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踏雪野中去)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今日 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
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남북의 분단을 막기 위해 38선을 넘으면서 읊었다는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라고 합니다. 우형식 교육부 차관이 퇴임에 즈음에 일갈하신 변이기도 합니다. 작금의 세계갱제에도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싶습니다.
바야흐로 올 한 해의 장도 마감되어 가고 있습니다. 올 해를 간단히 정리하면, 갱제학적으로 '시(장시)가 장(마당)에서 사라지는' 기묘한 자본주의를 목도한 해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연준이 마침내 제로금리를 선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제로금리를 기정사실화하고 나섰고, 일본의 중앙은행도 재차 제로금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은도 실질금리 (-)를 향해 이미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세계갱제에 전대미문의 눈발과 서리가 쌓이고 날씨는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각국의 정책당국들은 전대미답의 행보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고 내딛는 발걸음은 깊은 눈에 푹푹 빠지고, 이 길을 걷는 이 마음에 두려움이 없다면, 그건 간뎅이가 붓기를 넘어 장렬히 폭발해 버린 미친 넘이라는 뜻일 뿐.
다가오는 해는, 이 미친 넘의 갈지자 행보가 과연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구경해야 하는 한 해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제 갱제학적 상식이 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가 결국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에 걸렸음을 보이고 끝날 것이라고. 혹자는 말합니다. 이 과도한 유동성이 곧 하이퍼는 아닐지라도 꽤나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이 두 시나리오는 어째 다른 그림을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가계와 근로자에게 그다지 큰 차이가 있을까요.
유동성함정 전망에 내포된 함의는, 기존의 거품경제가 붕괴되는 경제적 자연치유기능이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도도하기에 그 어떤 정책적 대응도 결국 붕괴를 막지 못하리라는 뜻일 겁니다. 지난 거품기간 미국의 부동산이 대략 두 배쯤 수직상승했고, 작년/올해 20%쯤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지난 기간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경제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명목자산가치 상승률이 10%쯤이라고 해도, 추가적으로 20%쯤 더 거품이 빠져야 한다는 간단한 계산이 나옵니다. 이 추가적 20%만큼의 거품은 어떠한 정책적 대응으로도 막을 수 없으리라 보는 것이겠죠. 당장 막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으나,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어떠한 가격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경제라는 자연적 메카니즘의 자기회복 기능은 지속될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다소 다른 주장인 '높은 인플레이션'은, 정책당국의 초저금리 기조와 발권력을 동원한 유동성 장세가 중장기적으로 현 거품을 '유동성' 측면에서 지지하고, 이에 따라 자산가치가 재차 상승하거나 최소한 추가적인 하락을 막는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이건 하나만 본 말이지 싶습니다. 결국, 이렇게 증가한 유동성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한, 경제침체의 지속은 피할 수 없습니다. 기존에 당겨 쓴 빚을 정리하기 위해 가계와 근로자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가 아닌 저축과 부채 상환에 나서는 한, 소비의 위축은 불가피합니다. 기존의 자산증식 패러다임이 붕괴되었고, 투자심리가 기존과는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할까요.
정책당국의 양적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는 필연적으로 국공채의 발행을 늘리는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적자재정에 따른 공국채 발행물량 증가는 정책당국의 초저금리 기조에 정면 충돌하는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초저금리와 적자재정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 국공채를 매입함으로써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그림이 될 것입니다. 양적완화와 발권력 동원이라는 카드가 역대 경제정책에서 가보지 못한 길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입니다.
양적완화라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일국의 '경제적 신용'의 대명사인 '통화'가 증발되면, 해당국의 통화는 당연히 평가절하되어야 할 것입니다. 해당국의 환율은 올라가고, 수입물가는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야겠죠. 미국과 영국은 확실히 이러한 길로 들어선 듯합니다. 우리의 한은과 정권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유동성함정에 빠진 것이 확실해서 어떠한 정책적 대응도 결과적으로 무용지물임이 사실이라면, 경제의 수축과 이에 따른 생산/투자활동의 감소, 근로소득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자율이 다소 낮아져서 부채상환부담이 다소 줄어들지는 몰라도,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실제 부채상환부담'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 부채에 따른 경착륙이라는 그림은 전혀 변화하지 않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항상 발생하는 '실질 근로/임금소득의 감소' 역시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집값/주가 등 자산가치가 하락을 멈추거나 다소 상승할 수 있을지라도,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득의 감소가 다시 하락압력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오직 '소득'만이 자산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음을 상기하면, 큰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입장에서야, 인플레이션이나 유동성 함정이나 죽는 모습만 다를 뿐, 죽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화폐 증발로 화폐의 구매력이 감소하는 상황에, 재정적자의 확대는 곧바로 채권 금리를 끌어올리게 될 것입니다. 정책당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주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고 믿어보는 수밖에. 결국 둘은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현명한 정책당국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어야 하나요.
해답이 있다면 딱 하나일 것입니다. 당장의 자산감소를 막아라. 장기적으로 소득을 올려라. 그리하여 소득대비 자산의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라. 말이 쉬워 대안이지, 이걸 할 만큼 사람이 현명한 것인지.
또 어떤 이는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는 20-40% 평가절하될 것이라고. 미국의 달러패권이 막을 내릴 것이라고. 미국만 제자리 찾아가면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행여 미국의 달러 구매력이 40% 감소하면, 미국의 소비도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을 세계최대 소비지로 삼고 있는 중국/한국/일본 등 모든 수출국들의 생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행여라도 미국채에 대한 신인도가 하락하여, 미국채의 차환발행/신규발행이 중단되거나, 기존 미채권에 대한 투매가 일어난다면... 파국은 걷잡을 수 없겠죠. 이러나 저러나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뚜껑을 닫은 판도라의 후예답게, 희망을 품어봅니다. 유동성이 자산의 구매를 늘려서, 유동성이 다만 적당한 선에서 자산가치의 하락을 멈추게 할 수 있기를. 유동성이 빚이든 아니든 소비를 늘려 경기의 경착륙을 완화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자산과 소득의 급격한 감소를 막아낼 수 있기를. 이 상태로 몇 년을 더 버텨 아무쪼록 부채재조정이 무난히 완수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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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시에 민주주의는 참 나약한 시스템이 아닐까 합니다. 제정과 귀족정, 민주정. 이 셋중 '위정자'가 장기적으로 부담하는 '책임'의 측면에서, 어떠한 것이 정책의 지속성과 장기비전의 측면에서 나을까요?
한때 미국의 경영시스템을 비판하며, 미국경영자는 매분기별로 경영성과를 평가받기에 장기적인 비전의 수립과 장기적인 목표 설정에 힘쓰기보다는 단기적인 성과극대화를 지향한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반면, 일본의 오너 중심 경영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을 실현하는 데 낫다는 평을 받았구요. 이 논리가 우리에게는 '재벌시스템'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정권은 계속 바뀌고, 주권자인 국민이 엘리트보다 나은 판단력을 갖출 수 없고, 주권자와 위정자 사이의 신뢰가 쉽게 형성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위정자는 쉽게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성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화'라는 것도 결국 '땜빵'의 누적인가요?
첫댓글 별빛 하나 없이 깜깜한 눈덮인 산중으로 접어 들면서, 저 골짜기 속에는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앞길을 걸어가는 자는 자신이 무슨 길을 가고 있는지, 뒤 따르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는 무관심하고, 되려 '어디로 가는가'라는 외침에 '옷을 벗으라'라고 대답하는 상황에, 저는 '디즈데일리'를 생각합니다. 저는 '앵초꽃을 가슴에 달아 보고 싶습니다'.
결국 인위적인것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마련인가봅니다. ^^
악파트님 덕분에 늘 좋은글 읽고 많이 배웁니다.. 늘 건강하시고 내년에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잘 정리하신 글 잘 봤습니다.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유동성이 내년에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 집니다..
지난 1년 악파트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감사합니다^^
항상 악파트님의 좋은글에 경제상황을 잘 정리하곤 합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글 앞으로도 부탁 드립니다.
그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새해 건승하시길 기원 합니다.
자살이나 타살만 아니라면 산 목숨 어찌 굴러가겠지요.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나 있을려나가 화두가 된 세상. 자본주의. 시장에서 화폐와 신용을 매개로하여 상품을 거래하는. 수요가 아무리 많아도 화폐와 신용이 없으면 꽝. 따라서 과잉생산은 수요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없는 것이 과잉생산. 자본주의의 가장 큰 내재적 모순. "생산의 사회적 형태와 소유의 개인적 형태"의 영원한 딜레마. 1년 2년 어찌어찌해서 산 목숨 살아남는다 하여도 근본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는 정도와 내용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가 눈감기 전에 영원히 반복될 경제현상이지요.....
그래서, 사람과 생명의 가치 회복을 부르짖었던 선각자들이 있었지 싶습니다. 리영희 교수가 베트남전을 얘기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듯 싶습니다. 초기 베트남 민족전사들은 유교적 선비론에 입각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싸우다 죽었습니다. 나중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내가 끝을 맺지 못하더라도 내 후대는 기필코 승리하리라' 믿으며 싸웠답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도 결국 이데올로기 공세의 결과일 테니, 영원한 반복은 없지 않을까요. 본격적인 자본주의 역사는 채 200년이 되지 않습니다. 벌써 삐걱대다니 실망스러운 넘이죠.^^
어쩌면 우리를 깔아뭉개고 있는 수탈구조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람냄새 풍기는 네트워크가 뻗어가고 새로운 시스템의 실험이 시도되고 등등 뭔가 구조의 썩은 뿌리를 찍어대는 움직임들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악파트님, 낭만주의인가요?^^
좋은글잘읽었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내년에는 좋아지길기대해봅니다...^^
생물학적인 진화는 '땜빵'의 누적이 맞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인간의 두뇌 활동 결과인 경제는 어떨런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