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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라이는 넓다
아니 대륙은 넓다.
그리고 고려는 대륙에 있었다.
이곳은 1061년 고려시대에
만들어젼 군사도시이다.
마치 진해처럼
처음 들으면 참 난감하지만
자신의 대륙생활의 경험을
잘 활용해 보길 바란다.
어찌 장보고와 정몽주선생의
유적이 이곳에 있는지
그리고 현재중국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그들의 우리에게
자리를 그냥 나누어 주겠는가.
공교롭게
대륙은
우리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한쪽은 중국역사로
한쪽은 한국역사로
그러나
공간은
대륙이었다.
1061년 처음 세워진
펑라이거
이곳은 목적은
그 지긋지긋한 왜구
항일이 목적이었다.
고려시대부터 먹기살기어려운
대륙의 변방에 자생적인 왜구(倭寇)가
생겼다.그들은 지금의 일본인이 아니다.
그냥 먹고살기 어려운
대륙의 변방인이었다.
이곳을 배로 한번 도는데
시간은 10분전후
비용은
30위앤
돈벌이가 솔솔하다.
총을 들거나
분위기를 뛰우거나
좌우지간 주머니의
돈이 술술샌다.
분위가 좋은
담장
그러나
아직도
펑라이는
모든 화장실에
1위앤을 받는다.
왜 그런거야
우왕좌왕
하지말고
이것을
잘보고 다니면
볼 것을
다 볼수있다.
100위앤 전후
아니면
천천히
도시의 낭만과
역사적 상상력을
즐겨라
나무가 크면
새들이 깃들듯이
수군성벽이 높아
그들도
먹고산다.
어김없이
이곳에도
거북선이 있다.
도데체
어떻게 된 것이야
칭다오의
해군박물관처럼
이곳에
고선박물관있다.
시간이 늦어 닫혔다.
이곳은 배를 안전하게
정박하는 곳이다.
수백척은 정박할수있는
천해의 요새이다.
이곳 등주 태수로 유명한
소동파가 있었고
항왜명장 치지광이 있었다.
보령오천에 있는
충청수영과
비교를해보면 안다.
얼마나
실감나는지
대륙에 사람이 있으면
시장이 있듯이
물이 있으면
어디에나
낚시꾼이 있다.
그들이 부럽다.
1061년부터 시작된
해상방위의 중요성과
그 지겨운 왜구의 출현으로
결국은 고려제국이 망하고
그들이 서양세력을 일찍 수입하여
재무장함으로써
임진왜란이일어나고
영국의 아편전쟁이후
결국 대륙 조선은
멸망하고
이곳에 쫒겨나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다.
시간의 힘이었나
역사의 순환인가
이 수군성을 한바뀌도는데
족히 한나절을 돌아야 될 것이다.
산서성 서안 고성처럼
낭만적이고
바다바람이 좋다.
그 유명한 떵쪼우
등주박물관
걸어서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
한 세시간 걸린 것 같다.
두리번 두리번
훈민정음 중국어-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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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군님 !!!전 보트타는데 15원 줬는데 ㅎㅎㅎ
일찍 일찍 타는것이 좋아요,~~매년 요금이 올라가요.ㅎㅎ ,요즘 잘 지내시죠 ~~
펑라이 무슨 벌레때문에 머리 복잡한 도시 아닌가요?
기사님 왜그래요~오, 벌레가 아니라 신선들로 마구 넘치는 도시입니당 ㅎㅎ
구경 잘 했습니다.
저도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다음에 신선도를 구하려 다시 갈라 합니다.ㅎㅎ
맞습니다.
어느 사학자 말로는 옛적에 산동성 일대가 우리나라가 통치한 역사 흔적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듯합니다.
맞습니다.~~산동성뿐만아니라 대륙 전체가 조선의 생활공간 이었습니다.
천천히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ㅎㅎ
정화장군님은 저와 죽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평생 애국 동지를 만남 듯 반갑습니다.
전 산동성 내륙 북쪽( 북경, 천진, 제남) 삼각주 정도에 살고있습죠. 하하하!!!
정확한 곳은 나중에- 이유가 많치 유! - 뭐 별다른 이유보다 제가 입만 열면 애국애민하자는 말을 많이 자주~ 하다보니, 주위에 시기하며 미워하는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더러 있더라고요. 하하하!!!
워이에 통이~~ 워 지엔다오니 헌까오씽 ~~,짜이여우 ㅎㅎ,반가워요,자주만나요 ㅎㅎ
펑라이거.... 한번쯤.. 가 보고싶어지는데요.
담에.. 가게 되면... 가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
대륙에다 빨간 딱지를 붙여 놓을까요??? 우리꺼라고~~~~~~~~!!!!
중국처럼... 팍팍 우기면서......;;;;
ㅋㅋㅋㅋ.ㅡ,.ㅡ;;;;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가면 나와요~~, 이제 펑라이거는 삐죽새님이 침 발라놓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