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사령관의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참모들은 ‘박정희의 사람들’로 짜였다. 참모
장 황필주-김용순 준장, 인사참모 박태준 대령, 작전참모 김경옥 대령, 헌병부장
김시진 대령, 비서실장 윤필용 중령, 공보실장 이낙선 소령. 이들은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뒤에도 대통령의 측근에서 보좌하게 된다.
박정희가 군기(軍紀) 담당이기도 한 박태준에게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한 가지는
특이한 것이었다. “후방부대는 일선과 멀리 떨어져 있고 대민(對民) 접촉이 많아서
적절한 훈련을 통해 규율을 확립하도록 해야 하니 그에 맞는 훈련 작전계획을 세우
고, 우리 예하 부대와 부산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체육대회를 동대신동 운동장
에서 개최하는 계획을 세워 봐.”
‘특이한 것’이란 시민과 함께하는 체육대회였다. 왠지 그것이 박태준은 조금도
엉뚱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박태준은 참모들끼리 모이는 술자리에 나갔다. 이튿날
아침에 사령관에게 보고해야 할 일거리가 부담스러워서 빠지고 싶은 생각이
스쳐갔으나 동료들과의 뜨거운 의기투합 자리를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고
한국 육군의 선후배와 동기들이 손에 꼽아주는 ‘주호(酒豪)’의 명예에 구정물
같은 것이 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술자리가 수상쩍게 돌아갔다. 묘하게도 술잔이 자꾸만 자신에게 집중
되는 것이었다. 술을 피하거나 마다할 박태준이 아니지만 주는 대로 그냥 받아
마시다간 어느 순간인지 모르게 낭패를 당할 것도 같았다. 급한 대로 계략을
세워야 했다.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시되, 돌려주는 잔은 약해 보이는 상대부터 하나씩
차례로 집중 공격한다.’
박태준은 자신의 긴급 계략에 대해 농담을 섞어 “내가 군기대장이니 금야
(今夜)의 군기와 같은 주도(酒道)로 삼고 모두가 사수하자”고 제안하여
만장일치의 흔쾌한 동의를 받아냈다. 그리고 곧장 실행에 들어갔다.
그는 다섯 개의 술잔이 차례차례 건너오면 그걸 빠짐없이 다 비우고 찍어둔
한 사람에게만 다섯 개의 술잔을 차례차례 넘겨주었다. 그 계략은 적중이고
만점이었다. 그가 찍어둔 순서대로 한 사람씩 나가떨어졌다.
‘박태준 뻗게 만들기’ 술자리에서 거꾸로 최후 생존자로 남은 그에게 주어진
당장의 임무는 뻗은 동료들을 숙소까지 안전하게 배달해주는 일이었다. 소란
스럽지 않게 동료들을 지프에 태워 보낸 그는 먼저 사무실로 갔다.
자정이 임박했으나 잠자리에 들어갈 형편이 아니었다. 장비소요 계획서를
완성하여 새날 아침 8시에 사령관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는 찬물로 세면부터
하고 책상에 앉아야 했다.
이튿날 아침에 인사참모가 보고서를 끼고 사령관실로 들어섰다. 박정희는
반가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네는 무쇠덩어린가? 어젯밤에 뒤치다꺼리까지 했다며?”
“벌써 보고를 받았습니까?”
박정희가 빙긋이 웃었다. 비로소 박태준은 간밤에 자신이 ‘사령관의 계략’에
걸렸다가 긴급히 세웠던 그 ‘주도(酒道)의 계략’으로 무사히 벗어났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실이었다.
그것은 박정희의 박태준에 대한 마지막 시험이었다. 인사참모에게는 내일
아침 8시에 주요업무에 대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다른 참모들에게는
‘오늘밤 박태준에게 술을 실컷 먹여서 뻗게 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한가로운 후방부대에서 거사를 꿈꾸는 박정희에게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
했다. 신념과 포부의 차원에서, 능력과 신의의 차원에서 ‘진짜 동지’를 발굴
해야 했다. 이제 박태준은 박정희의 관문을 완전히 통과한 동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