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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명나라 때부터 면류산업의 중심이었으며 소수, 송면, 단향비 등의 수공업품과 약품이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인들은 이곳의 풍요를 찬미하여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 항주"라는 속담을 만들었고 그 영화로운 흔적은 졸정원(拙政園), 사자림(獅子林), 유원(留園) 서원(西園), 퇴사원(退思園), 망사원(網師園), 창랑정(滄浪亭) 등의 화려한 원림(園林)에 남아 있다. 멀리 춘추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북방의 거란족에게 밀린 송나라가 근거지를 강남으로 옮긴 남송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된 이들 원림은 원, 명, 청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이곳의 원림은 중국식 원예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으며 보존이 잘 되어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대부분 개인이 조성한 원림은 명대에 가장 번성하여 271개에 이르렀고 현재 완전히 보존된 것만도 60여개가 있다. 다른 강남의 원림에 비하여 "강남원림갑천하(江南園林甲天下) 소주원림갑강남(蘇州園林甲江南)"이라는 말로 소주의 원림을 극찬하니 심미(審美)를 자랑하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명나라 최고의 풍류시인 당인(唐寅)은 당시의 풍경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장주무원고통진(長洲茂苑古通津)
풍토청가백성순(風土淸嘉百姓馴)
소항십가삼주점(小巷十家三酒店)
호문오일일상신(豪門五日一嘗新)
시하도처감요노(市河到處堪搖櫓)
가항통소불절인(街巷通宵不絶人)
사백만량충세변(四百萬糧充歲辨)
공륜하처사오민(供輪何處似吳民)
긴 방죽을 따라 울창한 정원은 예로부터 나루까지 이어졌고
풍토는 말고 아름다우며 백성들은 순박하다.
작은 골목에는 열 채의 집과 술집이 셋
부잣집에서는 닷새마다 새장을 본다.
시내를 흐르는 운하에는 이르는 곳마다 노를 휘두르고
거리마다 늦은 밤까지 북적거린다.
사백만 섬이나 일년에 세금이 매겨지니
어디 사람들이 오나라 사람들만큼 공출을 하겠는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은 졸정원(拙政園)과 창랑정(滄浪亭)이다. 졸정원은 일정에 들어 있으나 창랑정은 일정 때문에 가지 못하여 못내 아쉽다. 소주 최고의 원림으로 여겨지는 창랑정은 오대(五代)시대의 어느 왕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송의 귀족시인 소순흠(蘇舜欽)이 은거하기 위하여 새롭게 축조하면서 굴원(屈原)의 "어부(漁賦)"의 한 대목을 따서 창랑정이라 하여 이름을 떨쳤다. 일개 시인의 힘으로 이런 정원을 갖출 수 있을 만큼 풍요로운 그 때를 생각하면 부럽기 짝이 없다.
풍광이 아름답고 물산(物産)이 풍부한 만큼 소주와 관련된 문인과 사상가들이 시대마다 화려하게 이어진다. 당대의 이백과 백거이, 송대의 소동파, 소순흠,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쓴 범중엄(范仲俺), 명대의 당인, 문징명(文徵明), 청대의 오위업(吳偉業), 왕사정(王士禎), 소설평론가 모종강(毛宗岡), 김성탄(金聖嘆)이 있고 현대에 오면 남사(南社)의 발기인 류아자(柳亞子)가 있다. 대체로 고전주의에 반대되는 낭만주의나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소주가 주는 풍요로움 때문이리라. 각박하게 살지 않아도 삶을 즐기는 것이 가능한 자연환경은 생각을 자유롭게 한다. 척박한 곳에서 자라나 힘든 삶을 벗어나고자 각박하게 살아온 나의 지난 날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일정에 들어 있던 유원을 포기하고 졸정원으로 갔다.
졸정원(拙政園)은 중국의 중점문물관리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주의 동북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삼국시대에 손권(孫權)의 어머니가 살았다고 하며, 동진(東晋)의 고사(高士) 대옹(戴 )의 저택이 있었다고도 한다. 북송시대의 호직(湖稷)이 오류당(五柳堂)을 지었고 그의 아들 봉의(峰義)는 두보(杜甫)의 시 "택사여황촌(宅舍如荒村)"이라는 구절을 취하여 "여촌(如村)"이라고 불렀다. 원나라 때는 대홍사(大弘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원말에 훼손되었다. 원말 명초에는 장사성(張士誠)이 소주에 거점을 잡았을 때 그의 사위인 반원소(潘元紹)의 부마부(駙馬府)가 되기도 하였다.
명의 정덕(正德)4년(1509년) 어사(御史)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흥사 자리에 원을 조성하고 진대(晉代)의 반악(潘岳)이 지은 "한거부(閑居賦)" 중에서 "관원육소(灌園 蔬)하고 이공조석지선(以供朝夕之膳)이면 시역졸자지위정야(是亦拙者之爲政也)로다. 정원에 물을 대고 팥과 채소를 심어 조석으로 반찬을 삼으면 이 또한 쓸모없는 사람의 정사가 아니런가?"라는 구절을 따서 졸정원(拙政園)이라고 불렀다. 물을 끌어와서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 집을 짓고 "망약호박(望若湖泊)"이라 하였으니 그 풍류(風流)가 감탄스럽다. 원안의 빈터에는 꽃밭과 대나무숲과 과수원과 복숭아밭을 만들었고 당(堂:거처용 집), 루(樓-벽을 트이게 하여 사방을 바라 볼 수 있게 높이 지은 집), 정(亭:언덕이나 물가에 사방이 보이도록 지은 집), 헌(軒:행랑이 있는 집) 등의 건물을 드문드문 떨어뜨려 놓았다. 왕헌신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서(徐)씨와 도박을 하여 하루 밤에 집을 잃었고 서씨도 후손이 몰락하여 이 정원은 다시 황폐해졌다.
명나라 숭정(崇禎)4년에 시랑(侍郞) 왕심일(王心一)이 다시 복원하여 "귀전원거(歸田園居)"라고 부르고 직향관(稷香館), 부용사(芙蓉 ), 범홍헌(泛紅軒), 난설당(蘭雪堂), 수석정(漱石亭), 도화도(桃花渡), 죽향랑(竹香廊), 소월대(嘯月臺), 방안정(放眼亭) 자등오(紫藤塢) 등을 지었다.
청초에는 전겸익(錢謙益)이 첩 유여시(柳如是)를 살게 하였고 한때는 진장(鎭將)이 차지하기도 하였는데 1653년에 노름을 해서 차지하였던 서씨의 5대손이 다시 사들이기도 하였다. 강희제 때는 관청에서 몰수하여 주둔군의 군부로 사용되었고 오삼계(吳三桂)의 사위인 왕영령이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오삼계의 반란으로 몰수되었다. 처음의 정원은 이후부터 동부, 서부, 중부로 삼분되었고 관청으로 또는 개인 소유로 이용되다가 함풍(咸豊)10년(1860년)에 태평천국의 충왕(忠王) 이수성(李秀成)이 충왕부(忠王府)로 사용하면서 다시 통합이 되었다. 나의 대학졸업논문이 "태평천국과 중국공산주의의 태동"이었고 특히 이수성의 군사적 활약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새삼 반갑기가 그지없다.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다시 관청이나 학교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보수공사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아름다운 정원인 만큼 나의 눈을 유난히 끄는 것은 건물마다 붙여진 이름의 유래와 기둥이나 벽에 붙여진 편액들이다. 시간이 없어서 글귀의 내용과 풍경을 대조하면서 즐길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나는 페퍼민트에게 부지런히 캠코드로 촬영을 하라고 했고 나도 열심히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었다. 새삼 이런 식의 관광이 의미가 없음이 느껴진다. 다급해서 졸정원 앞에서 파는 자료집을 샀던 것이 그나마도 다행이다. 어린 포르메와 아름공주에게 여행의 진미를 알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그래도 사진과 비디오 테잎과 자료를 중심으로 여행기를 남기는 것도 약간의 가르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자료집에 나오는 건축물의 이름에 관한 내용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광경을 묘사해 보자. 훗날 졸정원을 찾는 형제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름 하나하나에 묻은 의미와 향기를 즐기는 것이 바삐 음식을 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다시 음식의 맛을 되새김하는 것과 같지만 우리 글방의 형제들에게 서툰 묘사를 하는 것보다는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귀 속에 풍기는 경탄스러운 감각을 맛보는 즐거움도 함께 하리라.
1. 동부
*난설당(蘭雪堂) - 이태백의 시 "독립천지간(獨立天地間) 청풍쇄난설(淸風 蘭雪)-천지간에 홀로 서니 청풍이 난초와 눈을 씻어낸다."에서 따왔으며 남면에는 졸정원의 전경이, 북면에는 취죽원(翠竹園)이 그려져 있다. 난설당의 북쪽에는 가산(假山)이 있는데 산봉우리를 "철운(綴雲)" 서쪽을 "연벽(聯璧)"이라고 부른다. 이태백의 시를 감상할 때 "독립(獨立)"을 "독립운동(獨立運動)"과 같이 연상하지 말 것. 그냥 "홀로 선다"는 의미일 뿐이다. 봉우리의 이름은 "구름이 에워싸고 있다"는 의미와 "구슬이 꿰어진 듯 하다"라는 의미이다.
*부용사(芙蓉 ) - 시경(詩經) 이아(爾雅)편에 나오는 "하(荷) 부거(芙 )"에서 따왔다. 부용(芙蓉) 즉 연꽃을 강동(江東)에서는 하(荷)라고 부른다. 서쪽에 임수(臨水)가 있고 여름에 아름다운 연꽃을 감상한다고 하여 붙여졌다.
*직향관(稷香館) - 직(稷)은 쌀을 빻은 것을 말한다. 송의 범성대(范成大)가 지은 "동일전원잡흥시(冬日田園雜興詩)"에 "좌거하사산거락(坐居何似山居樂) 직미신래금입성(稷米新來禁入城)-앉아서 놀기에는 산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쌀이 쌓여 새로 오는 사람들을 막는 성이 되었네"이 있다. 이 부근에 북원(北園)이 있고 담장 밖으로 논밭이 둘러 쌓여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관(館) 안의 현판에는 서상기(西廂記)가 그려져 있다. 산의 주위를 물굽이가 돌고 있으며 지금은 관람객의 쉼터가 있다.
*함청정(涵靑亭) - 당나라 저광희(儲光羲)의 시 "지초함청색(池草涵靑色)-연못 속의 출잎이 파란 색을 물들이네."에서 따온 이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조어대(釣魚臺)라고도 하며 정자 앞의 연못에는 부평초가 떠 있어서 깊은 고요함이 깃든다.
*방안정(放眼亭) - 당나라 백거이의 "방안간청산(放眼看靑山) 물끄러미 푸른 산을 바라보네."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자 앞에는 나무가 빼곡한 산이 있고 산 아래로 물굽이가 흐르며 동남쪽에는 맑은 연못이 있다. 맞은 편 언덕에는 버드나무가 푸르고 꽃들이 만발하다.
2. 중부
*원향당(遠香堂) - 북쪽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연못이 있고 여름에 부용이 피면 맑은 향기가 멀리까지 퍼진다. 송나라의 주돈이(周敦 )가 쓴 "애련설(愛蓮說)"에 나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따 온 이름이다. 집 주위를 아름다운 비취로 둘러 놓아 화려하고 장중함이 극치를 이룬다.
*설향운울정(雪香雲蔚亭) - 설향은 눈을 꽃의 형상에 비유한 것이다. 당의 한악(韓 )는 "백국(白菊)"이라는 시에서 "정령향설비천편(正怜香雪飛千片) 홀아잔홍복일총(忽訝殘紅覆一叢)-여린 향설이 수천 조각 날리니 갑자기 놀란 붉은 매화가 한 다발이나 떨어지네."이라고 하였고 송의 소식(蘇軾)은 "월야여객환행하(月夜與客歡杏下)-발밤에 은행나무 아래에서 손님과 즐거워하며"라는 시에서 "화간치주청향발(花間置酒淸香發) 쟁만장조락향설(爭挽長條落香雪)-꽃밭에 술을 가져오니 맑은 향기가 피어나고 다투어 끌어당기니 긴 가지에서 향설이 떨어진다."이라고 하였다. 보통 매화를 지칭하지만 매화숲에서는 "향설매"라고도 한다. 설향을 "울"이라고 하는 것은 매화나무가 우거졌다는 것을 말한다. 정자의 옆에 매화가 심어져 있어서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사방에는 대나무가 푸른빛을 띠고 초목이 울창하여 새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울을 따라서 걸어가면 깊은 산중에 있는 것과 같다.
*대상정(待霜亭) - 당나라 위응(韋應)의 "동정수대만림상(洞庭須待滿林霜)-동정산에서는 모름지기 숲에 서리가 가득 내리기를 기다린다."이라는 시에서 따왔다. 동정산에는 귤이 많이 나오는데 서리가 내리면 붉게 익는다. 대상정의 둘레에는 원래 귤이 십여그루 있었다고 한다.
*소창랑(小滄浪) - 맹자(孟子)에 나오는 "창랑지수청혜(滄浪之水淸兮) 가이탁아영(可以濯我纓) 창랑지수탁혜(滄浪之水濁兮) 가이탁아족(可以濯我足)-창랑의 푸른 물은 말기도 하지.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겠구나. 창랑의 푸른 물은 흐리기도 하지. 내 발을 씻을 수 있겠구나."이라는 말에서 따왔다. 소창랑에는 3간의 수각(水閣)이 있고 남쪽으로 창이 나 있고 북쪽으로 난간이 있다. 양쪽으로 물이 있으며 동서로 복도가 있어서 조용한 정적이 감돈다.
*지청의원(志淸意遠) - 의훈(義訓)의 "감심사인지청(監深使人志淸) 등고사인의원(登高使人意遠)-깊이를 알려면 사람을 시켜 뜻이 맑은지를 보고 높이를 알려면 사람을 시켜 멀리 내다보는 지를 살핀다."에서 따 온 이름이다.
*정심정(靜心亭) - 당의 시인 송지문(宋之問)이 지은 "심입청정리(深入淸淨里) 묘단왕래취(妙斷往來趣)-말고 깨끗한 마을에 깊이 들어가니 아리따운 아가씨가 오가는 것을 막고 있네."에서 따온 이름을 둘레가 그즈늑하다.
*옥란당(玉蘭堂) - 일찍이 필화당(筆花堂)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문정명(文征明)이 그림을 그리던 곳이었다. 주변에 옥란을 많이 심어 놓았다. 남쪽 담장에는 꽃이 뒤덮여 있고 호수에서 캐낸 돌을 늘어놓았으며 대나무 숲이 둘러져 있다. 혼자 문을 닫고 깊은 정적에 빠질 수가 있을 것 같다.
*가실정(嘉實亭) - 송(宋)의 황정견(黃庭堅)이 지은 "강매유가실(江梅有嘉實)-강가의 매화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고"에서 따 온 이름이다. 정자의 옆에는 태평천국의 충왕(忠王) 이수성(李秀成)이 가꾸었다는 비파(枇杷)나무가 심어져 있다.
*영롱관(玲瓏館) - 송(宋)의 소순흠(蘇舜欽)이 지은 "월광천죽취영롱(月光穿竹翠玲瓏)-달빛이 대나무 숲을 뚫고 푸른빛으로 영롱하다."에서 따 온 이름이다. 정원에 대나무가 있어서 파란 비취가 방울져 떨어지는 것 같고 영롱관 앞에는 원래 영롱한 빛이 도는 호석봉(湖石峰)이 있었다고 한다. 관 안에는 남조(南朝)의 시인 송포조(宋鮑照)가 쓴 "청여옥호빙(淸如玉湖氷)"이라는 시에서 따 온 "옥호빙(玉壺氷)"이라는 현판이 가로로 걸려 있다. 건물 전체가 아주 단아(端雅)하다.
*투기정( 綺亭) -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기투상전전(綺 相輾轉) 림랑유청형(琳琅愈靑熒)-아름다운 비단이 서로 휘감기니 비단 스치는 소리가 옥같아서 푸른빛이 더욱 영롱하다."를 따서 주변의 풍경을 비단의 아름다움에 비유하였다. 주변에는 모란꽃이 가득 차서 양력 춘삼월이면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옥같이 미소 짓고 향기를 피운다. 정자에 올라가면 사방이 잘 보여서 원 안의 경치를 잘 볼 수가 있다.
*해당춘오(海棠春塢) - 마당안에 해당화가 만개하였으므로 이름을 해당춘오라 하였다.
*은우헌( 雨軒) - 남송 이중유(李中有)의 시에 "은우입추죽( 雨入秋竹) 유승복구기(留僧復舊棋)-미소 띤 빗줄기가 가을 대나무에 깃들면 쉬고 있던 스님이 두던 장기를 다시 두네."라는 시와 송나라 양만리(楊万里)의 "추우탄(秋雨嘆)"이라는 시에 "초협반황하협벽(蕉 半黃荷 碧) 양가추우일가성(兩家秋雨一家聲)-파초가 어우러져 반은 노랗고 연꽃이 어우러져 푸른 빛을 아우르네, 양쪽 집에서 가을비가 내리니 한 집에서 나는 소리와 같다네."이라는 시가 있다. 이 곳에는 파초와 대나무와 연꽃이 잘 갖추어져서 빗소리를 듣는 것이 색다른 정취를 준다.
*의홍정(倚虹亭) - 송의 정구유(程俱有)의 시에 "장제여와홍(長堤如臥虹)-기인 제방이 무지개가 누운 것과 같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정자에는 긴 복도가 있고 그 위에 정자가 있다. 복도를 무지개에 비유하고 복도에 기대는 것을 무지개에 기댄다고 하였다. 물결처럼 빛이 쏟아지면 탑의 그림자가 맺히고 정원은 선경으로 변한다. 정자의 앞에는 명나라의 유물인 석란으로 덮인 작은 다리가 있다.
*녹의정(綠 亭) - 당 장율(張率)의 시에 "집린은번조( 鱗隱繁藻) 반수승록의(頒首承綠 )고기들이 헤엄을 멈추고 울창한 해조 속으로 숨었다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푸른 물결을 일으킨다."라는 시가 있다. 이 곳은 물속의 대나무가 맑고 그윽하여 이름을 녹의정이라 붙였다. 서쪽의 연못에는 수유(垂柳)와 벽도(碧桃)가 심어져 있고 북쪽에는 취죽(翠竹)이 총총하다. 작은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가서 구부러진 다리를 건너면 산 위의 누각이 보인다. 흡사 시골집의 풍경과 같아서 권경정(勸耕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의옥헌(倚玉軒) - 명 문정명(文征明)의 "졸정원도영(拙政園圖詠)"에 "의함벽옥만간장(倚檻碧玉万竿長)난간에 기대어 벽옥이 만개의 장대에 매달린 것을 본다."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향주(香洲) - 당 서원고(徐元固)의 시에 "향표두약주(香飄杜若洲)"라는 구절과 굴원의 "초사(楚辭)"에 "채방주혜두약(采芳洲兮杜若) 장이유혜하녀(將以遺兮下女)"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술이기(述異記)"에는 향주(香洲)를 "주중출제이향(洲中出諸異香) 왕왕부지명언(往往不知名焉)"라고 하였다.
*징관루(澄觀樓) - 징관이란 맑은 마음으로 도를 바라본다라는 뜻이다. "남사 종소문전"에 '늙어서 병이 들면 명산을 바로 보지 못할까 두려워서 오로지 맑은 마음으로 도를 바라보고자 누워서도 유람을 하고 걸으면서 즐기기 위하여 방안에다 그림을 그려 놓고 이리저리 움직여서 가고 싶은 산을 돌아본다'라는 구절이 있다.
*득진정(得眞亭) - "순자(荀子)"의 '지우송백(至于松柏) 경륭동이부조(經隆冬而不凋) 몽상설이불변(蒙霜雪而不變) 가위득기진의(可謂得其眞矣)-송백은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철없는 서리와 눈에도 변하지 않으니 참됨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정자 안에 거울을 걸어두고 원내의 경치를 비치게 하니 "경리운산약화병(鏡里雲山若畵屛)거울 속 동네와 구름과 산이 그려 놓은 병풍과 같다"이라 할 만하다.
*소비홍(小飛虹) - 소주의 여러 원 중에서 유일한 복도식 다리이다. 남조 송포조(宋鮑照)의 "백운시(白雲詩)"에 "비홍조진하(飛虹眺秦河) 범무농경현(泛霧弄輕弦)높이 걸린 무지개가 진하에 비치니 떠가는 안개가 가는 현을 두드린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주홍색의 다리 난간이 물 속에 비치고 물결이 일렁이니 그림자가 마치 무지개처럼 아롱거린다.
*견산루(見山樓) - 진(晉)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동쪽 담장 밑에서 국화를 따서 멍하니 남산을 바라본다."에서 따왔다. 루(樓)의 삼면을 물이 두르고 있고 설향운울정(雪香雲蔚亭)과 의옥헌(倚玉軒), 징관루(澄觀樓)가 언덕을 건너서 마주하고 있다. 충왕 이수성이 이곳에서 정무(政務)를 보았다. 서쪽 가산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루의 정상(頂上)에 이른다.
*별유동천(別有洞天) - "설원(說苑) 모군내전(茅君內傳)"에 "대천지내(大天之內) 유지지동천삼십육소(有地之洞天三十六所) 내진선거소(內眞仙居所)-대천(大天) 안에는 땅에서 볼 수 있는 동굴이 36개가 있는데 그 안에는 진선(眞仙)이 산다."라는 구절과 당(唐) 장갈(張碣)의 "대월시(對月詩)"에 "별유동천삼십육(別有洞天三十六) 수정대전냉층층(水晶臺殿冷層層)-특이한 동천이 36개 수정대전에는 냉기가 겹겹"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신화와 전설을 재현하려는 듯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동굴을 만들고 그 곳를 통과하면 색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처럼 만들었다.
3. 서부
*주육원앙관(州六鴛鴦館)과 십팔만다라화관(十八曼陀羅花館)- 서부에 있는 주건물이다. 앞뒤로 두 개의 건물을 이어서 지었고 가운데 틈 사이에는 은행나무로 만든 목조 병풍이 있다. 북쪽이 있는 것을 주육원앙관, 남쪽에 있는 것을 십팔만다라관이라 한다. 북쪽 건물에는 연지(蓮池)가 있고 그 곳에 원앙이 산다. "진솔필기(眞率筆記)"의 "곽광원중착대지( 光園中鑿大池) 식오색수련(植五色睡蓮) 양원앙주육대(養鴛鴦州六對) 망지란약피금(望之爛若披錦)"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관안에는 여러 가지의 그림과 장식품들이 있고 옛날 식의 가구가 정밀하게 놓여 있다. 남쪽 건물에는 산차(山茶)의 일종인 만다라화(曼陀羅花) 18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른 봄에 꽃이 피면 마치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의양정(宜兩亭) - 당의 백거이(白居易)가 원종(元宗)에게 보낸 "명월호동삼경야(明月好同三徑夜) 녹양의작양가춘(綠楊宜作兩家春)-명월이 서로 좋아서 밤 깊은 삼경인데 푸른 버들은 당연히도 양쪽 집에 봄을 부르네"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 정자에서 서부를 가르는 담장이 있고 이 곳에서 양원(兩園)의 전경이 모두 보인다고 하여 의양정이라 하였다.
*도영루(倒影樓) - 당 온정균의 "조비천외사양주 인과교변도영래"라는 시가 있다. 이 누각 옆에 있는 연못에는 주변의 경치가 거꾸로 보이고 물결이 일렁이면 그림자가 떠다니는 것 같은 풍경이 절묘하다.
*탑영정(塔影亭) - 당(唐) 허당(許棠)의 시 "경접하원윤(徑接河源潤) 정용탑영량(庭容塔影凉)-길은 물가에 있어 촉촉하고 마당은 탑그림자로 서늘하네"에서 따 온 이름이다. 정자의 그림자가 물 속에 비쳐 마치 수중탑(水中塔)을 보는 듯하다. 이 정자는 팔각형으로 지었는데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모든 창문을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졸정원의 건물 중에서 가장 정미(精微)하게 지은 것 같다. 정자 아래의 호수에는 마치 양의 창자와 같이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수면위로 나 있고 사람들이 그곳엣 물결을 감상한다.
*유은각(留 閣) - 당(唐) 이상은(李商隱)의 "추월불산상비만(秋月不散霜飛晩) 유득고하은우성(留得枯荷 雨聲)-가을 달빛은 흩어지지 않고 서리가 늦게까지 날리는데 고요히 앉아서 마른 연닢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이라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누각의 앞에 평대가 있고 그 앞에 연못이 있다. 늦 가을에 이곳에서 비가 마른 연닢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특별한 정취를 자아낸다.
*여수동좌헌(與誰同坐軒) - 송(宋) 소식(蘇軾)의 "여수동좌(與誰同坐) 명월청풍아(明月淸風我)-누구랑 마주앉아야 내게 명월과 청풍이라 할까? "라는 구절에서 따 온 이름이다. 검물을 부채 모양으로 지었고 그 안에 있는 탁자나 창문도 모두 부채 모양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이 일품이다.
*부취각(浮翠閣) - 소식(蘇軾)의 "삼봉이과천부취(三峰已過天浮翠)-세 개의 봉우리는 이미 푸른 하늘에 둥둥"에서 따 온 이름이다. 가산 위에 높이 지어져 마치 나무위에 지은 것과 같다. 누각에 오르면 주변의 파아란 경치를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여 부취각이라 하였다.
여러 건물에 걸린 편액에도 구절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대련과 편액이 즐비하다.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소개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차츰 이 여행기를 보충하여 많은 사람들의 느낌을 대신하겠다. 때로는 서툰 감상문 보다 다른 이들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졸정원을 나와서 소주 명산인 비단공장으로 갔다. 비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은 패션쇼가 열린다. 아이들에게 시간이 있다면 그 과정을 자세히 보게 하는 것이 좋으련만 항주를 향하는 발걸음이 성급하다. 스머펫은 소원이던 중국옷을 사서 즐거운 모습이고 나도 샀다. 꼼꼼한 바느질 솜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약간은 아쉽지만 그래도 색깔이나 모양이 중국스러워서 흐뭇하다. 대로글방의 훈장답게 전세체 글씨가 박힌 짙은 물빛 비단 목도리도 스머펫이 걸어 주었다. 늘 조심스러운 취운당(萃雲堂)은 몇 번이나 망설이더니 검은 색과 빨강색이 조화를 이룬 조끼를 사고 페퍼민트는 예쁜 꾸냥답게 중국 전통의 냄새가 잔뜩 풍기는 원피스를 골랐다. 전통 옷을 산다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흥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는 항주로 향했다. 언젠가 다시 이 아름다운 소주를 찾겠지만 점차 산업화에 밀려 그 정취는 지금보다 못하리라. 여기에서 항주까지는 3시간이 소요된다. 무려 보름이 넘어서 겨우 소주의 여행기를 미진하게 완성하는 나의 게으름처럼 먼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