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광주 베토벤 음악감상실
20151219전라도닷컴 [한송주의 길따라 인연따라] 광주 베토벤음악감상실 이정옥 주인
고단한 마음 잠시 쉬었다 가는 편안한 자리였으면
음악을 좋아하는 웬만한 이는 광주 충장로에 있는 베토벤음악감상실이라면 잘 안다. 34년 동안 한 자리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 온다. 1982년 문을 연 이래 첫 모습 그대로 온 바람서리를 움썼다. 이토록 지극한지라 전라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명성이 짜하다. 날리는 전국구 스타들도 많이 다녀갔다. 그 중에서도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시인 김준태 황지우 류시화, 소설가 윤대녕 정찬주, 가수 노영심 이선희씨 등이 낯을 익혔다.
주인은 이정옥씨다. 개창주인 김종성씨(이민)로부터 1986년에 살림을 물려받은 뒤 줄곧 터를 지켜온다. 스타들로부터 누이, 보살, 언니, 아짐으로 불리는 대모격이면서도 늘 수줍음 뽀얀 시골소녀다.
기자는 이 이를 ‘베여사’라고 부르는데 베여사는 유명한 전국구 스타들보다도 한 동네 단골들을 훨씬 더 반긴다. 유명인과의 인연사라도 물을라치면, “아이고, 저는 고향사람들이 좋아요. 멀리서 소문 듣고 찾아 주시는 분들도 고맙지만 그냥 이물 없이 들러서 쉬었다 가는 이웃들이 진짜 귀한 손님이지요.”하고 손사레를 친다.
그러면서 “이 작은 공간이 동네 어르신들 허적하고 무료할 때 한식경 편안히 쉬었다 가시는 자리가 되었으면 해요.”라고 매긴다.
“어느 땐가 늙수그레한 어르신이 쭈뼛쭈뼛 들어서더니 구석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무등산을 바라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라고요. 차 한 잔을 올리고 잔잔한 실내악을 펴드렸는데 좀체 일어설 줄 모르고 한나절을 꼬박 묻어 계시는 거예요. 조심스레 말마중을 했더니 최근 외국으로 떠나간 자식에게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심란해져서 걷던 중에 마침 음악찻집이 눈에 띄어 다리 쉼할 겸 들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닥과 벽과 천정이 단단한 목재와 벽돌로 잘 갈무리 되어 아늑한 분위기가 난다면서 당신은 광주토박이인데 젊어서는 클래식도 들으며 제법 멋쟁이로 노닐었다면서 짐짓 자랑이세요. 그러더니 풍류객으로서 평가하건대 집이 차맛도 좋고 음악도 좋고 전망도 좋다고 연신 입치사를 하시며 이런 저런 추억담으로 헛헛한 마음을 다사롭게 푸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느꼈어요. 아하, 이런 분들을 위한 쉼자리가 바로 이 집의 존재가치로구나! 그 뒤로 우체국→베토벤 코스의 단골이 되어 몇 년 동안 성함도 모르는 멋쟁이 노신사분과 아리따운 정분(?)을 나눴지요. 그러다가 소식이 끊겼는데 자식 따라 가셨는지 더 멀리 떠나셨는지는 몰라도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집은 맑은 차향과, 그윽한 선율과, 편안한 대화가 흐르는 맨사람들의 인연자리가 된다.
34년 연륜.. 폐업 직전 시민들이 십시일반 살려내
2012년 12월 21일 저녁참, 이 집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무등산에 서설이 소담한 세밑의 황혼에 설레며 베토벤을 사랑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개업 30주년을 기리는 ‘보은의 작은 음악회’였다. 모임은 광주 예인들의 연주, 명해설이 곁들인 명곡감상, 정담이 있는 다과회 등으로 다채롭고 알차게 꾸려졌다. 50여명의 베토벤 가족들은 어느 해보다도 즐겁고 소중한 송년잔치가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주인장 베여사는 이 자리에서 “이 허름한 음악찻집을 한결같이 찾아주고 사랑해주시는 귀한 분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며 “특히 문 닫을 뻔한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신 여러분의 은혜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고 인사했다.
광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천신만고로 버티어가던 베토벤도 급기야 2008년 무렵 경영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할 위기를 맞았다. 고전음악감상실이라는 게 어디랄 것 없이 구시대의 유물로 밀려난 지 오래인 것은 상식. 예향광주의 자존을 빛내주는 불가사의한 명물로 꼽히던 베토벤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야 할 판이었다. 천하의 베여사도 저미는 가슴 부여안고 그만 주저앉아야 했다.
그러자 단골손님들이 일어섰다. 소식을 들은 음악애호가들이 베토벤지기를 자임하고 나서 뜻과 마음을 같이했다. ‘베살모(베토벤 살리기 모임)’을 만들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았다. 그리고 분야별 전문인들이 앞장서 음악 영화 발레 감상모임, 철학 인문학강좌 등을 개설해 베토벤가족을 넓혀갔다. 광주의 문화시민들이 명물 베토벤을 살려냈다는 전갈을 듣고 전국의 베토벤 팬들도 정을 보탰다. 이렇게 해서 베토벤은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철학교실과 소극장이 있는 복합문화공간
고객과 시민들의 이같은 후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정옥씨는 베토벤을 더 나은 공간으로 가꾸어내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한층 알차게 다잡고 시설투자도 크게 늘렸다. 시민들이 음악 감상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문화도 고루 향유할 수 있도록 철학 인문학 강좌를 확대하고 시낭송회, 그림 전시회, 실내악 연주회를 수시로 여는 한편, 발레 오페라 영화를 자상한 해설과 함께 감상하도록 준비했다. 강좌를 열 7평짜리 교실과 음악영화를 감상할 10평짜리 전용소극장도 따로 만들었다. 50인치 PDP모니터를 비롯, 각종 기기들도 크고 좋은 것으로 바꾸었다. 베토벤을 작지만 야무진 복합 문화공간으로 거듭 냈다. 그리고 이 거한 문화 성찬에 시민들을 정성껏 모셨다. 물론 삯 일체 없이. 연말이나 휴가철에는 다과와 포도주가 곁들여진 베살모 가족들의 음악정찬을 화기애애하게 베풀고.
이렇게 40평짜리 작은 음악찻집은 긴 연륜 깊은 사랑이 밴 문화사랑방으로 우리 곁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오늘이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주인장은 음악인 안철씨를 첫 손 꼽는다. ‘매니아’로 통하는 선생은 이곳에서 10년째 음악해설을 맡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음악 발레 오페라 영화 감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화요클래식영상음악감상회’ ‘금요발레감상회’와 ‘토요고전영화 및 문화자료 감상회’.
그의 이력은 매니아답게 자못 화려하다. 고교시절에 클래식음악을 접하고 나서 푹 빠져든 이래 평생 음악을 벗하며 살아 왔다. 나이 들수록 고황이 무장 깊어져 천직인 교편도 중도에 내던지고 늙마에 아예 음악해설가로 나섰다. 아마지만 프로 뺨친다는 입소문이 돌아 지역 방송 클래식 해설가로 불려갔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7년 동안 광주MBC-FM에서 클래식음악프로를 매주 1회씩 208회 운영했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광주KBS-FM 프로를 맡았다. 광주MBC에서 나와 쉬는 동안 베토벤과 인연을 맺었다. 베토벤에서 음악해설을 하면서도 그는 예제서 러브콜을 받았는데 2003년에는 서울KBS-FM ‘노래의 날개 위에’ 애청자들의 초청으로 월 1회 해설이 있는 음악감상회를 주도했고 베토벤음악감상실 현장에서 직기도 했고 이곳에서 서울KBS-FM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부터는 바깥나들이를 자제하고 베토벤에 전념하고 일주일에 세 번 광주음악팬들과 만나고 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CD 3천장과 DVD 2천장을 이곳으로 옮겨와 본래 있는 LP 3천장과 신구 짝을 이루게 하고 대형 PDP모니터를 기증해 골동 와피데일스피커와 궁합을 맞췄다. 베토벤에 완전 보금자리를 친 것이다.
“안선생님 은덕으로 베토벤의 격이 높아졌어요. 그분은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할 뿐 아니라 마치 구도하는 수도사의 자세로 음악을 대하며 늘 말없이 책을 보며 공부를 하십니다.” 주인장의 칭송이다. 안매니아는 별 일이 없는 한 오후 7시 무렵이면 헌칠하고 단아한 멋쟁이의 모습으로 어김없이 베토벤의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등장한다.
또 한 사람 베토벤을 가꾸어가는 이가 있으니 철학자 성진기교수(전남대 명예)다.
성진기 교수는 교단을 정년한 뒤 2005년부터 베토벤에 발들여 매주 월요일 ‘니체-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하의 철학교실을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철학 인문학 강좌를 열어 왔다. 한국철학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최근 자신의 철학교실인 ‘카페 필로소피아’를 운영하는 성교수는 10년 동안 이어온 인연을 접지 않고 여전히 베토벤에 출장 나와 철학의 향취를 음악에 보태고 있다.
법정 윤대녕 류시화 등도 단골
이제 단골손님 얘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유명인사들도 더러 온다더라 하니까 주인장은 “소문 듣고 호기심에 와보는 인사들보다는 이웃 사랑방 마실 가듯 부담 없이 오가는 동네 고객들을 더 좋아요.”했다. 그렇더라도 법정스님이나 윤대녕 소설가 이야기는 빼놓기가 그렇다.
법정스님과 베토벤의 인연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찻집 벽에 스님이 육필로 써서 주인장에 선사한 글이 액자로 걸려 있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날마다 무지 무지 좋게 눈이 내려쌓이는 수계산방에서 대자화에게’
“법정 스님 얘기 하나만 할께요. 어느 봄 햇차를 대접해 드렸는데 딱 한 잔을 드시고는 찻잔을 밀어놓은 거예요. 뭐가 잘못됐나 해서 안색을 살피는데 스님께서 껄껄 웃으면서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 맛 좋은 차는 딱 한 잔만 마시는 게 제 습성이요. 두 째 잔은 첫 잔보다 못할 수가 있거든.’하시대요. 느끼는 바 있었지요.”
기자도 베토벤과 관련해 법정 스님과의 일화를 갖고 있다. 어느 때 송광사 불일암에서 스님을 뵙고 차담 중에 음악이야기가 나왔다. “베토벤음악감상실 잘 가신다면서요, 그런데 좋아하는 작곡가가 누구인가요?” “베토벤 갔으면 베토벤 들어야겠지. 그러는 한처사는 누가 좋습디까?” “저는 실용적인 음악을 선호합니다.” “실용적?” “나는 잠 안 올 때 수면용으로 음악을 듣거든요. 브람스를 들으면 지루해서 잠이 잘 오대요.” “...허허 한 선생, 절집에서 좀 놀드만 도인 다 됐네 그려.”
벽에는 이해인 수녀의 즉흥시와 류시화 시인의 편지도 붙어 있다.
소설쓰는 윤대녕은 작가 초년시절부터 베토벤을 들락거렸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등 작품 여기저기에 베토벤을 언급하고 있으며 남녘에 오면 꼭 이곳 삐걱거리는 마루바닥에 발자국을 찍고 간단다.
주인장은 당연히 소녀적부터 클래식 팬이었다. 단골고객으로 베토벤을 드나들다가 설립자가 외국으로 떠난 뒤 주인이 되었다. 친구 노정숙씨와 둘이 운영하다가 2007년부터 혼자 이끌어 온다.
베토벤과 결혼해 홀로 둘이서 오붓이 지내고 있는 그에게 도대체 음악이란 게 무엇이더냐고 물었다.
물론 음악에 대한 잠언은 동서고금에 쎄고 쎘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은 음악을 지향한다”고 했고 모차르트는 “말이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한다” 했다. 베토벤은 “음악은 남자의 가슴에서 나와서 여자의 눈시울을 적신다”고 설했다(새겨보니 정말 여자 작곡가 드무네!). 그런데 역시 니체가 정곡을 찔렀다. “간단히 말해서, 음악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우리 베여사는 머뭇머뭇 이렇게 풀었다.
“음악은 공기나 밥처럼 우리가 호흡하고 섭취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거 아닌가요?”
끝으로 베토벤가족도 잘 모르는 비밀 하나를 공개하겠다. 베여사는 베토벤과 결혼했더라도 베토벤을 제일 좋아하지는 않는다네. 브람스를 좋아한다네.
글 한송주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