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시작한 일이 저녁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끝을 맺었다. 드워프 마을까지 운석을 운반한 오늘의 일꾼들은 힘든 노동이 끝난 후의 기분 좋은 나른함을 만끽하며 즐겁게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함프챠 족장은 한스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허. 한스, 자네 덕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네. 역시~! 술을 많이 먹는 자가, 생각도 많다더니.. 옛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네 그려.. 허허."
"흠.. 족장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다들 같이 고생해서 생각하고 일한 건데요.. 그나저나 아다만티움이 드워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금속이라는데, 좋으시겠습니다. 일단 축하드려야 겠군요. 후후. 운석에서 꽤 많이 뽑아낼수 있을 듯 싶은데.."
"허허.. 우리가 고맙지. 그런데, 어차피 인간들은 아다만티움을 제련할 기술이 없다네. 그러니 이번에 저 운석에서 나온 아다만티움은 우리가 제련하도록 해주게나. 어떤가? 마을 전체적으로 봐서도 모두들 아다만티움으로 작업을 해 보고 싶은 마음들이 굴뚝같을 것이야.."
"족장님, 그런 것을 왜 제게 허락을 얻으려 하시죠? 그런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흠.. 마치 운석이 제 소유인 것처럼 말씀하시니 참 난처하군요."
"엥? 한스군! 저 운석은 자네가 발견하지 않았나? 어떤 보물이건 먼저 찾아낸 사람이 임자 아닌가? "
"휴.. 족장님, 어차피 제가 다룰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그리고 실제로 저걸 끌어낸건 마을의 드워프들 아닙니까? 당연히 저 운석은 이 마을의 소유라 해야지요. 사실 저는 저것이 제것이라는 생각을 안해봐서, 너무 어색합니다. "
"허허.. 그래도 맞는건 맞는것이고, 틀린건 틀린것이지. 저 운석은 자네 소유야.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만, 저 아다만티움을 우리손으로 작업해 내고싶다는 것이라네."
"후... 족장님 말씀대로 저 운석이 저의 것이라면, 지금 이후로 이 마을 드워프들에게 선물하겠습니다. 거절하시지는 않으실테죠? 지금 저 드워프들의 생기넘치는 눈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참으로 보기가 좋군요."
한스의 말에 함프챠 족장은 감동의 눈빛을 보였다. 그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소유욕이 강하고 이기적인 종족이었는데, 한스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 보물덩어리를 자신들에게 주려고 하는 모습을 본 함프챠 족장은 감탄과 고마움을 넘어 존경의 감정마저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한스의 입장에서는, 비록 그 운석이 상당히 희귀하고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을 비롯한 일행들이 그 운석을 다루어 아다만티움을 제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설령 드워프들이 자신과 일행들을 위한 물품을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 준다 해도 워낙 많은 양이 남게 될 것이므로 당연히 드워프들이 갖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한스가 보물에 욕심을 내서 자신이 모두 가지려 했다면, 그리고 드워프들로 하여금 물건을 만들게 하고 자신이 그 물건의 소유주가 되어 세상에 고가로 팔았다면, 거대한 부를 축적한 부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한스는 드워프가 무슨 자신의 노예도 아니고 자신의 물건을 계속적으로 생산해 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보통의 욕심많은 인간이 드워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면, 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뛰어난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만을 중요시하는 드워프들의 성질을 이용하여 부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스의 말에 감동한 함프챠 족장은 자신도 모르게 한스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한스군! 정말 고맙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자네것이야. 우리는 작업만 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네. 단지, 저 운석에서 나온 아다만티움 중에서 약간만 얻을 수 없을까 하고 부탁하려 했다네. 허허. 하지만 자네 뜻도 있고 하니 계속 거절할 수는 없지. "
함프챠 족장은 이 말을 하는 단계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얼굴에 홍조를 띄었다.
"원래는 아다만티움으로 연장 한두 세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자네덕에 모든 드워프들에게 아다만티움 연장이 돌아갈 수 있게 되었군. 하하~! 정말 이제는 드워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드워프들이 우글거리는 마을이 될 수 있을게야.. 허허허~! 금속을 단련할 때 재료가 뛰어나면 보통의 연장으로는 작업이 힘들단 말이지. 연장을 수도 없이 바꿔가며 작업해야 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상태로 단련시키기도 힘들고 말이야.. 허허. 하지만 가장 강한 금속인 아다만티움이라면 다르지. 이제까지 우리 마을에 아다만티움으로 된 연장은 부족의 보물로 내려오는 망치하나가 전부라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이 흔하게 사용할수 있게 된다면.. 허허허. "
"족장님 표정이 보기 좋습니다~! 후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
"오오~ 한스군! 그렇다 해도 아마 남은 분량이 꽤 될거네. 이번 운석은 아다만티움의 순도가 꽤 높아. 당연한 얘기겠지. 그렇게 큰 모양으로 남아 있으려면 그만큼 순도가 높아야만 가능한 것이니 말일세. 아마 지금 자네가 들고 있는 창을 통째로 아다만티움으로 만든다 해도 적어도 몇백자루는 나올걸세. "
"호오~ 그렇게나 많이 나온단 말입니까?"
"허허. 그렇다네. 뭉쳐놓은 상태에서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막상 분리해서 만들어 놓고 나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네. 그래서, 일단 자네의 선물은 우리 드워프들의 연장을 만들 만큼만 받겠네. 나머지는 여전히 자네가 갖도록 하게. 뭐, 당장 다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나중일은 모르는 것일테니까.. 허허..."
"예... 뭐, 족장님이 그러라고 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그 많은 것을 다 필요로 할 일은 없어 보이는군요. 굳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 남은 것으로는 마을 드워프들이 자유롭게 작업할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게 저도 좋겠습니다."
"허허.. 정말 우리 마을의 축복일세 자네는.. "
함프챠 족장은 진심으로 감동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던 아다만티움 연장을 이제는 모두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작업의 훌륭한 재료가 되어줄 아다만티움이 풍족하게 있는 것이다. 자신이 생을 마치기 전, 마을의 드워프들이 얼마나 성장할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에 빠진 함프챠였다.
어느덧 드워프들이 저녁식사 준비를 마쳤고, 모두들 둘러 앉아 즐거운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모두들 어느정도 먹고 마신후, 함프챠 족장은 식사전 한스와 이야기 되었던 것을 모두에게 발표했다. 함프챠 족장의 발표가 끝나자 마자, 곧바로 장내는 광란의 파티로 이어졌다. 그 발표의 의미가 모두에게 얼마나 큰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파티였다.
이제는 모리츠의 작업도 끝났고, 갑자기 커다란 보물도 얻었고 해서 모두들 즐겁고 편한 마음으로 축제를 즐겼다. 이날의 가장 큰 대화거리는 아다만티움으로 무엇을 만들까 하는 것이었다. 한스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만들어 보라고 권했고, 마을의 능력있는 드워프들은 자신이 만들 작품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이어 나갔다.
축제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모든 드워프들과 한스일행의 독촉으로 오늘의 주인공 한스의 시간이 주어졌다. 모두들 그동안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창을 수련한 한스의 창술시연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많은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창술을 시연해 보이기가 적잖이 어색한 한스였지만, 창술시연을 시작하자 곧 한스는 창과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식으로 체계가 잡힌 창술을 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연하게 이어지는 연계동작이나 꽉 짜여진 듯한 조직적인 창놀림을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수련해 온 만큼,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변의 기의 흐름을 타고 창을 놀리는, 마치 창을 이용한 느릿하고 부드러운 춤을 추는 듯한 자신만의 창술을 보여 주었다.
느릿느릿 부드럽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창이 어느 순간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고 한순간 멎는 듯 하다가 앞서의 부드러운 동작과는 어울리지 않는 강맹함을 한순간에 폭출해 내는 한스의 창술에 모두들 함께 취해 들어갔다.
이제 한스 일행이 이 마을에서 떠날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 진다는 사실을 모든 드워프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에 아쉬움이 큰 만큼,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축제를 즐겼다.
축제도 끝이나고 루시아의 스승인 모리츠가 앞으로 5일 후에 이곳으로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축제의 다음날부터, 마을에서 돌아다니는 드워프를 찾기가 매우 힘들어 졌다. 모두들 자신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아다만티움을 이용한 작업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이 늦도록 그놈의 망치소리 때문에 잠을 자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제 모리츠가 도착하기 하루전날 저녁 무렵. 저녁식사를 하러 온 한스앞에 수많은 드워프들이 모여 있었다.
"허억!! 이게 다 뭡니까?"
자신의 앞에 쌓인 수많은 물건들을 본 한스는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한스에게 사파루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스! 우리에게 마음껏 작업을 하라고 준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것이야. 음.. 다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이렇게나 생각들이 똑같아서 우리도 다들 놀랐다구. 아무래도 자네가 고마운 존재인데다가, 축제날 창술을 보여준 것이 이 원인인 것 같군. 뭐, 완성품이 나오기 전 까지는 서로가 무얼 만드는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야..."
한스의 앞에 수북히 쌓인 것은 거무튀튀한 빛을 자랑하는 창이었다. 내심 강한 금속으로 창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지금 앞에 쌓인 것은 대강 보아도 무려 오륙십 자루는 되어 보였다. 다들 생김새가 조금씩은 달랐지만, 길이나 전체적인 모양은 한스가 원래 사용하던 창과 비슷해 보였다.
"하하! 이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것을 한번 골라 보라구~! 물론 이건 다 네것이지만, 그래도 일단 하나를 골라야 하지 않겠어? 하하하~! 그리고 말이야.. 이게 내가 만든 것이거든? 왜 전에 네가 말했듯이 말이야.. 분리되는 창... 이렇게... 돌려서 분리하면 칼부분과 자루 밑부분으로 나뉘지. 아, 그리고 특별히 분리된 상태에서도 검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했어. 어때? 이만하면 좋지않아?"
사파루는 자신의 작품이 다른 드워프들의 작품보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나다는 자랑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드워프들은 또 자신들이 만든 것도 한번 사용해 보고 평가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한스는 수많은 창을 들어서 한번씩 휘두르고 사용해본 결과 하나같이 뛰어난 성능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무게의 균형과 손에 적당히 달라붙는 느낌하며 어느 하나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사파루가 만든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창들은 애석하게도 마을의 창고에 진열되어 질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