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트럼프 놀라게 했던 최혜진인데…
제72회 US여자오픈은 2017년 7월 14~1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소재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렸다. 트럼프의 지지도가 한창 추락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프랑스 방문에서 돌아오자마자 대회 현장을 찾았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란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US여자오픈에서 미국선수가 우승하는 순간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어 추락하는 지지도를 끌어올릴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첫 라운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첫 라운드는 중국의 펑산산이 리드했고 그 뒤를 한국 선수들이 간발의 차로 추격했다. 한참 뒤처져 미국의 대표선수들이 헐떡거리며 따라오는 형국이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상황은 트럼프의 기대와 멀어졌다.
트럼프는 지독한 골프광에다 세계 곳곳에 코스를 소유하고 있어 골프에 대한 안목이 남다르다. 미국 선수들이 지지부진한 바람에 그의 의도는 빗나갔지만 골프 선수를 알아보는 뛰어난 감별력은 특별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대회를 휩쓰는 현장을 목격했다. 우승한 박성현 못지않게 아마추어로 준우승한 최혜진과 공동 5위에 오른 이정은6의 플레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톱10 중 중국의 펑산산, 스페인의 카를로타 시간다를 뺀 8명이 한국 선수였으니 사드문제와 FTA 재협상 등과 겹쳐 한국에 대한 트럼프의 심기가 불편했을 터인데도 트럼프는 한국 선수들의 높은 기량에 골프광으로서의 본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최혜진이 공동선두에 오르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US여자오픈 현장에 와 있다.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가 몇십 년 만에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 매우 흥미롭다!”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파3 16번 홀에서 최혜진이 볼을 물에 빠뜨리는 바람에 우승은 박성현에게 돌아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선수로서 최혜진의 잠재력을 놓치지 않았다. “매우 흥미롭다”는 그의 말 속에는 앞으로의 성장을 지켜볼 만한 선수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KLPGA투어에서 11승을 올린 최혜진은 2021년 Q시리즈에 도전, 공동 8위로 통과해 2022년 LPGA투어 풀시드를 받았다. 데뷔 해인 2022년 시즌에는 27개 대회에 참가해 딱 한 번 컷 탈락하며 선전, 우승은 없었으나 상금 순위 6위에 올랐다. 2023년 시즌에도 23개 대회에 출전해 21번 컷 통과하며 상금 순위 38위. 2024년 시즌엔 27개 대회 중 22개 대회 컷을 통과해 상금 순위 22위에 올랐다.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우승 기록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8년 전 US여자오픈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최혜진이 16일 미국 미시간주 벨몬트의 블라이더필즈CC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마이어 LPGA클래식에서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2, 3라운드를 공동 1위로 마친 뒤 렉시 톰슨(미국), 마들렌 삭스트룀(스웨덴),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 나나 마센(덴마크), 소피아 가르시아(파라과이)와 함께 공동선두에 오른 최혜진은 마지막 라운드 16번 홀까지 카를로타 시간다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를 달렸으나 17번 홀에서 드라이브샷 미스로 보기를 범하면서 시간다에게 선두를 내줬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시간다와 함께 버디를 기록하며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단독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시간다는 2016년 로레나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이후 9년 만에 투어 3승을 달성했다. 2016년 마이어 클래식 연장에서 김세영에게 패했던 시간다는 그때 아쉬움을 9년 만에 털어냈다.
다시 대통령에 오른 트럼프는 8년 전 US여자오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대회를 지켜봤을 것이다. 공동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렉시 톰슨이 우승했다면 요즘 여러 문제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세운 트윗을 날렸을 것이다. 최혜진이 우승했어도 트럼프가 가만있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