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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향으로 돌아가자(回歸極樂) 원문보기 글쓴이: 바우
[불교사상가] 12. 선도
“지금 여기 있는 모두를 구제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
스승 찾아 중국 각지를 편력
세계적 도시 ‘장안’에서 교화, ‘관경소’ 등 5부9권 저술 남겨
“광명사에서 설법 중의 선도대사에게 사람이 물었다. 지금 부처님의 명호를 염(念)하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는지요? 그러자 대사는 염불필정(念佛必定)이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그 강한 답에 응하여 그 사람은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칭하면서 광명사의 문을 나와 버드나무 꼭지에 올라가서 합장하고 서쪽을 향하면서, 염불소리와 함께 투신자살했다. 이 일은 조정에도 들리게 되었다.”
이 글은 도선(道宣)의 속고승전(續高僧傳)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선도(善導)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진지한 구도자(求道者)로서 또 교화자(敎化者)로서 그 삶을 관철해 나갔던 한 사람 즉, 선도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다.
선도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傳記)는 매우 많다. 중국에서 찬술된 것만도 20여종이 넘고, 일본에서 찬술된 것까지 합하면 전부 30여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기본적인 사료로 가치를 갖는 것이 〈속고승전(續高僧傳)〉,〈왕생서방정토서응산전(往生西方淨土瑞應刪傳)〉,〈염불경(念佛鏡)〉,〈정토왕생전(淨土往生傳)〉,〈신수왕생전(新修往生傳)〉卷中〈선도전(善導傳)〉, 금석문(金石文)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전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서안에 위치한 향적사의 선도탑이다.
향적사는 706년 건립된 정토종 사찰로, 선도스님의 후학들이 세웠다. 사진출처 <중국불교의 여로>
선도는 수나라 말기의 613년에 임치(臨淄)에서 태어나 당나라 초기인 681년에 69세로 입적(入寂)했다. 그의 속성은 주(朱)이다. 어려서 밀주(密州)의 명승법사(明勝法師)에게 출가하여,〈법화경〉과〈유마경〉을 독송했다. 그 뒤 그 곳을 떠나 멀리 구법(求法)하고 스승을 찾아 중국의 각지를 편력했다. 이 때 선도는 아미타불의 정토의 장엄을 그린 ‘서방변상도(西方變相圖)’를 보고 감명을 받고, 정토왕생의 원(願)을 일으켰다고 한다. 20세가 되자 구족계를 받고, 묘개율사(妙開律師)와 더불어〈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이하 관경)〉을 읽고 기뻐하여, 이 경전의 교설을 깊이 믿게 되었다. 그 이후 산동성의 태원의 남서에 있는 석벽산(石壁山) 현중사(玄中寺)에서〈관경〉을 강의하며 염불을 실천 수행하고 있던 도작(道綽)(562~645)을 만나 오직 염불하는 아미타불의 가르침에 들게 되었다.
그 후 현중사를 떠나 장안의 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 오진사(悟眞寺)에 들어가서 염불의 실천에 전념하게 된다. 그의 나이 35세를 전후한 시기로 스승인 도작이 입적한 후이다. 그는 이 때 엄한 실천행을 하면서 장안(長安)의 광명사, 자은사, 실제사 등에서 많은 교화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그의 저서들이 저술되었다고 한다.
선도의 저술은 일반적으로 5부 9권으로 알려져 있다. 5부 9권은〈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 이하 관경소) 4권,〈법사찬(法事讚)〉2권,〈관념법문(觀念法門)〉1권,〈왕생예찬게(往生禮讚偈)〉1권,〈반주찬(般舟讚)〉1권이다. 그 중에서〈관경소〉는 그의 정토교학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풀이한 교의서이며, 다른 4부는 모두 정토염불도량에서의 종교의례에 관한 저술이다.
선도는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를 구제하는 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는 ‘죄악에 오염되어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전혀 다른 길이 없는 모든 중생이 상하 구별없이 평등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일관되고 확고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선〈관경소〉에 나타난 그의 태도를 보자.〈관경〉은 당시 많은 학자들이 주석서를 쓴 경전이었다. 이 경전의 주된 내용은 왕사성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비극적 사건이다. 여기에 위제희 부인이 등장한다. 아들인 아사세는 아버지인 빈비사라왕의 왕위를 참탈하고 그를 감옥에 유폐시켜 굶어 죽게 하고, 남편을 도우려 했던 그녀도 골방에 감금시켜 버렸다. 자식에 의해 남편을 잃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그녀는 영취산의 기사굴산에서 설법하고 계시는 석가세존에게 원망과 함께 자기의 원(願), 즉 고뇌가 없는 세계에 태어나는 원(願)을 호소하게 된다. 이에 석가세존은 불력(佛力)으로 여러 불국토를 보여주게 된다. 이에 위제희 부인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고 자기뿐만 아니라 후세 사람들까지도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을 물어보게 된다. 석가세존은 선정관법(禪定觀法)에 의해서 정토에 왕생하는 법, 즉 13관(觀)과 선정관법으로는 도저히 정토에 왕생할 수 없는 근기를 가진 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방법, 즉 3관(觀)을 설해 주신다.
선도는 먼저〈관경〉에 나타난 석가세존의 본의(本意)가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선도는 위제희 부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증오하고 다투는 죄악과 모순이 가득한 이 세속을 살아가는 하나의 우치(愚癡)한 여인에 불과하다고 규정한다. 즉 위제희 부인을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존재자로서 파악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 즉 도저히 정토에 왕생할 수 없는 근기를 가진 범부가 왕생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관경〉을 설한 석가세존의 본의(本意)라고 주장한다. 당시 섭론학파의 사람들이 중요시했던 선정삼매(禪定三昧)를 통하여 아미타불과 정토를 관상하는 수행방법에 대하여 선도는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은 오직 칭명염불이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선도는 염불자의 세 가지 연(緣)인 친연(親緣), 근연(近緣), 증상연(增上緣)을 설명함으로써 염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친연(親緣)이란 신앙자가 입으로 언제나 부처의 명호(名號)를 칭명(稱名)하면, 부처는 곧 그것을 들으시고, 몸으로서 부처를 예경(禮敬)하면 부처는 곧 그것을 보시고, 마음으로 언제나 부처님을 예경(禮敬)하면 부처님은 곧 그것을 아신다고 하여 부처님과 내가 서로 떨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연(近緣)이란 신앙자가 부처를 뵙고자 원하면, 부처는 곧 그 염원에 응하시어 눈앞에 현존(現存)하시게 되어, 부처와 손을 맞잡는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증상연(增上緣)이란, 중생이 칭명(稱名)하면 자기 자신의 지난 날의 죄업이 제거되고 정화되어 목숨이 다하는 때에는, 여러 성자들의 영접을 받아서 사악함에 방해 받는 일이 없어져 불력(佛力)의 가호(加護)속에 신앙생활의 생애를 통해서 무너지지 않는 힘을 증진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선도의 사상은 그의 저서인〈관경소〉‘산선의(散善義)’에서 더욱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범부중생이 정심(定心)으로 관찰하여 정토를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관경〉에서 석가세존은 위제희 부인의 간절한 요청에 응하여 13가지 관법(觀法)을 설하고 뒤이어 어떠한 요청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구품인(九品人)의 정토왕생의 방법 즉 3가지 관법(觀法)을 설했다.
구품이란 모든 일체중생을 뜻한다. 정심(定心)을 얻지 못하고 산란한 마음을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범부의 종교적인 실천법을 설하여 주신 것이다. 앞의 13가지 관법은 정심(定心)에 의해서 정토를 관(觀)하는 방법이며, 이것을 정선(定善)이라고 한다. 그리고 뒤의 3가지 관법은 모든 범부중생을 위한 구제의 가르침으로서, 산란한 마음 그대로의 실천행임으로 산선(散善)이라고 한다. 선도는〈관경〉을 설한 부처의 직접적인 목표는 바로 이 구품인을 위한 3가지 관법에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강력하게 내세웠던 것이다.
‘도작’ 만나 아미타염불 공부
“내면에 반드시 신심을 갖추고 칭명염불 해야 정토왕생 가능”
불도를 성취하는 데는 안심(安心)과 기행(起行)과 작업(作業)의 세 가지에 입각하여 수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토교 또한 이 세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그는 안심(安心)으로서 삼심(三心)을, 기행(起行)으로서 오종정행(五種正行)을, 그리고 작업(作業)으로서 사수법(四修法)을 설명하고 있다. 선도는〈관경소〉에서 경전에서 설하는 삼심(三心)이야말로 신앙자의 안심(安心)이며 실천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선도가 말하는 삼심(三心)이란 무엇인가. 삼심(三心)은 지성심(至誠心)과 심심(深心)과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이다. 지성심(至誠心)이란 정토의 행자(行者)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 절대 허위(虛僞)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심(深心)이란 깊이 믿는 마음이다.
심심(深心)에는 다시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현실속의 자기존재가 죄악이 깊은 범부로서, 끝없는 과거로부터 미혹된 세계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믿고, 둘째는 이러한 자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틀림없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심심(深心)에 대한 선도의 해석에서 결국 신(信)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방식에 대한 자각을 깊이 믿는 것과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왕생한다는 것을 깊이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인간존재의 죄악에 대한 깊은 참회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이란 스스로가 과거세와 현세에서 행한 일체의 선행과 다른 사람들이 기쁘게 따라서 행한 선행 모두 진실심과 신심 속에서 회향하여 저 정토에 나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독선적인 개인을 위한 발원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의 공생(共生)을 바라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행(起行)으로서 오종정행(五種正行)이란 무엇인가. 선도는 일심으로 아미타불에게 올리는 예배정행(禮拜正行), 찬탄공양정행(讚嘆供養正行), 관찰정행(觀察正行), 독송정행(讀誦正行), 칭명정행(稱名正行)의 오종정행(五種正行)을 정토신앙자의 실천행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도는 이 중에서 칭명(稱名)을 일체중생이 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전수(專修)해야 할 행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칭명을 정정업(正定業)으로 보고 나머지 네 가지를 조업(助業)이라고 했으며, 정업(正業)과 조업(助業)외의 모든 행을 잡행(雜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행(行) 중에서 칭명을 가장 뛰어난 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업(作業)으로서 사수법(四修法)이란 무엇인가. 이 사수법(四修法)은 공경수(恭敬修), 장시수(長時修), 무여수(無餘修), 무간수(無間修)를 말한다. 이것을 요약해서 설명하면 그 불(佛) 및 일체의 성중(聖衆)등을 공경예배(恭敬禮拜)하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서원(誓願)하여 중지하여서 안 되며, 한결같이 불명(佛名)을 칭(稱)하여 그 불(佛) 및 일체의 성중(聖衆)등을 전념(專念)하고 전상(專想)하고 전례(專禮)하고 전찬(專讚)하여 여업(餘業)과는 섞여서는 안 되며, 상속(相續)하여 공경예배(恭敬禮拜)하고, 칭명찬탄하고, 억념관찰(憶念觀察)하고 회향발원하여 심심상속(心心相續)하여 여업(餘業)을 행함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선도의 사상 속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불교의 실천행은 오직 칭명염불뿐이라는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이 칭명염불이 자기 마음대로 불러대는 칭명염불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칭명염불로써 정토왕생이 가능하다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에 의한 칭명염불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칭명염불이 자력(自力)에 의해서 생기는 정토왕생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칭명염불의 내면에는 반드시 신심(信心)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심(信心) 없는 칭명염불은 정토왕생의 인(因)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칭명염불과 신심은 하나이어야 한다. 상몰(常沒)하며 유전윤회(流轉輪廻)하는 어리석은 범부중생이 부처의 원력에 의한 칭명염불로 정토왕생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이야말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부처님께 모든 것을 떠맡기는 삶을 즐겨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신(信)의 일념(一念)으로 살아가는 염불자의 삶인 것이다.
김 종 민 / 부산예술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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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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