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1918년 건축한 조선식산은행
아래- 현재 SC제일은행 지점이 들어서 있다
남성동파출소(지구대)앞이다.
향토사가들의 연구조사결과, 일제강점기때 마산에서 건설된 주요 일본식 건물은 아래와 같다.
한일합방 이전에 세워진 건물
▷관아시설= 일본영사관(1899), 러시아영사관(1899), 마산우편국(1902), 마산병원(1905), 마산이사청(1908), 마산세관(1910), 마산구재판소(1910)
▷종교시설 = 마산성당(1901), 마산포교회(1903)
▷교육시설 = 마산공립소학교(1904: ), 마산심상고등소학교(1909), 창신학교(1909), 성지학교(1910)
▷금융시설 = 제일은행 마산지점(1907), 경상농공은행 마산지점(1908)
▷기타 = 마산역사(1905), 망월루(1908) 등.
일제가 강점하면서 세워진 건물
▷관아시설 = 도립마산병원(1911), 마산경찰서(1921), 마산헌병대(1926), 마산부두국(1943)
▷종교시설 = 마산포교당(1912), 문창교회(1919), 성요셉성당(1931), 문창교회주일학교(1937)
▷교육시설 = 의신여학교(1913), 공립마산실과고등여학교(1915), 공립마산상업학교(1923: 현 용마고), 호신학교(1924), 공립마산보통학교(1927), 대자유치원(1928), 공립마산중학교(1936: 현 마산고), 공립마산고등여학교(1936), 완월공립국민학교(1941)
▷금융시설 =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1918), 조선상업은행 마산지점(1937)
▷공장 및 상업시설 = 원동무역 주식회사(1928), 마산극장(1933), 마산전등회사(1939), 조선물산 주식회사(1939)
▷교통시설 = 북마산역사(1924), 구마산역사(1936), 마산역사(1943)
▷주택 및 기타 = 마산고등여학교 기숙사(1932), 창원군청관사(1938), 전기회사관사(1939), 마산상공회의소(1939) 등
향토사가 및 선배들의 조언에 따르면, 일부 교육시설과 종교시설, 개인주택 등은 그 잔재가 남아있으나 관아시설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성지학교(성지여고)는 1910년 당시 프랑스인 문제만 선교사에 의해 ( 완월동)에 설립됐다. 당시는 붉은 벽돌조 1층으로 지어졌으나 현재 4층건물로 증축됐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교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 마산 성지여고내 성요셉성당은 최근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한다.
마산 근대 불교의 시초인 추산동 소재 마산 포교당은 현재 정법사로 목조 한식 1층 건물로 현존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 주지인 김구하(1872~1965)큰 스님이 설법전을 창설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 건축전문가들의 일제시대 향토 건축물 연구조사 결과:
1899년 개항부터 1910년 한일합방 전까지 구한말 시기에는 개항과 함께 각국 공동거류지가 생겨났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전관거류지로 바뀌면서 마산은 일본풍의 거리로 변모되어 갔다. 근대건축 또한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에 의한 일식과 의양풍 건물이 주를 이루었다. 재료면에서는 벽돌조 성지학교 외에는 모두 목조로 일관하였다. 규모면에서는 일본영사관과 러시아영사관을 제외한 나머지 근대건축은 모두 단층으로 지어졌고 비교적 소규모의 건물이었다.
시설면에서는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기반인 관아시설에 집중되었고, 교통시설인 마산역사와 금융 기관인 일본제일은행 마산지점도 설치되었다. 교육시설은 일본인 자녀를 위한 심상고등소학교를 신마산에 건립하였으며 한국인을 위해서는 1904년 공립소학교(마산성호초등학교 전신)를 구마산에 각각 설립 하였다.
종교시설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1901년에 마산에 유입되면서 한옥을 개조하여 사용하였으며 교육시설로는 창신학교와 성지학교가 세워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마산의 관아시설과 구마산의 상권이 합해지면서 중앙동과 장군동 일대에 중앙마산이 생겨났다고 한다. 근대건축은 한일합방 이전의 관아시설 일변도에서 교육시설과 금융시설, 공장·상업시설, 관사 등 여러 시설로 확대되어 건축되었다. 재료면은 목조에서 벽돌조 또는 철근콘크리트조로 변하였고, 종교시설은 한식목조와 석재 등으로 다양한 재료가 표현되었다. 양식면에서는 여전히 일식의 주택이 지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마산고 옜날의 본관 건물모습 .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마산고 4회 졸업생들이 옛날 본관앞에서 찍은 사진. 일본군 복장으로 칼을
든 교사 2명이 앞줄에 보인다.
새로 건립된 마산고 본관 건물 <2002. 4월 신축>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근대건축물을 무조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보존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마산과 비슷한 시기에 개항한 목포 등 다른 지역의 경우 근대건축물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라는 인식에서 보존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시 당국이 지혜롭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포대 역사학부 박찬승교수에 의하면 "전남 목포시는 199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철거논란을 기점으로 근대건축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현재 중요 근대건축물 7곳에 대한 실측조사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목포는 마산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영사관건물(1905년)을 현재 목포시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식교회, 은행등 상업건물등이 상당수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영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