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이 대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특수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사가들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성공에는 특수부대인 예니체리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예니체리는 발칸반도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로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납치된 후 튀르크인 가정에서 양육됐다. 이들은 철저한 이슬람 병사로 성장했다. 혹독한 훈련과 무기사용법을 익혔다. 이슬람의 정신교육을 마친 뒤 술탄의 근위대로 출발해 예니체리에 들어갔다. 예니체리는 엄격한 규율과 높은 도덕률을 요구했다. 결혼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무서운 병정개미들이었다. 이들에게 후퇴는 없었다. 머리카락은 정수리의 한 움큼만 빼고 박박 밀었다. 포로가 됐을 때 적이 그 머리카락을 잡고 목을 베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용맹성과 전투 능력이 오스만제국의 정복전쟁에 큰 도움이 됐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가장 영광스럽게 만든 술탄이 술레이만 1세다. 그는 터키의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불린다. 알렉산더가 헬레니즘 문명을 동양에 퍼트린 대왕이라면 술레이만은 이슬람 문명을 서양에 퍼트린 대왕이다. 유럽인들은 술레이만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를 부를 때에는 반드시 ‘위대한’이라는 말을 넣어 불렀을 정도다. 오스만이 세운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그의 후손들에 전해지면서 강력한 제국으로 변해갔다. 중앙집권적인 행정조직이 만들어졌고, 예니체리라는 특수한 보병대가 만들어졌다. 황제인 술탄에 오른 술레이만 1세는 영토를 계속 넓혀 나갔다. 그는 제국의 번영을 위해 헝가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526년 술레이만은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헝가리로 진격했다. 그는 모하치 평원을 전쟁터로 선택했다. 이곳은 낮은 저습지와 평원으로 이뤄진 곳이었다. 술레이만은 헝가리의 주력인 기병대가 공격하도록 유인한 다음 포위해 몰살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스만 기병대가 헝가리 진영을 공격하자 헝가리 기사단이 미끼를 물었다. 오스만 기병대가 최초의 접전에서 패해 후퇴하자 기독교도 기사들은 일제 돌격을 감행했다. 술레이만의 함정에 빠져 포위된 헝가리 기사단은 오스만군의 대포와 보병의 화승총에 대책 없이 쓰러져 갔다. 오스만이 자랑하는 예니체리 보병대가 헝가리 진영으로 돌격하면서 승패가 결정됐다. 패닉상태에 빠진 헝가리군은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생존자들은 비에 젖고 늪지에 젖은 무거운 갑옷을 이기지 못하고 늪에 빠져 대부분 익사하고 말았다. 헝가리의 왕 루트비히 2세와 1만5000명의 헝가리 기사단이 죽었다. 지형과 날씨를 전술에 활용한 술레이만의 대승이었다. 헝가리 왕국은 오스만제국의 속국이 됐다. 3년 후 술레이만은 유럽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오스만군은 1529년 9월 27일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했다. 오스만군의 격렬한 공격과 수없는 포탄이 빈을 강타했다. 이에 맞서는 오스트리아군은 2만 명의 병사와 72대의 대포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기게 도시를 방어했다. 이 해 날씨는 유난히 궂고 비가 많이 내렸다. 궂은 날씨가 계속되면서 오스만군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겨울이 다가오면서 병사들이 전염병과 추위로 죽어갔다. 식량과 군수품도 바닥났다. 더 이상 공격하기가 힘들어지자 술레이만은 후퇴를 결정했다. 헝가리 공격 때 도와줬던 날씨가 오스트리아 공격에서는 발목을 잡은 것이다. 술레이만은 지중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기독교 동맹군과 해전을 벌였다. 오스만 해군은 기독교 연합함대를 프레베자 전투에서 격파했다. 이 전투에서는 바람이 오스만군을 결정적으로 도왔다. 헝가리 정복과 지중해를 장악하기 위한 프레베자 전투에서는 날씨가 그를 도왔다. 빈 전투에서는 날씨 때문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복을 도운 것도 날씨였고, 정복을 막은 것도 날씨였다. 술레이만은 위대한 정복자이자 리더였다. 술레이만이 가졌던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술탄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군대를 확실히 장악했다. 반란이 일어나자 즉시 무력으로 진압해 병력통수권자로의 권위를 세웠다. 둘째, 일을 결정하기까지는 매우 신중했지만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행동했다. 셋째, 자신이 한 약속은 철저히 지킴으로써 병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넷째, 종교나 인종에 편견을 두지 않음으로 대국가를 성공적으로 통합시켰다. 다섯째, 화해할 수 없는 적이라도 필요하면 동맹을 맺어 이용했다. 기독교권의 왕 프랑수아 1세와 역설적인 동맹을 만든 것은 좋은 예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내 말에는 안장이 얹혀 있고 내 칼은 출전을 기다린다”는 말을 남긴 그는 진정한 정복자였다. TIP-위대한 제왕은 한 여자만 사랑한다? “누구나 신데렐라의 꿈을 꿉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그러한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지요.” 노예의 신분에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왕후가 된 여인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살던 그녀는 타타르인들에게 잡혀 오스만제국에 노예로 팔렸다. 이스탄불에서 술레이만 1세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러시아 여자’라는 뜻의 록셀란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녀는 곧 술레이만 대제를 사로잡는다. “눈부신 미모는 아니었지만 총명한데다 우아하며 신비한 매력을 지닌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명랑한 여인이라는 ‘후렘’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녀에게 푹 빠진 술레이만 대제는 그녀를 왕후로 세웠고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 그녀가 죽자 술레이만은 왕후의 방을 폐쇄하고 식사 때는 아무와도 식사를 같이 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금욕생활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대왕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칭기즈칸·카이사르가 그랬다. 이에 반해 수많은 후궁과 처첩을 뒀던 왕들은 대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위대한 제왕이 되고 싶은가? 한 여자만을 지극히 사랑할 일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