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동수단이지만, 어쩌면 차가 없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더 많은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지기 때문일까.
때로는 차가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여행지도 있다. 일명 '드라이브 코스'. 시선이 옮겨갈 때 마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수만가지 풍경들은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두기엔 너무도 많다. 드라이브를 즐기는건 어쩌면 달콤한 와인을 천천히 즐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늘, 구름, 산, 등대, 그리고 바다
차가없었다면 이 멋진 풍경들을 보지 못할뻔 했으니, 차에게 감사해야할까. 운전을 할 줄 아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자동차 뒷좌석은 자연스럽게 면허가 없는 나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편하게 앉아서 창밖의 경치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한적한 바닷가의 허름한 집한채
남해에는 처음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나라에 살고있으면서도 남해바다를 처음 보았으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여름철에 자주 가던 서해나 동해바다와는 달리 남해의 물 색깔은 조금 달랐다. 투명하면서도 왠지 그 속이 깊어보이는 예쁜 쪽빛.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며 마냥부러워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여름의 남해 바다는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새하얀 백사장은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말일까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던 중, 새하얀 백사장을 발견하고선 차를 멈춰세웠다. 백사장은 온통 하얀 조개껍질로 되어있어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며, 푸른 물빛과 예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정말 물빛은 이랬다
물이 참 투명하다. 블루, 화이트, 블루, 다시 화이트. 하늘, 땅, 바다, 다시 하늘.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방파제
바다속으로 풍덩 뛰어들고파진다
백사장에서 조금더 걸어나와 방조제 끝까지 걸어본다. 하늘을 향해 이어지는듯 바다위를 시원하게 가르는 방조제, 그 끝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다속으로 뛰어드는 상상도 해본다.
남해의 풍경이 특별한 이유는 바다가 아니라 산에 있다. 주변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로 된 섬들과 산이 바다와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은 외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바다만 있는 곳에선 사진 속의 저런 구름도 쉽게 보기 어려울텐데, 여기엔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뭉게뭉게 많기도 많다.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
다시 차에올라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린다. 경치도 경치지만 바다를 따라 시원스레 나있는 도로가 참 좋다. 보통 이런 관광지면 도로를 따라 팬션이나 음식점이 볼성사납게 서있곤 하지만 남해 드라이브 코스에는 하나도 없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따라 홀로 달리는 기분은 달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운전을 안해서 모르겠지만, 차도 거의 없고 정말 운전할 맛 나는 곳이라고 한다.
이름도 참 예뻤던 밤섬
조금더 가다보니 도로가 점점 높은곳으로 이어지고, 이제는 도로 아래로 바다와 섬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크고작은 예쁜 섬들이 참 많았지만, 사진속의 밤섬이 참 예뻤다. 밤처럼 생겨서 밤섬이라고 이름붙여졌을까. 창밖으로 지나가는 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붙여본다.
고깃배 너머 빨간 등대가 보인다
항구 어귀의 소박한 등대 두개
한참동안 바다를 달리다 보니 배와 등대가 보고싶어진다. 무작정 가까운 마을에 들어가보니 조그만 해수욕장과 항구가 반겨준다.
에메랄드 그린
코발트 블루
스카이 블루
방파제에 올라 멀리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간다. 세 가지의 렌즈로 찍은 사진들, 똑같은 바다와 하늘을 찍었는데도 사진속의 바다와 하늘은 다 다른 색이다. 어떤색이 내가 보았던 진짜 색깔일까.
내 지정석인 뒷자리에서는 늘 이런 모습이 보인다
드라이브의 좋은점이라면 중간중간 쉬어가는 재미가 있다는게 아닐까.
뷔페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서 접시에 담 듯, 창밖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풍경들 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 거기에 차를 세우고 잠시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는 기분. 남해라는 자연과 자동차라는 문명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낸, 그 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