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Guevara 영원한 게릴라_ 체 게바라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으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1956년 멕시코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
'그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
너무나 인간적인,그리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라는 이름은 평범한 스페인어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단 순한 이름 이상의 것이 된다. 혁명과정에서 게바라 스스로가 붙인 체 는 스페인 말로 어이 친구 정도지만 바로 이 이름이 격정의 60년대 를 뜨겁게 살다간 한 완성된 인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 로사리오에서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 가정 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당시 그가 두 번 에 걸쳐 실시한 남미 전역 여행은 게바라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여행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지켜본 게바라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세상을 위해 인술을 펴겠다는 꿈을 품었던 햇병아리 의사의 가슴에 '변혁'의 열망을 심은 것은 칠레 추키카마타 구리광산의 모습이었다. 미국인 광산소장이 하루 수백만달러의 수익을 거둬가던 광산의 거대한 노동자용 공동묘지. '얼마나 묻혔나요?' '대략 1만명' '미망인들과 자식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나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본 질적으로 이 세계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 게 된 것이다.
53년 과테말라로 간 그는 과테말라의 진보정권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쿠데타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미국이 진보적 정부를 반대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후 멕시코로 간 게바라는 56년 7월 피델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쿠바혁명 계획을 세우게 된다. 게바라는 같은 해 11월 80여명의 전사와 함께 쿠바에 상륙하지만 독재자 바티스타 정부군에 발각돼 거의 전멸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전설적인 쿠바혁명의 신화가 창조됐다. 게바라, 카스트로 등 몇몇 생존자들은 마에스트라산맥 에 숨어 게릴라활동을 벌이며 혁명군을 모은다. 이들은 수만명의 바티스 타 독재정권의 군인들을 상대해오다 58년 산타 클라라전투에서 승리하면 서 승기를 잡는다. 결국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59년 1월2일 수도 하바나에 입성한다.
그뒤 쿠바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을 역임했고, 공산권과 제3세 계를 돌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이때부터 검은 베레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러나 1965년 4월 쿠바혁명을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보장된 2인자자리를 스스로 내던진다. 쿠바 국립은행총재 재직당시 사탕수수밭에서 노동하던 모습으로 민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은 그가 대신 선택한 삶은 당시 내전중이던 아프리카 콩고로 가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 하는것이었다. 그 1년 뒤 게바라는 우루 과이의 비즈니스맨으로 가장해 볼리비아로 숨어들어갔다. 게바라가 볼리비아를 택한 것은 볼리비아가 5개국과 국경을 접하는 등 혁명의 불씨가 남미 전역으로 잘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67년 10월9일.31세의 나이에 쿠바혁명을 이끈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1년전 남미민중해방운동의 요충지인 볼리비아로 숨어든 그는 볼리비아정부군을 지원하는 미국 CIA의 정보망에 걸려 죽기 하루전 체포된 뒤 다음날 바로 처형당하고 만다. 인간만을 믿으며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체 게바라.1956년 멕시코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은 39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 그의 진면목을 엿보게 한다.
Che Guevara
체 게바라, 남미의 예수
순례자의 마음으로 찾은 혁명가가 숨을 거둔 산골마을 라이게라… 광장에는 거대한 상이 서 있고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네
일생을 게릴라로 일관한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가 오늘날 되살아나고 있다. 67년 체포되어 처형당한 체 게바라가 30년만에 유럽을 강타하고 드디어 한국에까지 게바라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일생을 다룬 소설에서부터 평전, 게바라의 얼굴을 그려넣은 시계, 재떨이, 티셔츠 등이 불티나듯 팔리며 게바라의 부활을 실감케 하고 있다. 96년 스위스의 한 신문에서는 유럽에서 불고 있는 '체 게바라' 열풍을 특집으로 다루며 '혁명은 끝나고 공산주의도 몰락했는데 게바라만은 살아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3천부를 넘기 힘든 평전의 판매 부수가 한달만에 2만부를 넘기고 있고 체의 이름을 딴 까페까지 인기를 끌 정도이니 체 게바라가 시대를 역행하며 살아있는 셈이다.
하지만 체 게바라 열풍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배지를 달고 다니는 젊은이들은 혹시 낭만적 혁명가로서의 반항적 이미지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치열한 그의 삶과 문제 의식을 떠나 브로마이드 속의 반항적 이미지만을 쫓는다면 게바라의 부활은 박물관의 미이라와 다를바 없다. 평전 속에 나타난 그의 삶과 문제의식을 돌아보며 과연 21세기의 체 게바라가 살아남은 진정한 혁명가인지 환영에 지나지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바라가 유럽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죽는 날까지 권력을 등진채 게릴라로 일관한 전설적인 삶 때문이었다. 쿠바 혁명을 완성하는 순간 모든 권력과 특례를 버리고 다시 게릴라가 된 게바라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체 게바라 열풍이 게바라의 시대정신과 치열함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 우려된다.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지 않은채 게바라의 브로마이드와 상품속의 이미지만을 쫓는 것은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기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게바라의 치열한 삶과 시대정신인가, 아니면 고독하고 우수에 젖은 게릴라의 이미지인가?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 책과 사람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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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꿈꾸는 정원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희라
첫댓글 체 게바라....영원히 세계사에 남을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