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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사비오 증거자(3.9)◀
1. 가토릭 굿 뉴-스 성인록 ▷
성인명: 도미니코 사비오 (Dominic Savio)
축일: 3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842-1857년
같은이름: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 T ♧♧♧♧ T ♧♧♧♧
성인설명 :
• 성 도미니코 사비오(Dominicus Savio)는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토리노(Torino) 근처의 산 조반니 디 리바(San Giovanni di Riva)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인 아버지 카를로 사비오(Carlo Savio)와 재봉사인 어머니 비르지타(Birgitta) 사이의 10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부터 매일미사의 복사를 하였으며, 7살 때에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하였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가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의뢰하였는데, 성 도미니코 사비오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12살 때에 토리노의 종합기숙학교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오라토리오에 입학하였다.
·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고행을 원하였으나 요한 보스코의 지도에 따라 특이한 고행보다는 매일 매순간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충실히 하는 데서 성화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를 결성하여 친구들과 더불어 성덕을 닦았다.
성인이 조직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요한 보스코를 여러 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그 모임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코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앙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게 던져라.”
나이 어린 소년의 이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 못지않았다.
가끔 돈보스코는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일은 하지 못 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 하며 대답하였다.
또 돈보스코가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코가 얇은 시트 한 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코가 발견하고,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폐렴에 걸릴려고?” 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돈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 또한 도미니코는 아침 미사 때부터 몇 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중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돈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Pius IX)께 알렸고, 교황은 이 말을 듣고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폐렴까지 겹치자 건강 회복을 위해 1857년 3월 1일 집으로 보내졌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수술의 고통을 견디어 냈지만, 3월 9일 아스티(Asti)의 몬도니오(Mondonio)에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당신께 영원한 찬미를 드리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아!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습니다"였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Roma)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코의 시성 후인 1950년 3월 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54년 6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는데, 교회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성인 가운데 한 명으로서 소년 성가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의 축일은 선종일인 3월 9일에 지내나, 살레시오회 등에서는 성인의 축일이 늘 사순시기와 겹치는 등의 이유로 5월 6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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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 3월9일(5월6일)성 도미니코 사비오 >
......... (안젤라 | 2010.03.09 Ud.)
▷ 축일:3월9일(5월6일)
< 성 도미니코 사비오 >
- St. Dominic Savio
- San Domenico Savio Adolescente
(注: - 성 도미니크 사비오.
- 성 도미니코 사비오 소년)
- Born:2 April 1842 at Riva di Chieri, Italy
- Died:9 March 1857 at Mondonio, Italy
(注: - 출생: 1842.4.2 일 이태리 치에리의 리바에서.
- 사망: 1857.3.9 일 이태리 몬도니오에서)
- Beatified:1950 by Venerable Pope Pius XII
- Canonized:12 June 1954 by Venerable Pope Pius XII
(注: - 시복: 1950 년 존경하올 교황 비오 12 세.
- 시성: 1954.6.12 일 존경하올 교황 비오 12 세.)
- Name Meaning:belonging to God (= Dominic) wise; learned (= Savio)
(注: - 이름 뜻= 하느님(=도미니크)에 속한 현자; 배운잨(=사비오)
* 위(注: '18.3.10 일 -아타시 韓 譯)
• 도미니코 사비오는 1842년에 피에드몬트의 리바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 주도록 의뢰하였는데,
도미니코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리하여 그가 12세 때 토리노의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학생이 되었다.
☆ Don Bosco의 예방교육
• 돈보스코는 청소년들을 참으로 사랑하였고 청소년들도 돈보스코를 사랑하였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하여 나의 마지막 숨까지 다 바치겠다"는 열망으로 평범함 속에서
비범하게 이루어진 돈보스코의 '예방교육'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교육자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다.
"예방교육"이란 청소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질과 역량을 모든 차원에서 일깨워 적극 장려함으로써
그들이 전인적으로 성장시켜 진실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예방교육"은 온전하게 성숙한 인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삶의 주역'이 되어
'삶을 축제'로 살아가는 행복한 인간을 양성해내는 교육여정이다.
이것은 선량함과 친근감, 기쁨과 신뢰, 사랑과 합리성이 깃든 교육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예방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강요와 억압, 겉꾸밈, 권위적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예방교육"은 돈보스코의 교육사상 전체와 연관되며, 전인교육의 근본 요청이다.
돈보스코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요청을 흡족하게 채워주고 존중해 주는
그의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청소년들을 내부로부터 재생시키는 길을 찾아 내었다.
그는 예리한 직관력과 독창적인 재능으로 청소년들의 깊은 염원을 복음적 가치 및 올바른 삶의 원칙들과 결부시킬 줄 알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교육의 천재, 교육학 방법론의 성인이라 부른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라고 자주 말한
돈보스코 예방교육법의 최고 원리이자 기본 패러다임은 '감응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예방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내적인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적 분위기 조성과 성숙한 '교육자의 현존'이라 할 수 있다.
(살레시오수도회홈에서)
* 성 요한 보스코(돈보스코) 사제 축일:1월31일.게시판1595번.
* 성 프란치스코 드 살(프란치스코살레시오)주교 학자 축일:1월24일.게시판158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수도회
(이) Societa’ di san Francisco Salesio
(영) The 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
•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 도미니코는 그의 개성과는 달리, 자신이 그곳에서 조직한 ’무염 성모회’때문에 길이 기억된다.
이 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돈보스코를 여러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 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무염 성모회’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코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양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세 던져라.’
나이어린 이 소년의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과 못지 않았다.
가끔 돈보스코는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하며 대답하였다.
☞ 또 돈보스코는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코는 얇은 시트 한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코가 발견하고,
’왜, 이런 짓을 하는냐, 폐렴에 걸리려구?’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여 돈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도미니코는 아침 미사때부터 몇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증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 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돈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께 알렸고, 교황은 이어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하게 되었다.
그의 건강은 날로 나빠져서, 1857년에는 고향집이 있는 몬도니오로 보내졌고,
3월 9일 저녁에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코의 시성 후에야 이루어졌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Be Still My Soul-The St Philips Boys Choi
https://youtu.be/Ai1WP9P8E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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