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금요일 강론>(2023. 10. 13. 금)(루카 11,15-26)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과 베엘제불』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루카 11,14-16).”
마귀는 사람의 힘으로는 쫓아낼 수 없고,
‘하느님의 힘’으로만 쫓아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비방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안 믿는 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비방하는 자들을 향해서
대단히 엄중하게 경고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마르 3,28-30).”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은,
예수님이 마귀들과 같은 편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마귀 들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이라고 단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말과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고,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것은 그냥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을 뜻할 뿐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부정하는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향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하느님의 사랑’은 누가 실행하든지 간에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선’은 어떤 상황에서도,
또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선’입니다.
하느님 나라, 구원, 생명, 평화, 안식, 기쁨......
그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들 중에는 ‘선’을 ‘악’이라고, ‘악’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각하게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자들은 누가 보아도 ‘선’인데 ‘악’이라고 주장하고,
또 누가 보아도 ‘악’인데도 ‘선’이라고 주장합니다.
종교계에도 있고, 정치계에도 있습니다.
그자들이 그런 주장들을 현수막 같은 것에 적어서 길거리에
걸어놓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습을 요즘에 자주 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일 텐데,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지만, 정말로 그자들은 용서받을 길이 없을까?
회개해도 소용이 없을까?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부정하는 자들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용서받기를 거부해서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신앙인들은 그런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교회가 하는 일을 ‘악’이라고 비방할 때, 같은 방식으로 맞서
싸워야만 하는가? 아니면 “너희는 멸망을 당할 것이다.” 라고
위협하듯이 선언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저것들은 언젠가는 모두 망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물러나야 하는가?
침묵을 지키면서 참고 견뎌야 하는가?
베드로 사도의 다음 말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1-12).”
바오로 사도의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라는 말도 좋은 권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의 힘’이 악한 인간들의 ‘악의 힘’보다
강하다는 신념을 굳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증오심은 사랑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신앙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기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