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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네티즌 원문보기 글쓴이: CRYSTAL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에 관하여
By N.H. Gootjes
trans. by Seok-Jun Yun
본 글은 클라리온 Volume 49, Year End 버전(2000)에 실렸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성탄절의 제정
성탄절은 일년 중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이다. 성탄절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날을 자유의 날로써 기뻐한다. 하지만 이것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신약성경에는 교회가 성탄절을 기념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서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이 특별한 날로 기념되었다는 어떠한 힌트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그의 탄생의 정확한 날짜에 대한 아무런 지시도 주고 있지 않다.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신약성경이 명령하고 있는 바가 아니다.
성탄절이 특별한 날이 되기까지는 몇 세기가 걸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특별한 축제들이 4세기 초에서야 발견된다. 동일한 세기의 후반부에 로마교회는 이 구속사건을 12월 25일에 연결시킨다. 거기서부터 우리 주님의 탄생을 12월 25일에 기념하는 관습이 전체 기독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인간의 고안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성탄을 기념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특별한 날로 지정해 놓아야 할 좋은 관습인가? 비록 성경이 비록 그 날짜를 기술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를 특별한 날로 유지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는가? 왜 우리는 이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이를 인간 축제의 날로 내버려두는 편이 더 낫지 않는가?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몇 가지 축제들을 제정하셨음을 말씀해 주고 있다. 이들 중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축제였다: 유월절. 이것은 출애굽, 즉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경험했던 압제로부터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 축제가 애굽의 형벌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시행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래서 그들이 동일한 형벌 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설명해주어야만 했다(출 12장을 보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던 것을 통해 보이신 위대한 일을 기념했다(시77:11.15). 이러한 예에서 기념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례도 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는 여왕 에스더의 중재로 인해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 이것은 새로운 축제일이 제정된 사례이다: 부림절.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것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에스더와 삼촌 모르드개에게서 기초하고 있다(에9:29-33).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사역 중 하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탄생의 중요성은 그것을 기념하는 것을 보증한다. 그러므로 기독교회가 4세기에 성탄절을 제정하였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지시하신 방향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성탄절의 폐지
루터와 쯔빙글리와 칼빈의 세기였던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성탄을 기념하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다. 살제로 성탄절을 포함한 모든 축제일들을 폐지하려는 광범위한 시도가 다소 존재했다.
1574년에 있었던 도르트 총회는 성탄절을 폐지하는 급진적인 결정을 내렸다. 총회는 사람들이 주일로 만족하기를 원했다. 12월 25일 바로 전의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복음이 설교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로 사람들은 성탄절이라는 특별한 날이 폐지되었음을 권고받아야만 했다. 성탄절은 더 이상 기념되지 않았다.
개혁교회들의 총회가 우리 구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특별한 축제의 날을 폐지하기를 원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당시의 일반적인 시대상의 빛 아래서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이전 세기 동안에는 거룩한 날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이 날들 동안에 아무런 일도 해서는 안되었다는 사실은 곧 그들을 술취한 상태나 혹은 다른 종류의 무절제들에 탐닉하도록 내버려졌음을 의미한다. 이미 종교개혁 이전에 축제일의 숫자를 제한하려믄 몇몇 시도들이 있었다.
개혁자들은 이에 동의했다. 루터는 단번에 모든 축제일들을 없애버리기를 원했다. 나중에서야 그는 특별한 기독교적 축제일들을 기념하는 것을 허락했다. 칼빈도 이 날들을 폐지하려는 시도에 동의했다. 당시에는 참석가능한 설교가 주중 매일마다 시행되고 있었지만, 그는 성탄절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참석하도록 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는 12월 25일의 전 주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의 중요성에 관한 설교를 하곤 했다. 그리고 성탄절 당일에는 그가 해오던 대로 성경의 어느 곳에서건 설교하기를 계속했다.
이러한 빛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화란 교회들이 성탄절을 특별한 날로 기념하는 것을 없애버리려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축제일의 모든 시스템은 모든 종류의 악을 이끄는 것이다.
성탄절을 폐지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도시들 내의 권력자들은 시민들을 위해 축제일을 공휴일로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교회들은 기독 축제일에 예배를 조직하는 편이 더 낫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 때가 어쨌든 사람들이 기념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따로 떼어놓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하는 것을 통하여 성탄의 중요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지도하는 데는 더 나았다. 그것이 교회법 상에서 성찬절이 기념되도록 규정하게 된 배경이다.
오늘날의 성탄절
우리 사회에서 성탄절은 공휴일로 인식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하루를 쉬도록 허락받는다. 그것은 기독교에게 승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날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워지지만, 통상적으로는 그나 그의 탄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날이다.
모두가 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를 바꿔버렸다. 상점들은 우리에게 성탄을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고급스런 아이템들을 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성탄절은 선물을 주는 날이 되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있으며, 그의 위치는 기쁨을 주고 추운 계절에 심장을 덥혀주는 유쾌한 친구인 산타 클로스에게 뺏겨 버렸다. 상점들은 돈을 갈퀴로 긁어들인다. 또 다른 이들은 자유에 관한 아이디어들에 투자한다. 여행사들은 추운 계절을 벗어나기 위해 따뜻한 지역으로의 성탄 크루즈 상품을 제공한다.
이 모든 상업주의의 중심에 서안절의 중요성은 사라져 버렸다. 성탄절은 풍요로운 삶과 환대를 즐기기 위한 날로 발전해가고 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성탄절을 아예 없애버리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억하기 위해 특별한 날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곳은 없다. 그리스도 없는 성탄절은 겉은 건강하나 속은 쏙은 과일과 같다. 우리는 왜 16세기의 개혁주의자들이 성탄절을 없애버리기를 원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 성탄절을 폐지하기보다 원래의 의미대로 그것을 존속하는 것이다. 이 날은 부림절 축제에서 그 구원을 기념하는 것보다 더 큰 사건인 우리 구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위대한 행적들을 기념하는 특별한 날을 지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구주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신 위대한 기적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면 된다. 성탄절은 인간의 제도이다. 그러나 이를 기념해야 할 모든 이유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보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계시게 될 때, 우리의 성탄기념은 공허한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의 벼랑끝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깊은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금지되었던 크리스마스
미국을 설립한 크리스쳔들은 실질적으로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했었다.
그렇다, 당신은 사실을 읽은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미국에서 미국의 시민자유 연합의 대표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크리스쳔들 자신들에 의해 금지되었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라는 법에 실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어떠한 기념에 참여하게 된다면 벌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추정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는 식민지시대 미국에서 전국적인 축제일은 아니었다.”고 코박스는 말한다.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드는 법을 통과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이슈로 다루던 사람들이 다만1600년대 미국인들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헌법 아래 최초의 크리스마스였던 1789년 12월 25일에, 미국 국회의원들은 실질적으로 임기중이었고, 휴일로 휴무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은 1870년까지 크리스마스를 연방 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 미사라는 말로 사실은 태양신 축제에서 온 것이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교주의로 인용한 성경구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옥을 선물하는 사탄의 산타다.
“오 이스라엘 집아, 너희는 주님께서 너희에게 전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방인들의 길을 배우지도 말고 하늘의 표적들에 낙심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그런 것들에 낙심하기 때문이라 그 백성들의 관습들은 헛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숲에서 도끼로 한 나무를 베어내고( 장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임이라) 그들이 그것을 은과 금으로 꾸미고 그들이 그것을 못들과 망치들로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것들은 종려나무같이 곧게 서 있으나 말을 하지 못하고 그것들은 걸을 수가 없나니 반드시 메고 다녀야 하느니라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것들이 악을 행할 수 없고 그것들 안에 선을 행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오 주님 주님과 같으신 이가 없나이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주님의 이름은 권능이 크시니이다”(렘10:1-6)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12월 25일에 태어나셨는가?
카톨릭 뉴스: “최초의 크리스마스”
2004년 12월 23일 –알링톤 카톨릭 헤랄드지
…만일 어떤 사람의 생일이 정확하게 기념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복음은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를 꼬집어 말하지 않는다…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합법화되기 전까지, 어떤 보편적인 날짜나 공식적인 크리스마스 기념이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들어, 오리겐(255), 세인트 이레네우스 (202) 그리고 터툴리안(220)은 크리스마스나, 그 날짜를 절기나 기념일 목록에 넣지 않았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보다 실천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로마 이교도들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고자 바티칸이 현재 위치해 있는 그 언덕에 모이곤 했었다.
이 이교 축제는12월 25일(줄리안력)이나 1월 6일(이집트력) 양일에 제국 전체에서 기념되었다.
비록 정확하게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여떤 역사가들은 이교의 풍습을 그리스도의 축일로 대체한 사람이 콘스탄틴이라 믿는다. 그는 일요일을 한 날로 선포하기도 하였다; 재미있게도, 2000년이후로, 예수님께 “정의의 태양’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주님께서는 태양 숭배에 관하여 무어라 말씀하시는가?
“그분께서 나를 주님의 전의 안뜰로 데려오시니라 보라 주님의 전의 문에 낭실과 제단 사이에 약 이십오 명이 있는데 그들의 등은 주님의 성전을 향하고 그들의 얼굴은 동쪽을 향하여 있어 그들이 동쪽을 향하여 해를 경배하였더라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오 인자야 너는 이것을 보았느냐 유다의 집이 여기서 가증함들을 행하나니 그들이 그것들을 행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벼운 일이겠느냐 이는 그들이 폭력으로 땅을 채웠으며 돌이켜 나를 분노하게 하였기 때문이라 또 보라 그들이 그들의 코에 나뭇가지를 두었도다”(겔8:16-17)
미국 버지니아란 이름도 동정녀처녀 마리아에서 딴 이름이다.
메어리 렌드란 이름도 아베마리아에서 유래되었는데 성모마리아로 둔갑시켜 버렸다.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주장하는 카톨릭
십자가 표식은 바빌론에서 부터 시작된 태양신 숭배표식이였다.
성 패트릭(카톨릭)의 날의 역사
MSNBC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우리 모두는 오늘날 약간 아일랜드화 되었지만, 그러나 성 패트릭의 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가?
실제로 성 패트릭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중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자, 그는 녹색 맥주를 마시거나, 바르니 돌이나 황금주전자를 가지고 있는 난장이 요괴는 결코 아니었다”고 역사가 윌리암 페더러는 설명한다. 그는 ‘성 패티릭: 그의 실제 일대기, 비극을 승리로’라는 책을 썼다. “그는 실제로 선교사였고, 120,000의 드루이드교도들을 이교도에서 기독교(카톨릭)로 개종시켰던 사람이다.”…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를 664년에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아일랜드에 감자 기근이 있었던 1846년에 비로소 수백만의 아일랜드 카톨릭교도들이 미국으로 왔다.”고 페더러는 말한다. “아일랜드 인구는 단지 10년 만에 2%에서 20%가 되었다. 뉴욕의 절반은 현재 로마 카톨릭 아일랜드인들이었다.
보스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고, 그곳에 일종의 반-이민, 반-카톨릭, 반-아일랜드 사상이 있었다.”(1659년에서 1681년에, 보스톤에서 크리스마스 기념이 실질적으로 불법화되었다. 크리스마스 정신을 표현하는 자는 5실링의 벌금을 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최초의 퍼레이드를 할 때, 그것은 보다 더 정치적인 의견이었다…
성 패트릭의 날을 기념했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인정받게 되었던 것처럼, 그러한 초기의 퍼레이드들로부터, 성 패트릭의 날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마침내 오늘날처럼 미국 문화의 분리할 수 없는 부분들이 되었다.
성탄, 성탄절, 성탄행사
해마다 12월에 접어들면 성탄절을 앞두고 거리가 시끌벅적해진다. 이는 비록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양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성탄절 카드를 보내고 집과 거리에 번쩍거리는 성탄절 장식을 한다.
기독교에서 유래한 성탄절인 만큼 교회들은 더욱 분주해진다. 예배당 종탑들마다 빨강색이 주도하며, 현란하게 움직이는 네온싸인과 어우러지는 성탄절 음악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교회들은 제각각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기도 하며 음악회나 성극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와 행사들이 도리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순수하고 좋은 의도로 성탄절을 부각시킨다 할지라도, 그 때가 청소년들의 탈선과 잘못된 소비 심리를 유도하게 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양상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실로 놀라운 사건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멸망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천박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랑의 극치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서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던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으며 거리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시대에는 성탄절이라는 절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생일을 챙겨드린 기록이 없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초대교회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룩하신 사역 자체에 깊은 의미를 두었을 따름이다.
성탄절이 생겨나게 된 것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난 이후부터이다. 기독교를 불법으로 정죄하던 로마제국은 원래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12월 하순의 한 날을 ‘태양의 날’로 잡아 특별한 종교적 행사를 치렀다.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12월 25일을 예수가 탄생한 날로 공표를 하고 성탄절로 지키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국교화된 후에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마치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인 양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이 태어난 시기가 12월 하순이라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 가운데 12월 25일이 예수님이 출생한 날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 날이 도리어 우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성탄절을 거부했으며, 1643년 영국의회에서는 성탄절을 지키지 못하도록 법령을 제정했다. 미국으로 이주해 간 청교도들 역시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으며, 1659년에 제정된 마사추세츠 법령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경축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내도록 했다.
우리시대에 들어와 성탄절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상업주의 때문이다. 지금도 성탄절을 가장 기다리는 사람들은 백화점을 비롯한 성탄절 특수를 누리는 자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 외에도 성탄절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괘락을 즐길 수 있는 떠들썩한 성탄절 분위기가 의미 있을 따름이다. 그런 자들에게 인간의 몸을 입고 죄악세상 가운데 오신 주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성탄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성탄절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성숙한 성도들은 이점을 잘 분간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탄이 의미있을 뿐 성탄절과 그에 따른 다채로운 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의 상업주의적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순진한 어린이에서부터 이미 상업주의적 성탄절에 익숙해 있는 교인에 이르기 까지 모든 성도들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르게 잘 깨달아야 한다. (이광호 목사)
첫댓글 갈라디아서 4:10~11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