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에 직면한 무인에게 남는 것은 단지 일개 협객으로서의 무와 의기!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단지 자신의 생사를 결정할 장소!
...
익덕님! 제가 죽을 장소는 바로 유비현덕님 곁입니다!
부탁한다, 자룡!
어디서 뭐하던 놈이건 내 알 바 아니다.
얼마나 많은 군사가 상대이건 상관 없다.
...
하늘이여! 똑똑히 지켜보오! 내가 바로 천하무적 장비익덕이다!!
...이거에 비하면 <화봉요원>은 (혹평이지만..) 걍 막장 아침드라마 수준임..;;
<화봉요원>과 같은 작품은 <삼국지>에 대한 "재해석"이 걍 '신선한 바리에이션'을 하나 보여주는 이상은 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성을 드러내는데, 기실 <창천항로> 부터도 소위 "재해석"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창천항로>에서 가장 빛나는 간지폭풍 장면연출로 뽑는 부분들이 그 "재해석"의 개입이 거의 없이, 연의의 일화를 충실히 재현한 부분들이라는 커다란 아이러니를 보여줌.
이것은 서기 2세기에 일어난 <삼국지>의 이야기가 1,5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남아 명대까지 역사와 야사로 전승되고, 나관중이라는 한 천재적인 재능의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연의가 이후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위 "동양적 정서"에 익숙한 동양사람들의 마음에 엄청나게 파고들어 생생히 빛날 수 있는, "역사와 시대를 초월하는 간지폭풍 배드애쓰" 캐릭터의 원형을 매우 훌륭하게 제시했기 때문임.
각 나라와 문화에 따라 어떠한 가치관과, 어떠한 방식으로 그 가치관을 보여주느냐의 차이가 있는데, 인간관계에 있어 믿음, 신뢰, 세월을 초월한 충의,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들을 바로 세우고 지키기 위한 개개인의 초인적인 각오와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유교문화권의 동양에 있어 연의에서 제시된 인물들의 모습은 -- 특히 유관장 삼형제를 통해 -- 그야말로 그 고결한 이상을 표현하는 미학의 절정에 도달했기 때문. (그만큼 나관중이 천재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 오랜 세월을 초월하여 항상 대중이 좋아하고 사랑한 캐릭터성과 이미지를 나관적이 통합한 것인지야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그런 면에서 현대 드라마와 같은 섬세함이나 각 인물의 현대적 재해석은 <삼국지>를 바라보는 유쾌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지만, 결국에 대중은 도무지 전통적인 <삼국지연의>의 캐릭터성에서 멀어질래야 멀어질 수가 없기에 다시 그 곳으로 회귀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유관장 삼형제의 모습을 바라게 되는 거라능.
그런 의미에서 <창천항로> 20권의 위의 장면들은 36권으로 마무리된 작품을 통틀어서도 유례없이 엄청나게 진한 감동과 폭풍노도와 같은 간지의 쓰나미를 보여주는 부분으로 수 많은 독자들이 손꼽은 장면임.
아직 조조와 같은 관료화나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저 떠돌면서 깨지고, 깨지면서 떠돌던 유비의 세력이 일생일대의 절체절명을 맞이한 순간 -- 그것도 연의 전체를 통틀어 사실상 주인공들이자 이야기를 이끄는 최대의 라이벌로 설정된 조조와 유비의 대결에 있어서 전자가 너무나 압도적으로 강하고, 후자는 그야말로 멸망의 목전에 있는 순간이 바로 장판파... 기실 연의의 이야기 구조 상 장판파를 건넌 후 형주의 소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비로서 유비의 폭풍성장이 시작되니, 스토리적인 면에서도 조조의 형주진군으로 시작하여 장판파의 참패를 거치고, 이후 적벽에서 대역전으로 끝나는 이 부분이 연의의 클라이맥스.
그 클라이맥틱한 장면들에서 킹곤타는 "대체로 연의를 재현한다"는 올바른 판단을 했고, 그 결과 우리에게 제시된 저 위의 장면들은 연의에서도 가장 진국으로 꼽히는 유관장 삼형제와 그 추종자들에게 왜 오늘날의 우리마저도 그렇게 매료되는지, 그 모든 것을 다 담아내고 있음.
유비가 정줄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민중의 고기방패"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에 조운은 후미에서 조조의 군대의 선봉과 대치한 장비를 데리러 감. 상황이 위급하니까 포기하고 도망치자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는데..
...거기에 대해 장비는 "너는 뭐냐?"라는 선문답과도 같은 질문을 함.
이미 장판파는 사지, 유비 휘하의 대부분이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위기. 장비는 그야말로 '여기서 죽어도 불만 없다'는 각오를 그 존재 자체로 표현을 하는데, 이에 감화된 조운은, 이제까지 유비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행동원칙 -- 의로운 협객, 즉 "의협" -- 을 떠올리고 마음을 굳힘.
이미 살아날 길 없는 죽음의 땅에서, 최후까지 삶과 죽음에 집착하여 동요하는 것은 무로 살아가는 무인이자 의협에게는 있을 수 없는 추태라는 것을 조운은 깨닫게 됨. 어차피 살 길이 없다면, 무인에게 남는 유일무이한 최후의 선택은 "어디에서 최후까지 싸우다 깨끗하게, 아름답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뿐 .. 그리고 조운은, "내가 죽을 장소는 유현덕 곁"이라는, 사실상 작별인사를 고하게 됨.
그에 대한 장비의 대답이 걸작 -- "부탁한다, 자룡!"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한 의형제로써 최후의 최후에는 마지막에 얼굴이라도 보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음에도, 장비는 "장형의 마지막은 자룡, 네가 지켜라" 라는 부탁을 한 것임. 그리고 그의 표정에는 한 점 후회도, 슬픔도 없음. 오랜 세월 생사를 같이 한 동지에게 의로써 맹세를 맺은 장형을 부탁하고, 자신은 한 점 두려움이나 고뇌도 없이 바로 그 장소에서 조조군을 막겠다는 결의가 그 짧은 대답과 표정에 응축이 되어 있는데 이게 걸작임. 만약 일이 제대로 안풀린다면 (그리고 다급한 정황 상 그럴 가능성이 높고..) 그 자리에서 장비는 싸우다 죽을 터이니, 장비는 "나는 여기서 싸우다 죽겠다 -- 이곳이 내가 죽을 장소, 자룡, 네가 죽을 장소는 어디냐?"라는 그 문답을 통해 충의와 협기가 무엇인지, 그 폭풍간지를 있는대로 죄다 발산한거임.
수 십년 세월을 같이 했음에도 다른 무엇도 필요없고, 작별인사 마저 필요없이 "장형, 난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즐거웠소!"하는 식의 호기로운 결의를 보여줌으로써, 유비나 관우보다 비중이 훨씬 작아서 활약성 별로 묘사되지 않음에도 장비는 <창천항로>에서 잊을 수 없는 간지를 보여 줌.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만인지적"의 파워풀한 묘사는.. 그냥 배드애쓰 간지의 종결자..
상대는 군대이고 자기는 혼자인 것 따위도 아무런 상관도 없음. 상대가 왜 죽이러 오는지 따위 알 것도 없고, 그저 자기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정한 그 장소, 그 장소에 들어오는 놈은 몇 십, 몇 백 명이던 상관없이 다 대적하겠다는 그 무예와 의기의 폭발.. 마지막을 각오하고 속으로 되뇌이는 외침 -- 거기서 죽어 자빠져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오직 하늘이 내가 여기서 이렇게 싸우다 죽었음을 알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그 외침...
그렇게 장비는 다른 누구에게도 아니고, 바로 하늘에 고함 -- "똑똑히 지켜보오! 내가 바로 천하무적 장비다!"
<창천항로>에서 유비나 관우의 등장이 훨씬 잦고, 스토리 상 비중이 높은 반면, 일부 장면들을 제외하고 장비는 거의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6권의 연재분량을 통해서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바로 이 장면이 <창천항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게 바로 위와 같은 이유임. 사람들이 왜 유비, 관우, 장비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 그 매력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 장면...
...
<화봉요원>류의 "재해석" 작품들은 다른게 아니라 그게 부족함. 그래서 컬트적 인기를 얻을 수는 있어도 한계가 명확한 것이고, 스토리가 엉성해지고 흐지부지 조기결말을 낸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어마어마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창천항로>가 그래도 근래에 본 삼국지 만화 중에서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임.
첫댓글 일본식 그 시원시원한 간지 하나는 제대로 잡죠. 그런류답게 깊이가 있는 척만 한다는게 문제지만, 그냥 생각 안하고 무협지 식으로 보려면 짱짱맨..
삼국지만화로써의 내용을 따지자면, 조조와 그 휘하 장수들을 대책없이 띄워줘서 엉망진창이다만,
만화로써의 내용을 따지자면 참 멋지죠. ㅎㅎㅎㅎㅎ
전 저건 못구해서 못보고 급완결한 애니버젼만 봤죠. 킹덤은 계속 보는중.
하나의 서사가 수백, 수천년을 이어내려온다는 것은 그 구성이 그만큼 어느 시대, 어떤 독자에게도 먹힐만큼 탄탄하다는거니까요.
그런면에서 조선시대판 하렘물이자 미연시의 어머니 구운몽이 갑오브ㄱ...(퍽)
그런데 그건 마지막에 "아시발꿈."
무장공비 / 여느 하렘물과 다르게 결말에 현자타임을 둠으로써 독자제헌에게 현실로 나아가란 교훈을 주는거죠ㅋ
아오 저 폭풍간지와 손제리 잡는 료라이라이는 ㄷ ㄷ ㄷ 입져
이 장면도 그렇고 진짜 이 만화의 장판파는 놓칠게 하나도 없죠.
기존 삼국지주인공인 유비에서 악역인 조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건 좋은데...문제는 주인공 조조의 적이라고 할만한 애들이 없죠..그래서 주인공 조조가 초인이 됬고..후반엔 작가가 사망했다고해서 내용면에서 부실한것만 빼면 만화로선 재미있었음.
최강의 액션 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