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 김정화
우거진 잡목 사이로 낮은 가옥들이 보인다. 머리 위로 고가다리가 놓였고, 산자락에는 소담한 논밭이 늘어졌으며, 굽은 실개천이 내림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마을 뒤쪽으로 달음산 고개가 있어서인지 드문드문 등산객이 산길로 향한다.
어렵게 찾은 길이다. 한때 지옥마을이라 불렸던 비운의 땅, 강제징용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오지 마을, ‘꽃 피는 광산마을’이라는 팻말이 떡하니 마을 어귀를 밝히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찬바람 부는 들길 가장자리와 깨밭 이랑에도 섬섬하게 취꽃 군락이 일렁인다.
옛집들이 그대로다. 지붕 밑에 지붕을 덧댄 일명 눈썹처마를 단 가옥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다. 산언덕 가장자리와 비탈진 땅에 옹벽을 쌓아 올린 집들이라 다랑논처럼 층층이 지붕이 내려앉았다. 마치 의도적으로 서열을 나뉘어 배치한 듯 일본인 고위직의 사택이 가장 높은 곳에 지어졌고 그 아래 일본 간부들 집이 남았으며, 한국 노역자들의 가옥은 더 낮게 더 작게 담을 붙여 놓았다. 좁은 앞마당 사이로 빼꼼히 열어놓은 방 안이 훤히 보인다. 그래서인지 반듯하게 신축된 마을회관이 오래된 담장 사이에 어정쩡히 끼어 있는 것만 같아 되레 낯설다. 광산촌 입구와 주변 산사 길목에 백여 가구가 빽빽이 거주하며 번성하였던 적도 있었다지만,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되어 버렸다.
골목길을 휘돌아 나오는데 공터 한쪽 평상에 호호백발의 할머니 서너 분이 모여 있다. 짐작대로 모두 광부의 미망인이라 했다. 옛일을 물었으나 가물가물한 기억에 애매한 답만 오간다. 현재 남은 마흔여 명의 주민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들어왔거나 해방 이후부터 거주한 까닭에 슬픈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물다. 오히려 광산의 전성기를 경험한 광부 부인들은 돈벌이가 잘되었던 시절을 기억하며 이곳을 황금의 땅으로 인식한다. 월급날이면 광산마을 장정들이야말로 읍내 술집에서 기마이 좋기로 소문났으니, 그 추어올림에 힘든 시간도 고단한 작업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갱도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일반인은 출입 금지가 되었다. 멀리 푸른 철조망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그 속으로 시커먼 지옥도 같은 굴이 펼쳐졌을 테고,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갈수록 순식간에 생사가 갈라지는 사투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광부가 되는가. 물론 식민통치 때는 억울하게 광부가 되었으나, 세상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들이 스스로 광부가 되었을 때도 있었다. 땅 위의 세상에서 더는 희망이 없을 때,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독기를 품고 시커먼 굴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서 광부들이 일하는 곳을 막장이라고 부른다. 갱도의 맨 끝,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 앞이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공간, 인생의 절망보다도 더 캄캄한 세상, 긴장을 놓쳐버리면 목숨줄이 끊어지는 곳, 어쩌면 그곳이 세상의 끝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니 광산촌 사람들에게 금기어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오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도 막장이다. 누군들 막장까지 내려갔던 삶이 없었을까. 내가 아는 박 부장도 딱 삼 년간 광부로 살았다. 그가 하던 사업이 무너졌고 통장의 잔고는 바닥이 났으며 집은 일찌감치 은행으로 넘어갔다. 끝까지 함께한 네댓 직원들의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발목을 잡았다. 전세금을 찾았고 부인의 반지를 빼냈으며 두 딸의 피아노가 트럭에 실려 나갔다. 막장에서도 양심마저 버리지 않던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진짜 막장 바닥이었다. 그는 검은 막장에서 검은 울음을 토하면서 견뎌내었고 기약했던 광부 생활을 마치고 목숨 같은 임금을 쥐고서 당당히 가족을 상봉했다. 지옥인 굴속에서 채탄 광부로 일한 그 종잣돈으로 지금 그는 아내와 함께 조그만 식당을 꾸려가고 있다.
창작의 고통을 안은 산실을 두고도 작가들은 저마다의 은유로써 이름을 붙여왔다.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서재를 막장이란 말로 표현했다. 어찌 가만히 책상에 앉아 글 쓰는 일을 가지고 목숨이 달린 갱도의 막장과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막장의 굴을 파듯 생사를 걸고 한 땀 한 땀 글 삽을 파는 글쟁이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막장에서 광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두 가지뿐이라고 한다.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만약 멈추기를 선택했다면 내려왔던 길을 따라 지상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단단한 벽을 파내어야 할 것이다. 갱도를 개척하려는 의지를 갖고 곡괭이를 들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딘들 막장 아닌 곳이 있으랴.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지는 즈음, 광산 갱도로 들어가 중석을 작업하여 먹고 살았다는 광부 미망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옥수수를 한솥 쪄오고 어떤 이는 콩나물 국수를 삶아왔다. 훈훈해지는 인정에 광산마을 노인들은 저세상으로 떠난 광부 남편 이야기도 웃으며 한다. 바깥양반이 쇠와 돌을 지고 십 킬로미터까지 내려가서 작업했다고, 장정들이 무거운 광석을 지고 오면 여자들은 물에 걸러 서울 제련소로 보냈다고도 하고, 저 아랫골에 사는 광부는 굴속에 빠져 죽었다는데, 그 양반만 죽은 것이 아니고 그전에는 셀 수도 없었다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래도 그 굴 막장이 자기네들의 밥줄이 되어주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후루룩 국수를 삼킨다. 평상 앞에 덩그러니 남은 동네 우물만이 당시의 진실을 알고 있을 터.
멀리 광부들이 다녔던 길을 올려다본다. 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렸던 고행의 길. 그 길에도 계절마다 꽃이 핀다. 어디 흙 위에서 피는 꽃만 꽃이던가. 붉은 녹물 내리던 실개천도 이제 흰 물꽃이 흐르고 달음산 능선 위로는 노을 꽃이 물들며 손 흔들어주는 늙은 광부 아내의 머리에는 서리꽃이 피었다.
마을을 벗어나는 비포장길을 달리는데 이리저리 차가 흔들린다. 아니, 막장까지 무너졌던 한 여자의 옛 기억이 스멀스멀 돋다가 골바람 따라 이지러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