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붙여(An die Musik)
음악이 우리에게로 왔다. 그것이 아폴론 풍이든 디오니소스적이든 무관하다. 음악이 우리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다스려 준다면 아폴론 적이 될 것이며, 니체의 말과 같이 군중을 하나의 혼 안에 녹아낼 수 있고, 마음을 뒤흔든다면 디오니소스적일 것이다.
가장 디오니소스적인 악기는 타악기일 것이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북소리를 들으면 인간의 감정은 고조된다. 더욱이 줄루족의 전투 장면을 연상하면 그러하다. 전사들을 공격 모드(mode)로 만들며, 땅을 흔들어 사기를 북돋아 주는 소리의 울림은 곧 전투가 임박함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조들도 진군할 때는 북소리를 울리며, 퇴각할 때는 징 소리로 알렸다고 한다. 이는 음양오행을 따른 것으로, 북은 나무(木)와 가죽을 나타내어 시작을 뜻하는 봄이고, 징은 금속(金)을 뜻하여 거두어들이는 가을을 나타낸다. 그런데 6.25 때 중공군은 밤에만 공격했고, 이상한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려대며 다가와 미군을 당황케 하는 심리전을 연출하였다. 이렇게 소리는 디오니소스적인 효과를 극대화한다.
돌아보면, 여행 중에 들었던 음악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80년대 카이로에 갔을 때이다. 나일(Nile)강 변에 자리한 메르디앙 호텔 야외무대에는 음악과 춤이 밤에 있다. 맨 마지막 보여주는 하이라이트는 벨리댄스이다. 이때는 서양악기가 물러나고 이집트 전통 취주악이 등장한다. 마치 카라반들이 모닥불이 타는 저녁 어두운 사막에서 물담배를 둘러앉아 피우며, 양탄자 위에 수금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희를 바라보는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취주악 소리가 그러하다. 이때 천천히 밸리 댄서가 등장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이름은 이집트 최고의 밸리 댄서, 휘휘 압두(Fifi Abdu)였다. 균형 잡힌 볼륨의 몸매로, 고혹적인 그녀의 몸놀림은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가 없다. 벨리댄스의 진수가 그러하다. 고혹적이란 말은 그녀를 위해서 만든 말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사진은 호텔 로비에 걸려있다. 그 후 이스탄불에서도 벨리댄스를 관람했지만, 모두 아류였다.
스페인의 기타 음률도 그러하다. 세비야에서의 플라멩코는 마드리드보다 규모가 작았다. 그러나 무희들의 빠른 동작과 함께 스페인 기타 반주자들의 현란한 손놀림이 압권이다. 그리고 절규하듯 열창하는 가수의 음색은 집시와 아라비안 음조가 섞여 있는 듯했다. 한(恨)이 묻어나오는 포르투갈의 파두(Fado)도 여행자의 마음을 끌어 잡는다.
체코 프라하와 가까운 드보르자크의 고향인 찰스 밸리에서, 그의 ‘꿈속의 고향’과 ‘아메리카’를 들으면, 신세계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보헤미안 기질의 애절함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여름 저녁, 잘츠부르크 음악당에서 여행자들을 위해 공연을 즐기라고 야외 객석에까지 스피커를 설치하여 감상한 음악도 즐거운 기억이다.
또 다른 여름 저녁, 매사추세츠 레녹스의 탱글우드(Tanglewood) 여름 페스티벌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노르웨이 여행에서는 그리그의 ‘솔베이지 노래’를 들어야 한다. 입센이 쓴, 방탕한 방랑자인 페르 귄트를 기다리는 연인의 노래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그 여름이 가면, 또 세월이 간다’라는 가사와 같이 북구의 긴 겨울을 지나 견디는 슬픈 노래다. 또한, 그리그의 ‘아침의 기분’(Morning Mood)도 노르웨이 자연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른 아침, 페리에서 내려 오슬로를 향할 때, 자작나무 숲 잎 새 위에 춤추는 햇빛은 북구에 왔음을 환영하는 인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은 스코틀랜드에서 백파이프 울림을 들을 때이다. 백파이프가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은 강이 흐르는 산언덕 위에서, 전통적인 퀼트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연주할 때이다.
‘80년대 말, 온통 산과 들이 보라색 히스(heath) 꽃으로 덮인 여름휴가 때, 스코틀랜드 가장 북쪽의 고원인 하일랜드(High Land)와 무어랜드(Moorland)를 자동차로 횡단했다. 땅거미로 으슥해지는 시간을 달리는 광경은 마치 블랙홀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고원을 빠져나오자, 언덕 위에서 백파이프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천상의 음악이었다.
하나님은 모차르트를 일찍 데려가 그의 좌편에 앉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선물이다. 아폴론 풍이든 디오니소스적이든 그러하다.
역시 시나 음악도 슬픈 애조를 띄거나 비장한 비극의 탄생이어야 아름답게 느껴진다.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노래와 춤, 음악과 시가 하나였다. 시가 곧 음악이 되고 음악이 곧 시가 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는 사람과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이는 곧 ‘음악을 모르는 사람과 말할 수 없다’라는 말과도 동어반복이 아닐까.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침묵하는 곳에서 예술이 시작된다”라고 했다. 이는 곧 언어로 닿지 않는 인간 경험의 깊은 곳이 예술의 영역임을 천명한 것이다. 감성과 직관으로 소통하는 음악과 미술이 그러할 것이다.
그 소통을 친숙하게 처리하기 위해 아침이면 FM 라디오를 켠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습관처럼 유튜브로 연주를 듣는다. 이즈음엔 지난 여름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인 이명을 떨쳐버릴 기세로 가까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