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글을 잘 쓰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잘 쓰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글을 잘 쓰죠?" 물으면 대개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쓰면 돼요"라고 가볍게 말합니다. 그러면 속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써지면 이걸 묻나? 에이…' 하고 맙니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잘 쓰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요? 세상사는 이치처럼 욕심을 버린다면 뭐든 못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러면 예수나 석가모니지 어디 사람(?)입니까? 그래, 욕심이 생길밖에….
꿈 많았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밝은 표정의 남녀노소가 어울려 있습니다. 정명희 안심초등학교 교감 선생님도 보입니다만 거의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인사를 하며 자료를 집어 듭니다. 그래야 그들과 하나 되는 것처럼.
자료집에서 보면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일근 시인은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오른손잡이의 슬픔>,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등의 시집을 발간했으며, 불혹의 나이에 뇌종양 선고를 이겨내고 새 생명을 얻었다는 설명 등과 작품 해설이 담겨 있습니다.
'오른손잡이의 슬픔'이란 시에서 왼손잡이만 서러운 줄 알았더니 오른손도 슬픔이 있었군 싶습니다.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 철인 요즘, '가을 전어를 살리다'란 제목이 시가 눈에 띕니다.
용주사에서 하안거 마치고 오신 현전 스님 앞에
두툼한 가을 시편들 자랑처럼 펼쳐 놓았는데
시 수십 편 읽으시다 한 줄에 놀라 물러서신다.
칼로 썰어달라니! 시에 피 냄새 진동하는구나!
스님 주장자 들어 내리치신다.
손에 피 묻히지 않고 마음에 피 흘리지 않고
그분의 길 조용조용 따라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 시에서 풍기는 피 냄새 내가 맡지 못했구나
어쩔거나, 저 착한 것들 모두 썰어버렸구나
어쩔거나, 무심한 시가 칼이 되어 생명 저미었구나
가을 전어들 시로 죽였으니 시로 살리기 위해
가을이 오는 바다에 시를 용서처럼 풀어 놓는다
가을 전어들이여, 너희들 살아서 바다로 돌아가시라
몸속 서 말 깨는 탈탈 털어 세상에 던져버리고
현전 스님 들려주시는 화엄경 뼛속 살 속에 담고
그분의 바다로 돌아가 극락왕생 하시라
자료집에 갇혀 있는 정일근 시인을 자유로이 만나는 시간은 정 시인의 시 '둥근 어머니의 밥상' 낭독으로 시작됩니다. 시 창작 기법에 대한 강의가 이어집니다.
시인이 된 것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섭니다. 글을 잘 쓰려면 첫째 손으로 열심히 써야 합니다. 시(詩)를 한자로 풀면 말(言)+사(寺=志)= 말의 사원입니다. 지구가 써놓은 문장이 자연이라면 시는 말의 뜻입니다. 글은 눈이 아닌 손으로 읽어야 합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의 의미로 보면 시인(詩人)과 목수(木手)는 같습니다. 시는 손으로 하는 수공예품입니다. 둘째, 뜻하는 바를 표현하는 어휘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무슨 언어를 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시인은 어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습니다.”
정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시 '어머니의 그륵'을 낭송합니다.
<어머니의 그륵>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릇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륵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정 시인의 시 낭송에 뭔가 기대했는데 감흥이 일지 않습니다. 강좌 분위기 속에 그저 읽어가서 그럴까요? 감흥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기댔나 봅니다. 내 자신의 소릴 듣지 못해서겠지요.
"셋째, 많이 알기 위한 관찰입니다. 예를 들어 다보탑의 탑신은 제일 밑에는 사각형이, 그 위에는 팔각형이, 그리고 원 모형을 하고 있다 합니다. 이를 모아 위에서 보면 모난 것이 깎이고 깎여 결국 원이 된다는 자연의 이치를 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탑 중 으뜸은 다보탑이라 합니다. 이는 관찰하는 것과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관찰은 많은 것을 알게 합니다."
강의 도중 종종 웃음이 터집니다.
정 시인은 "신문기사는 초등 졸, 성인이 되어 10여 년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쓴 글이라 합니다. (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도 여기에 맞춰 쉽게 시를 쓰고자 합니다"라며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강조합니다.
질의응답 후 김정만 회계사의 시골 기와집에서 뒤풀이가 이어집니다. 자리가 비좁습니다. 중년 여성들은 집에 갔겠지 여겼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일 것입니다.
생선회에 소주를 마시던 정 시인, 경상도 사투리로 "내도 울산에 살아 회 많이 무겄(먹었)지만 이리 박스 채 통큰 회를 무거 본 일은 업대이(없다). 여수에 온 나그네 같았는데 자리가 팬허대이(편하다)"고 한마디 합니다.
정겨운 자리 중간, 지역 문학 발전을 위해 힘쓴 신병은 시인에게 감사패를 전달합니다. 갈무리문학회 회원들 "골목에서 후배 막걸리 사주느라∼"로 시작되는 감사패 문구 만드느라 땀 좀 흘렸다 합니다.
신병은 시인은 "(시 쓰는데) 게을러 서러운데 이런 걸 후배들이 주니 남다르다"며 소주 서너 잔에 벌개진 얼굴이 홍시감이 됩니다.
이렇게 서로 부대끼고 어울리면 좋은 세상 될 터인데 세상은 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깊이가 다르겠지요. 글도 마찬가질 거라 생각합니다.
쌀 한 톨이 우리의 밥상에 오르기까지 햇빛, 공기 등 자연과 사람들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해하기 쉬운,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는 사람의 절절한 노력이 더해져야 하겠지요.
노력만 하다 사라지더라도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아름답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