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동한 소방관들 초기대응 실패… "상부 지시 없었다" 불길 보고만…
외벽 유리창 깨고 물 뿌려야 하는데… 관리실 "회장님께 허락 받아야"
불길은 20분만에 옥상 치솟는데, 주민들 "화재 경보기도 작동안돼"
부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옛 수영만매립지) 안 주거용 오피스텔 우신골든스위트 35층에 사는 홍모(45)씨는 1일 오전 11시30분쯤 외출하기 위해 아파트 밖으로 나섰다. 동·서관 2개 동으로 된 이 아파트 건물 중 서관 뒷면 4층 쓰레기 집하장쯤에서 불꽃과 연기가 올라왔다. 홍씨는 "소각장 쪽에서 불길이 보였지만 처음엔 별것 아니네 싶었다. 그런데 돌아서서 몇발짝 걸어나오며 몇 차례 뒤돌아 보는데 불길이 점점 확산되는 걸 보고선 어 저건 아닌데 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불길은 짙은 연기와 함께 20여분 만에 38층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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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 내 고급 주거용 오피스텔 우신골든스위트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가 해운대 하늘을 뒤덮고 있다. /twitter(Kyubom)·연합뉴스
곧 소방차들이 몰려들었다. 서관 4층 안쪽 측면에서 발화한 불길은 수직으로 타올랐고, 동관 쪽으로 옮아 붙으며 가파른 대각선 모양으로 동관 꼭대기의 절반까지 시커멓게 태웠다. 건물 외벽이 필름·피막 등 인화성이 강한 재질의 자재로 돼 있어 금방 불길이 번진 것이다.
이 아파트와 80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사이의 왕복 4차선 도로는 불에 타 떨어진 외벽 알루미늄 패널과 철판 등이 곳곳에 널브러져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패널 등이 때론 구경꾼들 머리 위로 떨어져 놀라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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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에서 불이 나 위층으로 번지는 가운데 한 가족이 화재 현장에서 긴급 대피하고 있다. /MBC TV·연합뉴스
긴급히 아파트를 빠져나온 주민들은 "바깥에서 보니 5~6층쯤의 외벽 유리를 깨고 물을 뿌리면 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소방서측이 무슨 영문인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 주민은 "소방관들이 '상부 지시가 없었다'며 불이 번지는 걸 보고만 있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주민들은 "관리실에서 (이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 '회장님께 (유리창 깨는 걸) 허락받아야 한다'며 시간을 지체했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서관 15층에 있다 대피한 40대 주부 이모씨는 "집 안에 남동생, 올케와 있었는데 소방차 소리가 들려도 다른 건물이려니 생각했다가 낮 12시20분쯤 돼서야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난 걸 알았다"며 "그동안 화재 안내방송 등은 없었고, 화재경보기도 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 가족은 입을 막을 물수건 등을 준비해 복도로 나오다 자욱한 연기에 쫓겨 되돌아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10여분쯤 집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데 소방관 1명이 문을 두드렸고, 그의 지시에 따라 중앙 계단으로 내려와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이때쯤 현장엔 소방관 200여명, 소방차 110여대, 헬기 5대 등이 도착, 진화·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 장비는 부산 전역에서 29차례에 걸쳐 동원됐다. 헬기 1대는 경남에서 지원받기도 했다. 다른 주민들도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이 없어 스스로 혹은 다른 주민들 연락을 받고 대피했다. 9명은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됐고, 30여명은 소방관이나 고가사다리차 도움을 받아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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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화재 발생 1시간30분여 지난 오후 1시 2분쯤 발화지점인 4층 쓰레기 집하장 불길이 진화됐다. 소방당국 측은 "큰불은 잡았다"고 했다. 그러나 남아 있던 잔불이 안에서 계속 타 오후 2시 50분쯤 동관 35층쯤에서 다시 불길이 치솟더니 10여분 만에 동관 끝쪽 38층 펜트하우스로 옮아 붙어 1시간가량 내부를 태웠다. 한 소방관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갈수록 집 안에 성한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 타버려 폐허를 방불케 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심모(36)씨가 대피 중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 치료를 받는 등 4명의 경상자가 발생했다.
이 아파트는 작년 12월 소방안전점검에서 동관 28층 화재경보기 불량 등 30여 가지가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에 대해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해운대소방서는 "지적 사항을 모두 바로잡았고 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불이 났을 때 화재경보기 소리를 들은 주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