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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4구간(건의령-댓재) 산행기
오늘은 외지에서 일박하고 산행을 연속해서 하는 날이다. 광복절 연휴를 이용해 두 구간을 이어서 진행하게 되었다. 내일 일찍 산행에 나설 것을 의식해 식사를 마치고 들어와 글을 조금 쓴 다음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숙소로 이용한 목욕탕 방에서 새벽 2시 30분 잠에서 깨었다. 깨어보니 긴 방에서 일행이 드문드문 떨어져 자고 있었다. 여름철이라 제대로 되 방도 아니고 이부자리 없이도 별 문제 없이 숙박을 했다.
처음 백두대간 산행을 2박 3일로 할 때 술을 좀 많이 마셨다가 고생한 일이 있은 후로는 산행시에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숙박까지 하며 연속 산행을 한다 생각하니 마치 내가 전문 산행인이라도 된 듯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연속 산행을 해야 산행 차수를 줄여 시간을 절약 될 수 있다.
밖에서 비 오는 소리가 크게 들려 오늘 산행이 걱정이 되었다. 이런 비속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심란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와 글을 썼다. 잠시 후 이대장이 깨어 있었는지 일어나며 깨울 시간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윽고 3시가 되자 그가 기상하며 불을 켰다. 이대장이 조금도 시간을 늦게 봐줄리 없었다.
하지만 다들 마음 준비가 되어 있던터인지 모두 별 뒤척임 없이 깨어 세수를 하러 갔다. 목욕탕이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세수하기 좋았다. 나도 일어나 어제 세탁해 사우나 탕 등에서 말린 빨래를 걷고 배낭을 꾸리고 채비를 했다.
짐을 다 챙기고 나오다 보니 계단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일찍 나서는 손님들을 친절히 배웅해 주었다. 차가 도착한 곳은 해장국 집이었다. 이른 시각이지만 예약을 해두어서인지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점심 식사로 먹을 두 공기 밥도 부탁하고 어제 기사분이 사놓은 수박도 쪼개 각각 용기에 나누어 넣었다. 식당 주인이 어디로 가느냐고 해서 건의령이라고 하자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상사미동이라고 하자 “알겠다”고 했다.
출발장소로 갔다. 한동안 어둠속 빗길을 올라갔다. 어제 내려온 길이다.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사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졸리는 순간에서 바로 주룩주룩 내리는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어서 제대로 잠을 청하지도 못한채 5시 10분 출발 장소인 건의령에 도착했다.
차가 도착할 즈음 차 안에서 출발 준비를 했다. 말린 양말을 젖은 신에 신으려니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함께 숙소를 쓴 홀대모는 따라 나오지 않고 좀 더 있다가 천천히 가겠다고 했다.
5시 10분 산행을 시작해 숲길에 들어섰다. 마른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아직은 온 몸이 안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이런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완만한 숲길을 오르다 푯대봉이 100M 남은 지점에 당도했다. 이대장이 용무를 보겠다며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려 함께 먼저 가라고 했다. 뒤의 일행이 도착하여 우측으로 꺽인 길을 걸어가다 잠시 후 내림길을 걸었다. 그리고 낮은 지대로 내려서 한동안 평지 같은 완만한 길을 에둘러가다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5시 55분 앞에 보인 봉우리에 도착했다. 뒤의 일행이 따라 오는 것을 확인하며 걸었다. 다시 좌로 급히 꺽여나가는 내림길을 걸었다.
내림길을 걸어가다 앞이 트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트인 곳으로 나가니 앞에 초지 같은 경사지가 펼쳐 있고 우측으로 봉우리가 보였다. 오름길 좌측에 운해가 보였다. 느린 길을 걸었다. 안부를 지나는 곳부터 초지가 되어 있고 그 옆으로 오름길이 나 있었다. 오름길을 걸어 6시 3분 급경사오름길을 걸었다 봉우리 당도하여보니 뒤로 봉우리가 보였다. 6시 24분 다시 그 봉우리에 올라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마치고 내림길을 걸어가다 6시 31분 다시 오름길을 걸어갔다. 오름길 경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오름길이 길게 느껴졌다. 실제보다 훨씬 큰 산을 오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제 상황과 달리 새로운 구간의 느낌을 자아냈다. 급경사진 길을 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도상으로는 북쪽으로 곧게 벋쳐가는 길이다.. 그러한 산세의 느낌이 깊이감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이지역의 삶에 바탕한 이야기들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6시 37분 다시 봉우리 오름 6시 55분 신발 물 쿨렁거림 오르막길 걸었다. 나는 계속해서 앞서 걷고 있었는데 3km에서 쉬었으니 구부시령까지 가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지나는 이정표는 각각의 사연이 써 있는 곳이 많아 지역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평소 같으면 하늘이 훤히 밝았을 시각인데 비가 많이 내려서 숲길이 깜깜했다. 연일 계속되는 비에 심리적 부담이 커진 상태에서 견디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 비를 밪다 보니 행동이 제약되고 마음도 편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꼬박 이렇게 견뎌내야 할 것 같았다. 7시 23분 구부시령 0.7km 지점에 당도했다. 트인 느낌이 들었다. 내려가면 구부시령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두 번이나 봉우리에 올랐다. 바람 추위가 느껴졌다.
구부시령에 먼저 도착했다. 구부시령은 태백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대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옆에 세워둔 표지판에 그 곳에 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오지에서 생겨나는 전설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오는 날 어둡고 을씨년스런운 풍경이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듯 했다.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한 여인이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곳에 사람이 다니는 길의 흔적은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근처 사람들이 삶의 영역에서 다니던 길목과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너른 도로가 나올 때보다 훨씬 지역적 특색다운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뒤의 일행이 도착했는데 주변이 깜깜하여 가까이 당도할때야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한 후 7시 46분 이대장에게 선두에 서라고 하며 뒤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그리고 8시 앞에 공터로 길이 트여 나가는 곳을 지나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계속해서 비가 와서 어두운 숲길을 걸어갔다. 오름 길 끝이 다시 환해지며 정상에 다다르는 느낌이 들었다.
8시 15분 덕항산에 도착했다. 주변으로 무성한 숲이 둘러쌓여 정상 봉우리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옆에 철탑 구조물 위에 감시 초소가 지어져 있었다. 덕항산은 태백 하사미와 삼척 신기면과의 경계에 솟아있는 산으로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오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편편한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고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주변이 깜깜하였다. 오르길을 걷다 내림길을 걸어가니 우측으로 철계단이 보였다. 거기서 대간길은 좌측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꺽이는 지점에 서 있는 나무에 3단으로 빨강 버섯이 자라나 있었다.
그 길로 내려가 8시 29분 덕항산 정상으로부터 0.4km 지나온 쉼터에 도착했다. 거기서 환선봉까지는 1.4km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예수원 방향 표시와 골말이 1.9km로 되어 있었다. 건의령부터 오늘 지나가는 구간은 곧바로 북쪽으로 향해 뻗친 구간이었다. 대간 마루금 좌측으로는 정선, 강릉, 홍천, 인제가 연이어 있고 우측으로는 태백, 삼척, 동해 양양, 속초, 고성이 연이어 있는 긴 구간이다. 하지만 비가 와서 걷는 동안 조망이나 주변 경치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채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환선봉을 가는 동안 우측이 벼랑지대여서 계속해서 위험표시와 안전 줄이 쳐 있었다. 그 아래 환선 계곡에 있다. 이 지역은 대이동굴지대에 속하는데, 그 계곡 인근에는 환선굴등 동굴이 많은 환선굴을 포함하여 관음굴, 사다리바위바람골, 양터목세골, 덕밭세굴, 큰재세굴, 등의 6개의 동굴이 분포하고 있다. 근방 200여만평이 천연기념물 제 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환선굴만이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는 상태이다. 넓은 동굴안에 40여개의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굴이 아닌 심산유곡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한다. 동굴이 많은 것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 편석도 석회암이다. 삼척은 동굴 관광의 고장이라 불릴만큼 동굴이 많다. 석탄을 파면서 생긴 동굴도 많다.
8시 50분 환선봉에 도착했다. 그 곳에도 우측아래 절벽 경계에 안전을 위해 줄을 쳐 놓았다. 이대장이 배가 고프다면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가자고 했다. 뒤에서 강건축사가 “대장이 좋~고만, 박사장이 밥먹고가자고 했으면 ‘참아‘ 라고 햇을 것 같은데” 하고 농담을 했다. 일행은 아침을 먹은 식당에서 싸준 밥과 라면을 끓여 나누어 먹었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그렇게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기운이 회복되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칠 즈음 다시 비가 내려서 여기서 식사를 하게 된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9시 35분 환선봉을 출발했다. 10시 너덜길을 걸었다. 우측 환선계곡쪽으로 낭떠리지 표시가 군데 군데 보였다. 계속해서 깜깜한 숲길을 걸어갔다. 맑은 날 맑은 하늘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48분 어두운 숲길에서 터털을 지나듯 그 너머가 훤해지고 있었다. 서둘러 그 곳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걸어가니 평평한 터에 들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봉우리가 단정히 솟아 보였다.
앞에 보이던 봉우리를 넘어 10시 5분 지암재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비가 소강상태가 되었다. 앞선 일행중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땅에 금을 그으며 길을 설명하는데 마치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정석대로 가기로 하고 리본을 보며 갔다.
우측 아래쪽에 매여진 리본을 보고 한참을 내려 가다 일행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멈춰섰다. 나도 느낌이 이상했다. 모두 대간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하며 지암재 까지 되돌아 올라가 10시 15분 다시 길을 찾아 걸었다. 아까 보이던 사람들에게 가려 대간 표지를 보지 못한채 다른 표지를 보고 가면서 뜻밖에 길을 헤맨 꼴이 되었다.
완만한 길을 걸어 잠시 후 봉우리를 올랐다. 거기서는 비가 그쳐 오지 않았다. 봉우리를 넘어 좌측으로 내려가는 동안 숲에 안개가 자욱했다. 다시 긴 경사길을 걸었다. 구부시령까지 걷던 때와 달리 봉우리는 크게 오르고 내리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지나는 길마다 산세가 다르다.
가다보니 멀리 시선이 트여 보이는 곳이 밭처럼 보였다. 이대장이 무슨 밭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내가 배추밭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저렇게 너른 단지가 다 배추밭일까 하고 선 듯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 곳은 지도에 표시된 광동이주단지인데 광동댐을 만들면서 생긴 수몰지역민들을 위해 이주 단지를 만든 것이다.
그 광동댐은 삼척, 태백, 정선, 영월 등 강원 폐광지역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 수자원공사는 “태풍, 집중 호우 등 점차 잦아지고 있는 기상 이변에 대비한 치수능력 증대사업으로 댐 안정성 확보는 물론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를 위해 적극적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된 바 있었다. (연합뉴스 2007,11,21) 원격조정이 가능한 폭 8.5m 높이 9.5m 의 수문 4개와 댐 상하류에 홍수 예보 및 경보 설비를 갖추고 있다. 길이 229m 높이 39.5m이다. 초당 최대 방류량은 당초 1천 190m3였는데 치수능력 증대 사업을 거쳐 2천 140m3로 80%가량 늘어났다고 한다.
좌측으로 트여 보여 다가가니 배추밭이 보였다. 배추밭이었다. 전경이 특이해 사진을 찍으면서 뒤에 오는 채총무에게 보라고 말해 주었다. 숲길을 빠져 나가 밭뚝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을과 함께 넓게 펼쳐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찍고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숲길을 가다 잠시 후 다시 포장길이 나타나 그 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10시 27분 그 길로 나가는 곳에 큰재가 2.7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거기서 쉬고 있던 다른 일행이 나에게 우측 풍경좀 보라고 해서 그 쪽을 보니 구름이 걷히며 산봉우리들이 첩첩히 겹쳐 있는 평경이 보였다. 비 내리는 날씨에 조망을 보지 못하다 시원스레 펼쳐지는 광경을 보니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듯 했다. 걷고 있는 길 뒤쪽을 바랍니 지나온 산 능선 우측부터 배추밭이 일구어져 잇고 계곡부근에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그 우측 산 경사지에도 온통 배추가 심어진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 보였다.
삼척시는 대부분 고지대 산간지역으로 형성되어 잇는데, 그래서 이 지역 고랭지 채소가 유명하다. 태백산맥이 동쪽으로 급격히 내려오면서 동해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서쪽으로는 고원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광동댐 등이 위치하고 있다. 해양성 기후의 특징인 온난다습하며 고산지대의 영향으로 인접산지에서 수직적 기온분포를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 영동과 내륙 지방간의 기온차이가 30일 간격으로 나타난다. 8월 평균 기온 24.1도 겨울 0,5도로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온난한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10시 43분 초지 잡풀이 무성한 오름길을 걸었다. 길 좌측 위로는 배추 단지가 봉우리 정상까지 채워져 있어서 더 드넓게 느껴졌다. 광동댐이 건설되기전 그 부근은 대단이 수려한 계곡이었는데 경치도 경치지만 개울가로 난 길을 따라서 걷다가 지각산(찌각산)에서 남녀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냥 가지 못하고 꼭 일이 생겼다고 한다. 지각산이 지척인 하장면 소재지는 고랭지 채소 집산지로 유명한데 그들이 이주대사상이 되고 삶의 터전을 읽게 되어 이 곳에 대단위 채소밭이 들어서게 된 듯 하다.
10시 55분 산길을 오르다 우측을 보니 다시 멀리 풍경이 보였다. 동해를 보게 되니 감격스러웠다. 분명히 우리가 대간의 능선을 따라 북진중인 것이 확인되고 있었다. 비도 다시 그쳐 있었다. 우측 산너머 동해바다 오십천이 보였다. 삼척이었다. 이대장이 뒤로 보이는 봉우리들을 가리키면서 “날을 타고 왔으니까“ 우리가 지나온 곳 같다고 했다.
10시 58분 1058.6봉에 도착했다. 진행하던 길의 방향대로 끝까지 가니 그 너머에도 광활한 배추밭이 펼쳐 보였다. 하지만 리본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다 이대장이 우측으로 대간 리본이 보인다고 했다. 배추밭이 구도가 좋아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찍을 수 없었다. 아까부터 전지가 다 되었는데, 꺼 두면 자체 충전이 되었는지 한 장씩 찍히고 다시 되지 않았다. 그 장면을 꼭 찍고 싶어 전원을 껐다 켰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찍는 것을 포기하고 뒤의 일행을 기다렸다. 조금 전 포장길 꺽이는 곳에서 우비를 벗어 배낭에 정리하던 세사람도 오지 않았다. 20분 정도를 기다라다. 이대장이 보고 오겠다고 되돌아갔다. 잠시 후 올라와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길가에서 쉬고 있던 일행은 올라와 숲 속에 들어서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짐작대로 나타났다. 그런데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거냐며 걱정들을 했다. 결론은 낲서 갔을 거라고 했다. 이대징이 나에게 먼저 가서 만나 에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11시 13분 일행보다 먼저 출발했다. 11시 혼자서 큰재에 도착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앞에 갓으면 훨씬 멀리 가 있을 것 같았다. 큰재에서 황장산까지 4.4km, 댓재가 5.0km 남아 있었다. 이정표에 “못만나고 계속갑니다” 라고 메모를 남기고 다시 출발했다.
오늘 아침에 산을 오르면서 10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했었는데 남은 거리상으로는 그렇게 늦게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숲 길로 들어서니 잡풀이 칙칙하여 몸을 가로 막았다. 메모지 가 다 젖어 신경이 쓰였다.
11시 55분 황장산이 2.5km 남은 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 12시 다시 그 앞 봉우리를 넘었다. 앞서가는 다른 일행들을 연속적으로 추월하며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가는 동안 앞서 걷는 사람이 자기 배낭 위에 다시 큰 배낭을 지고가고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그 분을 지나 비교적 12시 8분 황장산 1.5km전에서 최회장 부부 만났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자 뜻 밖이라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사정을 말하고 뒤에 오는 채총무에게 전화 걸었으나 불통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하려고 최회장에게 전화가 되면 해보라고 하니 전화가 걸려 통화를 했다. 그들은 1Km 전 산봉우리를 지나고 있고 이 대장은 더 뒤에 오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소식을 잔하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간식을 먹으며 기다리니 뒤의 일행이 도착했다. 모두 모여 잠시 엇갈리게 된 사정들을 이야기를 했다. 12시 25분 출발했다. 댓재까지는 1,5KM가 남아 있었다. 여전히 부슬비가 내렸다. 내림길을 걷다 오름길을 걸어 댓재가 900M 남은 봉우리에 닿았다.
다시 내림길을 걸었다. 600M 박에 남지 않아 다시 오르는 구간은 없을 듯 햇다. 이따금 급경사 길이 나타났다. 그만큼 뚝 떨어져 만날 것 같았다. 가다 보니 차 소리가 들렷다. 길이 점차 좌로 꺽여가고 있었다.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어 약간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니 숲 길 끝 쪽이 훤한 느낌이 들었다.
1시 10분 댓재에 도착했다. 도로변 측구로 흐르는 물에 신불에 묻은 흙을 씻으며 홀가분한 마음을 느끼었다. 이틀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찬 것이 그런 기분을 들게 했다. 차 안으로 들어서니 뜻 박에 어제 만나 속소를 함께 쓴 홀대모가 차 안에 있었다. 오전에 건의령에서 우리가 나설 때 조금 후 나서겠다고 한 사람이 그냥 차 안에 있어서 조금 의아스러웠다. 12일을 산에서 혼자 머물렀다는 말을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하루 연기했다는 말을 들으며, 처음 먹은 굳센 마음과 달리 편함을 누리려 약해진 느낌이 들어 염려 되었다.
차가 출발하려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태워 달라고 해했다. 수원 사는데 다른 두 여자분과 왔다가 나머지 일행이 비 때문에 포기하고 가서 차가 없다고 했다. 기사분과 상의 하여 태워 주었다. 태백에서 내려주기로 했다, 태백으로 내려갔다. 어제 만난 홀대모는 숙소앞에 내려주고 오늘 만난 홀대모는 태백역 앞에 있는 시외버스터널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식사를 하고 올라오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아까 차 안에서 오늘은 최회장이 저녘 식사를 내겠다고 했다.
맥주와 소주를 섞어 제조한 술을 돌려 마시며 두 구간 산행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했다. 그 곳 음식은 역시 맛이 좋았다. 어제 보았던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하며 오늘은 아니까 덜 잘해주어도 될 것처럼 말했다. 비를 맡고 산행을 한 후의 홀가분한 기분이라 뒤풀이가 더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잠시 후 주량이 적은 나는 차에 가서 기다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주차장 관리인에게 태백 사정을 들었다. 15만 인구가 탄광 사업이 쇠한 후로 지금은 5만 인구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인구가 준 것과 함께 이 곳 지역의 경제도 위축되었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 차가 들어오자 급히 그 쪽으로 갔다. 마치 생태계처럼 산업 변천의 영향에 따라 지역 사정도 달라지고 있었다.
모두 차에 타고 서울을 향해 출발해 태백으로 들어갔던 길을 따라 거꾸로 나왔다. 나오는 길 주변에 깊은 지역의 삶의 체취가 베어나는 듯 했다. 산간 오지로서의 입지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과거 입지에 순응해 살던 느낌과 달리 대간길에서 보았던 고랭지 채소밭은 이 지역에서 드문 기업형 삶터의 풍경인 샘이었다.
(080816)
첫댓글 휴가철과 비때문에 연휴를 계곡에서 피서를 했습니다...좋은연휴기간을 보내셨습니다...무탈하게 계속 진행하시길..
하하하하하 환선굴 뒤에 있는 덕항산과 환선봉을 가 보고 싶었는데,....... 비오는데 험한길 무사히 다음 산행땐 동참 할수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