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난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축구를 꽤나 좋아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중학교 때 춘천으로 전학을 갔고, 축구 명문 춘천고를 졸업한 후 명지대에
들어가 명지대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명지대 졸업 후 상무에 입대하여 2년간을 복무한 후에는, 프로구단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다.
1986년 대한민국 U-23 브라질 순회 축구
대회 대표로도 뛰었으며, 매우 촉망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1988년 큰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박종환 감독이 일화 천마에 입단시켰고, 2년동안
그라운드를 밟게 했다.
하지만 또 다시 부상으로 인해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막노동, 헬스 트레이너, 시설 관리
일 등을 닥치는대로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등지게를 지고 공사판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는 행여 누가 알아볼까,
기운이 위축되고 창피하기도 했다
건설 현장의 막노동은 버거웠지만, 대신 삶을 성찰하고 현재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또한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운동과 독서만큼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노동을 나가는 날에도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개인 운동을 꾸준히 했다.
두 아들과 함께 운동을 했지만, 축구를 강요하지 않았고, 아이들 스스로 가르쳐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날 아들은 축구를 선택했다.
축구 선수의 길이 쉬운 길이 아님을, 재차 묻고 확인했지만 어린 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두 아들에게 축구 훈련을 시켰다.
집도 가난한 주제에, 한가하게 애들이랑 운동장에서 공이나 찬다는 비아냥 소리도 들었다.
그는 선수시절 측면 공격수로 뛰는 프로선수였지만, 선수 한 명 따돌릴 발기술이나 개인기가 전혀 없었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빠른 발 하나만 믿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기본기가 없었다.
어쨌든 성적은 내야 했기에 죽기 살기로 공만 쫓아 뛰다 보니 몸만 금세 망가졌다.
자신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이들에게는 정반대로 가르쳤다. 무엇보다 기본기가 우선이었다.
7년간은 슛팅을 아예 못하게 했다.
양쪽 발의 연습을 철저히 시키고, 모든 생활 습관도 왼손을 먼저 사용하게 했다.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기와 인성이라고 생각했다. 성실한 노력과 겸손한 생할 태도를 강조했다.
두 아들을 직접 지도했고, 유소년 축구 교육 센터 ‘손축구아카데미’를 설립
했다.
그가 바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자 축구 스승인 손웅정이다.
“축구에 왕도란 없습니다.
손흥민이 데뷔골을 넣었을 때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 누구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혜성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본기가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입니다.
축구보다 인성이 더 중요합니다.
화려한 기술을 익히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백승호)의 글에서 축약,발췌.
* 학문이든 예술이든 체육이든, 견고한 바탕과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절실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