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대중가요 대중 속에 스며들어 유행한 노래,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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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1. 02:23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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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대중가요
대중 속에 스며들어 유행한 노래, 희망가
요약 3·1만세운동 뒤인 1923년 무렵, 허탈한 마음의 대중에게 퍼져 불리기 시작한 노래 <희망가>.
원래는 외국곡이였으나 곡과 가사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바뀌게 됨.
작곡가와 작사가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대중 속에서 빠르게 유행함.
노래책에서는 <탕자 자탄가> <탕자 경계가> 등으로 제목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결국 <희망가>로 남음.
일본음악의 영향을 받은, 한국 대중가요의 최초로 꼽음.
희망가 악보
출처: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한국근대의 음악), 한국콘텐츠진흥원
밉든 곱든 우리 나라 대중가요에 미친 일본 노래의 영향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문학이나 연극보다도 오히려 예민하다. 더구나 식민지 시절이다 보면 그런 현상은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대중가요로 불려지게 된 최초의 노래에서부터 그런 현상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리 노래의 뿌리 깊은 병폐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그 노래가 아이로니컬하게도 <희망가>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앉아서 생각하니 / 세상 만사가 춘풍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너무나 유명한 이 대중가요는 실은 외국곡이다. 단지 우리의 노래로 알고 있는 것은 그 곡과 가사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바뀌어 불려졌기 때문이다.
흔히 최초의 대중가요로는 1925년에 발매된 '조선 소리판'에 실려 있는 도월색의 <시들은 방초>, 김산월의 <장한몽>, 그리고 1926년에 윤심덕이 불러 크게 히트시킨 <사의 찬미>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희망가>는 이보다 수년 전부터 대중 속에 급속히 퍼져 불려지고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3·1만세운동의 물결이 지나간 뒤인 1923년 무렵이었다. 당시 대중의 마음이란 허탈감과 좌절감, 바로 그것이었다. 민족의 염원은 수포로 돌아갔고, 일제는 문화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겉과 속을 달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애조띤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희망가>라고 했다. 가사가 한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그 작사자는 분명 있을 것이었다. 곡조 역시 작곡자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지은 것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다.
신구문화사에서 펴낸 『한국 현대사』 제6권 「신문화 100년」에 실려 있는 '대중의 감상 따라'에서 필자 박용구는 이 노래가 1910년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새하얀 후지산 기슭>이라는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가마쿠라 앞바다에서 중학생 12명이 보트 전복 사고로 익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장례식에서 가마쿠라 여학교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른 이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곡조는 메이지 창가집에 수록된 <꿈 밖에서>를 전용한 것이었고, 가사는 가마쿠라 여학교의 미스미라는 여선생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새하얀 후지산 기슭>은 꽃다운 나이에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 어린 넋들을 위로하는 애도가인 셈이었다. 당시 신문에서는 이 애도가 가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는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박찬호의 「한국 가요사」에 보면 <희망가>는 1850년에 미국인 가든이 작곡한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의 곡조를 보다 경쾌한 템포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희망가>는 외국에서 들어온 곡에 누군가 가사를 붙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작사가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 사람이야말로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작사자로 꼽아야 마땅할 것이다. 당시 일본과의 관계로 볼 때 그 작사자는 <새하얀 후지산 기슭>의 곡조를 빌려 작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암울했던 시절 한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었던 대중가요 <희망가>. 그러나 이 노래를 소개하는 노래책 속에는 제목이 한결같이 <희망가>로 되어 있지만은 않다. <탕자 자탄가>로 소개되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탕자 경계가>로 소개되어 있는 곳도 있다. 1929년에 이상준이 펴낸 「신유행 창가집」에는 <청년 경계가>라는 곡명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 일각에서는 이 노래를 가리켜 <실망가>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가뜩이나 암울한 시기에 노래까지 우울하자 그에 대한 반감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 듯하다.
<희망가>는 워낙 유명해지자 연극의 막간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 추세는 이후 유행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의 대중가요에 왜색을 끌어들이는 길을 열어놓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결국 어떤 제목보다도 <희망가>로 남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대중가요 - 대중 속에 스며들어 유행한 노래, 희망가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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