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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류현택
히 11장에 나오는 신앙 위인들의 믿음을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중에, 오늘은 족장 요셉의 믿음을 통해서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가운데서 요셉은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인물이며, 믿음의 영웅 중에 닮고 싶은 인물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인물이라고도 합니다. 은 20개에 팔리는 것이라든지, 죄 없이 종이 되고 죄수로까지 낮아지는 점, 그런 후에 애급의 총리대신으로 영화롭게 되는 점에서,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모형적인 인물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본문을 통해 “능히 이루는 요셉의 믿음”을 나누면서 축복과 도전과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요셉은 능히 이루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의 떠날것을 말하고”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이 장차 애급을 떠날 것에 대해서 유언을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었기에 자기 대에서 아닐찌라도 다음 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가나안땅으로 돌아갈 것을 믿고 유언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일인 출애굽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는 반드시 이루신다고 믿었습니다. 요셉의 믿음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 땅에서 크게 번창하며,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을 때나, 애급에 있을 때나, 종살이 할때나 , 총리가 되었을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요셉이 믿음을 따라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믿음을 따라서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임종시에도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삶도 믿음으로 살았지만 죽음 앞에서도 믿는 바를 선포하고 임종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영웅은 믿음을 따라서 죽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후손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앙적인 유언을 했습니다. 자기의 후손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히11:20∼21절에 보면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을 이삭에게, 이삭은 믿음을 야곱에게, 야곱은 믿음을 그의 아들 요셉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요셉도 임종할 때 역시 믿음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요셉이 임종시에 애급에 있었습니다. 요셉은 애급의 국무총리였습니다. 그에게 애급은 성공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후손들에게 애급에 머무리지 말고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요셉이 믿음으로 말했다고 한 것입니다.
요셉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믿음의 유산은 무엇입니까? 창15:13-14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4대째인 요셉은 믿었던 것입니다. ‘네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는 말씀을 요셉은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날 것을 명했던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요셉이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는 자기의 동족들에게 고통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백년동안 네자손을 괴롭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사후에 그의 후손이 시온의 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창50:24-25절의 말씀은 실제로 요셉이 임종시에 남긴 말씀입니다. “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
여기 25절에 ‘정녕’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 자기 후손들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애급에 머물지 말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선택을 위해서는 언제나 약속의 말씀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100세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때 그의 믿음은 롬4:21에 보면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전광목사님이 쓴 「성경이 만든사람」이란 책자에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잘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의 이야기입니다. 전광씨가 ‘존 워너메이커’를 알기 위하여 미국 필라델피아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시청앞에 우뚝서 있는 워너메이커의 동상을 보면서 감격과 기쁨을 지금도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전광목사님은 ‘워너메이커’의 인생을 조사한 결과 ‘믿음의 영적거인’이라고 했습니다.
존 워너메이커는 YMCA사역에 65년동안이나 변함없이 헌신하며 세계 곳곳에 YMCA건물을 지은 사람입니다. 1908년 독립운동 요람이었던 서울 YMCA를 지어주었고 지금도 청소년들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67년간 주일학교 교사로서 봉사하고 헌신했던 믿음의 영웅입니다.
그가 51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벤자민 헤리슨이 그에게 나라의 체신부 장관직을 좀 맡아 달라고 제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와나메이커는 정중하게 사양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지금까지 지난 수십 년동안 주일이 되면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왔습니다. 저는 저의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장관직을 맡게 되면 아무래도 주일 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헤리슨 대통령은 그에게 주일이 되면 반드시 교회에 가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했습니다. 그 조건으로 워너메이커는 장관직을 수락을 했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그는 장관직을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일이 되면 그는 반드시 자기가 섬기는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워너메이커는 고백하기를 "나의 본업은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장관직은 나의 부업일 뿐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나의 종신직입니다. 장관직은 임시직일 뿐입니다."
존 워너메이커가 84세 였을때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답변하기를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권을 구입했어요. 이것이 내 인새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존 워너메이커는 이 귀한 믿음의 유산을 반드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존 워너메이커는 믿음의 거장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2. 요셉은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이웃들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2절)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이 마지막 임종시에 유언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요셉은 임종하면서 민족들을 생각하면서 유언을 했습니다. 요셉이 살아오면서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히 이루심을 믿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보디발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 주었습니다.
형들에게 미움 받아오던 요셉은 17세의 소년 때에 드디어 형들에 의해서 이스마엘 장사꾼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보디발은 애급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으로서 부자이며, 종들이 많았으며, 애급에서 영향을 미쳤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왔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므로, 주인의 사랑과 신임을 받아 집안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가정 총무가 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급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성실하게 일하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였습니다. 창39:3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감옥의 전옥과 죄수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후 요셉의 용모가 매우 준수하여 보디발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 뿌리치고 나갔지만, 뻔뻔스런 보디발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자 오히려 요셉이 자기를 욕보이려 했다고 누명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지만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감옥전체를 관리하며 죄수들을 관리하는 전옥이 옥중에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기었습니다. 요셉은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감옥에까지 복을 끼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이곳에는 왕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만 가두는 곳입니다. 대죄를 지은 사람들만 들어오는 곳인데 사람들이 요셉의 관리를 통해 인간자체가 순환이 되었을 것입니다.
창39:21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애급민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애급의 임금이 꿈을 꾸고 커다란 번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꾼 꿈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의 꿈은 살진 일곱 마리의 좋은 암소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마리의 암소가 살진 일곱 암소를 잡아먹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꿈은 처음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후에 세약하고 마른 일곱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리는 광경이었습니다.
임금은 전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총동원해서 자기가 꾼 꿈의 해몽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임금에게 요셉을 천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로의 부름을 받은 요셉은 즉시 그의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일곱 좋은 암소와 일곱 좋은 이삭은 모두 일곱 해 풍년을 의미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와 세약한 일곱 이삭은 일곱 해 흉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꿈을 두 번 겹쳐서 꾼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속히 실행하시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7년 대흉년을 대비하려면, 7년의 풍년 기간에 모든 곡물의 1/5을 저장해두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임금은 경탄한 나머지 “이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하면서 단번에 요셉을 애급의 총리대신으로 삼았습니다. 엄청난 흉년에도 요셉의 덕분에 애굽에는 미리 저장해 둔 곡식이 풍부하였습니다. 애급민족에게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야곱의 식구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 주었습니다.
흉년은 가나안 땅에 살았던 야곱의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의 열 아들들은 드디어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들이 팔았던 동생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복수할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에게 권력을 주었을 때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복수 할 수 있었지만 창50: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형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원수까지도 사랑했으며, 축복을 공유하는 요셉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까운 인간관계 속에서 때때로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서 살 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게 될 때 세 가지 중 한가지의 반응을 하게됩니다.
첫째는 보복하고자 하는 반응입니다.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은 내가 당한 만큼 그 사람도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고통만큼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변론하고자 하는 반응입니다. 상대방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면 우리는 먼저 나의 말을 잘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변론합니다. 그리고는 험담을 합니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변론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편을 갈라 놓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인간관계를 반목(서로 미워함)과 대립 상황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셋째는 초월하고자 하는 반응입니다. 상처를 받게 될 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싸우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의 아픈 마음을 기도로 아뢰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초월하는 반응은 예수님반응이며, 요셉의 반응이며, 스데반이 보였던 반응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서 상대방을 용서해 주는 초월하는 반응을 연습하면서 살아가도록 합시다.
요셉은 믿음으로 보디발 가정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입니다. 감옥에서 죄수들에게도 축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입니다. 애급나라가 흉년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흉년을 만나 배고파하는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필요와 축복을 나누어 주었던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요셉이 마지막 유언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보다는 백성들인 공동체를 생각하며 유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삶을 알지만 요셉이 죽은 후에 그곳에 남아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은 부귀와 영화를 다 빼앗기고 노예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이 무너지고 그들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살았으며 복을 끼친 사람입니다. 떠나라할 때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일도 공동체의 목표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9:3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다’고 하면서 자신보다는 백성들의 구원을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출32:32에 보면 ‘그러나 합의 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면서 백성들과 함께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보다는 이웃과 단체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하며 섬겼던 것입니다. 전체 유익을 위하여 희생하며 헌신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앙인 ‘무교회’를 주장했던 내촌감삼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너무 좁습니다. 넓힙시다. 남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이타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좁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민족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이것도 좁습니다. 넓혀야 합니다. 내 민족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민족과 민족사이의 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지 않습니까? 민족들이 함께 사는 삶의 터전인 이 지구상의 인류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휴머니스트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도 좁습니다. 더 넓혀야 합니다.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 그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내촌감삼의 비전은 ‘나는 일본을 위하여, 일본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입니다.
3. 요셉은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임종 후에도 증거 하였습니다. (22절)
“ 믿음으로 요셉은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그는 그의 장례행렬까지도 그의 믿음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애급이 아닌 가나안에 자기를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입니다. 요셉은 그들의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 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때 꼭 자기의 유골도 가지고 가서 그 땅에 묻어 줄 것을 유언했습니다.
요셉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애굽의 총리였습니다. 그가 지혜롭게, 덕스럽게 통치를 잘 해서 애굽 사람들은 7년의 대 흉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자기가 죽을 때에 얼마든지 이렇게 명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내 무덤을 피라미드처럼 크게 만들어라. 그리고 나의 공적을 기리는 큰 기념비를 내 무덤 앞에 세워라." 고도 할수 있습니다.
조선왕들은 임종후 능을 만드는데 5개월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풍수지리를 보고 결정하는데 다른 사람의 묘가 있으면 옯겨야 합니다. 중국의 진시왕 무덤에는 지하3-5층에 많은 벽화, 새왈도구(절구,맷돌, 솥,그릇...)가 1500여점, 배추김치(백김치), 음식물(고기, 생선...400여점)무기, 중앙에 시신14구, 호위상(지키는조각)3000여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애급에 스핑크스와 피라밋이 있는데 제일 큰것은 쿠푸왕 피랏밋이라고 합니다.(두번째:카프레왕) 짓기 위하여 10만명이 3개월마다 교대하여 20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합니다.
요셉은 이곳에서 장례식을 치루었다면 지금도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질만한 큰 피라밋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이 있는, 믿음의 부모들과, 조부들이 있는,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였습니다. 묘가 초라하고 형편없지만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할 때에, 자기의 해골을 메고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서 올라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는 부귀와 영화의 땅, 애굽을 그의 소망으로 삼지 않고, 약속의 땅을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수십 년 동안 애급의 총리대신으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이스라엘에게 남기기 보다는 애급에 남기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음의 영웅이어었습니다. 그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었습니다. 애급의 총리가 된것도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었습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외국인 애급에 와서 살았지만 마음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국을 사모하며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땅에 영원히 묻히기 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그의 부친 야곱과 마찬가지로 이 땅의 부귀영화보다 하늘나라의 복락을 간절히 사모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장례행렬을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애급의 총리가 장례식할 때 애급에 위정자들뿐만 아니라 애급 왕까지 나와서 장례행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애급백성들이 70일동안 애곡했다고 했습니다. 애급에 최고로 좋은 곳에 왕의 능 이상으로 장지를 꾸몄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장 한다고 하여도 애급에 장지만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작은 땅인 가나안땅에 묻인다 하여도 애급만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신을 믿음의 조상들 곁에 묻어달라는 것입니다. 임종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 이스라엘로 갈 때에 시신을 이장해달라는 것은 애급 모든 사람들에게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요셉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임종시에 선산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선대가 있는 곳,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있는 곳에 함께 묻히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믿음의 영웅인 대열에 함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부모들이 가는 곳에 함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죽을 때 이런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고 평상시에도 주님을 증거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해석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창41:16에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도 이는 내게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라” 요셉은 살아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증거했고, 죽어서도 장례행렬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애급사람들에게 가나안에 땅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꿈을 해석하여 애급백성들이 7년동안 흉년때 능히 구원해 주신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속에 신앙을 고백하지 않고 신앙인답게 살아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나의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외국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상사가 여러분들이 교회 다닌 것을 몰랐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예수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우리도 공적인 장소에서 주님을 시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공적으로 표현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10:32-33)
우리가 우리의 공적인 삶의 자리에서 “예수는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할 때 세상은 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이 세상은 마귀의 소굴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능히 이루는 요셉의 믿음을 통하여 첫째로 요셉은 능히 이루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며 둘째로 요셉은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이웃들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셋째로 요셉은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임종 후에도 증거 하였습니다.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이웃과 세계에 기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라며 임종 후에도 믿음을 전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