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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청송
<東明>八年辛卯,春正月,丁亥,宴群臣於<朝陽殿>,上謂<烏伊>曰“<北沃沮><靺鞨>越<河>入寇,<河>上之民歲受其侵矣.宜将兵掃窟,使民無苦.”<烏伊>曰“<黑水>之<鞨>連亘数千里,以漁獵寇盜為生,本無定居,掃窟甚難.一時散之終復来寇如蝇如蚊.”上曰“屠其王庭,而移民屯戌沿界,立亭以報其霣.” 上如<高娄>太子宮,以東宮大夫<桂媛>為夫人,賜翟服年穀.
<동명>8년신묘{BCE30}, 춘정월 정해일에 군신들에게 <조양전朝陽殿>에서 연회를 베푸시고, 상께서 <오이>에게 말씀하시어 이르시길 “<북옥저>땅의 <말갈>들이 <하河{현금嫩河西南方西遼河?}>를 건너 들어와서 노략질하여, <하>상{현금西遼河北邊・周邊?}의 백성들이 해마다 그들의 침략을 받고 있소이다. 마땅히 병력을 이끌고 가서 소굴들을 쓸어내서 백성들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하여야하겠소이다.”라 하셨더니, <오이>가 아뢰길 “<흑수黑水{或,嫩河東側愛琿隣近黑龍江?}>땅 <말갈>들은 수 천리에 널려있으며,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하고 약탈하거나 훔치기를 생업生業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시 눌러앉아 살지를 않아서 잠시 흩어졌다가 종당엔 돌아와서 노략하는 것이 파리 떼와 같고 모기떼와도 같습니다.”라 하였다{'黑水末曷'을 상세히 아는 것으로 보아서 '烏伊'의 出身地는 혹시 黑龍江近隣 '烏伊河'流域?}.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그들의 왕정王庭을 도륙하고, 백성들을 옮겨놓고서 경계를 연하여서 둔{陣地}을 쳐서 지키게 하고, 초소를 세워서 그들이 몰려오면 알리게 하시오.”라 하셨다. 상께서 <고루高婁>태자의 궁으로 가셔서 「동궁대부東宮大夫」<계원桂媛>을 부인夫人으로 삼으시고 적복翟服과 년곡年穀을 하사하셨다.
二月,<禾>天妃生<香>公主. 以<漢素>子<漢鳳>為<河濱>「太守」,<鄭共>子<鄭誾>為<荇南>太守,<桂長>為<馬山>太守,<桓克>為<平山>太守,<于蜆>為<黃山>太守,<尙弼>為<泥河>太守,<再思>子<克禮>為<豊城>太守,<武骨>子<仲室玩>為<毛屯>太守,<黙居>子<穆淸>為<淹淲>太守,<乙昌>為<牛壤>太守,秩六品.
2월, <화禾>천비가 <향香>공주를 낳았다. <한소>의 아들 <한봉漢鳳>을 <하빈河濱{潮白河中下流沿邊平原}>「태수太守」로, <정공>의 아들 <정은鄭誾>을 <행남>태수로, <계장桂長>을 <마산馬山{旧勾茶地?}>태수로, <환극桓克>을 <평산平山{旧勾茶地?}>태수로, <우현于蜆>을 <황산黃山{旧勾茶地?}>태수로, <상필尙弼>을 <니하泥河{旧勾茶地?}>태수로, <재사>의 아들 <극례克禮>를 <풍성豊城{旧勾茶地?}>태수로, <무골>의 아들 <중실완仲室玩>을 <모둔>태수로, <묵거>의 아들 <목청穆淸>을 <엄표淹淲{灤河中下流境支流豹河? 或云瀑河・曝河・濕河}>태수로, <을창乙昌>을 <우양>태수로 삼았다. 질품秩品{官等}은 6품이었다.
三月,<旒>太后生皇子<乙豆容>. <萱>皇后以養蚕絲織帛以為帝衣,國蚕自此始,賜蚕人織人等羊豕有差. <萱>太子加元服于<鳳鳴殿>,以<烏伊>妻<大禾>氏為東宮大夫.
四月,上與<桂孟子>如<獸林>「溫宮」. <肅愼>王<乾朕>,遣使来献金人‧宝촉以謝前過,請與相婚.辞以無女. <祖駿>與<祖雲>相爭,<駿>殺其<雲>而取其財,<蘭>氏請誅<祖駿>,命下<質陽>獄.不待評而誅,以其財沒為<霓姬宮>所屬.
3월, <류>태후가 황자 <을두용乙豆容>을 낳았다. <훤>황후가 누에를 치고 견사絹絲로 비단帛을 직조하여 제의 옷을 만들었더니. 나라의 잠업이 이로써 비롯되었음이어, 잠인蠶人과 직인織人 등에게 양과 돼지를 차등을 두어서 하사하셨다. <훤>태자에게 <봉명전鳳鳴殿{在卒本國沸流谷西城}>에서 원복元服을 입히시고{成年儀禮를 치러 주시고} <오이>의 처 <대화大禾>씨를 동궁대부로 삼으셨다.
4월, 상께서 <계맹자>와 더불어 <수림獸林> 온궁溫宮으로 가셨다. <숙신>왕 <건짐乾朕>이 사신을 보내서 금인金人像과 보촉{귀하게 만든 화살촉}을 바치면서 이전의 과오{荇人征伐時에 北羯과 함께 荇人의 子午谷으로 와서 荇人을 도운 것?}를 사죄하였고, 서로 간에 혼인하길 청하였더니{☞征伐回避!}, 딸이 없다고 하시며 물리치셨다. <조준祖駿{荇人國,祖天3子}>이 <조운祖雲{祖天長子,荇泉侯}>과 서로 다투더니 <조준>이 <조운>을 죽이고 그의 재물을 취하였다. 이에 <란蘭>씨가 <조준>을 주살하여 주시길 청하기에, 명을 내리시어 <질양質陽{呼和浩特大靑山東南方}>의 옥에 가두시어 「평자評者」의 심리를 거치지 않고 주살하셨으며, 그의 재물을 몰수하시어 <예희궁霓姬宮>에 속하게 하셨다{☞親族을 죽이고 財物을 취하였으니, 國法에 따라 評者의 審理를 거치지 않고 誅殺한 것임}.
五月,鍊兵三万於<河>上,<荇人>‧<黃龍>‧<勾茶>‧<卒本>‧<桓那>‧<沸流>‧<順奴>‧<沃沮><曷>‧<樂浪>人皆来犒軍.以壯其観,<卑离>‧<梁貊>聞之膽寒.上不見<桂>后騎馬之狀而痛哭,諸臣慰之不得.「皀衣」<庚七>奏曰“天子不哭于夫人,臣恐隣國笑之.”上怒欲斬之,<桓柏>諫曰“恐傷后靈,請止之.”上乃觧賜<七>金百両. <梁貊囯><沙頭部>酋長<許信>․<五里部><陌克>加<南部>酋長<烏陳>․<月伊部>酋長<金忍>等入朝,皆賜妻一人․馬二匹․練絹十匹厚待而送之. <黃龍囯><宝得>以病呻吟年餘不食而死.其子皆幼.上命<于仁>代之妻以<桓英>.
5월, <하河{潮河}>상{위쪽, 주변, 상류}에서 3만병을 훈련하시매, <행인>・<구다>・<졸본>・<환나>・<비류>・<순노>・<옥저><말갈>・<락랑> 사람들 모두가 찾아와서 군사들을 먹였더니, 그 모습이 장관壯觀이었고, <비리卑离{上都河西便地境?}>와 <양맥梁貊{上都河東便地境?}>은 이를 듣고 간담이 서늘하였다. 상께서 <계>후가 말을 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통곡하시매 모든 신하들이 위로할 뿐 어쩌지는 못하기에, 「조의皁衣」<경칠庚七>이 “천자天子는 부인夫人의 일로 울지 않습니다. 신은 인접한 나라들이 비웃을까 두렵습니다.”라고 상주하였더니, 상께서 진노하여 그를 베려 하셨다. 이에 <환백桓柏{桓淑所生慕漱帝子}>이 간하길 “후后의 영령을 해하실까 두렵사옵니다. 청하오니, 그만하십시오.”라 아뢰었더니, 상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경칠>에게 금 백냥을 하사하셨다. <양맥국梁貊國>의 <사두부沙頭部>추장 <허신許信>이 <오리부五里部>추장 <맥극陌克>이 <남부南部>추장 <오진烏陳> 및 <월이부月伊部>의 <금인金忍> 등과 가세加勢하여 입조했기에, 모두에게 처妻 한 사람과 말 두 필 및 명주 열 필씩을 하사하고 후대하여 돌려보내셨다. <황룡국>의 <보득>이 병으로 신음하길 1년여에 먹질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이 어린지라, 상께서 <우인>에게 명하여 「황룡왕」을 대신하게 하시고 <환영>을 처로 삼아주셨다.
七月,上,與<桂孟子>如<汗南>,泛舟於湖上而宴<桂>‧<桓>‧<乙>‧<延>‧<仇>‧<于>之族,上醉落湖中,<孟子>抱拯之以其处為抱拯,岩居人歌之曰;
“瓠江月落玉竜飛, 桂子初香両頰緋, 抱落春風死不敀.
母牛赴急疾如翬, 滿湖風靜下船幃, 無限春風玉女肥.”
時,上愛<于仁>妻<桓英>,相戱落水故,其歌如是.道是有可還無可,誰知天子固非非.盖其<絯花詞>也.
7월, 상께서 <계맹자>와 함께 <한남{桑干河中下流東流處南方}>으로 가셔서 호수{昨今北京南方三角淀・白洋淀間地境? 昨今北京西南邊崇靑水庫・念坛水庫地境? 胡盧湖=弧盧湖?}에 배를 띄우고 <계桂>・<환桓>・<을乙>・<연延>・<구仇>・<우于>씨족들에게 연회를 베푸시다가, 상께서 취하여 호수 물에 빠지셨더니, <계맹자{桂后姊}>가 품에 안아서 건져 올리고서 그 곳을 포증抱拯(안아서 건져낸 곳)이라 하였음에, 암자에 거처하던 이가 노래하길;
“호강瓠江(弧盧河?)에 달月이 떨어지매,
옥룡玉龍{추모)이 날아들어, 계수나무{환영} 첫 향기에 양 볼이 붉어지더니,
품에 안고 춘풍春風으로 떨어져서 잠잠하여 돌아오지 않음에,
어미 소{계맹자}가 달려와 살피기 나르듯 빨랐더니,
호수에 가득했던 바람은 조용해지고 배의 휘장 내려앉아서,
가없는 춘풍에 옥녀玉女{환영}가 넉넉하구나.”
라 하였다. 이때, 상께서 <우인>의 처 <환영{계맹자소생}>을 어여삐 여기시어 서로를 희락하다가 물에 빠지셨었고, 그랬던 까닭에 그를 노래함이 이러하였음이다. 도리로는 분명 {<환영>을 <우인>에게 준 것을} 되돌릴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던 것은, 누구도 천자임을 알고서 마음 편히 시시비비를 할 수 없었음이었더니, 개략 그저 <해화사絯花詞{꽃다발을 묶는 노래?}>를 불렀음이었더라.
八月,<孟子>生皇子<蒜>公,以<仇都>妻<乙斾>氏為乳母. <卑离>王<簠>公,遣其子<素奴>来献美女五人․明珠十顆,請會於<東池>.<紫蒙>王<廣>公亦遣子<西川>来献象牙․白璧․宝帳五事.<簠>公請<廣>公及<胡>王<莫車>故,<莫車>亦遣使来献不老酒請會<東池>,許之.
時,<長安>大雨四十日,大水将至,百姓奔走自乱,<王鳳>亦至,水至而請以船避之.<王商>,以為水不至,鎭其妄動.水果不至,<驁>以是賢<商>,<鳳>疾之為隙.
8월, <계맹자>가 황자 <산蒜>공을 낳았다. <구도>의 처 <을패乙旆>씨로 유모를 삼았다. <비리卑离>왕 <보簠>공이 자신의 아들 <소노素奴>를 보내와서 미녀 다섯과 맑은 구슬 10개를 바치면서 <동지東池>에서 만나길 청하였고, <자몽紫蒙>왕 <광廣>공 또한 아들 <서천西川>을 보내와서 상아와 흰 옥판 및 보배로운 장막 다섯을 바쳤다. <보簠>공{賈達소생慕漱帝子}이 <광廣>공{賈達소생,且鞮侯孫子}과 <호胡{匈奴}>왕 <막거莫車{雕陶莫皋즉復株絫선우}>까지 청하였고, <막거> 또한 사신을 보내와서 불로주不老酒를 바치며 <동지>에서 만나길 청하여서, 이를 허락하셨다.
이즈음 <장안長安{西漢都城}>에서는 큰 비가 40일을 내렸더니, 큰물이 곧 닿을 참이어서 백성들도 분주하여 저절로 어지러웠고, <왕봉王鳳> 또한 다다라서 물이 닿을 것이니 배를 타고 피하자고 청하였으나, <왕상王商>이 물이 닿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의 망동을 막았다. 과연 물이 닿지 않았더니, <유오流驁{西漢成帝}>는 <왕상>을 현명하다 여겼고, <왕봉>은 이것이 흠이 될까 괴로워하였다.
丙辰,上與<胡括>‧<素括>如<卑离><東池>,會<簠>公‧<廣>公‧<莫車>于<東池>.<簠>公妃<舄>氏‧<廣>公妃<慕容>氏‧<莫車><王昭君>與<素括>妃相見池上,<昭君>雖美不如<張>‧<鄭>‧<孟>‧<召>,上謂<胡括>曰“誰謂<漢>家女美於天下乎.天下之美盡於東矣.”<昭君>敀而生女<須卜>居次皃類,盖<昭君>之慕帝深矣.<漱帝>開<東池>而灌民田,後天人無別帝與<莫車>,相會後,<芻>单益近云.<昭君>之生女也,求人蔘‧熊蹯‧松子‧胡桃‧紫貝于上,上命<吉士>求而送之. <涉臣>遣使来献土物.
병진일, 상께서 <호괄胡括{廣公妻李陵女}>・<소괄小括{胡括所生廣公女}>과 더불어 <비리卑离>땅 <동지東池{鄯善市東100여Km之境東湖? 武威市東北50여Km之境東湖? 居延海東湖? 魚海? 達里湖? 다른 곳?}>로 가셔서 <보簠>공{卑离王}과 <광廣>공{紫蒙王} 및 <막거莫車{匈奴單于}>를 <동지東池>에서 만나시매, <보>공비 <작舃>씨와 <광>공비 <모용慕容>씨 및 <막거>의 <왕소군王昭君>도 <소괄>비를 <동지>의 물가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왕소군>이 비록 예쁘긴 하나 <장張>・<정鄭>・<맹孟>・<소召>와 같지는 못하였더니, 상께서 <호괄>에게 이르시길 “누가 <한漢>가의 여인들을 천하의 미색이라 한 것이오? 천하의 미색들은 모두 동쪽 땅에 있었소이다.”라 하셨다. <왕소군>이 혼인하여 딸 <수복須卜>을 낳고서도 둘째 용모부류에 있었던{몸 가꾸기를 소홀히 한?} 것은 대략 <소군>이 제{芻牟帝?}를 사모함이 깊었음이었다. <모수제慕漱帝>께서 <동지東池>를 여시어{물길을 여시어} 백성들의 밭에 물을 대어주셨는데도, 후천後天{後世,後日}사람들은 제{慕漱帝?芻牟帝?}와 <막거{雕陶莫皋=復株絫선우}>를 구별하지 못하였었으나, 서로를 만난 이후에는 <추모>선우單于가 더욱 닮았다고{가깝다고} 하였다. <왕소군>이 딸을 낳더니 {沙漠과 草原에서는 나지 않는} 인삼 및 곰발바닥과 잣 및 호두와 자패紫貝를 상께 구해주시길 부탁하였고, 상께서는 <길사>에게 명하여 구해서 보내주게 하셨다. <섭신涉臣{鮮卑王}>이 사신을 보내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以<桂孟子>為苐三皇后,賜<桂>后舊宮稱曰<孟后宮>.<禾>妃陞為小后,稱<禾后宮>.上春秋方盛,女謁日增,<旒>‧<英>‧<旃>‧<仲>‧<貫>‧<張>‧<召>‧<霓>之外又有<桓英>‧<桂媛>‧<大房暖>,勧稼․閱武之餘或微行民家‧漢館徃徃有私幸,貴賤交流山泽通氣,<召>皇輒諫之,而不聽. <馬山>人<牛篤>来献黃金四百斤.問其何以得之曰“家東有大岩多金,父子七人,破其岩碎得之,藏于山中,而人多欲奪之,末子<小得>曰‘大金,非小民之財也.持則取禍,不如献于聖上,以補治民征伐之用.’諸子皆曰‘善’.於是,臣来献者也.”上曰“汝父子合力而和者孝也.為國献金者忠也.知大財不可有者智也.有此三德,可不賞乎.”命<篤>為「馬山小守」,<尾金>為「﨎江小守」,<楝桶>為「淌水小守」.後,<牛篤>為乳嫗<鄒加>之子,賜姓<鄒>氏,以<小得>為「採金使者」,命採拣國中之金銀銅鐵.<尾金>為「採鹽使者」主鹽山鹽湖.
<계맹자>를 제3황후로 삼고 <계>후의 옛 궁전을 하사하여 <맹후궁孟后宮>이라 부르셨으며, <화>비를 승차시켜 소후小后로 삼고 <화후궁禾后宮>이라 부르셨다. 상께서 춘추春秋가 방성方盛하셔서 배알하는 여인이 나날이 늘어나더니, <류旒>・<영英>・<전旃>・<중仲>・<관貫>・<장張>・<소召>・<예霓> 이외로 또한 <환영桓英>・<계원桂媛>・<대방난大房暖>이 있으셨어도, 농사를 권장하시거나 무예를 검열하시는 틈새에도 혹간 민가民家와 한관漢館으로 미행微行하시고 왕왕 사행私幸하셔서 귀貴한 이와 천賤한 이들이 뒤섞이고 산골 및 물가 사람들과도 기운을 통하시더니, <소>후가 번번이 말려도 듣지 않으셨다. <마산馬山{古北口馬山?}>사람 <우독牛篤>이 찾아와 황금 400근을 바쳤다. 어찌하여 생긴 것이냐를 물으시니 아뢰길 “집 동쪽 큰 바위에 금이 많아서 아비와 아들 일곱이 그 바위를 부수고 캐내서 산속에 숨겼더니 다른 사람들이 탈취하려 함이 잦았습니다. 이에, 막내아들 <소득小得>이 ‘큰 금은 하찮은 백성의 재물이 아니어서 가지고 있으면 화禍를 당할 것이니, 성상께 바쳐서 백성을 다스리고 정벌하는 일에 쓰시게 하는 것만 못하겠소.'라 하였습니다. 이에 모든 아들들이 그리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고, 그래서 신이 찾아와서 바치게 된 것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그대 아비와 아들들이 힘을 모아 화합한 것이야말로 효孝이며, 나라를 위해 금을 바친 것은 충忠이고, 큰 재물을 가져서는 아니 됨을 안 것은 지혜智慧인 것이오. 이런 세 가지의 덕德이 있는데, 상을 아니 줄 수 있겠소!”라 하시고는, 명을 내리셔서 <우독>을 「마산소수馬山小守」로, <미금尾金>을 「쌍강소수雙江{質山原?}小守」로, <연통楝桶>을 「탕수소수淌水{唐河?}小守」로 삼으셨다. 후에 <우독>이 젖 할미 <추가鄒加>의 아들이었더니 <추鄒>씨란 성姓을 하사하셨으며, <소득>을 「채금사자採金使者」로 삼고 명을 내리셔서 나라 안의 금・은・동・철을 캐내서 가리게 하셨으며, <미금>을 「채염사자採鹽使者」로 삼아서 염산鹽山{荇人땅?}과 염호鹽湖{荇人땅?}를 주관하게 하셨다.
九月,上與三天后如「神隧」,行年豊祭,宴父老於東郊,仍幸<真珠陵>鳴咽不能起.<召>皇后曰“<桂>后固賢於妾,身遠矣,不圖.陛下如是其思念,妾若死則陛下不應如是.”上曰“然.”<召>后怒曰“何以薄妾乎.”上曰“汝之此言足以自薄也.豈我薄汝哉.汝為万民之母,當以大量包容,何以區區之事,露其狹量邪.”<召>后知其失言而謝曰“妾果誤矣.夫皇恕之.” 上命主農大加<乙耕>薦國中力農有藝者三十七人為「司農」秩九品,「主民大加」<再思>薦孝子順孫十二人為其「村長」亦秩九品,「大畜大加」<馬黎>薦善牧者為「司畜」秩八品.
9월, 상께서 세 천후天后와 더불어 「신수神隧」로 가셔서 풍년이 들었음을 제사하시고, 동쪽 교외에서 부로들에게 연회를 베푸셨으며, 이어서 <진주릉眞珠陵{桂婁后陵}>으로 거둥하시어 부르짖으시다가 목이 메어 일어서지 못하셨더니, <소>황후가 “<계>후가 분명코 첩보다 현명하였지만 몸이 멀어졌으니, 그만하세요. 폐하께서는 그이를 이처럼 그리워하시지만, 첩이 죽으면 폐하께서는 이처럼 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라 하자, 상께서 “그럴 것이오.”라 하셨고, 이에 <소>후가 발끈하여 “어찌 첩을 박대하십니까?”라 하자, 상께서 이르시길 “그대의 이 언행은 박대를 자초하기에 족하오이다. 어찌 내가 그대를 박대한단 말이오! 그대는 만백성의 어미이시니, 마땅히 큰 도량으로 포용해야 하시거늘, 어찌 매사에 자잘하고 용렬하게 속 좁음을 드러내시오!”라 하셨더니, <소>후는 실언하였음을 깨닫고서 사과하여 아뢰길 “첩이 정말 잘못하였습니다. 부황夫皇, 용서해주세요.”라고 하였더라. 상께서 명을 내리시어 「주농대가」 <을경>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농사를 하며 재주 있는 이들을 천거 받으시어 37인을 질9품 「사농司農」으로 삼으시고, 「주민대가」 <재사>로 하여금 효자순손孝子順孫들을 천거 받으시어 12인을 「촌장村長」으로 삼으셨더니 역시 질9품이었고, 「대축대가」 <마려>로 하여 목축을 잘하는 이들을 천거 받아 질8품 「사축司畜」을 삼으셨다.
上夜夢<桂>后,后曰“春冝夏冝丹花,秋冝蓮花,冬冝黃花.”上覺而不知黃花,召「草人」問之,曰“是草生於岩谷之上,霜雪不能侵故,高士愛之.”上曰“然則可速取来裁于宮中.”<陜父>諫曰“陛下以儉德自守,茅茨土階三等,何以草藝為事.”上曰“吾,以此花,為<桂>后之靈.汝勿多言.”於是,<黃山>人<石縮>採進黃花于<孟后宮>,上愛其香曰“真吾妻之香也.”
상께서 밤에 <계>후 꿈을 꾸셨는데, 후가 아뢰길 “봄과 여름엔 단화丹花{모란꽃}, 가을엔 연화蓮花{연꽃}, 겨울엔 황화黃花{黃菊,黃梅,黃蘭?}.”라 하였더니, 상께서는 깨어나셔서도 황화黃花를 알 수 없어 「초인草人{질10품}」을 불러 황화를 물으셨더니, 답하기를 “그 풀은 바위계곡 꼭대기에서 자라는 것으로 서리와 눈도 그 꽃을 범하지 못하기에 고매한 선비들이 좋아합니다.”라 하였고, 상께서는 “그렇다면, 속히 가져와서 궁중에 심어야겠소.”라 이르셨다. 이에 <협보>가 간하여 아뢰길 “폐하께선 검소하신 덕으로 스스로를 지키시며 흙으로 3단을 쌓고 띠로 지붕을 얹으셨는데, 어찌 풀을 다루는 재주를 일로 삼으시렵니까?”라 하매, 상께서는 “나는 이 꽃을 <계>후의 영령으로 여길 것이네. 그대는 여러 말 하지 말게나.”라 이르셨다. 이에, <황산黃山{東都周邊? 勾茶땅?}>사람 <석축石縮>이 황화黃花를 가져다가 <맹후궁孟后宮>에 바쳤고, 상께서는 그 향내를 아끼시며 “정말 내 처의 냄새로고!”라 이르셨다.
以<漢素>為「主文大加」,選聰俊子弟為<郞徒>,使<馬黎>‧<吉士>‧<都喜>‧<元理>‧<秦章>‧<王忠>等敎以「六禮之學」,以備選用之道.是「庠序」之始. 上謂<摩离>曰“民者囯之本也,無民無囯.囯者王之本,無囯無王.故,王者之治囯也,以善養其民為本.朕,為天子,未嘗不慮于是,而征伐不息,壯丁多立於矢石之下,老弱疾苦於畎畒之間.朕,甚不安兵士須要精銳,而不在於多.自今以後,減軍之額而敀其鄕里,以安百姓之心.”時,上微幸東郊,有一老人罵曰“<朱蒙>,汝,稱為天帝之子而為天子,古之汲水者為大夫,古之屠豕者為士,古之仙人之子為兵卒.汝,豈天帝之子哉.天帝何嘗如是為政哉.”上曰“雖古之汲水者有功則可為大夫,屠豕者有技可為士.仙人之子壯丁則可以為卒而扶國,卒者兵之本而兵者國之力也.仙人自稱國之桂石,其子為國力不亦可乎.然,老人之子,其赴戦,而使老人無依,則我之過也.”乃命還老人子從軍者,命勿選老人子為軍,而仍有是命.
<한소>를 「주문대가」로 삼아서 총명하고 뛰어난 자제들을 뽑아 「랑도郞徒」로 삼고, <마려>・<길사>・<도희>・<조원리>・<진장>・<왕충> 등으로 하여금 「6례지학六禮之學{관‧혼‧상‧제‧음주‧상견}」을 가르치고 그들 중에서 가려 뽑아서 등용하는 방도로 준비하게 하셨더니, 이것이 바로 「상서庠序{학교;周庠殷序}」의 시초였다. 상께서 <마리>에게 이르시길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 없는 나라 없고, 나라는 왕의 근본이니 나라 없는 왕도 없소. 그런 까닭에, 왕을 하는 이들이 나라를 다스림엔 백성들을 잘 양육함이 근본일 진대, 짐은 천자가 되어서도 아직 이를 걱정하지 않은 채로 정벌하길 쉬지 아니하여서, 많은 장정들이 쏟아지는 화살과 돌멩이 아래에 서 있었고 노약한 이들이 도랑과 밭 사이에서 병들고 고생하였소. 짐은 심히 병사들을 불안하게 하였으며, 모름지기 정예가 되어지기나 닦달하면서 살피지 않은 것이 많았었소. 지금 이후로는 군병들의 수를 줄이고 그들을 향리로 돌려보내서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케 할 것이오.”라 하셨다. 이즈음, 상께서 동쪽 교외로 미행을 나가셨더니, 어떤 한 노인이 욕하기를 “<주몽>! 그대는 천제의 아들을 칭하고서 천자가 되더니만, 옛적에 물을 대주던 이를 「대부」로 삼고, 옛적에 돼지를 잡던 이를 「군사」로 만들고 옛 선인仙人의 아들들을 병졸兵卒로 만들었으니, 그대가 어찌 천제의 아들이란 말이오! 천제께서 어찌 일찍이 이런 것들을 정사政事로 삼으셨단 말이오!”라 하기에, 상께서는 “비록 물을 대주던 이라도 공功이 있으면 「대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돼지를 잡던 이도 기예技藝가 있으면 「군사」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선인仙人의 아들도 장정壯丁이 되면 병졸이 되어서 나라를 도울 수 있는 것이오. 병졸은 군사력의 근본이며, 군사력은 나라의 힘인 것이오. 선인들은 스스로 나라의 주춧돌을 칭하면서, 그들의 아들들이 나라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니 되는 것이오? 허나, 노인들의 아들들이 싸움에 달려 나가서 노인들이 의탁할 곳이 없게 하였었으니, 그것은 내 잘못이었소.”라 하시고, 명을 내려 노인의 아들로 종군하는 이들을 돌려보내셨으며, 노인의 아들들을 뽑아다가 군병을 삼지 말라고 명하셨다. 거듭하여 이런 명을 내리신 것이다.
十月,巡行北界而敀,不豫.三天后沐浴齋戒而禱以身代,三后逓夜不眠者七日七夜,薬不奏效.上曰“吾夢見天帝責我侮辱仙人而答我二章.”吉凶何如,命卜之.<陜父>奏曰“夢者,心之所存也.陛下,素惡仙人之亡囯而停其優待.然,古俗不可猝變,且其緣姻皆非下流不可賤之向.以老人之子傷心而必夢此也.夢何嘗有吉凶哉.不必卜之.如有不吉改則吉矣.”三后與<烏伊>等皆云有神兆,而使<王忠>占之得否卦以為匈,命派仙人于名山大川而禱之.<陜父>又諫曰“否者,陰盛陽衰之兆也.陛下多女謁漸多房勞加,而北界風傷以染疾,安得無損哉.當遠色而減後宮,然後庻保聖躬矣.”上謝曰“汝言是矣.吾亦知之.”<黙居>曰“陛下親冒矢石,櫛沐而勞捫足而忍,食不兼味,衣不重裘,自養甚薄,故勞傷在此耳.二三後宮何必减乎.廣嗣之計不冝如是,臣當以薬治之.”上曰“卿言亦好,吾望諸臣皆如陜父耳.”
10월, 북쪽 국경을 순행하고 돌아오셔서, 위중해지셨더니, 세 천후天后들이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겠다고 빌었다. 세 후들이 밤을 번갈아 자지 않은 것이 7일日 7야夜가 되어도, 약들이 효험이 없었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내가 꿈에 천제를 뵈었더니, 내가 선인仙人을 모욕하였다고 책망하시고 두 글귀를 답하셨소.”라 하시고, 길흉吉凶이 어떠한지 점을 쳐보라 명하셨더니, <협보>가 주청하길 “꿈이란 것은 마음속에 있던 것입니다. 폐하께선 평소에 선인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싫어하시어 그들을 우대하던 것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허나, 오래된 습속은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 것이며, 게다가 그에 얽힌 이들은 지체 낮은 부류들이 아니어서 천하게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노인들의 아들들 일로 상심하셨으니 필시 꿈이 그러셨을 것입니다. 꿈에 어찌 길흉이 있겠습니까! 점을 보실 필요는 없음이며, 불길不吉하여 보이는 것도 고치시면 길吉하여 질 것이옵니다.”라 하였다. 세 후들이 <오이> 등과 함께 모두가 신이한 조짐이라 말하고 <왕충>으로 하여금 점을 보게 하여서, 부괘否卦가 나옴에 흉凶한 것으로 여기고 명을 내려 선인들을 명산대천名山大川들로 나눠보내서 빌게 하였다. <협보>가 또 간하여 아뢰길 “부괘否卦는 음기陰氣가 성盛하여 양기陽氣가 쇠衰하는 조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배알하는 여인들이 많으셔서 점점 합환함이 많아지셨기에 피로가 쌓이셨으며, 북쪽 경계의 바람에 상하시어 병이 드신 것이옵니다. 어찌 손상되심이 없으셨겠습니까? 마땅히 색사色事를 멀리하고 후궁들을 줄이신 연후에 옥체에서 독기를 빼고 보양하시면 되실 것이옵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 감사하며 이르시길 “그대 말이 옳소. 나도 그것을 알고는 있음이오.”라 하셨더니, <묵거>가 아뢰길 “폐하께선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셨고,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머리 감으시며{잠시도 쉴 겨를 없이 바삐} 수고하시느라 발을 주무르며 참아내셨으며, 맛있는 것도 드시지 않고 두터운 갓옷도 입지 않으시어 스스로를 돌보시길 심히 야박하게 하셨으니, 피로에 이지러지셔서 이런 일을 당하신 것이옵니다. 하필이면 후궁 두 셋을 감하시다니요? 광사지계廣嗣之計{자식을 많이 두어 후사를 튼튼히 하는 계책}에 온당치 않은 것이옵니다. 신이 약을 써서 낫게 하겠사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경의 말 역시 마땅하오. 내가 바라건대 모든 신하들이 <협보>같았으면{임금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었으면} 하오이다.”라 하셨더라.
十二月,上疾快癒.上,與三后,如「神隧」謝病癒,仍訪<仲室>氏.氏有病而不謁,只撫子女而還. <漢><匡衡>多取封邑四百頃而免為庻人,上曰“<衡>,穿人之壁而讀書,其貪已久矣.安能淡於色而廉於財乎.國家之用人,須盡其財耳,不可以一卵之故棄其将材<衡>之為庻人,亦因猜忌之相殘也.苟有淡於色廉於財而不爭權者,豈肯為帝王用乎.”
12월, 상의 병이 깔끔하게 치유되었더니, 상께서 세 후들과 더불어 「신수神隧{所謂國東神隧; 현금遼河以東의 것이 절대로 아님! 현금 鴨綠江 北邊의 소위 國東大穴이란 것은 이 때 당시 고구리의 강역이 아니었음!}」로 가셔서 병이 쾌유되었음에 감사하시고, 이어서 <중실>씨를 방문하셨다. <중실>씨가 병이 들어 배알하지 않아서, 다만 자녀들을 위무하고 돌아오셨다. <한漢>의 <광형匡衡>이 봉읍封邑을 많이 취하여 400경頃{萬坪 또는 萬 이랑 또는 萬 두둑}이나 되자 면직시켜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광형>은 남의 집 벽을 뚫어서{불빛을 훔쳐서} 책을 읽었으니{‘형설지공’ 즉 빛을 스스로 만들어서 책을 읽지 않았으니}, 그가 탐욕을 부림은 오래된 것이었소. 어찌 능히 여색女色 앞에서 담담하였을 것이며 재물 앞에서 청렴할 수 있었겠소? 나라가 인재를 등용함에는 마땅히 나라의 재물 모두를 들여야 하는 것이거늘, 계란 하나로 불가하다 하여서 장차 재목이 될 <광형>을 버려 서인庶人이 되게 한 것은, 역시 그를 시기하여 서로를 해친 것이었소. 진정 색에 담담하고 재물에 검소하며 권력을 다투지 않을 자였었다면, 어찌 제왕이 등용함을 따랐었겠는가?”라 하셨다.
<東明>九年壬辰,春正月,「檀山公」<觧聰>薨,年六十,<漱帝>苐二子也.性,淸高好潔,不肯推,世與其妻<羊春(福女)>居于<杜訥>之<檀山泽>,養鵞以送餘年.上,累迎之,不肯来.至是,尊為「檀山公」,賜其妃<羊春>年穀如公例.<春>,<于仁>之姑也.<仁>自幼通之,至是為<仁>妻故,<陜父>請停年穀,不聽.上,减饍親吊,以其有女而無子.命<觧晉>太子為其嗣,因其遺命葬于泽畔服閱.宴群臣及外臣於<朝陽殿>.宮殿狹窄,外臣之来朝者皆以為‘太儉,無接待之室.’<烏伊>乃請創建「西都」以振皇威,上曰“創業之初,未暇體皃,今才数年,宮室如是狹小.凡事不可苟且為之者,此也.”其令有司議之.時,都城人口稠密已,無更容敀人之道.「西都」,其地祥瑞累見,而居人傳云天帝之子来都之地,群臣乃請創之. <桂媛>夫人生皇子<高离>,命為<桂婁>之子. 鍊兵十万於<汗濱>.
<동명>9년임진{BCE29}, 춘정월, 「단산공檀山公」<해총觧聰>이 나이 예순에 죽었다. <모수제>의 둘째 아들로, 성품이 사념 없이 고매하며 깔끔하길 좋아하여 천거됨을 따르지 않았고, 평생토록 자신의 처 <양춘羊春(羊福의 딸)>과 함께 <두눌杜訥{黃龍}>땅 <단산택檀山澤{河北省中西部‛唐縣’東北15Km之境?}>에서 거주하면서 거위 기르기로 여생을 보냈다. 상께서, 누차 그를 맞아들이려 하셨으나 들어오질 않았더니, 지금에서야 「단산공」으로 추존하고 그의 비 <양춘>에게는 공公의 예를 따라 년곡年穀을 하사하셨다. <양춘>은 <우인>의 고모{여인}인데, <우인>이 어릴 적부터 그녀와 상통하였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우인>의 처가 되었더니, 이런 까닭에 <협보>가 년곡 하사를 멈추시라고 청하였으나, 듣지 않으신 것이었다. 상께서는 감선하시고 친히 조상하셨으며, 그가 딸은 두었으되 아들이 없었기에, <해진觧晉>태자에게 명하시어 그의 뒤를 잇게 하셨더니 그의 유명을 좇아서 단산택檀山澤 곁에 장사葬事하고 상복喪服을 입고 지내더라. 군신들과 외국의 사신들에게 <조양전{東明神宮즉東都; 卒本東城이 아님}>에서 연회를 베푸셨다. 궁전자리가 비좁았더니, 외국에서 찾아와서 입조한 사신들 모두가 ‘하도 검소하셔서 접대할 궁실도 없다’고 하였었다. 이에 <오이>가 「서도西都」를 새로이 세우시어 황위皇威를 떨치시길 주청하였더니, 상께서는 “창업 초기인지라 체모{체면}를 차릴 겨를이 없었고, 지금 겨우 수년이 되었는데 궁실의 협소함이 이와 같소이다. 모든 일에 구차苟且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이것인가 보오이다.”라 이르시고는, 해당관리에게 명하시어 의론하게 하셨다. 「서도西都」 그 땅에는 상서로움이 누차 나타났었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오는 말에도 ‘천제의 아들이 와서 도읍할 곳’이라 하였었더니, 군신들도 창건하시길 주청하였다. <계원桂媛>부인이 황자 <고리高离>를 낳으매, 명하시어서 <계루桂婁>의 아들로 삼으셨다. <한빈{桑干河邊}>에서 3만 군병을 훈련하셨다.{☞ 또 새로운 지역 征伐意向?!}
二月,命<再思>與<柴吉>定界.以<竹岺>以東為<樂浪>.<奄利水>東岸‧南岸盡入<順奴>,<南沃沮>故地也. 三月,如<平山>,観垦田,勧農,巡視城戌. 四月,<萱>后生<薏>太子,而<召>后亦有娠故,<孟>后親蚕,<禾>小后親麻.
2월, <재사>에게 명하여 <시길{樂浪}>과 더불어 국경을 정하셨더니, <죽령竹岺{河北省지역 天津西南之境부터 南西方向으로 물줄기와 함께 달리는 낮은 丘陵性山地}>이동 땅{永定河下流東南方의 天津市以南之境정도}이 <락랑>땅으로 되었다. 이에 <엄리수奄利水{灤河?}>의 동안東岸{下流}과 남안南岸 모두가 <순노>땅이 되었고, <남옥저南沃沮>의 옛 땅이었다. {☞ 이 일 이후로 柴吉의 樂浪은 北羯이 차지하였던 順奴南部인 南沃沮故地를 高勾麗에 返納하였다?} 3월, <평산平山{勾茶旧地?}>으로 가셔서 밭 만드는 것을 둘러보시며 농사를 권장하셨고, 성들과 수자리들을 순시하셨다. 4월, <훤화>황후가 <억薏{의}>태자를 낳았으며, 또 <소>황후 또한 임신하였던지라, <맹孟{桂孟子}>후가 친히 잠사蚕事하고 <화禾>소후가 친히 마사麻事를 하였다.
五月,聖母遣上弟<觧朱>来献神巫二人,令主宮中祈禱.<朱>言“正月,<觧弗>卒.聖母,命<禮>氏為<觧百>妻,<都>氏為<觧朱>妻.”上問“<類利>何如.”<朱>曰“彈雀而誤中汲婦之盆,婦罵以無父之子無敎如此.<類利>敀問父事,<禮>氏具言南行之事,<類利>卽欲奔来.<禮>氏曰‘汝父之於汝年,射無不中,釼無不擊,畋‧畜‧医‧農無不盡焉.才不如之,徃見,何為.’<類利>乃學弓釼而潛心.”云.上欲留<朱>,<朱>以聖母故請敀,乃送之.<漢>罷「中書」‧「宦官」,始置「尙書」五人.「常侍尙書」主「丞相」‧「御史」事,「二千石尙書」主「刺使」‧「二千石」事,「主客尙書」主外國事,「三公曹尙書」主断獄事,「戶曹尙書」主庻人上書事.上曰“庻人上書,則可知下情矣.”其令主民,特設「申鼓」以聞民言. <漢>主<驁>,好色不倦,多置後宮女謁,太盛嫉妬相殘而未有生産,云.
5월, 성모께서 상의 동생 <해주觧朱{芻牟同腹異父弟}>를 보내와서 신무神巫{靈驗한 巫堂} 두 사람을 바쳤더니 궁중宮中의 기도祈禱를 주관하게 하셨다. <해주觧朱>가 “정월에 <해불觧弗{芻牟同腹異父弟}>이 죽어서, 성모께서 명하시어 <예禮>씨는 <해백觧百{芻牟同腹異父弟}>의 처로 <도都>씨는 <해주>의 처로 되었습니다.”라고 아뢰었더니, 상께서 “<유리類利>는 어떠한가?”를 물으셨고, 이에 <해주>가 아뢰길 “참새를 쏘았다가 빗나가서 물 긷는 여인의 물동이를 맞추었더니, 그 여인이 ‘애비 없는 자식이라 배운 것이 없어서 이렇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리>가 돌아와서 아버지의 일을 물었고, <예>씨는 남쪽으로 떠나신 일을 자세히 얘기하여 주었습니다, 이에 <유리>가 곧바로 도망쳐오려고 하기에, <예>씨가 ‘네 아버지께서는 너 만한 나이에, 쏘아서 맞히지 못함이 없으셨고, 칼로는 베지 못한 것이 없으셨으며, 사냥과 목축 및 의약과 농사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으셨다. 재주가 아직 그 같지 않은데, 찾아가서 만나 뵌들 무엇 하겠느냐?'라 일렀더니, <유리>가 활쏘기와 칼 쓰기를 배우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라고 하였다. 상께서 <해주>를 눌러앉히려 하셨으나, <해주>가 성모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청하여서, 보내주셨다. <한漢>이 「중서中書」와 「환관宦官」을 없애고 「상서上書」 다섯을 처음으로 두었다. 「상시상서常侍上書」는 「승상丞相」과 「어사御史」의 일을 주관하고, 「2천석상서二千石上書」는 「자사刺使」들과 「2천석」들의 일을 주관하며, 「주객상서主客上書」는 외국의 일을 주관하고, 「3공조상서三公曹上書」는 단죄斷罪와 옥사獄事를 주관하며, 「호조상서戶曹上書」는 「서인상서庶人上書{백성들의 글 올림}」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서인상서」는 곧 지체 낮은 백성들의 정서를 알아보기 위함이오.”라 하시고 「주민대가」에게 령을 내리시어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말을 듣게 하셨다. <한漢>주 <유오劉驁{西漢成帝}>가 호색好色하길 게을리 하지 않아서 후궁들과 배알하는 여인들을 많이 두었더니, 투기하며 서로를 헐뜯기만 크게 성하여 아직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하였다.
上命神巫為<萱>后禱,巫曰“上不拜於我故,囯人将不信我矣.我當去,可将人馬來.”<陜父>怒曰“不殺此妖巫,則国将乱矣.”乃揮釼詣巫曰“汝,主宮中之禱而無效,反欲受帝之拜.其無嚴甚矣.罪當斬矣.”巫大惧乞命,上笑曰“汝,亦畏死邪,當拜<陜父>.”巫乃拜于<陜父>而乞生曰“我,靈已盡,請送敀.”上曰“汝,有足,自去,敢請送乎.”巫曰“我在<加葉>,則足不踐土,空為聖母㪽欺而来此.”上曰“此女殆不知言,可逐之.”乃使卒曳出之.巫,至<淹淲>為田夫所畜.其老巫母而少巫女也.以草幔草离粧之為神,而終夜誦呪,盡則寢如長夜.其所言皆荒회大膽,<加葉>之民崇之如神.時,<加葉>人多敀於「東都」.<金蛙>,憂之,使聖母送巫而示<加葉>之靈.而上逐,為田夫之婢妾,使役於田畒,奔走於舂炊.<加葉>人曰“<芻牟>何待巫如是乎.”上曰“我囯之田婦,皆賢於此巫遠矣.比他田婦,則此巫可謂上待也.”<加葉>人驚曰“真天子之囯也,何其多巫如是乎.”以此,<加葉>人聞而益来,巫風大振.巫之観望者,或南或西,<涉羅>‧<倭>‧<韓>之巫風終此始熾.
상께서 신무神巫에게 명하시어 <훤화>후를 위해 빌라고 하셨더니, 무녀가 말하길 “상께서 제게 절하지 않으셨으니, 나라사람들이 곧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말과 사람들을 불러주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협보>가 노하여 “이 요망한 무녀를 죽이지 않으면,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지겠습니다!”라 아뢰고는 칼을 뽑아 무녀를 겨누고서 이르길 “네가 궁중에서 비는 일을 맡아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는데도, 도리어 제께서 절하시길 바랐다. 그 죄는 응당 참수 감이다.”라 하였더니, 무녀는 몹시 두려워하며 목숨을 구걸하였다. 이에 상께서 웃으시면서 “그대도 역시 죽는 것은 두려운가 보구먼? 당장 <협보>에게 절하시오!”라고 하셨더니, 무녀가 이에 <협보>에게 절하면서 살려주길 애걸하여 말하길 “내 신령이 이미 쇠하였음이니, 호송하여 보내주시길 부탁합니다.”라 하기에, 상께서 “그대도 발이 있으니 스스로 걸어갈 일이지, 감히 호송하여 돌려보내주길 청하는 것인가?”라 하셨더니, 무녀는 “저는 <가섭加葉{東夫余旧都}>땅에 살면서 발로 맨땅을 밟은 적이 없었습니다. 공연히 성모께 속아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이 계집들이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먼. 내쫓아라!”라 하시고는 군졸들로 하여금 끌어내게 하셨다. 무녀들은 <엄표淹淲{灤河中下流境支流豹河,或云瀑河・曝河・濕河!}>땅에 다다라서 밭을 일구는 사내에게 잡혀있게 되었다. 그 늙은 무녀는 어미이고 젊은 무녀는 딸이었는데, 초막草幕을 초리草离{풀로 만든 山神}로 꾸며서 신령스럽게 하여놓고 밤새도록 주문을 외우다가 지쳐서 긴 잠이 들었다. 그들의 말이 황당하게 거칠고 대담하여서, <가섭>땅 사람들은 그들을 녀신女神같이 받들었다. 이 시절, <가섭>땅 사람들이 「동도東都{고구리}」로 귀부함이 많으매, <금와金蛙>가 그것이 걱정되어서 성모로 하여금 무녀를 보내서 <가섭>땅의 신령神靈을 과시하고자 하였음이었는데, 상께 쫓김을 당하고 밭이나 일구는 사내의 비첩이 되어서 밭고랑에서 일하고 절구질하며 불 때기에{방아 찧어 밥하기에} 바빴다. <가섭>땅에서 귀부한 사람들이 “<추모芻牟>께선 어찌 그 무녀들을 이리 대하신단 말인가?”라 하매, 이에 상께서는 “내 나라에서는 밭을 일구는 여인네들 모두가 다른 나라들의 무녀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여서, 그 무녀들을 밭을 일구는 여인네들과 견주어보면 그래도 좋게 대하여 준 것이오.”라 하셨더니, <가섭>땅에서 귀부한 사람들이 놀라면서 “참말로 천자의 나라로세. 어찌 무당 많기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라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가섭>땅 사람들이 듣고서 찾아오는 일이 더욱 많아졌으며, '무속풍습'이 크게 일어났다. '무속풍습'을 관망하고 있던, 혹은 남쪽에 있든 혹은 서쪽에 있든, <섭라涉羅{=斯羅=斯盧=新盧}>・<왜倭>・<한韓{辰韓・馬韓・弁韓}> 땅에서도 '무속풍습'이 이를 붙좇아 불붙기 시작하였다.
六月,上,北巡至<梁山>,賜戍卒衣酒,溯上<大河>北望<大河>之勢以審九河之<曷>域而謂<烏伊>曰“<曷>衆尙依芦叢而居之,因風火攻之計不可棄也.”命沿路備魚油‧松脂‧蓬炬等物.九河之賊三十餘落,其中<大河>‧<玉河>‧<蘭河>‧<中河>‧<牛河>‧<濱土>‧<石齒>‧<月窟>‧<馬丘>‧<狄屯>‧<巴婁>‧<阿勿>‧<史弗>等最强,餘皆服屬于是.<史弗>,最近於<梁山>,漸被皇化而頗有服從之意,且有外部落七酋長有內附之意,乃命<都喜>厚遺是輩約以有事相應.
<五鹿充宗>,好匈極惡,與<石顯>輩弄絡<劉奭>,以致貨累鉅万,為<王鳳>所逐而出<幽州>,自稱「玄菟太守」,以金銀彩絹等每誘<涉臣>會獵,而欲襲<鮮卑>.<涉臣>,将其計而反誘<鹿>出<渝關>至<石原>,使其将<互獨>射殺之,馳入其居而取其財宝美女.<涉臣>之母<可喜>,<莫車>之大姑也,與<狦>為從,而且以妹妻<莫車>而交密,相與専橫於<上谷>.<王鳳>惡<鹿>而不問其死.
6월, 상께서 북녘을 순시하여 <량산梁山{들보산, 징검다리산; 赤峰北方西遼河上流經棚地境?}>에 다다르시어 수자리 군졸들에게 옷과 술을 하사하셨으며, <대하大河{西遼河? 松花江? 嫩江?}>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시면서 <대하>들의 기세를 멀리 바라보시고 구하九河{현금 西遼河則錫喇木倫河 北方의 수많은 물줄기들? 嫩江支流歸喇里河?}> 땅의 <말갈末曷>영역을 살피시더니, <오이>에게 이르시길 “<말갈>무리들은 항상 부들무더기를 의지하여 살고 있으니 바람을 힘입는 화공火攻계책을 그만둘 수 없음이야.”라고 하시고는 연로{길목에 연하여 있는 관리 등}들에게 명하시어 어유魚油 및 송진과 횃불자루 등을 준비하게 하셨다. <구하九河>땅의 적도 30여 부락部落들 중에 <대하大河>・<옥하玉河>・<란하蘭河{呼蘭河?}>・<중하中河{中科河?}>・<우하牛河{牛爾河?}>・<빈토濱土>・<석치石齒>・<월굴月窟>・<마구馬丘{馬延河?}>・<적둔狄屯>・<파루巴婁{巴魯?}>・<아물阿勿{阿倫河?}>・<사불史弗}> 등이 아주 강성하였고, 나머지들은 이들에게 복속하고 있었으며, <사불>은 <량산梁山{大興安嶺山脈? 經棚地境?}>에 가장 가까이 있었더니 점차로 황은皇恩에 교화敎化되어 복종服從할 뜻이 꽤나 있었고, 뿐만 아니라 바깥쪽 일곱 부락의 추장들도 내부內附할 뜻이 있었더니, 이에 <도희>에게 명하시어 이 무리들에게 후하게 재물 등을 주어서 일이 있게 되면 함께 내응하기로 약속을 받으셨다.
<오록충종五鹿忠宗>이 흉사匈事를 즐기기가 극악하여 <석현石顯>무리들과 함께 <유석劉奭{西漢高宗}>을 농락하면서 누거만금의 재화를 긁어 들이다가 <왕봉王鳳>에게 <유주幽州>로 쫓겨나가더니, 「현도태수玄菟太守」를 자칭하고서{☞이 시절의 幽州는 분명 河套長城以南이거나 賀蘭山脈・陰山山脈의 바깥임} 금과 은 및 아름다운 비단 등으로 매번 <섭신涉臣{鮮卑王}>을 회유하여 함께 사냥하였으며{事前偵察}, <선비鮮卑>를 습격하려 하였다. 이에 <섭신>도 그 계략{재물 등을 주어서 회유하는 방법}을 써서 도리어 <오록>을 꾀어서 <유관渝關투관{현금 陝西省北部 楡林關보다 西쪽인 듯!}>밖으로 나와 <석원石原{혹, 자갈사막인 澣海?}>땅에 다다르게 하더니, 그의 장수 <호독互獨>으로 하여 그를 쏘아죽이게 하고서, 그의 거처로 내달려 들어가서 그의 재보와 미녀들을 취하였다. <섭신>은 어미 <가희可喜>가 <막거莫車{雕陶莫皋=復株絫선우}>의 대고모{왕고모}이고, <산狦{稽侯,呼韓邪선우}>과는 4촌간이며, 게다가 여동생을 <막거>에게 주고 몰래 교통하면서 서로가 함께 <상곡上谷{山西省 汾河中下流 東南方 隣近? 이 시절 高勾麗가 차지한 河北省・山西省・河套內 長城以北 上谷說 등은 虛妄한 해설일 것임}>땅을 전횡하였고, <왕봉王鳳>은 <오록>을 미워하였기에 그의 죽음을 불문에 붙였다.
七月,上,與<孟>后‧<蘭>妃,巡行<荇南>閱戌観魚品荇,而至<滸原>慰勞将士八百人,畋于<質陽>而還. 以<滸原>処士<木>公為「大仙人」,使執「御史」之事.<木>公淸直,群臣畏之.初,上之巡<滸原>也,<木>公乞行憔悴骨立.上,憐之,而與語,其知如神.上曰“玉在<荊山>,不識于世者久矣.”乃擧之.盖知<祖天>之将亡而不立於其朝者也.
7월, 상께서 <맹孟>후 및 <란蘭>비와 더불어 <행남{河套中南部?}>을 순행하여 수자리들을 살피시면서 물고기 잡이도 둘러보시고 행채荇菜도 품평하셨으며, 이어서 <호원滸原>으로 가셔서 장수와 병사들 800인을 위로하시고, <질양質陽{呼和浩特大靑山東南方和林格尒平原地境}>땅에서 사냥하고 돌아오셨다. <호원>처사處士{世派로 나오지 않고 草野에 묻혀사는 선비, 居士} <목木>공을 「대선인大仙人」으로 삼아서 「어사御史」의 일을 맡아보게 하셨더니, <목>공은 사념이 없고 행실이 곧았던지라, 군신들이 그를 경외하였다. 애초에 상께서 <호원>을 순시하실 적에 <목>공은 구걸하면서 살았던지라 행색이 초췌하고 뼈가 툭 불거져 나왔었는데, 상께서 가엽게 여기어 말씀을 나눠보셨다가 그의 지식이 신과 같았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옥玉이 <형산荊山>에 있었는데도, 세상은 오래도록 모르고 지냈었소.”라 하시고{☞ 혹시, 荊山도 荇人國 疆域이었단 얘기는 아닌가?; 史記夏本紀正義註釋曰括地誌云荊山在雍州富平縣} 그를 벼슬자리에 오르게 하셨다. 그는 개략 <조천祖天{荇人國王}>이 장차 망할 것임을 알아서 그 조정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8월, <즙수汁水{현금 北京市西南邊을 지나는 桑干河則永定河}>의 위쪽{곁, 상류, 북쪽}으로 왕림하시어 「서도西都」 터의 모습을 살펴보셨다. 개략 <황룡국>「동도東都」의 옛 터였던지라 산천과 풍경 모두가 볼만하였다. <오이>와 <마리>에게 명하시어 8만병을 훈련하여서 <옥저沃沮{北沃沮!}>땅을 토벌할 계책으로 대비케 하셨다. <황룡국>문사文士 다섯을 <목木>공의 신하로 삼아주셨다. <화영禾英>후가 천거하여 데려온 이들이었다. 상께서 <화영>에게서 거문고를 배우셨더니, <화영>이 또 <황룡국> 악사樂士 <기산箕山>을 데려와서, 그를 비파琵琶 선생으로 삼으셨더니, <협보>가 간언하여 아뢰길 “<황룡국>은 문文을 수련하다 망가졌었으니, 그들의 것을 취함은 옳지 않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목>공에게 이르길 “<협보>가 내게 간언하기를 음악音樂을 하지 말라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라 하였더니, <목>공은 “성색聲色{音樂과 女色}은 사람{임금}들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꾸며서 그만 둔 척 함은 옳지 않습니다. 능히 그 멎을 곳을 알면 괜찮을 것입니다. 극심함은 망함의 단초이고 치우치지 않음이 안전의 근본일 것입니다.”라 아뢰었고, 상께서 이르시길 “사람들은 짐이 <화영>을 피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라 하셨더니, <목>공은 “그녀를 속여서 하교하시면 속일 것이고, 믿음으로 하교하시면 믿을 만하실 것입니다. 꾸밈은 기만의 단초이며, 믿음은 순수함의 근원이옵니다. 백성들이 속이기를 다투면 그를 막기 위한 법의 수효는 셀 수도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九月,<烏伊>等,引兵至<梁山>,分八路覘之.時,<巴婁>‧<阿勿>軍與<史弗>交戦.<菸狗>直指<阿勿>部掃其窟,大軍連續渡<河>因風放火,賊首尾不能相救,或走山依之,或走水匿之,老弱落溷,而死者亦不知其数.<摩离>從<大河>而上,<漢素>引水師掩襲赴<河>之賊.賊累戦失利,<北鞨>王<舂臣>遣使請和,割<大河>以東為界.
9월, <오이> 등이 군병을 이끌고 <량산梁山{들보산, 징검다리산; 赤峰北方西遼河上流經棚地境인 大興安嶺山脈?}>으로 가서 여덟 길로 나누어 기다렸더니, 때마침 <파루巴婁{巴魯?}>・<아물阿勿>의 군대가 <사불史弗>과 교전하였다. 이에 <어구菸狗>가 <아물>부{部落은 다수의 村落들로 이루어진 大規模共同體}로 곧바로 내달려들어가서 그들의 소굴을 쓸어냈고, 대군이 연속하여 <하河{西遼河?}>를 건너고 바람을 힘입어서 불을 질렀더니, 적들은 앞뒤가 상응하여 돕지를 못하게 되어서 혹자는 산으로 도망가서 의신依身하고 혹자는 물로 도망하여 숨었으며 늙고 약한 이들은 뒤쳐져서 어지럽더니 죽은 이들의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마리>가 <대하大河{현금 嫩河? 遼河하류?}>를 따라서 올라가고, <한소>가 수군을 이끌고 물속으로 도망한 이들을 엄습하였다. 적들은 여러 번 싸움에서 패하였더니, <북갈北鞨>왕 <용신舂臣>이 사신을 보내와서 화친을 청하기에, <대하大河>들 이동以東 땅{遼河下流東北端・松花江・嫩江以東?}을 갈라서 경계로 삼았다.{☞北鞨을 松花江・嫩河以東 遠地로 逐出한 듯!}
十月,<烏伊>等分<末曷>十二落為三州,曰<大河州>‧<中河州>‧<蘭河州>,置戌而還. 送<中河>所得<白熊>王女<加得>於<白熊囯>,其王大喜遣使来貢魚皮鹿鹽. <召>皇后生<馬>公主,上徃慰之.后曰“妾聞<加葉>有太子‧皇后,何不率来乎.妾,不妬矣,請速率来,使吾女<阿爾>配之,何如.”上曰“聖母思我故,不忍皆率而来也.卿其安心.徐當好處矣.天下事,皆有自觧之時耳.”時,<孟>后‧<禾>后皆有寵,而<召>后寵少衰且生女故,自有不安而欲引<類利>為其用也.
10월, <오이> 등이 <말갈末曷> 12부락을 나누어서 <대하주大河州{西遼河中下流域?}>・<중하주中河州{大凌河・遼河下流間流域? 渾河流域?}>・<란하주蘭河州{東遼河中上流域?}>라 이름 하는 세 개의 주로 삼았으며, 수자리들을 만들어놓고 돌아왔다. <중하中河>에서 붙잡힌 <백웅白熊>왕의 딸 <가득加得>을 <백웅국白熊國>으로 돌려보냈더니, 그 왕이 크게 기뻐하며 사신을 보내와서 어피魚皮{상어沙魚껍질}와 사슴 및 소금을 바쳤다. <소>황후가 <마馬>공주를 낳았다. 상께서 찾아가 위로하셨더니, 후가 아뢰길 “첩이 <가섭원{동부여}>땅에 태자와 황후가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데려오지 않으십니까? 첩은 시샘하지 않을 것이오니, 청컨대 속히 데려오셔서 제 딸 <아이阿爾>로 하여금 짝이 되게 하시면 어떻겠는지요?”라 하였고, 이에 상께서는 웃으며 이르시길 “성모께서 나를 생각하고 계신 까닭에 차마 모두를 데려오지 못하고 있소. 경은 안심하시오. 서서히 하여도 응당 좋은 혼처는 있을 것이오. 천하의 일들은 모두 저절로 풀리는 때가 있는 것이오.”라 하셨더라. 이즈음, <맹孟>후와 <화禾>후가 모두 총애를 받고 있었고, <소>후는 총애가 다소 쇠하였었고 게다가 딸을 낳았더니 스스로가 불안하여 <유리>를 끌어들여 자신이 이용하고자 함이었다.
十一月,<曷思囯>「相加」<大業>来献船材土物,以<業>為「都尉」,秩五品「中大夫」,賜衫及花魚. <禾英>后生<杜>公主.五雲繞空,上奇其蹟以公主宮為<彩雲宮>.以<禾斗>為「宮大夫」,六品,賜花‧魚.<斗>,<相>之侄子也,乃<狐鹿>之外孫也. <羊花宮>,生皇子<觧蒙>,時年五十二,上恐有虞命<羊真>為「大夫」而極盡其養.后,以先帝寵后,累經災厄,而晩得上寵,如再熱之扇不知其倦,氣力尙熾顔色如華,能歓上心.
11월, <갈사국曷思國>「상가相加」<대업大業>이 찾아와서 배를 지을 재료와 토산물을 바쳤다. <대업>을 질5품 「중대부中大夫」인 「도위都尉」로 삼고 비삼과 치화 및 동어를 하사하셨다. <화영>후가 <두杜>공주를 낳았다. 5색 구름이 그 방을 에워쌌더니, 상께서 그 일을 기이하게 여기시고 공주의 궁을 <채운궁彩雲宮>이라 하셨으며 <화두禾斗>를 「궁대부宮大夫」로 삼아서 6품 작위와 치화 및 철어를 하사하셨다. <화두>는 <화상禾相{모수제이종}>의 조카로 <호록狐鹿{호록고선우}>의 외손이다. <양화궁羊花宮>이 황자 <해몽觧蒙>을 낳았다. 이때 나이 쉰둘이어서, 상께서는 우려할 일이 생길까를 염려하시고 명을 내려 <양진羊眞>을 「대부」로 삼으셔서 극진하게 보양하셨다. 후는 선제先帝{慕漱帝}의 총애를 받던 후였으며, 여러 번 재액災厄을 겪고나서 뒤늦어서야 상의 승은을 입더니, 열기가 다시금 달아오른 듯이{거세한 말이 다시금 달아오른 듯이} 권태로움을 몰랐으며, 오히려 기력이 불타오르고 얼굴빛이 꽃과 같아져서 능히 상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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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기록에도 "黑水之鞨" 즉 "흑수말갈"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 "흑수말갈"은 작금의 강단사학들이 해설하는 현금 "아무르강" 즉 "흑룡강" 연변 한 지역의 "말갈족"이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9년 기록엔 삼국사기 등엔 그 존재마저도 기록되지 않았던 도성들인 동도東都와 더불어 서도西都가 기록으로 나타난다....이 서도西都가 실제로 주몽 고구리 705년 중 가장 오랜세월 동안 주 도성으로 사용되었음이 남당유고 '고구리사초'를 통하여 알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