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2-14. 날씨: 과천은 비가 오지 않았고, 하동 가는 길에 비가 쏟아진다.
[매실퐁당 자연속학교와 매실 원정대]
이틀 밤 사흘 낮으로 하동을 다녀왔습니다. 하동에는 비가 왔지만 매실 딸 때는 그치고, 몸놀이 할 때도 오지 않고, 하늘이 도와 매실원정대 노릇과 6학년 매실 퐁당 자연속학교 지원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매실 따기 자연속학교는 아주 특별합니다. 6년 넘게 길게 논의를 해온 교육과정 변화와 5+1학제(1-5학년은 초등과정, 6학년은 청소년과정)로 6학년만 따로 보름 동안 길게 가는 자연속학교를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해마다 매실을 따러 하동에 내려와 특별한 매실 따기 일놀이 자연속학교를 열었고, 철마다 가는 자연속학교가 자리잡히고는 매실원정대로 오곤 했습니다. 그 매실로 효소를 담고, 매실장아찌, 매실식초를 담아 학교에서 줄곧 먹고, 백매, 오매까지도 만들었어요.
올해는 이번 주 수요일부터 6학년이 청소년과정으로 보름 동안 매실퐁당 자연속학교(자연속일놀이기숙학교)를 열었습니다. 보름동안(15일)이라 평소 자연속학교보다 길게 살아야 하니 호흡도 길게 가져가고, 학교에서 하던 공부들을 그대로 하고, 아침저녁으로 볕이 없을 때 매실을 줄곧 따며 농부의 일을 돕는 흐름으로 살아요.
처음으로 긴 자연속학교를 열게 되니 주말에는 부모들이 내려와 교사들이 쉬도록 돕습니다. 주말에는 교사들은 휴가처럼 푹 쉬고, 부모님들이 선생 노릇을 대신하고 많은 자연속학교를 뒷받침합니다. 인웅어머니는 밥 선생 노릇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출발했어요. 뒤이어 유민어머니 아버지도 나무날에 참여했네요. 긴 자연속학교이니 자원교사 도움도 받습니다. 한주엽 선생 동무가 자원교사로 참여하게 되어 더 든든해요. 그래도 6학년 모둠 선생의 긴장감과 책임감은 어찌할 수가 없을 겁니다. 날마다 아이들 속에 빠지고, 자연속에서 일놀이로 6학년 청소년 교육과정 변화 첫 걸음에 온 힘을 다해 애쓰는 최명희 선생님과 아이들이 날마다 감동을 만들어내고 추억을 쌓으며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12일 쇠날, 아이들에게 줄 맛있는 남태령치킨을 사들고 부지런히 가는데 쏟아지는 비로 예정보다 30분이 넘어 기다리던 아이들이 자고 말았네요. 자연속학교 잠집은 왕규식 농부님 집입니다. 왕규식 선생님은 2007년 맑은샘학교로 다시 개교할 때 이 년 동안 학교의 뼈대를 세우시고 퇴직하셨지만, 4년 전 귀농한 뒤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기운이 가득한 자연속학교를 열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어른이자 영원한 맑은샘학교 명예 선생님이십니다. 올해도 하동에서 매실을 따며 보름 동안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자연속학교를 열 수 있도록 집과 일을 모두 내어주시는 왕규식 선생님이 있기에 지리산과 섬진강 기운 속에서 아이들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 잠자리는 성두마을 감밭에서 가까운 곳인데 아이들이 묵는 집과 멀지 않아 걸어서 5분이면 됩니다. 방이 네 개이고 화장실도 세 개나 있는 큰 잠집이라 어른들이 묵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번 주에는 지후 부모님, 박시우 부모님, 윤태 부모님, 인웅 부모님, 유민부모님, 지율아버지, 영호어머니가 6학년 자연속학교 지원과 매실원정대 노릇을 하기 위해 내려왔고, 다음주에는 재혁네, 서연네, 단희네에서 돕는다 합니다. 인웅어머니는 다음주에도 내려가신다고 하니 고마울 뿐입니다. 본디 다음 주에 꿈의학교 개교식때문에 이번 주에 내려오게 됐는데 많은 분들과 함께 해서 더 즐겁습니다. 아 5학년 현우네가 함께 했네요. 첫날 밤 비가 아주 많이 내렸습니다.
13일 흙날 아침, 드디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예상대로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명희 선생님이 올린 일기처럼 날마다 감동을 만들어가는 아이들답게 첫 주말 쉼이 여유롭습니다. 최명희 선생님과 정유정 자원교사는 주말 이틀 동안 휴가입니다. 그래서 푹 쉬고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냅니다. 아이들은 구례 오일장에 데려다 줄 차량 지원할 분들만 빼고, 어른들은 모두 매실을 따러갔어요. 비가 오지 않고 해가 없으니 일하기 좋은데 습도가 높아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매실을 딴 지 참 오래됐지만 매실 따는 손놀림과 마음은 여전히 비슷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손을 뻗어 매실을 따고, 매실 따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거지요. 몰입, 집중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매실 따는 자연속학교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지요. 철마다 자연속학교가 자리잡히고, 특별한 일놀이 자연속학교로, 매실원정대로 줄곧 이어가는 까닭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기운, 매실 속에 흠뻑 빠져드는 일놀이의 매력, 아이들을 안아주는 넉넉한 마을의 품과 왕규식 농부님이자 선생님이 있기에 6월의 매실퐁당 자연속학교는 풍요롭고 넉넉합니다. 들고 간 플라스틱 25킬로글램 상자를 모두 채우고 (약 14-15개쯤) 내려오니 점심때입니다. 아이들은 구례 장터에서 자장면을 먹고 온다고 연락이 와서 매실을 딴 사람들은 모두 최참판댁 맛집에서 콩국수, 밀면,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부부송식당 콩국수에 들어가는 토종 콩 생산자는 악양농산물꾸러미 왕규식이라고 크게 쓰여 있습니다. 덕분에 더 맛있게 콩국수를 먹었지요. 일 한 뒤 점심은 꿀맛입니다. 무딤이들(악양벌판)을 보기 위해 고소산성 들머리 절에 올라가서 멋진 풍광을 배경을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제 봐도 섬진강과 들판이 그림 같습니다.
성두마을로 들어와 쉰 뒤에는 대나무숲 길을 내는 일을 했어요. 대나무가 워낙 빽빽해 자주 베어주어야 하는데 그럴 틈이 없어 놔둔 탓에 죽은 대나무와 쓰러진 대나무까지 아주 거미집처럼 촘촘합니다. 왕규식 선생님 집 옆에 있던 큰 집을 허물고 넓은 공터가 되어있는데 그쪽으로 자꾸 대나무를 잘라내 쌓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로 대나무가 빽빽합니다. 엔진톱까지 들이대지만 쉽지 않네요. 습도가 높고 많은 힘을 쓰니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큰 죽순을 따서 저녁에 삶았다는 즐거움도 있지요.
비가 잠깐 오다 다시 그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러 축구장에 갔습니다. 축구 선수들처럼 전반 후반 시간으로 뛰다보니 땀으로 목욕을 하네요. 매실 따기와 대나무 자르기로 힘이 빠진 어른들이 앞서갔지만 후반전부터는 뒤집혔지요. 아버지 편에 있다 내가 아이들 편으로 바꾸고, 무한 체력을 증명하는 6학년 어린이들이 몰아 부친 끝에 11:7로 어린이편이 이겼습니다. 덕분에 아버지들은 체력이 방전되는 듯 해요.
부모님들의 체력은 끝이 없나봅니다. 잠집에서 씻고 난 뒤 바로 저녁 채비를 하는데 아이들에게 고기를 구워준다고 해요. 대단합니다. 13키로 쯤 되는 고기를 굽느라 윤태부모님과 박시우 아버지는 땀이 주르르 흐르고 얼굴이 빨갛습니다. 하늘도 그 정성을 알았는지 고기를 다 구울 때쯤 비가 오네요. 냉면에 고기까지 모두 입이 호강합니다. 부모님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주말이라 다음 주에도 우리 청소년 6학년들은 아주 씩씩하게 잘 지낼 것 같습니다.
14일 아침, 비가 오다가 그쳐서 일하기 좋습니다. 어린이들은 섬진강어류생태관을 가고, 어른들은 악양농산물꾸러미영농조합 창고에서 일을 도왔어요. 매실을 고르고, 양파를 분류해서 꾸러미에 보낼 채비를 했습니다. 귀농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영농조합을 세우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꾸러미 회원들을 크게 늘리고, 영농조합 창고를 짓는 놀라운 일들을 척척 벌이는 왕규식 농부님은 고향인 악양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해마다 하동에 내려오는 덕분에 해마다 달라져가는 꾸러미와 일의 규모를 확인하게 되네요. 매실과 양파를 골라 담으며 도란도란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 농산물 값이 형편없어 안타깝고, 코로나19로 학교 급식이 중단되어 농산물이 갈 곳 없다는 소식에는 한숨이 나옵니다. 농업이 대접받는 사회라야 기후위기에서 먹을거리 걱정을 덜 할 텐데요. 농민기본소득부터라도 어서 빨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어른들은 짐을 싸고 과천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아이들이 자꾸 묻습니다.
“선생님도 가요?”
자연속학교에서 늦게 온 적이 없기 때문이지만 먼저 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도 낮설고 아이들도 그런 겁니다. 마음은 그냥 있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일정표를 부여주니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는 표정을 보이고 마네요. 매실도 담고, 학교 텃밭 일도 그렇고, 안팎 일들이 제법 되니 더 있고 싶은 마음을 다 잡습니다.
이틀 푹 자고 쉬었다지만 최명희 선생님을 두고 가려니 괜히 미안하고 든든하고 그래요. 새로운 교육과정 변화인 긴 자연속학교를 첫 장을 열어내는 무게와 긴장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듬직한 청소년과정이라는 우리 6학년 아이들이라지만 선생 노릇은 또 있으니 말입니다. 안전과 건강을 앞에 두고, 호흡을 조절하며, 하루를 알차게 여유롭게, 스스로 함께 머리를 맞대어 의논해 결정하는 자치의 힘을 길러주며, 훌쩍 자라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기 앞서 얼른 대나무밭에 가서 쑥 자란 죽순을 몇 개 뽑아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죽순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다 함께 사진을 찍고 매실을 싣고 과천에 닿으니 저녁 7시입니다. 오가는 운전을 도맡아 한 지율아버지 덕분에 편안하게 왔습니다. 날마다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6학년 매실퐁당 자연속학교와 다음주 매실원정대는 줄곧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