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허창옥
압력밥솥 밸브가 돌아간다. 똑똑해 빠진 밥솥이 말을 한다. “증기가 빠져나오니 주의하세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한다.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으니 밥을 저어주세요.” 그래요, 잘 저어서 먹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고맙다. 삶의 무거운 등짐도, 온갖 근심도 궁극적으로는 밥을 향해 있다. 밥 덕분에 살고 밥 때문에 싸우고 밥을 못 먹어서 죽는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죽음에 직면한 혈육과 친지들을 보아왔다. 대개는 질병 때문이다. 질병이 몸을 침범하고 악전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곡기를 끊었다.” 란 말을 이따금 들었다. 곡기를 끊는 것, 그건 마지막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그러니까 복된 일이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음은 그게 어떤 상황이든 감사한 일이다.
밥은 숭고하다. 입맛이 없어서, 속이 상했다고 송구함 없이 밥을 밀어낸다. 세계의 저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또 여기 후미진 곳에서 이웃이 굶고 있음에도 무신경하게 잘 살아왔다. 수많은 밥상에서 먹다 남은 밥들이 음식쓰레기로 내박쳐진다. 불현듯 머리 위에 바로 불벼락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오만함은 저만치 사라지고 귀와 코가 겸손해져서 밥솥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밥 되는 냄새에 몸과 혼이 열린다.
몇 번인가, 무료급식소에서 이른바 봉사란 걸 해보았다. 자발적이었다기보다 누군가의 제안에 몇몇이 동조했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뭉그적거리며 따라나섰다. 아침부터 가서 양파 다듬고 감자 껍질 벗기고 대파를 썰고, 실로 엄청난 양의 쌀을 씻는 일에 투입되어서 각자의 몫을 재바르게 해야 했다. 정오가 되기 훨씬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대게 어르신들이었다. 그 중에는 친구 따라 강남 온(자식들이 봤으면 야단났을) 말쑥하고 정정한 어른신도 계셨지만 남루를 걸친 초췌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커다란 고무 함지박에 미리 퍼 놓은 밥을 식판에 담아드리는데 조그맣고 바짝 마르신 할머니가 자꾸 더 담으라고 하신다. 필시 남겨서 버려야 할 것 같아서 망설이는데 옆에 있던 붙박이 봉사자가 듬뿍 퍼서 담아드리며, 이 정도는 충분히 드신다고 말했다. “많이 퍼서 드리세요. 다 잡수시니까.” 시키는 대로 했다. 노인들과 눈을 맞추면서 “됐어요? 더 드릴까요?” 여쭈면 됐다. 좀 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저걸 다 잡수실까란 의문은 금방 풀렸다. 소화기관이 충분히 감당해낸다는 것이다. 위확장이나 위하수가 염려되는데 적정 없단다. 그건 세 끼를 찾아먹는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고 이분들은 이걸로 하루 심지어는 이틀을 견딘다는 것이다. 소화기관이 그렇게 길들여져 있었던 게다.
어떤 어른은 쪽방 친구에게 갖다 줄 밥을 따로 챙기셨고, 인근 빵집에서 가져다 준 상품이 되기는 뭣하지만 먹기엔 전혀 지장이 없는 빵을 몇 개씩 가져가셨다. 밥 한 덩이로 하루를 나시는 분이 태반이라는 그 불편한 진실을 보고 한동안 마음이 묵직하였다. 한 덩이의 밥은 바로 목숨 줄이었다. 몇 차례 그런 시간을 가졌다고, 거기에서 봉사 이상의 뭣을 배웠다고, 그러니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는 알량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식욕은 인간이 가장 마지막까지 거머쥐고 놓지 못하는 진저리쳐지는 본능임을 말하려는 건 더욱 아니다.
대체 그 밥이란 것이 축복인가, 굴레인가. 아마도 둘 다일 터이다.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은 축복이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몸이 그 밥을 열망하기에 굴종할 수밖에 없으니 굴레이기도 하다. 군량미가 떨어지면 전쟁에서 진다.
밥은 늘 그랬다. 때가 되면 먹는 것이었다. 몸에 밴 습관이었으며 때로는 몹시 성가시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먹을 때 깨작거린다고 어른들로부터 지청구를 자주 들었다. 지금도 밥 앞에 자주 심드렁하다. 밥에 내포된 절절함과 숭고함을 모르고 살았다. 밥이야말로 전 생애를 걸어야 할 필생의 명제이며 가장 높이 올려야 할 가치인 걸 이렇게 늦게야 깨닫는다.
밥솥 뚜껑을 연다. 밥 냄새 구수하다. 유년의 우리 집 가마솥에서 나던 밥 냄새에는 어림없지만 식욕이 생기기에 충분하다. 이제까지 먹었던 밥들, 남은 날 먹게 될 나의 밥에 깊이 고개 숙인다. 밥은 숭고하다. 밥은 절절하다. 밥은 절체절명의 명제다. 밥은 형이하학이며 동시에 형이상학이다. 이 문장들을 의미로서가 아니라 몸과 혼으로 느끼며 달게 먹겠다.
첫댓글 밥 밥 밥,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