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댁은 적산가옥이었다.
안방은 온돌로 바꾸었으나, 정원이 보이는 건너방은 다다미방 그대로였다.
특히, 화장실은 변기 뚜껑이 있어, 확연히 한국 가옥과는 달랐다.
어릴 때 큰댁 마루를 뛰어 놀던 때가 눈에 선하다.
큰댁 앞에는 커다란 사꾸람보 나무가 많아서 사촌형들과 사꾸람보를 따먹던 기억이 있다.
큰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 강릉 시장을 하셨다.
한때는 친일파로 오해 받기도 했으나, 친구들의 증언으로 오해가 풀리고 강릉의 유지로 오랫동안 존경을 받으셨다.
묵호항 앞의 시장 골목의 집들은 자세히 보면 일본식 가옥의 흔적이 보인다.
겉으로는 한국식으로 치장을 했으나 내부로 들어가보면 전부 일본식 다락이 있다.
그리고, 일본식 집들처럼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길다.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 혹은 '적들이 만든'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적들이 만든 집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근대 및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건축물 중 일본식 주택을 뜻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수복한 38선 이북 지역에 있는 북한의 건축물(김일성 별장 등)도 적산가옥에 해당하나, 그 수가 매우 적고 한정적인지라 보통은 일제강점기의 건물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과거에 일본인 촌을 이루었던 지역엔 아직까지 꽤 많은 수가 남아 있고, 사람이 사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거기다가 기와와 지붕만 일본식으로 바꾼 개량한옥을 찾아보면 어머어마하게 많다.
일제강점기 전에 만든 양옥들과 적산가옥을 합쳐 근대건축물이라고도 하며, 국가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기도 한다.
큰댁의 건너방 커라란 다다미방에 텔레비전이 있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여로’ 시청한 기억이 새롭다.
마음씨 좋은 큰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항상 일본식 양과자를 준비하곤 했다.
큰아버지는 유지로서, 박정희 대통령 당시, 강릉시장으로 부임해 오는 인사들이 항상 큰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오곤했다.
내가 사고치고 묵호로 전학 갔을 때, 나를 찾아와서 타이르시고 용돈도 주신 기억이 있고, 공부 잘 할 때는 아버지에게 나의 유학 비용을 미리 주신 적도 있다.
큰아버지의 얼굴은 영화배우 남궁원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