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농악보존회장 이명훈 님께
고창을 다녀온 후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며칠은 아예 카페 들어가지도 못 했고
며칠은 들어왔다가도 나가기 바빴고
글 몇 줄로 고창탐방 후기를 남기기에는 너무나 인상적인 체험이었기에
오늘, 내일 하면서 열흘이 넘었네요.
이런 …, 저런 …, …등등, 나중에는 삶의 도처에 숨어있는,
전력투구해야할 복병까지
몸살감기로 해서 어떻게 치렀는지도 모르게 터널을 빠져나왔네요.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컴 앞에 앉았습니다.
동안 궁금하셨지요?
<문화적 충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까진 아니어도 <문화적 차이>는 고창에서 많이 느꼈지요. 잠깐이었지만
작은 나라 안에서도 산수의 느낌이 다르고
사람의 정서가 다르고 사는 방식이 조금씩 다름을 보았습니다.
고창행 역시 어쩌면 제게는
어쩌다 둥지를 떠나게 되는 매번의 이유처럼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다녀온 뒤
개인적으로도 무척 즐거운 , 오래도록 각인되고 회자될 여행기로
자리매김되었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눈과 귀는 점점 높아지고 손은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고…….
그저 즐길 만큼의 기량(?)이란 어떤 걸까 ,
부족함에, 열심이지 못한 자신에게 늘 불편하답니다.
고창에서의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그날 (24일) 새벽 5시 , 더러 잠이 덜 깬 얼굴로 누군가는 노래방에서 바로
그러나 모두, 수학여행가는 설레임으로 출발했답니다.
12인승 차량에 어른 11명, 먹거리, 개인짐까지 꽉 채운
마치 종균병 속에서 넘쳐나는 버섯들이 연상되었지만
즐거운 대화와 높은 웃음소리와 훈훈한 입김으로
앞유리를 닦아가며 ,고속도로 이름을 바꾸어 타며
어느 휴게소(아마도 영동?)에서 아침을 먹었지요
상장구가 새벽에 지은 잡곡밥에 가을아욱국으로, 여러 패원들이 만들어오신 맛난 반찬들과
24시 김밥, 휴게소 어묵국물까지 거들었지요.
생전 처음 휴게소 공터에서 자리 펴고 엉거주춤 먹는 아침밥이
얼마나 맛나든지요, 마치 논두렁에서 샛밥을 먹는 것 같았답니다.
드디어 도착한 고창 모양성(첨엔 이름이 특이하구나 생각했던)
11시라 이미 몇 팀은 끝난 분위기라 마음이 바빠졌지요.
어여쁜 개량한복을 입고 본부석에서 심사를 보고 있는
이명훈 님의 모습에 반갑고 한편 마음이 저어됐습니다.
방해되는 것은 아닐까, 그곳까지 5시간 찾아가는 수고보다 아는 척 하는데
더 용기가 필요했지요.
그러나 연로한 선생님도 계시고 좁은 차안에서 내내 다리를 접고온 패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진행하시는 분이 춘천에서 <소양강풍물패>가 왔노라 이야기 해 주시고
바야흐로 <고창농악>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보시고 즐기시는지, 내심 저도 감탄했습니다.
정말 사람들에게는 내적동기만 있으며 능동적으로 학습하고
참여한다는 것을 다시 느꼈지요.
<고창농악> 면 대항 경연대회를 보면서 많은 특색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전 군민이 농악을 한다는 게 놀라웠고 특히 연만하신 분들이 많다는 게
보기 좋았지요. -생활과 세월로 절여진 풍물-.
보존회장님이 더 잘 아시는 부분겠지만
<소양강풍물패>의 역사로 남겨야겠기에 느낀대로 소박하게 적습니다.
우선 판제는 <고창농악>안에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색도 특이하구요(분홍색 더거리와 청색이 아닌 연두색 삼색끈 , 행전이 없는 것 등)
상쇠가 아닌 대포수가 앞에서 지휘하는 것도 그렇고
잡색이 다 갖추어져 풍성하게 구성된 것도 즐거웠습니다.(서울 고창굿 때도 느꼈지만)
춘천 쪽은 판제에 서낭굿이 있답니다. 농사풀이는 벼농사구요
그런데 고창은 콩 농사풀이 과정이라고 해서 흥미로웠답니다.
콩등지기라는 것도 재미있고요.
오방진을 만들 때 이쪽은 칠채나 삼채로 틉니다.
호허굿은 실제로는 첨 보았지요. 대체로 진풀이는 윗쪽과 비슷했지요.
장구나 북도 소리가 너무 좋았지만 고깔소고춤은 뛰어나게 아름다웠습니다.
우리 패원 중에는 겨울방학 때 북을 배우러 , 쇠를 배우러 가겠다고
벌써부터 벼르는 사람들이 계시답니다. (나도 같이 가야지...ㅎㅎ...조금 젊었으면 소고춤을 배우련만 에구...)
입장부터 퇴장까지 쉬지않고 뛰는 농악패들의 체력도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이쪽으로는 상모놀이가 발달되어 있지요, 저희는 못 하지만 어떤 팀은 전원 상모를 돌리기도 합니다.
서울 고창굿 때 나금추 선생님이 보여주신 부포춤이 다시금 생각나네요.
이번에 뵈고 그렇게 연세가 높은 줄 미처 몰랐지요. 해묵은 예술세계가 감탄스러웠습니다.
장애인 농악팀이 출연했을 때 함께 춤추던 사람들의 따뜻한 맘들도 오래 기억될 것 같네요.
그야말로 즐겁게 놀던, 열심히 하려고 하던 그 모습들….
전야제 시가행진 행렬을 보고 다시 한 번 고창군민의 저력에 놀랐습니다.
모양성 입구에서 엿장수가 치는 괭가리 소리에 먼저 놀랐고
취타대, 당산제 행렬, 순라꾼, 녹두장군, 고인돌 가장행렬 뒤에 10여 개 농악팀들, 군민들이 뒤따르는
행렬은 가히 장관이었지요.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고창농악 전수관에 들어와서는
폐교였지만 그 큰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랍 부럽.
뒷곁에 지은 숙박시설을 보고 이렇게 지방무형문화재로 당당히 자리잡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농악인들이
긴 세월 애를 써왔을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더군요.
재워온 닭갈비로 맛있는 대식구 저녁과
(전수관이 처음인 우리 패원들은 좀 생경해했지만)
팀들 소개, 뒷풀이 등등
그렇게 큰 행사를 치렀는데 관계하신 분들과 저녁을 드시지 않고 들어오신 게
저희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답니다.
무척 고단하실텐데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지키며 손님 대접을 하고 계신
이명훈님도 대단하시구요. 어쩌면 예인들만의 그릇이고 낙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희에게 몇 가지 몸소 보여주고 일러 주시기도 하고
나중에 듣기로 전날 석고붕대를 푸신 불편한 몸이셨다고요,
그런데도 선운사까지 안내하시고 동동주에 도토리묵까지(저는 강원도에나 도토리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선운사 뒷산 천연기념물인 동백나무숲은
붉게 물들일 겨울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정말 장관이겠지요.
옆에 고요한 내를 두고 단풍진 숲, 오솔길 옆으로
녹차나무밭이며 상상초 군락들이 다시 한번 다른 계절을 상상하게 했지요.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온 연분홍빛 꽃대들의 무더기,무더기들….
그러나 당장은 면경 같은 물 위로 단풍잎들이 온통 뒤덮혀 있었고
그 위로 소리없이 나리는 낙엽비, 낙엽비들.
구경 온 사람들이 가득해도 전혀 거울 속 풍경 같고
우리 패원들 기분도 가을햇살처럼 투명 화창하고….
때늦은 점심을 위해
풍천장어를 먹으러 한 어촌에 도착했을 때(해리면 ?)
근방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집답게 안팎으로 사람들과 연기들로 꽉, (에그머니, 그 비싸다는 장어집에???)
기다리는 동안 몇 발 걸어서 내려다 본 , 생애 두 번째 보는 서해안 갯펄!!!
진흙벌이 무슨 대평야같이 펼쳐져 있더군요. 물은 아득히 먼 곳으로 물러나 있고
호미를 찾는 내게 님께서 막 웃으시더군요. 먹는 조개는 경운기로 30분 1시간 나가야 한다며.
패원 몇 명이 뻘로 먼저 걸어 들어가고
신발 버릴것 각오하고 뒤따라간 저는, 오! 놀라워라. 발이 빠지지 않을 만큼 받치고 누운 뻘의 저력!
군데군데 물이 고인 웅덩이에는 죽은 조개들, 버섯같이 생긴 산호초(?).
여기저기 뻐금거리는 구멍을 보고 요거다 싶어 원시적으로 막 파보면
진흙 반 조개껍질 반…. 거대한 패총지역이더군요,
풍천장어, 풍천장어 해도 잘 몰랐지요.
참숯에다 소금 뿌려 모로 세워 구워 먹는 장어의 진짜 맛을.
정말 고소하고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아
얼마든지 먹고 싶었지만 워낙 비싸다고 해서 배부른 척, 저만 그런 것 같진 않았어요.
길고 미끈거리는 것하곤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친해지고 싶네요.
밥하고 맛있게 먹던 밴댕이젓갈까지 여러 통 사주셨다는 얘기 나중에 차 안에서 들었지요.
이틀 동안 보여주신 극진한 대접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염치가 없습니다.
다음에 갈 때 저흰 닭갈비를 잔뜩 재워서 이고 가겠습니다.
올 때는 한 6시간 30분쯤 걸린 것 같네요.
고속도로가 대형 주차장 같았고 휴게소마다 인산인해여서
마치 단풍놀이로 나라가 통째로 떠들썩한 것 같았어요.
다음엔 절대로 사람 붐빌 때 다니지 말아야지, 졸다 깨다,
운전하시는 남자패원 사탕 까서 드리랴 바빴답니다.
아무쪼록 폐도 많았고 공부도 많았고 기쁨도 많았던
<소양강 풍물패>의 다사다난한 고창풍물기행이었습니다.
이명훈님의 알뜰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깊이 감사 드리며
올 겨울 또 다시 뵐수 있게 되기를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어쩌다보니 작심은 했지만
너무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2009. 11. 4.
춘천 소양강 풍물패 한춘녀 드림
첫댓글 춘천에 있는 소양강 풍물패 한춘녀 회장님의 글입니다. 저희 고창농악경연대회가 이렇게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랄뿐입니다. 춘천에서의 잠깐의 인연이 이렇게 깊어질 줄 몰랐습니다. 왠지 가슴이 뿌듯합니다.
고창풍물 장헙니다.............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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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농악전수에서 지역 풍물패간 교류의 모습이 자세히 보입니다.^^8 모양성제때 다녀갔군요~~~ㅎㅎ
고창상하출신 선배님 한분 께서 대기업 임원으로 지시는데 고창 국악 발전을 위해서 공을 들이고 계시지요 넘 감사하고 우리고창 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시길 ---
긴글 지루하지않고 잘봤습니다.....좋은 인연이 되었으니 좋은일입니다..

......고창농악 전수관 차맛이 훌륭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