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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빠. 오늘 신입생 환영회. 많이 늦을 것 같아.
이거 까 먹어.
뭔데?
아빠가 언제부터 술 마셨다고 했지?
고등학교때부터.
그럼 몇년?
거의 사십년?
아빠 술 먹고 헥헥거리는 것 본 적 있어?
아니.
이거 먹으면 내일 속이 편해. 술꾼은 70%의 유전과 20%의 노력 그리고 10%의 약빨로 만들어지는 거야. 넌 이미 70은 먹고 들어가니 약만 먹으면 아무 노력 안 해도 두주불사의 금강불괴가 되는 거지. 그렇다고 마구 퍼마시면 안돼. 뒤처져도 안되지만 앞 설 필요도 없는 게 술이야.
택시 타고 올 것 같은데, 많이 나올까?
택시 말고 올 방법 없는 시간에 끝날 거야. 그러니 택시 타. 그리고 요금은 꼭 카드로 내.
왜 카드로?
술 취하면 오만원이나 오천원이나 그게 그거로 보여.
음. 알써요.
적어도 두시간 간격으로 톡해. 그거만 잘해도 사람 대접은 받아.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아들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립니다. 아들은 멋쩍은 듯 웃음을 짓다가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듭니다. 술 처먹으러 가는 놈이 주먹은 무슨.
1985년.
아줌마. 오늘 개강파티요. 저녁에 늦게 올게요.
응. 알았어. 들어오며 노래부르지말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자.
예. 다녀올게요.
그렇게 아침에 대문을 열고 나왔고, 이른 저녁에 하나 둘 신입생들이 모였습니다. 아마 왓다삼겹살였을 겁니다. 다들 주머니가 부실했지만 과별 지원금이 빵빵했던지라(부어라 마셔라. 대신 가만 있어라 하며 당시 군사정권이 대학에 돈을 쫘악 뿌린 덕에) 간만에 목의 때 좀 벗기고 25도 쏴한 소주를 물처럼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2차는 어느 막걸리집. 금속으로 구성된 물건은 어느 하나 제대로인 게 없이 찌그러지고 우그러지고 비틀리고 접혔지만 그날 받아 온 생막걸리가 (빨강도 아닌데 빨강이라고 불리는, 대야도 아니고 양동이나 바케스에 가까운데 굳이 다라이라고 부르는, 분명 고무보다는 플라스틱에 가까운데도 무슨 이유인지 고무라 명명된, 음 정리하자면) 빨강 고무 다라이에서 기운차게 출렁이고, 생두부든 두루치기든 말만 하면 오분 내로 변신 가능한 뽀얀 속살의 두부가 모판 위에 넘실대는, 그야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같은 곳였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소주 뒤 막걸리가 다음날 어떻게 만든다는 걸. 그땐 몰랐습니다. 두 시 넘어 먹는 술은 내 몸에 들어가지만 내가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아무튼 3월 8일 금요일 오후 5시 반에 시작한 개강 파티는 끝까지 살아 남아 전사의 계급을 획득하는 12명의 학우와의 외침으로 끝이 납니다. 나가자. 싸우자. 죽더라도 개기자. 토요일 새벽 4시 50분. 밤새 술 처먹은 놈들이 싸우긴 뭘 싸워.
2018년.
아빠 라면 끓여줘.
알았어.
콩나물을 가득 넣고 물에 매운 맛을 우려 낸 대파를 넣어 해장라면을 끓입니다. 달걀은 끓는 물에 회오리 만들어 빙빙 돌리며 예쁘게 익혀 낸 수란으로. 채 썬 김을 올리고 간장 한방울 그리고 참기름 두방울. 아참.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문질러 으깬 참깨 여남은 알.
배고프면 술은 다 깬 거야. 얼른 먹어.
1985년.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삐뚜름한 쓰레트 지붕이 애매하게 걸쳐진, 그래서 미닫이 문도 열릴 때마다 끼이익 소리내는 순댓국집. 입학 전부터 안면 튼 주인할머니가 순댓국을 탁 소리내며 놓으며 말하십니다.
뭔 술을 그리 처먹어. 웬수진 거 마냥. 그렇게 처먹다가는 마흔 전에 뒈져. 울 서방이 그랬어. 적당히 처먹어.
숟가락을 뚝배기 중심에서 바로 꽂아봅니다. 제삿날 메에 꽂듯. 아직 밥을 말지도 않았는데 숟가락이 꼿꼿이 서 있습니다. 아따. 할무니. 뭔 건더기를 이리 많이. 이럴진대 그 정도 지청구야 있거나 말거나.
이것도 처먹어.
막걸리 한잔, 아니 한사발. 음. 한대접. 색깔 참 죽여줍니다. 밤새 그리 펐거늘 침이 꼴깍. 시원하게 들이킵니다. 누가 그랬던가. 해장술은 찔끔찔끔 먹는거라고. 아따. 다 사람나름여.
끼이익 문을 밀고 나서며 말합니다.
할무니. 이따 저녁 때 봐유.
뒤통수에 꽂히는 할머니의 인사.
오지맘마. 연짱으로 술 처먹으면 피똥쌈마.
그러거나 말거나 선수는 선수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우린 압니다. 저녁에 다시 만날 거라는 걸.
2018년.
라면을 먹으며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난 뭐가 될까?
네가 그냥 너지 뭘 뭐가 돼?
아니 뭘 하며 살아가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
1985년.
친구가 말합니다.
난 사업을 할거야.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넌 뭐 할 거야?
낸들 아나? 그때 되면 뭔들 하겠지.
그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하고 싶은 것은 쌓아갔습니다.
2018년.
나이 오십 넘어서 모임에 나가 막내 대접 받기 처음입니다. 더욱이 내게 지식이든 지혜든 쏘맥이든 김밥이든 아무튼 뭐든 마구 챙겨주려 노심초사하는 이들 틈에서 엉거주춤 착하고 순한 양처럼 있기 참 거시기합니다.
1985년.
신입생 환영회에 찬조금을 전달하러 온 학회장이 말합니다.
후배여러분. 인생을 즐기세요.
2018년.
그당시 술에 꼴아 외치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죽더라도
개기자.
아. 유치해.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치의 심오함이란.
내 맘대로 살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것
하고 산다면이야...
임태주 시인이 어머니 말씀을 나중에 정리해서 마지막 편지의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 ~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망을 덜면 보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얼하게 살기를 바란다 ~”
어쩌면 싸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얼하게 살려고...
Still Fighting It - Ben Folds
Good morning, son.
잘잤니, 아들아
I am a bird
Wearing a brown polyester shirt
나는 갈색 폴리에스테르 셔츠를 입은 새란다
You want a coke?
콜라 마실래?
Maybe some fries?
프라이라도 좀 먹을래?
The roast beef combo’s only $9.95
로스트 콤보는 고작 9.95달러밖에 하지 않는구나
It’s okay, you don’t have to pay
괜찮아, 넌 계산하지 않아도 된단다
I’ve got all the change
내가 다 낼테니까 말야
Everybody knows
모두들 알고 있단다
It hurts to grow up
어른이 되는 건 아픈 일이란 걸
And everybody does
그리고 다들 어른이 된단다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여기 이렇게 뒤에 서 있으려니 참 이상하구나
Let me tell you what
이거 하나는 말해줄게
The years go on and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도
We’re still fighting it, we’re still fighting it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단다, 여전히 싸우고 있지
And you’re so much like me
넌 나를 많이 닮았단다
I’m sorry
미안하구나
Good morning, son
좋은 아침이란다, 아들아
In twenty years from now
한 20년 후에는
Maybe we’ll both sit down and have a few beers
아마 너와 내가 같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겠지
And I can tell you ‘bout today
그리고 오늘을 말해줄게
And how I picked you up and everything changed
내가 너를 안았을 때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는 것도 말이다
It was pain
그건 아픔이었단다
Sunny days and rain
맑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I knew you’d feel the same things
너도 나와 똑같이 느꼈을 거란 걸 알았단다
Everybody knows
모두들 알고 있단다
It sucks to grow up
어른이 되는 건 아픈 일이란 걸
And everybody does
그리고 다들 어른이 된단다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여기 이렇게 뒤에 서 있으려니 참 이상하구나
Let me tell you what
이거 하나는 말해줄게
The years go on and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도
We’re still fighting it, we’re still fighting it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단다, 여전히 싸우고 있지
You’ll try and try and one day you’ll fly Away from me
넌 노력하고 노력해서 언젠가 나에게서 떠나가겠지
Good morning, son
좋은 아침이란다, 아들아
I am a bird
나는 새란다
It was pain
그건 아픔이었단다
Sunny days and rain
맑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I knew you’d feel the same things
너도 나와 똑같이 느꼈을 거란 걸 알았단다
Everybody knows
모두들 알고 있단다
It hurts to grow up
어른이 되는 건 아픈 일이란 걸
And everybody does
그리고 다들 어른이 된단다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여기 이렇게 뒤에 서 있으려니 참 이상하구나
Let me tell you what
이거 하나는 말해줄게
The years go on and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도
We’re still fighting it, we’re still fighting it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단다
Oh, we’re still fighting it, we’re still fighting it
여전히 싸우고 있지
And you’re so much like me
넌 나를 많이 닮았단다
I’m sorry
미안하구나
https://youtu.be/kqPwR39VMh0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머지 않아 상면할 기회가......?
저도 글 잘 읽었습니다. 바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