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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연재 ①
멸치 때문에...
1번 권오웅
웅께서는 반찬이 별로 없을 때에도 마른멸치만 있으면 곧잘 그것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반찬 투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잔소리 같기는 하지만 반찬을 만들기 싫으면 마른멸치라도 준비해 놓으라고 부인인 숙에게 귀가 닳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멸치잡이의 흉년으로 인해 멸치 값이 너무나 올라 버린 탓으로 한동안 숙은 마른멸치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멸치를 좋아하던 웅도 그 동안 멸치를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97년의 새해가 밝자 시청에서 영세가정으로 1.5Kg들이 마른멸치 한 박스를 선물했습니다. 숙은 그 선물을 받아 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전해 주던 면직원에게 열 번도 더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웅이 연구하고 있는 컴퓨터실로 선물 받은 마른멸치를 갖고 가서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좀 봐요, 마른멸치예요. 시청에서 주었어요. 참 맛있게 생겼지요?”
숙은 대단히 만족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자랑을 했습니다.
웅도 하던 일을 멈추고 군침을 삼키며 멸치박스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야! 맛있겠는데...”
웅은 멸치 한 마리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와작와작 씹어 멸치 맛을 음미했습니다. 그러더니 연해 서너번 멸치를 집어먹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숙은 진작에 반찬으로 마른멸치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죄스럽게 여기며 눈물 한 방울을 톡 떨어트렸습니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 자꾸만 집어먹는 웅에게서 멸치박스을 빼앗으며,
“이제 고만 먹어요. 가만 놔두면 다 먹어 버리겠네.”
하고 뺏은 멸치박스를 가지고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 다음호 ②에 계속...
그날밤,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웅과 숙은 예와 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김치와 된장, 고추장, 콩조림과 깻잎 등의 반찬 그릇을 늘어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웅은 낮에 맛보았던 멸치생각이 나서 통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숙에게 멸치 좀 달라고 했더니 숙이 멸치를 한 접시 담아 왔습니다.
그제서야 웅은 진수성찬이라도 만난 듯이 꾸역꾸역 밥을 먹었습니다. 밥 한 숟가락에 멸치 한 마리씩 잘도 먹었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절로 군침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물도 한 모금 안마시고 밥그릇을 비워 가고 있는 웅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숙이 불쑥 한마디 했습니다.
“나도 멸치 한 마리만 줄래요?”
물론 웅한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웅은 서슴없이 멸치 두 마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숙의 손에 보석이라도 선물하듯 고이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웅의 혀끝에서,
“아깝다.”
라는 말이 새 나와 버렸습니다.
그것은 진정 숙이가 먹어 없애는 멸치가 아깝다기보다 단순히 그릇에 담긴 멸치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그리고 어쩌면 작은 유머를 파생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재치였지만 숙은 자신이 먹는 멸치가 아까워서 그러는 줄 알고 대뜸 토라져 버렸습니다.
“안 먹어! 내 먹는 것이 그렇게도 아까운데 뭐.”
숙은 받아 든 멸치를 멸치그릇에다 홱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퍼질고 앉아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습니다.
----------------------------------------------------------▶ 다음호 ③에 계속...
웅이 내뱉은 그 “아깝다.”라는 말이 매우 서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런 생각지도 않았던 사태에 난처해진 웅은 아무런 생각 없이 해버린 자신의 말에 후회를 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숙이를 달래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멸치그릇을 통째로 숙이 앞에 옮겨 놓으며,
“이거 다 먹어라. 괜찮다. 숙이가 먹는 것은 하나도 안 아깝다.”
하고 말했지만, 숙은 웅이 내민 멸치그릇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제법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까지 하였습니다.
“내가 흑 이 집에 흑흑 시집와서 흑 흑흑 살았던 게 흑흑 바보 흑 지….”
웅은 정말로 난감해졌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소릴 곧 잘 해왔던 터라 그 소리가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외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웅은 더 이상 위로의 말로는 숙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극약 처방으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해 주고 걸레를 빨아서 구석구석 방을 닦았습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숙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렇지만 숙의 마음은 한없이 서러울 뿐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다음호 ④에 계속...
그래도 웅은 구겨지는 자존심을 참고 견디며 방 닦은 걸레를 세탁기 옆에 가만히 갖다 놓은 뒤에 평소에 숙이가 하던 대로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찻물을 얹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웅의 생각에는 구수한 둥글레차라도 한 잔씩 타 마시고 가벼운 뽀뽀라도 해주면 숙의 마음이 풀리리라 여겼습니다. 그런 멋쩍은 상상 속에 웅은 싱크대를 뒤져서 둥글레차를 찾았고 그것으로 따뜻한 둥글레차 두 잔을 만들었습니다.
“자. 이거 마시고 속 풀어라.”
웅은 숙이 앞에 찻잔을 밀어 놓으며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리고 숙의 반응을 살펴가며 타협 반 협박 반으로,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도 썽난데이.”
“······”
“얼릉 마시고 우리 정 때문에 보자!”
“······”
“내 돈 많이 벌면 멸치보다 더 맛있는 굴비라도 실컷 사줄께.”
“······”
“아이 참, 계속 그렇게 성질 돋꿀래?”
“······”
“그게 그렇게 분하나? 아직도 내 맘을 그렇게 모르고···.”
“······”
웅이 어지간히 타협을 해 볼라 해도 마음의 문을 꽁꽁 닫은 숙이한테는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웅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먹기 싫으면 치왔뿌레라. 까짓거. 그 말이 뭐 그클 서럽따꼬 이클 고집을 부리는지 내사 모르겠다. 남자가 그만큼 미안해했으면 됐지 뭘 워예자꼬 그래가 있노? 정 억울하면 한마디 해 봐라? 찬바람만 씽씽 풍기지 말고···.”
“······”
“조오타! 인젠 말도 하기 싫은 모양인데, 잘 됐다 나도. 니사 그래가있따 디지든 말든 나는 모르겠다. 에이- 속상해!! 에-이.”
제바람에 더 흥분된 웅은 열을 퍽퍽 내 가면서 큰소리를 쳐 댔습니다.
그리고는 다 식은 둥글레 차를 단숨에 마셔 버렸습니다.
----------------------------------------------------------▶ 다음호 ⑤에 계속...
그러는데도 숙은 여전히 침묵한 채 얼굴 표정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주변은 서릿발이 하얗게 서릴 만큼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마치 시베리아 벌판에서 식인 상어의 이빨을 대한 듯한 공포가 소낙비를 쏟아 부을 먹구름 같이 막 밀려드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기에 웅도 빨리 그 자리를 피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마신 찻잔을 안 마신 숙의 찻잔으로 던지다시피 밀쳐놓으며,
“그래, 그 고집으로 온 집안을 한 번 꽁꽁 얼가 봐라!”
하고 돌아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빈 찻잔이 깨지면서 숙의 찻잔을 넘어뜨려 쏟아 버렸습니다. 그러니 찻물은 찻상을 타고 흘러 온 방바닥을 어지럽혔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그 사태에 웅은 자신의 행동이 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속상하기도 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그때서야 숙이 비아냥거리고 나섰습니다.
“으이구 씨…. 잘 한다 잘해! 깨는 김에 아주 다 깨 버리지 왜?”
하고 매우 못마땅한 듯이 웅을 노려보았습니다.
그 바람에 웅도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올라
“깨라면 못 깰 줄 알고….”
하면서 찻상에 나뒹구는 성한 찻잔을 집어 들더니 이미 깨진 찻잔 위로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에 자기로 된 찻잔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 조각들은 유리 파편보다 더 날카롭게 변하여 웅의 손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웅은 아픈 줄을 몰랐고 손에서 피가 나는 것도 몰랐습니다.
----------------------------------------------------------▶ 다음호 ⑥에 계속...
그 소란스러움에 뛰쳐나온 예가 피투성이가 된 웅의 손을 보고
“아빠! 손에 피가 나요. 큰일 났어요.”
하며 지레 겁을 먹고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그렇지만 웅은 피가 샘솟듯 철철 흐르는 손을 그냥 물끄러미 내려다 볼 뿐 더이상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폭한 행동 또한 멈추었습니다.
숙도 그 순간적인 파괴의 현장에서 꼼짝없이 얼어붙었습니다.
그 살벌한 침묵 속에서 예만 몸이 달았습니다. 화장지를 죽 뜯어다 웅의 손에서 나는 피를 닦았습니다. 화장지는 갖다 대기가 무섭게 빨간 피로 물들었습니다. 다시 뜯어다 대면 금세 빨개지고 또 뜯어다 대면 붉은 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닦아도 닦아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솟구치는 피 때문에 예는 더욱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아빠! 보건소에 가 보세요. 치료를 받아야 해요. 얼릉요?”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래도 숙은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난장판이 된 찻상이고 방바닥이고 피투성이가 된 웅의 손바닥이고 예의 눈물이고 간에 자기와는 무관한 일인 듯 꼿꼿이 자리를 지키며 공기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이미 가정을 포기한 기색이 잔뜩 배어 있었습니다. 그까짓 멸치 한 마리를 아까워하는 남편과는 조금도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웅도 숙의 그것을 읽었습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하물며 인간인 웅이 숙의 그 속마음을 모를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웅은 더 속상했고 더 서러웠습니다. 예와 성만 없어도 마구 자해를 해 버리던가 집을 아예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습니다.
----------------------------------------------------------▶ 다음호 ⑦에 계속...
정말이지 누군가가 조금만 건드려도 웅은 금방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 숨막히는 초긴장 상태에서 모두들 생지옥의 가슴 떨림을 체험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 집에는 뭐하고 있노?”
하며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이웃 아줌마가 불쑥 들어왔습니다. 그 바람에 웅은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들에 대한 죄책감이 앞서서 몹시도 부끄러워하며 아직도 피가 흐르는 손에 화장지를 둘둘 말아 쥐고 컴퓨터실로 피해 갔습니다.
그때 이웃 아줌마는 눈앞에 어질러진 사태에 몸 둘 바를 몰라서
“이게 뭔 일이노? 쪼끔씩 참으마 될껜데…”
하며 깨진 찻잔 조각을 주워 모으며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숙에게 뭐라뭐라 속삭이더니 자신의 부부싸움 얘기를 해가며 그 어설픈 뒷정리를 숙이 대신에 말끔히 해치웠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숙에게 뭔가를 당부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사이 예와 성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언제 잠들었는지 조용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웅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달래려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렸지만 생각은 온통 숙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숙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은 컴퓨터와 함께 지샜습니다.
숙도 역시 웅을 원망하며 어찌어찌 자리에 눕긴 했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벌겋게 뜬 눈으로 수천 번도 더 보따리를 쌌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꿈속에서 기와집을 짓는 것에 그쳤을 뿐 실행에 옮기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당장에 날이 새고 나니 예와 성이 학교에 갈 준비를 했고 그 초롱초롱한 눈빛 속에는 금방이라도 ‘엄마 도시락은? 차비도 줘야지? 용돈도 좀…’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 다음호 ⑧에 계속...
그래서 숙은 지난밤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여느 때처럼 동동거리며 아침을 준비하여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웅에게도 아침을 먹으라며 마른멸치 한 접시를 곁들여 밥상을 차려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웅은 숙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려 놓은 밥만 먹고는 또 컴퓨터실로 가 버렸습니다. 어떻게 화해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뚜렷한 명분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내다 보니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말문이 막히고 자존심이 굳어졌습니다. 숙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상태로 한 달을 보내고 두 달을 보냈습니다. 가정이 영 썰렁했습니다. 예와 성도 부모의 눈치만 살필 뿐 조용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인데 용하게도 모두들 그 속에서 자신이 맡은 일은 꼬박꼬박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바뀌어 초여름이 되었습니다. 웅은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갔습니다.
어느 집 담장위에 줄장미가 빨갛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로 그날이 웅과 숙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바로 그거다!’ 웅은 참 좋은 생각을 해낸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주히 시내를 돌아 다녔습니다. 소갈비를 푸짐히 사고 숙에게 편지를 쓰고 비싼 굴비도 4마리나 포장해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안개꽃을 덮고 열 세 송이의 빨간 장미로 보기 좋은 꽃바구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숙을 깜짝 놀라게 할 양으로 일부러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벌써 어두워진지 오래인데 불도 켜지 않은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숙은커녕 아이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웅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전 내내 잔뜩 찌푸리고 있던 숙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기어이 가 버렸나?’
웅은 점점 조급해지는 마음에 연이어 줄담배를 피워 댔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민숭맨숭한 방으로 들어온 웅이 형광등을 켰습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작은 쪽지 메모가 있었습니다.
“예아빠! 미안해요. 저녁은 부엌에 차려 놓았어요. 그럼 행복하게 잘 사세요.”
-속 좁은 숙이가-
웅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진작에 조금만 더 잘 해줄걸’ 하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일단 저녁을 먹고 사라진 숙과 아이들의 행방을 찾아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웅은 힘없이 꽃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의 전등을 켜니 예전보다 훨씬 더 큰 상이 부엌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을 덮은 하얀 백지 위에는 -그놈의 멸치 때문에...-라는 글귀가 마른멸치 몇 마리와 함께 웅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놈의 멸치 때문에 내 손등엔 장미가시 같은 흉터가 생겼고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것 같다. 이 메꼬기 이루꾸야!”
웅은 상위의 멸치를 와작 씹어 버릴 양으로 움켜 잡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정전이 되는가 싶었는데 웬 오색등불이 반짝거리며 켜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알고 있었지~♬ ♩….하고
결혼기념일 노래가 낮은 볼륨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 갑작스런 사태에 휘황해진 웅 앞에 제법 예쁘게 치장한 숙이 예의 방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때 천정에서는 잘게 자른 색종이 가루가 흩뿌려졌습니다.
“예아빠, 놀랬지요?”
“그래 놀랬다. 이만한 준비를 누가 다 했노?”
“나중에 가르쳐줄께요. 우선 상이나 걷어 봐요.”
웅은 별로 다그치지도 못하고 숙이 시키는 대로 상위에 덮여진 하얀 종이를 걷어 냈습니다. 정말이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습니다. 그 가운데 놓인 케잌에는
★축. 제13회 웅+숙 결혼기념일★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엉거주춤 정신을 못 차린 웅이 겨우 상황을 판단하고 한 손에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숙에게 건넸습니다.
“자, 그 동안 미안했다. 이거 받고 속 풀어라!”
숙도 생전 처음 받아보는 꽃 선물에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분명 장미를 닮았을 것입니다.
“고마워요. 예아빠.”
숙은 아무도 몰래 눈물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렸습니다. 웅도 콧등이 시큰거렸습니다. 그제서야 예와 성이 박수를 짝짝치면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엄마 아빠, 이제는 싸우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그래. 이제보니 다 컸구나. 이런 생각도 다 할 줄 알고…. 기특한 것들….”
“그러고 있지 말고 어서 저녁을 들어요. 밥만 푸면 되니까.”
“에이 엄마는…. 먼저 케잌을 잘라야지!”
“참, 그렇다. 케잌 자르는 칼이 어디 있지?”
“그것보다 꽃바구니를 먼저 풀어 봐요. 그 속에 내 마음을 담은 편지도 있으니까?”
“가만있어라 보자. 무얼 먼저 해야 되나?”
숙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웅도 마찬가지였고 예와 성도 덩달아 그러했습니다.
모두들 차려 놓기만 한 음식에 배가 부른지 먹을 생각은 않고 한마디씩 깨를 볶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밤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 끝
그 동안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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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제8회에 걸쳐 금춘가족지에 연재한 권오웅의 꽁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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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글이군요. 마른 멸치를 좋아하는 웅, 면에서 멸치 한 푸대를 선물로 보내오고, 결국은 멸치 한 마리 때문에 부부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군요. 그리고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지나도 화해를 못했군요. 제13회 결혼 기념일날 시내에서 꽃다발과 조기 등 음식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자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이들과 집을 나간 것으로 생각하고 절망을 하는데 오색등불이 들어오는군요. 아내도 화해를 하려고 많은 음식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콩트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실화에 약간의 해피엔딩을 가미했던 글. 금춘가족지 초기에 빈공간을 채우려고 써봤던 꽁트, 그 멋모르고 썼던 글을 정리하다가 읽어보니 그래요. 참 눈물나는 현실을 그래도 슬기롭게 잘 견뎌왔단 생각이 듭니다. 삶이란 지난 과거따윈 상관도 없습니다. 지금 현실에서 마음이 행복해야 합니다. 김선생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멸치에 얼킨 부부쌈을 콩트로 재미있게 쓰신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요. 아내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는답니다.
결국은 결혼 13주년 기념일에 맞춰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군요.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나 봅니다.
그때 예 아빠 속 마음은 어지간히 탓겠습니다.ㅎㅎㅎ.
아무튼 긴글 쓰시느라 수고 하셨구요 즐겁고 행복한 휴일 되세요.^*^
예, 속 많이 탔었지요. 모두 내 기준에 맞추려고 했던 탓입니다.
미래가 좀 못해 지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아무렇게나 살았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요.
아직도 짝짝맞게 손맞춰 살지는 못하지만, 참 많이도 누그러졌습니다.
아...부부싸움을 아주 재미나게 하셨군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장시간 수고 하셨어요...(*^^)~~
재미있어 보이십니까? 우린 알콩달콩 요렇게 삽니다.
그게 13년전 이야기니까...
아직도 안깨지고 사는거보면 참 용하지요?
선생님의 장편소설 잘읽었습니다 다음에안동갈때 미꾸라지보다 적은멸치 사갈께요 그리고 명심보감 댁에는 미꾸라지 사갈께요 부부란 외롭게 만난 사이니 서로서로 이해해가며 살아야하겠지요.
예, 그때 그시절이 떠오릅니다. 꽁트 글 쓰게한 마른멸치가 이렇게 육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군요. 멸치 사오신다는 말씀 듣기만 해도 감사합니다. 숙표아내는 지금도 김장준비 하느라 분주합니다. 저는 별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방해만 되는데도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무지 고맙습니다.
진솔한 생활의 냄새가 묻어나네요..글의 내용과 같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불미한 일 가운데 90%이상이 자질구레한 일에서 비롯되고 그 대부분이 생각없이 툭 뱉은 말 한마디로 부터 시작 됩니다..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과 같이 뾰족한 말 한마디가 모든것을 파괴 할수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말 한미가 어떠한 무기보다도 무서운 것이네요..
그래요. 그 말 한마디. 내키는대로 뱉으며 살면 스트레스는 좀 덜 쌓일지라도 아차하면 상대의 맘에 거슬려 싸움으로 이어지기 쉽상이지요. 일심동체인 부부지간이라 해도 자존심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함부로 지적하거나 잔소리 하면 그 화근의 불씨가 불로 번지는 겁니다. 그런대도 삶이란 늘 그런 것들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