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쇼핑도 스마트(smart)하게 하세요."
"한 마디로, 스마트."
요즘 광고를 보면 스마트가 넘쳐난다. 우리 주변을 보아도 스마트 열풍이다. 스마트카, 스마트시티, 스마트카드, 스마트폰, 스마트TV까지 스마트가 붙지 않은 것은 어쩐지 구시대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스마트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를 스마트하다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결정하게 하라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만드는 기획자가 돼 보자. 신제품 개발을 위해 시장 조사를 해보면 각양각색의 아이디어들이 쏟아질 것이다. '요리 레시피를 보고 싶어요', '골프 칠 때 그린까지 남은 거리를 알고 싶어요'와 같은. 그러나 또 한 편에서는 '전화만 하면 되지, 기능이 많아 봤자 복잡하니 모두 빼주세요'라고 한다. 난감하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과거의 경영학은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를 잘하라고 했다. 소비자를 잘 분류하여(Segmentation), 제일 좋은 집단을 골라(Targeting), 그들이 공통으로 원하는 것을 주라는 것(Positioning)이다. 좋은 방법론이긴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30대 전문직 여성들이 아이돌 그룹 '2PM'을 좋아한다지만, 같은 전문직 여성 중에서도 근육질의 '택연'을 좋아하는 사람과 곱상한 '닉쿤'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엄청난 취향 차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개인의 개성이 폭발하는 시대에, 소비자는 더 이상 군집(segment)이 아니다. 각자의 취향을 가진 개인이다. 이들에게는 무작정 많은 기능을 주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그것만 쓸 수 있는 환경을 주는 것이 더 스마트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제품 기획자가 아니라 결국 소비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시대는 소비자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은 이를 위해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장터를 제공한다. (앱스토어나 안드로이드 마켓은 이를 위한 곳이다.)
스마트TV에도 이와 유사한 장터가 생길 것이다. 예컨대 방송사나 케이블 업체가 구비하고 있지 않는 외국 드라마나 독립 영화를 검색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아이가 TV를 통해 회사에 있는 엄마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거는 화상 전화 프로그램이나 온 식구가 함께 즐기는 가정용 게임 프로그램도 나올 것이다. 의료용 센서를 연결해 가정 내에서 건강 검진을 받거나 집안에 설치된 센서와 TV를 연결하여 집 안의 청결 상태나 화재 발생 가능성을 점검해 보는 프로그램은 어떨까? 이처럼 다양하고 기발한 프로그램들 속에서 소비자는 폭발하듯 증가하는 선택권을 누린다.
■스마트 환경과 기업
이제 자동차를 사러 가보자. 등급을 고르고, 세부 사양과 각종 옵션을 골라야 한다. 이렇게 주문한 차는 같은 차종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다른 제품이다. 선택권이 넓어졌으니 이것도 스마트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기업 중심의 맞춤화(customization)와 스마트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 있어 다양성은 곧 비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이 제공하는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동차의 옵션이 아무리 다양해진다 하더라도 소형차에 브렘보 브레이크(유명 경주용 차와 스포츠카에 장착되는 고성능 브레이크) 옵션이 붙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환경에서 맞춤화의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이다. 스마트 환경의 장터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이곳은 개방되어 있으며, 누구든 아이디어를 사고팔 수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마켓을 열었지만, 거기서 무엇이 팔리는지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애플은 가끔씩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프로그램을 검열하여 비난을 받곤 하는데, 이 비난이야말로 애플의 앱스토어가 애플의 소유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아마 가장 이상적인 스마트 환경은 웹일 것이다. 웹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여러 기업의 투자로 만들어졌지만,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통제받지도 않는다. 그 속에 있는 이들의 자율적 질서와 혁신으로 진화해 나갈 뿐이다.
스마트 환경은 개방성과 그로 인해 존재하는 수많은 참여자 덕분에 개별 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단 한 명의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존의 대기업은 엄청난 사업 모델 혁신을 해야 하지만, 스마트 환경에서는 그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지구상의 어떤 기업(앱 개발업체)과 소비자가 만나는 장터를 만들면 된다. 기업이 풀지 못한 다양성과 비용 사이의 딜레마가 이렇게 해결되는 것이다.
수많은 공급자의 개성과 소비자의 선택권이 만나
상승작용 일으키는 게 스마트 환경의 큰 장점
스마트시대 경쟁패러다임은 혼자 강해지는 게 아니라
동반자 돕고 그들이 크면 자신의 경쟁력도 커지는 것
수많은 공급자의 개성과 소비자의 선택권이 만나 일으키는 상승작용은 스마트 환경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기업은 혼자 생각하지만, 스마트 환경에서는 참여자들이 각자, 그리고 함께 생각한다.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히트한 제품들은 애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애플은 그들이 아이디어를 낼 공간만 제공했을 뿐이다.
최근 구글의 스마트TV가 화제인데,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만약 구글 TV가 성공할 경우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는 구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구글의 몫이 아니라 구글의 스마트TV 환경에 참여한 다양한 공급자와 소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시대의 기업 경영
① 스마트화의 본질을 보라
스마트화가 만능인 것은 아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일일이 골라서 쓰는 건 골치 아프다', '보안이 불안하다', '쓸모없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 때문에 스마트화는 일시적 유행(fad)에 그치고 말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조금 다른 곳에서 구해보는 게 어떨까 한다. 우리는 왜 민주주의를 믿는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라서가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것을 끌고 가는 신념인 것이다. 스마트화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화를 끌고 가는 힘의 본질은 소비자 주권과 창의적 개성의 힘이 기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다. 때문에 현재 지적되는 스마트 환경의 문제점은 스마트화의 한계가 아니라 이 믿음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맡겨진 혁신 과제다. 그리고 이 혁신으로 인해 스마트 환경은 계속 진화해 나갈 것이다. '스마트함'이 아니라 '스마트화'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늘 진행형일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 환경을 불편해한다. 기존의 비즈니스 환경을 위협하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화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플랫폼, 제품의 표준화가 필요하기에 기업의 차별화 전략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 판단의 몫은 소비자에게로 돌려야 한다. 그것이 소비자 가치를 창출하는 한 스마트화는 거부할 수 없는 조류가 될 것이고, 기업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스마트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항들은 어찌 보면 기쁜 숙제다. 스마트 환경에서 소비자가 겪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그곳에 기생하는 악의로부터 소비자를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스마트시대를 사는 기업에 주어진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2인 3각 달리기에 적응하라
스마트시대에는 경쟁의 패러다임도 변화한다. 이전의 기업 경영은 100m 달리기였다. 경쟁자보다 빨리 뛰어 결승선을 먼저 끊는 쪽이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환경에서 기업 경영은 2인 3각 달리기다. 스마트 환경에 동참한 동반자들(이것을 에코 시스템이라고도 한다)과 자신의 발목을 묶은 채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흔히 애플의 제품 라인이 너무 단조롭고, 변화가 느리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신제품 출시가 경쟁에 유리할지는 모르지만, 동반자들에게는 혼란이다. 새로운 아이폰이 나오면 구모델에 맞춰 제작된 액세서리와 프로그램들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애플이 제품 출시의 규칙성과 예측성을 중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애플은 그가 만든 스마트 환경에 존재하는 동반자들과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뛰고 있는 동반자들을 돕고, 그들의 경쟁력이 강해지고, 그래서 내가 속한 스마트 환경의 경쟁력이 높아지게 하는 것, 이것이 스마트시대의 경쟁 패러다임이다.
③ 스마트한 변신이 필요하다
스마트 제품은 협력자들을 향해 '열려 있는' 제품이다. 프로그램을 사고파는 장터를 통해 새로운 기능이 생기고, '업그레이드(upgrade)'라는 형태로 운영체계가 좋아지기도 한다. 여러 가지 주변용품을 연결하여 새로운 쓰임새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의 내부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컨대 스마트 환경에서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업체도 서비스의 몫이 생긴다. 스마트폰의 OS 업그레이드는 휴대전화 제조사의 몫인 것을 생각해 보라.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교체 기간은 비교적 짧아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TV는 한 번 사면 10년을 쓰는 제품이다. 스마트TV를 산 고객에게는 10년 동안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한 조직과 상품 기획 능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새로운 역할이 생긴다면 줄어드는 역할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애플은 경쟁사들에 비해 제품을 좀 덜 만든다. 수십 가지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는 경쟁사들에 비해 애플은 오직 한 가지 디자인의 제품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협력자들은 기회가 생기고, 소비자들은 선택권을 누린다. 수많은 업체들이 아이폰용 액세서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색상은 물론이고, 플라스틱에서 가죽까지 소재도 다양하다. 내가 하는 것보다 남들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 다양해질수록 좋지만 관리나 비용의 문제로 제한된 다양성을 줄 수밖에 없었던 요소들을 찾아내어 이 일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스마트시대에 중요한 혁신 요소이다.
스마트 환경에서는 어떤 제품도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활동도 마찬가지다. 생태계 속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역할은 무엇인지, 생태계 속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하면 더 높은 가치가 생기는 지점은 어디인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