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 잠깐만요?"
"지금 내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러니 장사를 지낸 후에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죽은자들로 장사케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정말 이 사람 자기의 부모를 장사지내고 주님을 따랐을까요? 정말로 그 사람의 부모가 죽었다고 하면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생활에 익숙한 "바바라 보우웬" 학자는 이 본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말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변명에 지나지 않으며 이 나라에서는 이런식의 변명이 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이의 아버지는 건강하게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그는 예수님을 좇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당시 관례대로 "좇을 수 없어요, 제 아버님이 돌아 가셨거든요, 가서 제가 장사를 지내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내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은 핑계였습니다.
주님을 알아온 년 수가 많으면 많은 만큼 그 믿음의 지경이 넓어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지져야 합니다. 이는 말씀을 생각하는 것과 사람을 생각하는 면에서 타인위주의 생각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지경이 점점 넓어집니다.
기도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지도의 지경은 자기만을 위해 하던 기도에서, 교회로, 순원들로 그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때론 중보기도자로 나서기도 합니다. 이 민족과 이 땅을 위해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봉사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을 돕는 봉사가 있습니다. 자신이 드러나는 일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세워주는 보조적인 봉사가 있습니다. 모두가 유익을 얻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끝나고 청소를 해 주는 것, 예배를 위해 아이를 봐 주는 것 모든 것이 봉사의 영역입니다.
순종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헌신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혹 핑계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은 허탄한 말을 피하라고 합니다. 허탄한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颱毬ご篤“獨? 멀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허탄한 말의 문제는 그 말이 계속적으로 사용되어짐으로 인해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 더 심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이유도 주님을 만나는 일을 소흘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믿음의 지경을 넓히는 일에 힘을 써도 부족한데.. 핑계의 지경을 넓히는 일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평생을 주님께 헌신하고 살아도 부족함니다. 하루 하루가 헛되이 보낼 그런 날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추신: 다음 주일은 오전 9시에 본 예배가 있습니다. 11시 예배가 없습니다. 그리고 천남초교에서 전교인 체육대회를 합니다. 모두 기쁨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복장은 편한 복장으로 오셔도 되겠습니다. 혹 이 일을 핑계삼아 빠지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