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산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을 때였다. 그 때는 학력 불문하고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현역병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따라서 편지를 쓸 수 있도록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문맹자와 함께 고문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도 생겨났다. 고문관이라고 하면 그 어원은 미 군사고문관을 말하지만 우리 병사들 간에는 행동이 굼뜨고 좀 모자라게 보이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아무튼 그때 우리 소대에 “맹” 고문관이라는 “맹”씨 성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물론 그 친구 역시 이목구비가 분명하고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이었기 때문에 군인이 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언제나 차렷! 자세를 취하면 무릎과 무릎 사이가 벌어져 조교로부터 조인트를 당할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이 느려 터져 항시 꼴 치를 도맡아 해야 했다. 그런 탓으로 우리 소대가 단체기합을 받는 데는 항상 그가 1등 공신이 되어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그가 아침에 세수를 하러갔다가 세수 대야를 잃어버리고 이마에 알밤 만 한 혹을 달고 온 것이다. 비누칠을 한창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히프를 냅다 질러 꼬꾸라지는 바람에 그만 놓쳤다는 것이다. 그 시절, 그런 일은 너무 흔했다. 우리소대에서는 곧바로 보충작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면 육박전도 불사해야만 할 때도 많았지만 다행이 다른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훔쳐온 것은 수 분만에 이뤄졌다. 그렇지 않고 정해진 시간까지 채워놓지 못한다면 호주머니를 털어 변상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는 항상 동료들의 보호가 필요한 못 믿을 위험인물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한 번은 군사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노래자랑도 곧잘 벌어지곤 했는데 그날은 각 소대 대항 태권도 겨루기를 했다. 재미있게 끝나고, 아쉬운 나머지 이번에는 가장 형편없는 고문관급 대결을 벌리기로 한 것이다. 우리 소대에는 물론 맹 고문관을 추천하게 되었고, 시선은 모두 그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맹 고문관, 꽁무니를 빼며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만약 자기와 상대하는 사람은 다친다며 나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꼴에 만담도 잘한다.”며 또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소대장은 “야임~마, 다 치긴 누가 다 쳐! 까불지 말고 빨리 나가 임 마!” 하고 엉덩이를 차며 디 민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 고집을 부리며 나올 생각을 않는 것 아닌가. 그것도 상대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안위를 위해서라니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우리는 자신이 없으면 없다고 할 것이지 그런다며 야유가 쏟아져 나온 것은 말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그 친구가 좌 중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대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살생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대신 모래 가마니를 매달아 놓고 그것을 상대로 하여 한판 붙겠다는 것이다. 그쯤 되니 코미디 한다며 야유만 하던 전우들도 반신반의하며 집중 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그의 기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중국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는 얼마동안 온갖 손짓, 발짓으로 오도 방정을 떨었던 것이다. 설마! 하며 그때까지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사실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 기합소리와 함께 오른손이 송곳처럼 모래가마니를 퍽! 뚫고 들어가 박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장난으로만 알았던 좌중은 놀란 가운데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게 되었고, 그는 또 두 사람을 나오게 한 다음 시멘트 부록 한 장씩을 각각 들고 양옆에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오도 방정이 시작되며 붕! 하고 공중으로 몸을 날려 양발차기로 양쪽 블록 두 장을 동시에 박살내 버린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고문관 행세를 하며 지냈는지 불가사의했다. 그 후부터는 누구도 그를 고문관이라 부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각개전투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보이지 않은 가운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급 부대에 가서 무공을 시범보인 다음 스카웃 되어 갔다고 했다. 그리고 전라도 어느 사찰에서 무공을 배운 스님이라고도 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외모만 보고 사람을 얕봐서는 안 된 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사찰에서 고승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첫댓글 " 그의 눈빛, 기합소리와 함께 오른손이 송곳처럼 모래가마니를 퍽! 뚫고 들어가 박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장난으로만 알았던 좌중은 놀란 가운데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게 되었고, 그는 또 두 사람을 나오게 한 다음 시멘트 부록 한 장씩을 각각 들고 양옆에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오도 방정이 시작되며 붕! 하고 공중으로 몸을 날려 양발차기로 양쪽 블록 두 장을 동시에 박살내 버린 것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외모만 보고 사람을 얕보아서는 않이 된다는 교훈 의 글 잘읽고 갑니다.
겉 모습으로만 보고 얕잡아 보아서는 않이 되지요. 재미있고도 흥미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요즘은 모든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 인듯 한데~~~한방 날려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어머! 그분 참 멋있습니다 선생님. 한번 뵙고 싶은분입니다.^^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외모부터 보고 판단 합니다.
내면을 볼 수 있어 사람을 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와 재미있는 글이에요. 반전이 끝내주네요
재미있는 글이군요. 사람의 겉모습은 그저 겉모습으로만 봐야겠지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교훈이 담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오랫만에 뵙네요.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