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가?
─『버팀목의 칸탄도』(고요아침, 2013)
고은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은 개개인의 삶의 철학에 따라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나는 보람이란 새싹을 가슴속에 키우며 작은 일들에 대해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쓰고 취미생활에도 열심이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원래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 탐구하는 스타일이어서 한번 어떤 분야에 빠지면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디오와 클래식에 이십 년 이상 정열을 바쳤다. 돌이켜보면 오디오의 투자가 한동안 내 삶을 지배하였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가정 경제를 위해서 과감히 포기한 이 취미의 매력 중 하나는 진공관을 통해 흐르는 클래식 음악의 낭만과 그 소리의 질감이었다. 지금도 국내산 명품 진공관 앰프 회사였던 올닉 앰프의 추억이 아련하다. 물론 세상의 발전에 따라 하이엔드 오디오는 TR이 많다. 당연하겠지만 클래식 감상은 지금,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영어는 내가 좋아하는 학문이라서 취미처럼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을 더욱 절실히 느끼곤 하는데 하루가 나의 해야 할 일을 하기엔 짧다는 생각을 자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중한 순간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나의 취미 중 하나로 다도를 즐기는데 일상의 혼란을 잠재우는데 이만한 취미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요사이는 영어공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유는, 시인으로써 사회에 기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배움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인생 제 2모작을 꾸리는 게 오래전 소원이었고 지금 조금씩 실천 중에 있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사람은 생각의 결과물이다”라는 말을 새삼 크게 느낀다. 덧붙여 지난 50년 동안 사회에 진 빚도 너무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의 삶은 나의 기둥이다.
요즘 영어공부를 위해 외국 영어 뉴스 방송을 즐겨 보는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은 한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이 보다 나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우리 내부, 모든 사람들의 단결된 역량이 필요하며 우리가 단단히 뭉칠 때만이 우리의 미래는 푸르리라는 확신을 한다. 지정학적으로 드라마틱한 위치에 있고 두 나라로 갈라진 현실 앞에서 우리의 현명한 목표 설정은 매우 중요하고 이것을 구하는데 시인들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칸트의 말에 우리들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의지의 법칙이 항상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 이러한 보편적 도덕 사고가 사회에 범람할 때 우리 행위의 객관적 도덕성이 곧추서고 시인은 그것을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미래가 현재가 되기에 현재에 충실해야 하며 그런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구두끈을 다시 죄고 현재에 더욱 농축된 열정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의 발전은 지속될 것이다. 지난 60여 년을 잿더미에서 이렇게 우뚝 일어선 뚝심의 한국 아닌가.
시는 내 특유의 낭만적 성향으로 영문학 전공 때부터 꿈꿔왔지만 음악의 취미에 사로잡혀 늦게 시작하였다. 시는 영문학을 하면서 자연스레 접했고 지금은 영어를 좋아하고 시를 쓰니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들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학문에는 끝이 없기에 평생 배우는 자세로 임해서 나중에 내 인생 후회는 없었노라는 생각을 가지고 싶다. 그게 나의 철학이기도 하다.
나의 이번 두 번째 시집은 서정의 바탕 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서사적으로 진솔하게 그리는데 방점을 두었다.
모든 역사가 전진하듯이 시의 역사도 전진한다. 그렇다고 개성을 소외하며 시류의 유동성에 지나치게 보조를 맞출 때는 정체성의 확립을 구하는데 큰 패착이 발생할 것이다. 나는 시류를 파악하며 적용하되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 이번 시집에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담으면서 특히, 나의 색깔을 유지하는데 노력했다.
한 여름의 안색이 취약해져 가고 있다/초췌한 문양의 계절은 종종 절창의 기후로/지상의 생명에 응대하기도 했다/지금, 그 절창 한 자락 꽃잎으로 흩어져/사방으로 난분분해지고/조금씩 촘촘해지는, 옅은 밤의 별빛들은/심해의 어둠을 캐내어/잔물결 위에 쏟아 붓고 있다/그 꽃잎이 명멸하며 사라질 즈음,/동공에 달빛이 둥글둥글 걸리어 잔물결에/무거운 몰골로 닿고 있다/암석 같은 빛줄기가/난독難讀의 오랜 경전 암송 소리처럼, 노인의/등거죽 따라 밑으로 흐르고/그 소리를 독파하여 모두 외운,/지상 위, 떨어진 벼 이삭 같은 농부들/동의하는 손뼉 소리, 번지고 번지며/허공을 찢는다
―「유채꽃빛 지팡이」 부분
나는 시 속에서 의미의 단단한 힘줄을 가진 문구들을 보면서 행간 뜻의 깊이가 깊은 시들을 보면 큰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아방가르드 형식을 취하는 시에도 관심이 많다. 행간의 잔물결 같은 사유를 포착해가며 시를 읽는 즐거움은 삶의 유희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문장을 구부리고 당기며 운율로 다듬는 과정은 나에겐 열정의 포획을 낚는 강태공이기도 하다.
수척한 빛을 털어내기 위해, 틈 없는 밤의 격자 공간 속을 멍하니 바라본다. 머리를 움켜쥐고 공간을 바라보니 실금이 가기 시작한다. 실금 사이로 청어 빛 언어가 들락거린다. 언어의 들머리는 빛이 없었으나, 틈을 통과하는 순간 바뀌는 놀라운 변화, 지나가는 출출한 시간이 이마를 맞대고 변화의 손을 부드럽게 잡는다. 마른 손이 반들반들해지고 온통 청어빛으로 물든다. 손은 바다이다. 사이가 더 벌어지는 순간, 시의 미끌미끌한 뼈의 마디마디를 갈고 닦는 바다에 푸른빛이 넘실거린다. 파도 안에 수많은 빛이 출렁인다.
―「빛의 탄생」 전문
시인은 시인이기에 앞서 인간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이전에 삶의 신념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삶에 대한 신념을 잘 표출해주는 괴테의 어록 하나를 소개해본다.
세상은 아주 넓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단 하나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매우 만족하며 기뻐하고 있다. 이 정원은 작지만 나 자신의 정원이다. 정원사도 결코 손대지 않는 땅이다. 자신만의 정원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에게는 명예가 있고 기쁨이 있다
글을 마치며, 앞으로 나는 존경하는 클래식 작곡가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유작 「푸가의 기법」 현악사중주 버전 같은 시를 많이 쓰고 싶다, 사유의 깊이와 그 아름다움 때문에!
―계간 『시에』 2014년 봄호
고은산
전북 고창 출생. 2010년 『리토피아』으로 등단. 시집 『말이 은도금되다』, 『버팀목의 칸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