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2 사춘기에 자연의 향기를 풍기는 속초를 다녀와서
지난 8일 오전 집에서 출발하여 설 연휴 기간에 가족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속초를 다녀왔다. 경춘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IC를 경유하여 인제를 지나 미시령을 넘어 목적하던 속초에 닿았다.
지인의 초대로 얻은 모 공사 연수원인 숙소에 여장을 풀고는 4층 창밖을 내다보았다. 계절의 문을 열어준다는 설악산의 끝 줄기가 흰 옷을 입고는 아름다운 자태로 우리를 맞았다.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잘 도착하였다고 알린 뒤, 아들 녀석이 계획한 일정대로 우리는 실향민들의 아픔이 녹아있는 청호동 아바이 마을을 찾아갔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약 10분 정도 가니 중앙시장이 나타나고 무동력으로 가는 갯배를 체험할 수가 있었다. 갯배는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 청호동과 시내를 연결하던 역할을 하며 실향민들의 아픈 세월을 함께 지켜 온 역사 그 자체였다. 양쪽을 연결한 줄을 쇠고리로 잡아 당겨 움직이는 국내 유일한 무동력선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청호동에 내려 주었다. 한사람 당 200원을 내고나니 듣기만 했던 아바이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전체를 보기 위해 우리는 계단을 밟고 설악대교 진입로로 올라갔다. 북한 함경도 사람들이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왔다가 고향에 가지 못하고 그대로 정착한 아픔을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우리는 비로소 시장기를 느끼고 모 영화를 촬영했다는 000순대국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명태 식혜까지 곁들여 나온 모듬 순대 한 접시와 순대국 두 그릇으로 우리는 너무도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식당 앞에 선 딸과 아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는 아까부터 내 눈길을 끈 초상화 그리는 화가를 찾아갔다. 투명 비닐 공간 안에 자리를 잡고는 내 얼굴의 캐리커쳐를 부탁했다. 왜 이 동네에 고양이들이 그렇게 많은지 사연을 들으면서 30분 후 나온 작품은 너무 젊고 나보다 훨씬 잘 생긴 동안이었다. 누가 봐도 나라고 하긴 어려웠다. 만원을 지불하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나왔다. 다시 갯배를 타고는 주차장으로 가 차를 몰아 숙소로 돌아왔다.
지하에 있는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는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었다.
늦은 시간에 라면으로 저녁을 먹고는 고속터미날에서 막차를 타고 온 아내를 마중하러 조양동으로 갔다. 차창 틈으로 계속 찬바람이 들어와 고생했다는 아내는 몸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숙소에서 우리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이튿날 아내는 그래도 일출 광경은 꼭 봐야한다며 나의 뒤를 따랐다. 목감기가 걸린 딸을 뒤로 하고 우리는 동명항의 끝자락, 날카로운 암벽 사이로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신비한 거문고의 울음 소리를 내었다는 영금정 정자 전망대를 향했다. 일곱 시 전인데 몇몇 분들이 이미 올라와 있었고, 차가운 날씨는 잔뜩 웅크린 우리들에게 일출 장면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10분 쯤 지났을까 가까운 곳에 우뚝 선 바위로 몰려와 때리던 물살 저 너머로 붉은 기운이 번져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로 그 순간을 찍느라 바빴다. 나도 아내와 아들을 담던 카메라를 돌려 계사년을 밝히는 둥근 해를 찾았다. 너무나 찬란한 해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오르는 속도를 더했다.
세 컷을 찍었는데 이미 해는 물 위로 올라 왔고, 아내는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환하게 불을 킨 동명항 활어 판매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곤 살아 있는 문어 한 마리를 흥정 끝에 2만원을 주고 샀다며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다. 그것이 밥과 함께 우리들의 아침이었다.
힘이 솟는다는 문어를 맛있게 먹었으나, 아내는 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곤 우리에게 일정대로 설악산에 다녀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나는 자녀들과 함께 발해역사관과 속초시립 박물관을 거쳐, 학사평 순두부촌과 척산 족욕공원을 지나 설악산 국립공원을 향했다. 공원 앞을 지키고 있는 곰 앞에서 사진을 찍고는 빨리 다녀와야만 한다는 생각에 지상 670M의 높이를 단 5분 만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탔다. 천연보호구역 설악의 수려한 산세를 한눈에 보며 권금성과 안락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내렸다. 전망대에서 내설악과 동설악을 지켜보는데, 박새를 닮은 작은 새 한 마리가 먹이를 주는 사람 가까이 다가와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고려시대 권씨와 김씨 두 장사가 난을 당하자 가족들을 산으로 피신시키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하룻밤 만에 쌓았다고 하는 권금성을 오르기로 했다. 눈이 많이 녹았지만 군데군데 얼어 아직도 미끄러웠다. 네발로 올라오라는 친절한 노인의 안내를 받으며 10년 만에 찾은 바위를 더듬어 올랐다.
우리는 권금성에서 주봉인 대청봉(1,708M)은 외경을 하며 천연기념물 171호이며, 강원도 인제군, 양양군, 속초시에 걸쳐 넓게 펼쳐있는 1년 중 5~6개월 동안 눈이 덮혀 있어 붙여진 설악산에 자태와 위용에 매료되었다. 카메라에 그 순간을 담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신라시대에 세운 신흥사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반세기 동안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족의 비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조성한 통일대불 청동좌상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계속 들어가자 스님들이 수도하며 출입을 막은 곳에서 석교를 건너 돌아 나왔다.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의 관광호텔 옆에서 감기 몸살 약을 구입하고는 급히 숙소로 차머리를 돌렸다.
숙소에 있던 아내는 다행히 몸을 추스르고 아이들에게 자연산 회라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중앙시장을 가자고 했다. 소화도 잘 되지 않아 미역국에 밥을 넣고 끓인 것을 먹는 아내 앞에서 우리는 콜라와 사이다로 건배를 하며 귀하다는 청어회 까지 맛있게 먹었다. 지인들이 부탁했다는 00 닭강정을 사서는 숙소로 돌아왔다.
예약한 노래방에서 아이들과 생전 처음 같이 노래를 불렀다. 녀석들은 아버지의 흘러간 노래가 신기한 듯 들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나또한 생경했다. 10시 경 숙소로 올라가니 아내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내일 새벽에 다함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속초 8경은 한군데도 다녀오지 못했지만 거기서 여행의 일정을 마쳐야 했다. 잠을 청했다.
새벽 3시에 우리는 미시령을 넘어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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