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팔우정' 해장국 골목'
속을 푸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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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 혹은 해정탕. 숙취를 풀어주는 술국쯤으로 이야기 되겠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술국이 발달했다.
술을 과하게 먹고 난 후 쓰린 속을 풀어주며 전날의 술자리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해장국 먹는 시간이리라.
서울의 우거지탕,전주의 콩나물 해장국,부산의 복어국,통영의 쑤구미탕,서해의 삼식이탕,
전라도의 매생이국,홍어탕,충청도의 올갱이국,동해의 곰치국,제주의 오분자기,자리물회…
그리고 오일장이 서는 곳의 장국.
이처럼 속을 풀어주는 술국이 다양하게 발달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듯싶다.
각 가정마다 바깥사람의 장을 푸는 나름의 술국이 있을 정도니 더 이상 무엇을 설명하랴?
천년 고도(古都) 경주. 느릿하게 걷는 맛이 더 없이 좋은 도시. 보름달이라도 뜰 양이면
천년 역사를 달밤에 휘돌아 보는,'달빛기행'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
그리고는 경주 토속 술로 밤새워 천년왕국 '신라'를 이야기 하는 곳.
신라 왕국 경주에도 이색적인 해장국이 발달했다.
경주역에서 경주박물관 가는 큰 길로 한 500여 m쯤에 팔우정 교차로가 있다.
이 곳에 열 댓집의 해장국집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데,일명 '팔우정 해장국 골목'으로 불리운다.
이 곳 해장국의 대표적인 차림은 '콩나물메밀묵해장국.' 해장국 이름이 조금 길다.
말 그대로 콩나물과 메밀묵이 주재료인 술국이다.
콩나물과 메밀묵? 별로 이해 안 되는 조합이다.
그런데 한 번 먹어본 술꾼들은 그 시원함을 결코 잊을 수 없어,한 번 입들이면 끊을 수 없는 맛이기도 하다.
'경주 해장국'은 재료의 과학성이 특별하다.
주재료인 콩나물은 숙취해소에 유효한 '아스파라긴산'이 다량 포함되어 있고,
메밀묵은 찬 성질이라 술로 피곤한 장을 시원하게 다스려 준다.
그리고 바다해초인 몰(모자반)은 고혈압과 중풍을 막아주므로 의학적 배려도 여간 아닌 음식이다.
신 김치의 항암효과와 무의 위장 다스림도 간과할 수 없다.
명태를 푹 끓인 육수에 콩나물을 충분히 넣고 끓이다가,메밀묵과 신 김치,모자반을 얹었다.
모두가 짙은 맛 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떠먹으면 떠먹을수록 구수한 맛과 시원한 맛이 '극치'를 이룬다.
콩나물과 신 김치,명태 육수,무...
이 모든 것들이 따로이 해장국의 주재료이다 보니 한데 섞은 '경주 해장국'이야말로
해장국의 '종합판'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대구 친구가 '고향 까마귀 집(?)'이라 강력하게 권하는 '대구집'에 들어선다.
"어디서 왔소? 경주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몇 번 왔다 아인교?"
"아~ 그렇나? 어째 면이 있다 캤다. 헐헐헐"
주인장의 걸걸하면서도 속 깊은 말씨에 정이 담뿍 담겼다.
'콩나물메밀묵해장국'을 시킨다.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입맛을 자극한다.
한 술 떠먹는다.
첫맛은 밋밋하다.
두 술 세 술 떠먹으면서 구수한 맛은 배가 되고,시원한 맛은 끝이 없다.
콩나물은 아삭하고 메밀묵은 입에 녹고 신 김치는 입 속을 감친다.
모자반은 향긋한 바다내음을 풍긴다. 밥 한 술 못 뜨고 국만 다 먹었다.
'대구 아지매'가 말없이 국 한 그릇 리필 해준다.
고마운 정성이다.
경주를 천천히 걸어보라.
차로 구경하는 경주는 경주가 아니다.
신라 천년의 도읍지는 그 시절처럼 걸어서 보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천년 고도의 술'을 마셔보라.
'신라 왕국'이 다가 올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해장은,말 하지 않아도 '팔우정 해장국 골목'이다.
'경주의 술'은 '경주의 해장국'으로 풀어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