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산춘은 석탄향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다. 그러나 저자의 서문만 읽고 ‘고향 술’ 운운했던
것과 달리 문경의 호산춘(湖山春)이 아니라 전라도 익산의 전통주 호산춘(壺山春) 얘기다. 쏘리. 대
체로 술 이름에 酒가 아니라 春이 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이 깊
고 향이 뛰어난 고급 독주로 소문이 나 있다. 한국의 술 이름이나 양주(釀酒) 기법이 대부분 중국에서
전해온 데 반해, 호산춘과 석탄향은 이름도 양주법도 온전히 우리 것이다.
호산춘에서 호산(壺山)은 전라북도 익산의 옛 지명이다. 호산이 여산을 거쳐 익산으로 변해왔다. 익
산은 호남평야의 중심지로서 물산이 풍부하고 문화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전통문화 가운데
호산춘도 일찌감치 지방의 전통주로 뿌리를 내렸다.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에는 호산춘
의 각종 원료와 양주(釀酒) 기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홍만선의 설명에 의하면 호산춘은 세 번
의 담금 과정을 거쳐 한 달 가까이 발효시킨 뒤에 마시라고 되어 있다. 19세기에 익산의 어느 가문에
서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 미상의 「양주방(釀酒方)」에도 호산춘의 원료와 양주기법이 자세
하게 설명되어 있다.

석탄향(惜呑香)은 이름부터 상당히 운치가 있다. 삼키기[呑]가 아까울[惜] 정도로 향기로운[香] 술
이라는 뜻이다. 색깔이 은은한 황금빛을 띠고 있다 하여 황금주라고도 불린다. 안동지역에 전해 내려
오는 ‘팔도 음식 백과사전’ 「음식디미방」에는 석탄향에 들어갈 각종 원료와 양주 기법이 언문으로
소개되어 있다. 16세기에 안동장씨 가문의 맏며느리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음식디미방」에는 4
6가지의 음식 조리법과 함께 불천위(不遷位) 제례법도 기술되어 있다. 『임원경제지』에도 석탄향의
양주 기법이 설명되어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서책의 양주 기법에는 물과 각종 재료의 양을 재는 도량형 단위도 나오는데,
세종-문종-단종-수양대군의 어의(御醫)를 역임한 전순의의 백과사전 격인 『산가요록(山家要錄)』
에는 도량형 단위에 대해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국‧작‧합‧승‧두‧석이 각각 얼마나 되는 부피를 말하
는지에 대한 정의(定義)다. 물의 온도를 나타내는 용어도 비탕(沸湯)‧탕수(湯水)‧열수(熱水)‧온수‧냉수
등 차이가 있는데, 이를 각각 섭씨 몇 도라고 정의해놓은 내용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탕수(湯水)는
80~90℃’라고 규정해놓은 대목이다.

「동아시아 술문화사」의 저자 이화선이 소속되어 있는 우리술문화원에서 각종 서책에 나와 있는 양
주기법으로 호산춘과 석탄향을 담근 뒤, 술이 익기를 기다려 각종 성분과 맛을 비교해놓은 자료도 재
미있다. 저자는 4년 동안 두 전통주의 제조와 시음에 매달렸다고 밝혀놓았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전
통기법으로 담근 호산춘의 평균 알코올 함량은 17.6%, 석탄향은 20.8%로 석탄향이 쪼매 높다. 이에
반해 당도는 호산춘이 12.0Brix, 석탄향이 8.0Brix로 호산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양주(釀
酒) 과정을 미뤄볼 때 당연하다고 결론을 내려놓았다.
결론적으로 호산춘이 석탄향보다 향미가 깊고 감칠맛이 좋았다는 종합품평이다. 저자는 호산춘에서
‘Full-body’한 느낌을 받았다고 써놓았다.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참이슬만 마시는 나로서 그런 경
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듯. 이후에도 저자는 무려 2페이지에 걸쳐 호산춘과 석탄향의 술
맛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표현해놓았는데, 나처럼 마실 때의 분위기와 마시고 나서 느끼는 알딸딸
한 쾌감을 좇는 아마추어 술꾼으로서는 역시 이해난망이다.

우리술문화원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동아시아 술문화사」저자 이화선 박사
2016년 ‘추사 김정희 기념사업회’에서 우리술문화원에 특별한 의뢰를 해왔다. 세한춘(歲寒春)이라는
이름의 술을 개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추사의 대표작인 <세한도>에서 따온 술 이
름이다. 주문 내용도 매우 추상적이었다. ‘입 안으로 맑게 떨어지는, 그러나 깊은 품격이 느껴지는
술’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술문화원은 이 의뢰를 받아들여 추사와 관련된 모든 전적(典籍)을
뒤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야별로 회의를 거듭하여 전략을 수립한 뒤, 원료를 정하고 배합비율을 계
산하고 양주기법을 개발하여 전문 양조장에 제조를 의뢰했다. ‘추사 김정희 기념사업회’와 합의하여
제조를 의뢰한 양조장은 충남 홍성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별빛 드리운 못’이다. 이 양조
장은 추사 고택과 가까운 지역전통주 생산업체로서 추사가 좋아하던 전통주를 만드는 데 여러 가지
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을 펴낼 때까지 술이 생산되지 못한 모양인데, 두 단체가 뜻을
모아 개발한 전통주가 추사의 예술세계를 잘 표현한 새로운 전통주로 자리잡을지 기대가 된다.
「동아시아 술문화사」 소개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운좋게 헌책방에서 구한 한권의 책에 이런 자료가 모두 일수 없듯 많이도 책을 구해 읽은 박식 없이는 다양한 술 문화를 기술할수가 없습니다. 작가의 해학이 넘치는 재담, 조금을 "쪼매" 로, 경상도 사투리 역시도 양념이 되고있는 풍류 입니다. 소주 참이슬을 몇번 읆은 적도 있지만 빨간딱지가 없는게 조금은 서운 하였습니다. 좋은 하루 맞이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