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이 되고 보니-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은 나이라 하죠.
40대 후반에 양구에 와서 오학년이 될 때는 나이 먹는 것을 실감할 겨를도 심적 여유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50대까지 살아오면서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으니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대목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나이 먹는 것에 대해서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그러기에 올해 전반부까지는 5학년이라고 우기며 살아왔습니다.그런데 생일이 지나면서부터는 이제 꼼짝없이 6학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직까지는 둘의 차이가 실감이 나지 않기에 그런가보다 하며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지만, 최근 교우 한분께서 아내를 통해 환갑을 축하한다며 금일봉을 전해 주심에 나이 듦을 실감했습니다.
어린 시절! 모친께서 환갑이 되셔서 동네 잔치를 준비하느라 며칠간 야단법석을 떨었던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랐던 고향 마을에는 환갑 진갑 잔치를 연이어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 나이가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 들이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어쩌겠습니까? 원하든 원치 않든 세월은 흘러가니까요.
어느 분이 노아라는 필명으로 “어른이 된다는 건”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북에 올린 글 일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내 선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내린 결정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내가 한 행동이 타인의 삶에 스며든다. 책임을 진다는 건 단순히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되돌아 보면 저의 50대는 시골 교회 목회자로서 뿌리내리기 위하여 혼신을 다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수록 고령화 되어 가는 시골 마을의 어르신들과 교우 분들에게 반 자식(半 子息)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가 시골 교회 목회자라는 자의식으로 오라는 데는 별로 없지만 온 동네를 돌아 다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집중했던 대표적 사역이 매년 5월이면 어버이날 마을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봄, 가을로 벛 꽃 구경과 단풍 놀이입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최고령 어르신이 80대 중반이었던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교회내외의 어르신들 평균 연세가 8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 하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은 편입니다.(물론 아직 건강이 왕성한 분들이 계시기에 가을에도 단풍 구경을 가야하겠지요.)
또 하나 그동안 지속해 왔던 일 가운데 의미있는 것이 있다면 여름철 농활 봉사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시작했던 도심지 교회들의 협력으로 농촌일손돕기 사역을 진행해 오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올해인 26년의 농활 봉사는 여느해와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은 7월에 두 교회가 다녀 갔고, 8월에는 3개 교회 연합팀과 1개의 교회가 반 나절 봉사를 행한 것에서 부피면부터 남달랐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갈수록 청년들이 어려운 일을 기피한다는 고정 관념이 당연시 되어져 가는 현실임에도 금년도에 다녀간 팀들이 추후 보내오는 소식을 들으며 농촌일손돕기의 당위성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기본적 장점이지만, 숨 차오르는 고통을 경험하기 쉽지 않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극한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는 마당(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나간 십년의 세월을 통해 경험했던 사역들을 돌아 보며,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십년의 세월, 즉 6학년으로서의 인생길이 하나님의 은혜로 순적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달음질하는 삶이기를 기도하며 달려가고자 합니다.
부족한 시골 교회 목회자의 앞으로의 목회 여정과 인생길을 위하여 여러분들의 합심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리며, 그동안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함께 해 주심에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목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