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기』 대니 샤피로가 15년 만에 완성한
신작 장편소설 국내 첫 출간
논픽션 『계속 쓰기』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소설가 대니 샤피로의 신작 소설 『별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Signal Fires)이 출간되었다. 『별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은 샤피로가 오래전에 집필하다 만 미완성 원고를 팬데믹 시기에 다시 꺼내 15년 만에 완성한 역작으로, 샤피로의 소설을 기다려 온 한국 독자에게 마침내 도착한 첫 소설이다. 이 작품은 『타임』 『워싱턴 포스트』 『베니티 페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NPR, 아마존 등 10여 매체에서 ‘올해의 책’ ‘올해의 소설’ 등으로 선정되었고, 아마존과 굿리즈에서 각각 누적 4500개에 육박하는 별점과 리뷰를 받으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샤피로는 이 작품으로 2019년에 이어 두 번째 전미유대인도서상을 받았다. 언론, 독자, 평단의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TV 드라마로 영상화(영화 〈스타 이즈 본〉 프로듀서 리넷 하월 테일러 제작)를 확정 짓고 현재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이다. 샤피로는 각색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오류, 과오, 상실을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닫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금 고립된 별들이 아니라 별자리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 서제인,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 시대 꼭 필요한 마술 같은 이야기
별이 가득한 디비전 스트리트의 밤하늘 아래,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참나무 고목 하나가 서있다. 오래전, 그 나무 곁에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시작된 거짓말이 한 가족을 옭아매는 비밀이 된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벤저민(벤) 가족(벤, 미미, 세라, 테오)의 집과 월도 가족(월도, 앨리스, 솅크먼)의 집이 마주 보고 있다. 두 가족은 5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얽히게 된다. 소설은 1970년 6월 5일부터 2020년 7월 2일까지의 여러 시간대와 시점 사이를 옮겨 다니며 인물들의 서사를 교차시킨다.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장으로 진행되는 이 비선형적 서사는 인물들의 기억과 시간을 무람없이 파고들면서, 그들 내면의 심연으로부터 진실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어느 밤, 그 나무 밑에 노년의 은퇴 의사 벤과 열 살 소년 월도가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별자리를 올려다본다. 스스로 고립된 줄 알던 그들 각자가 서로 간의 ‘연결’을 깨닫는 순간, 어떤 변화가 시작될까. 그들은 더는 별이 아니라, 별자리로 존재하게 될까.
작가의 온 생을 들여 완성된 이야기
샤피로는 가족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 〈패밀리 시크릿〉을 무려 열 시즌째 맡아 진행 중이다. 소설 『가족사』(Family History, 2004), 회고록 『상속』(Inheritance, 2019) 등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대표작들을 비롯해, ‘가족’과 ‘비밀’은 대니 샤피로가 작가로서도 줄곧 천착해 온 주제이다. 그런 면에서 근작이자, 오래 묵혀둔 이야기를 기어이 되살려 세상에 내놓은 이 작품은 “그의 모든 세월 내내 만들어온” 필생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 시점이 팬데믹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계획이 단지 환상에 불과”(355쪽)한 팬데믹을 보내며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놓지 못한 이야기를 토해놓았다.
“땅이 수용소라면, 그리고 바다가 영혼의 납골당이라면, 불꽃을 올려 신호하라” - 캐롤린 포르셰, 「애도」
영원히 존재하는 상실에 관한,
비극이 우리 곁에 머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
소설에서 감당하기 힘든 비밀을 품은 채 고립된 각자는 자긍심을 잃어 한없이 위축되고, 스스로를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며 자기파괴를 꾀한다. 우리가 결코 비극을 피할 길이 없고 상실과 떨어져 지낼 수 없다면, 어떻게 계속 실패하면서도 살아갈 의미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원제는 Signal Fires, 직역하자면 “신호의 불꽃”이다. 원문에는 두 번 이 말이 나온다. 한 번은 책 도입(7쪽)에 제사로 인용된 캐롤린 포르셰의 시 「애도」에서, 한 번은 노년의 벤이 소년 월도와 만나 밤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던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다. “그 별들은 쌀쌀맞고 무자비해 보이기보다는 어둠 속에 타오르는 신호의 불꽃들처럼, 길을 밝혀주는 비밀스러운 동료 여행자들처럼 보였다”(219쪽). 한국어판 제목 “별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은 눈 내리는 밤 가출한 월도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벤의 아내 미미를 길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에서 온 표현이다.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할머니. 저 별들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우릴 발견해 줄 거예요”(233쪽). 가장 절박한 순간 가장 무해하고 취약한 두 존재가 서로의 온기만을 의지하며 나누는 기도. 불꽃을 쏘아 올려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순전하고 강인한 두 존재는 누군가 우릴 발견해 줄 거라는 가능성, 그들 안의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는다.
사랑하고, 잃어버리고, 실패하면서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별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은 구원과 회복의 서사를 다루지만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힐링 소설류는 아니다. 유려한 문장, 영리한 플롯, 몰입도 높은 전개가 읽는 속도를 내주지만 거침없이 통과할 수 있는 쉬운 소설이 아니다. 독자들은 때로 덜커덩거리고 움찔하면서, 한쪽 가슴이 뻐근해지거나 느슨해지는 것을 수시로 느끼면서, 소설의 시간을 따라 여름밤과 겨울밤을 넘나들며 시시각각의 온도를 체감하는 독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계속 실패하면서도 “더 낫게 실패”하려고,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하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계속 쓰기』) 살아가듯이. 앞으로의 여정에 “어둠 속에 타오르는 신호의 불꽃들처럼, 길을 밝혀주는 비밀스러운 동료 여행자들”(219쪽)이 있음을 붙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