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테베 구출작전
1976년 6월 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해서 납치 당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254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테러리스트들은 항로를 변경해 리비아 벵가지에서 재급유를 받고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는 엔테베 공항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다. 당시 우간다는 이디아민 독재 체
제였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은 우간다 정부와 사전 협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테러리스트들은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당시 이스라엘에 억류 중이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40명과 전세계 각국에 흩어진 테러리스트 13명을 석방해줄 것을 요구했다.
인질 억류 이틀 째인 6월 9일, 테러리스트들은 비이스라엘 인질 148명을 석방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정부에게 테러의 목적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한 포석이었다. 결국
엔테베 공항에는 이스라엘 국적 탑승객 94명과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만 남겨졌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석방하라는 하이재커들의 요구를 이스라엘 정부는
가볍게 묵살했고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이스라엘
최정예부대인 사이렛 마트칼(Sayeret Matkal)이 해당 인질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담당
하게 된다. 작전명 "Thunder Bolt" 의 엔테베 구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대테러 인질구출팀의 총책임자는 조나단 네타냐후로 현직 이스라엘 총리인
벤자민 네타냐후의 친형이었다. 아버지는 유대인 역사학자이자 코넬대학교에서
역사학 명예교수로 명망있는 학자였고, 근현대 이스라엘을 사실상 일으키다시피한
네타냐후(Netanyahu) 가문의 주춧돌을 놓았던 인물이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억류된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IDF)는 가용한 모
든 자원을 동원한다. C-130 수송기 4대에 특수부대, 구출팀, 의무팀, 정보팀, 통신팀
등을 나눠 태운 후 엔테베 공항에는 투옥된 납치범들을 석방해 오는 것이라고 속여 착
륙 허가를 받았다, 첫번째 C-130이 착륙하자 화물칸에서 이디아민 전용차와 똑같이
보이도록 개조한 메르세데스 벤츠 1대가 나와 우간다 공군부대 쪽으로 향했는데 여기
에는 흑인 특공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결국 공항 검문 검색을 통과한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엔테베 공항 내부까지 진입하여
7명의 납치범들을 사살하고 106명의 인질 중 3명의 희생자를 제외한 모든 인질을
무사히 구출해내는 환벽한 작전을 성공시켰다. 이로서 엔테베 작전은 훗날 모든 대테러
작전의 성공적인 교과서와 같은 지표를 제시하게 된다.
이런 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언어'였다.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엔테베 공항
내부에 들어가자 마자 '히브리 언어'로 "엎드려"를 크게 외쳤고, 이를 알아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즉각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전방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엎드려"라는 히브리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테러리스트들은 그냥 앞만
쳐다보고 있다가 전멸을 당한 것인데 정말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전에서 특공대원 1명이 희생되었는데 그는 이 작전의 총 책임자였던 조나단
네타냐후 소령으로 당시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부대원은 그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He always went first, and he died first." 항상 부대의 최전선에서 팀을 리드하였던 그 모
습 그대로, 가장 먼저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조나단 네타냐후는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이스라엘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후 하버드에 입학해서 그곳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주변 적성 아랍국들과 많은 전쟁을 치루었고
자신의 조국이 곤경에 처한 것을 목격한 네타냐후는 하버드에서 공부를 중단하고 이스라엘
군대(IDF)에 입대하여 사이렛 마트칼에서 복무를 하다가 엔테베 작전을 현장에서 총괄하는
책임자로 착출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텔아비브와 카이로에 있는 공항은 각각
다른 이유로 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텔아비브에 있는 공항은 전세계 각국에서 이스라엘
군에 자원 입대하기 위해 몰려온 청년들로 인해 마비가 되었던 반면, 카이로에 있는 공항은
빠른 시일내에 나라를 버리고 타국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엘리트층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전쟁의 승패는 이미 싸우기 전
결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가가 몰락할 때 가장 먼저 붕괴되는 것은 물리적 인프라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창창한 청춘을
희생했던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이며, 끝까지 지켜야만
할 가치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펌글)
우간다 엔테베 공항의 당시 모습
이디아민 전용차와 똑같이 보이도록 개조한 메르세데스 벤츠
첫댓글 뒷감당을 모두 국민세금으로 충당하는 편법이 만연된 포플리즘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임시방편적인 처방 이었음이 세계각국의 실사례를 통한 실책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의 공통점은 주변 각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아집이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한마음 공감대가 더욱 절실한 시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