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좋아 문인의 길을 걸어왔다는 박영자 충북여성문인협회장의 모습에서 강한 신념이 묻어 나온다.
지난 39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는 평범한 주부로 돌아가 귀여운 손녀딸의 재롱하나만으로도 금세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지는 박영자 충북여성문인협회장(64?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아이들이 좋아 교직의 길을 걸었고, 글이 좋아 문인의 길을 걸어 왔다는 그녀는 작은 체구의 여린 모습이었지만, 누구보다 강한 신념을 지닌 여성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거나 개성 넘치는 학생은 아니였던 것 같아요.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였어요. 아버지가 사다주신 책들을 보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타기도 했어요.”
그녀가 글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게된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가장 컸고, 교직생활을 마감한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제자들에게 ‘글 쓰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1960년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초등교원으로 교직생활을 시작한 박 회장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고, 특히 글짓기 지도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아이들이 서서히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어요. 제자 녀석들이 전국대회에 나가 여러 번 입상해 올 때면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구요.”
그녀가 글 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84년 공모전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시 KBS에서 현직교사들을 대상으로 체험기를 공모한 ‘사도실천기’공모전에서 그녀는 전국에서 몰려든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이였기 때문에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죠. 200만원의 상금으로 뭘 할까 생각하다가 제자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부했는데, 그래서 그 상이 더 값졌던 것 같아요.”
그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 회장은 지난 1990년 수필 ‘그 곳에 두고 싶다’로 처음 등단했다.
등단작품과 함께 지난 99년 충북수필문학상을 거머쥐게 한 수필 ‘유리’는 그녀가 아끼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이밖에도 2003년 수필집 ‘은단말의 봄’을 통해 청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교직생활로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도 꾸준히 문인으로서 활동했다. 4년 간 충북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 한국수필작가회에서 해마다 동인지와 문집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때문에 때론 고통의 순간을 느끼면서도 삶의 의지가 되기도 하죠.”
박 회장은 일주일에 한번씩 동료교사들과 산에 올라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요즘은 작품활동과 산책 그리고 손녀딸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일상이 돼버렸다.
지금 그녀의 가장 큰 소망은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서 또 한번 수필집을 펴내는 것이다.
“가정생활과 문학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정말 힘들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글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나를 지탱해주기 때문이에요.”
첫댓글 우리 회원님들께는 공지 사항으로 올려드립니다. 박회장님 화이팅입니다.
진짜 멋지다.!!!!
회장님, 힘찬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