 기약하는 마무리 대사로 슈퍼는 끝이 납니다. 이것은 12월에 나올 극장판을 비롯해 앞으로 펼쳐질 또다른 드래곤볼 이야기를 염두에 둔, GT랑은 정반대의 결말이죠. 아주 여운이 남는 장면이었고 이는 팬들로 하여금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토에이와 이시타니 메구미로부터의 훌륭한 슈퍼의 마지막이자 또다른 시작이었습니다.
드래곤볼은 반박이 불가능한 세계 최고의 만화 프랜차이즈죠. 슈퍼의 성공과 인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슈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것이 바로 드래곤볼이 아닌가 합니다. 극장판과 새로운 tva판이 기다려지네요.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말그대로 포레버 드래곤볼입니다
좋은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추천 후정독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