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에 관하여.
1.
정신 없이 지내는 와중에도 넷플릭스에 올라온 D.P. 를 보긴 봤다. 제아무리 순삭이라지만 그 시간도 아까웠기에 제대로 된 후기까지는 못 쓰겠어서 일단 묵혀두고 있다.
나는 방위병 출신인데, 부대의 성격이 약간 특이해서 위병소나 무기고 등의 경계를 맡은 경계병이라 근무 형태가 좀 달랐다. 복무 기간 내내 D.P.에 나오는 헌병과 똑같은 복장을 한 채 부대에서 총을 들고 서 있었다. 5분 대기조를 겸했으므로 내무반에서 쉬는 동안에도 탄띠를 벗지 못했다. 그 와중에 극중 사연 처럼 별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래봤자 더 고생한 현역 친구들이 많아서 하나마나한 소리. 어쨌든 간단한 감상평은 이러하다.
2.
D.P.의 궁극적 배경은 군대가 아니라 사회이며, 작중 등장하는 모든 부조리는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권하는 폭력적 위계 질서의 한 형태다. 군대문제의 해결은 사회 문제의 거시적 해결 없인 불가능하다. 다만 '뭐라도 해야지'를 행하는 개인의 노력이 수반될 때 돌파구를 만드는게 쉬우므로, 일개 장병 단위 보단 군대 내 세계관의 방관자였던 중장년 장교조직의 습관적인 무책임을 반드시 비판하고 규명하여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군대는 사회에 널리 퍼진 위계에 의한 폭력 질서를 고농축 재생산 하는 일종의 좀비 바이러스 확산 서버로서 기능해왔다. 이를 방치하면 입대 연령인 20대 남성의 무의식 기저에 위계 질서 상층부를 향한 욕망의 폭력성을 뿌리 박아두는 결과로 이어져서 결국 십년 이십년 후 사회 문제로 고스란히 되받게 된다.
따라서 D.P.를 보며 PTSD 호소하는 남성들이 줄을 잇는 것은 그냥 재밌게 볼 현상이 아니다. 그걸 트라우마로 자각하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데, 그것조차 못하는 이들은 폭력을 내재한 채 사회 곳곳에서 그것을 되뿜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든 자신에게든.
3.
군대의 문제가 그나마 양지의 영역에서 제대로 논의 될 기틀이 마련된 것은 최근 1~2년 사이 스마트폰 사용이 허가되면서 부터다. 이제서야 부대 먹거리 마저 사회적 사안이 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 이전에 군복무를 마친 이들 중 현재 청년 층 다수를 차지하는 2030 남성들로부터 제 아무리 '우리 세대는 윗 세대와 다르다'라는 주장이 나와도, 그 세대 남성사회의 바닥에서 작용하는 나름의 폭력적 인식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들 모두가 주범이 아니며 사회 부조리의 블랙홀인 병영문화의 피해자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어쨌든 병영에서 체화한 약육강식 규율에 방관자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사회 부조리를 체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형성됐을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눈엔 그것이 오늘날 20대남 현상의 일부 원인을 꿰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물리적 폭력이 거침없이 횡행하던 과거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4.
물론 근원적으론 군대가 그렇게 운용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무슨 행복한 시절인 양 왜곡 미화하는 전통을 이어받아 온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먼저 짐을 지는 게 맞다.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은 앳띤 애들이 자살하고 의문사 당하고 맞아죽거나, 아니면 탈영하고 내무반에 총기 난사하고 수류탄 까서 던지던 시절 복판인 1996년에도 유쾌한 병영 드라마 '신고합니다'는 인기를 끌었다. (전년도인 1995년 이 드라마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제목이 무려 '남자 만들기'였다.) 당대의 남성 인기스타들이 떼로 출연한 이 드라마는 군 생활을 향수와 인간애로 포장했다. 문제의 해결도 사병간 인간애로 얼마든지 가능한 환상의 세계였다.
93년에 명륜동에서 탈영병이 총기를 난사했고, 94년엔 일병이 사격통제관에게 소총을 난사했으며, 96년엔 전방 양구군에서 이병이 수류탄 던지고 소총 난사 하였는데 그걸 바로잡자며 그런 드라마를 내보냈다. 군 문제가 빵빵 터지는데 사회는 왜곡과 희석으로 대응한 것이다.
2000년대라고 다르지 않다. 예능 '진짜 사나이'가 연예인들을 데리고 허위의 환상을 그려대던 게 2013년이지만, 선임병사들로부터 구타당해 애꿎은 남의 집 젊은 아이가 숨진 '윤일병 사건'은 2014년에 터졌다. 진짜 사나이는 2014년에도 방영했고, 2015년에도, 2016년에도 방영했다.
군대 문화의 심각성에 관한한 나는 한국사회가 늘 이렇듯 무참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심지어 저열하기까지 한 방식으로 대하는 걸 보면서 '나라 전체가 반쯤 미쳐 있다'고 느끼곤 했다. 진짜 모두 제대로 미치거나 돌지 않고서야 옆집 애가 맞아 죽고 총맞아 죽고 폭사하거나 그도 아니면 최소한 트라우마 때문에 제대 후 사회생활 못하고 고생하는데, 어떻게 그 집 담장 너머로 웃는 소리 다 들리도록 TV속 군대를 보며 손뼉치고 웃고 있을 수 있나. 그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낄낄대고 웃으며 티비를 봤던 사람들은, 중장년이 된 오늘날 20대남에게서 엿보이는 폭력적 위계질서를 지적할 입장이 못된다. 애들 눈으로 보기엔 딱 염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5.
군대의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군당국과 정부의 노력은 늘 있어왔다. 그 노력 자체를 깎아 내리거나 책망할 생각은 없다. 사람 일이란 게 외부에선 쉽게 말해도 내부에선 치열한 지점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남들로부턴 손가락질 받더라도 치열한 노력을 해야했던 사람들을 애써 지울 이유가 없다. 다만 사회나 군이 역량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 역량을 발휘할 생각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에서는 비판 지점이 생긴다. 총체적으로 미흡했다.
다행히도 최근 군대 내 스마트폰 허용이 병영문화의 혁신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정보가 고립된 울타리를 깨고 접점의 수를 늘릴 수록 그 공간의 고질적인 난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때문에 이념, 군 철학, 병영 행정 등에서 폐쇄적이고 고착화된, 혹은 수구적으로 근본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예 계를 벗어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없어서다.
6.
이 스마트폰 허용을 이끌어낸 사람들 중에 과거 열린 우리당 의원 임종인이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일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15년 전 이 사람이 주창한 군 개선 방안을 지금 보면 일종의 시금석 내지 예언이 됐다.
자칭 한국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민주계와 뿌리가 같은 의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역시나 그 민주계 정당이 집권한 정부에서 스마트폰이 보급되는 이 상황은 시사점이 있다. 군대 문제 처럼 사회 일각의 소모적 비용을 감소시켜 그 잉여분의 자원을 다른 영역으로 돌릴 수 있게끔 노력하려면, 그에 맞는 이념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이들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저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념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지향성이 뚜렷해야 '뭐라도 하고, 뭐라도 바꾸는' 것이다.
7.
불필요하고 비효능적인 수구적 근본주의 지향을 가진 세력은, 일단현재의 외부에 존재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으므로 미봉책만을 들고 현실을 왜곡하면서 사안의 해결에 미숙하다.
그러니 1990년대 중반 드라마 '신고합니다'와 2013년 '진짜 사나이'가 우리의 군 문화를 정면에서 바라보지 못하도록 기능한 그 시대에, 집권 세력이 어디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 사회가 선택했던 정치적 지향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돌이켜 볼 필요도 있다.
상세에서 욕을 먹더라도 민주주의를 뚜렷이 표방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이는 당시 집권 세력과 정적관계에 있었던 진영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이념의 표방은 헛된 말의 향연이 아니라 행위의 구속을 가능케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계약의 파기가 곧 개인의 사회적 손해로 돌아오는 멍에를 스스로 쓰고 있기에 발전이 가능하다. 이념적 지향이 현실의 해결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가치의 표방과 실제 행위가 일치하는지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리고 그걸 정치적으로 판가름 하는 것은 역시 시민 개인이다.
그러므로 군 문제 해결능력의 본질이란, 정확히는 군의 역량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당대 시민사회의 사고 수준 문제다. 이 단순한 진실을 지금껏 용케 외면해 왔지만 말이다.
덧.
다 쓰고 보니 정확히 자아비판의 이야기다. 내 문제다.
김종현 글
https://www.facebook.com/519211013/posts/10159118144421014/
DP를 보고 아들을 군대 보냈던 엄마로서 몣 시간 동안 뒤척이며 잠 못 이루었던 여러가지들을 대변해주는 글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제 아들은 무사히 제대했으나 군대있는 동안은 혹시나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조심했던 지난 날의 저 자신의 비겁함과 이기심을 깨달으며 부끄러웠습니다
첫댓글 드라마를 안봐서,,,전 군대가 배경인 드라마는 잘 안봐서,,,,
전 청년들이 군대 가는 것을 장기 수련회 간다고 생각,,,
여기서 저의 꼰대 마인드 ,,,
군대가서 겪는 그 모든 일은 인생의 한부분이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도 괴로움도 잇겠지만
전체 인생의 아주작은 한 부분이다....견디어 내어야 할 부분,,,
그 부분이 남은 인생의 작은 조각으로 밑거룸이 될것이다라는...ㅋㅋㅋ
이런 맘편한 생각때문인지...별 생각없이 살았는데..
군대의 문제를 개인에게서 찾지 않았나??하는 반성이 됩니다. ㅠㅠ
그래도 지금 군은 조금씩 개선되어가는 듯해서 안심은 되네유,,,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문명과 군인월급인상이 큰 몫을 하는 듯,,,,
모병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함,,,
ㅎㅎㅎㅎㅎ
'군대 갔다와야 철든다'
는 말 인용했다가
군대 갔다온 아들한테 뒤지게(?) 당했어요 ㅎㅎㅎ
위의 김종현 님과 같은 관점으로 조근조근 씹는데
흑
제가 '헉' 하며 동의했습니다
''너는 창의적인 조직에서 근무 해야겠다''
제가 아들한테 한 말입니다
@깨시오 울아들은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4스타를 일주일 모신 적이 잇나봐유,
그때 운전병. 비서로 커피도 타보고 군기 바짝 들어서 얼굴도 제대로 쳐다도 못 봤는데...
인격적으로 엄청 훌륭하신 분이라....많은 것을 배웠다고,,,,며칠 전에도 이야기 하더라구유,,,
좋은 훌륭한 어른을 일주일 모시고,,,아직까지도 그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어른이라는 것에 대해 반성해봅니다...ㅋㅋㅋ
@깨시오 울아들은 스스로 군대 갓다와서 철들어다는 말을 잘함,,,ㅋㅋㅋ
젊은꼰대 같아유,,,,ㅋㅋㅋ
1953년의 수통은 새걸로 바뀌었다고 들었은니, 이젠 군대도 변하지 않을까하는 기대...
그래도 여군에 대한 성추행은 계속되는 현실...
큰 아이는 욱 하는 성질에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작은 아이는 잠탱이인데, 군대가서 그 젊은 청년처럼 맞고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