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식장지맥(食藏枝脈)은 금남정맥의 대둔산 남동쪽 인대산(661.8m)과 백령고개 사이에 있는 610봉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월봉산(542.4m), 만인산(537.8m), 지봉산(464.3m), 망덕봉(439m), 식장산(596.7m), 계족산(423.9m)을 거쳐 대전 대덕구 문평동의 갑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6.1km의 산줄기로, 대전시와 금산군/옥천군의 경계를 지난다.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유등천과 대전천(안평지맥이 끝나는 대덕 오정동에서 유등천에 합류), 갑천이고 우측의 물은 봉황천과 추풍천이 되어 금강에 든다.
세종에서 마무리하는 세 지맥을 마치고 이번에는 대전을 지나는 지맥을 답사하기로 한다. 가장 대표적인 줄기가 보만식계(보문-만인-식장-계룡산) 대부분을 품고 있는 식장지맥이다. 식장-안평-장령지맥 순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식장지맥은 세 번에 나눠 다녀올 계획이며 1구간은 거칠지만 2구간부터는 대전둘레산길과 겹치기 때문에 매우 길이 양호하다. 1구간만 잘 넘기면 된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금산군 상금리-분기점-월봉산-월봉-달기봉-만인산-중부대학교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26km (실제거리 22.2km, 접속 2.3km, 하산 1.5km)
- 산행일시 : 2024년 8월 17일(토) 09:00~18:30(9시간 30분)
★ 흔적들
대전행 B2 첫차를 이용하여 대전복합터미널에서 6시 50분 금산행 시외버스를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만다. 30분을 더 기다려 시외버스를 타고 금산터미널에 내리자 택시가 보인다. 버스편을 알아보니 상금리까지는 80분 이상이나 소요되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80세쯤 보이는 고령의 택시기사는 상금리에 이르자 어디에 내려주면 되냐고 채근하기 시작한다. 올라갈 수 있는 지점까지 가시라고 하자 버스종점이 있는 곳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며 나를 부려준다(21,000원).
9시 정각 산행준비를 마치고 지형도를 보며 분기점을 찾아 올라갔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난감해하며 서 있자 비슷한 연배의 농부가 나를 보더니 금남정맥하시냐며 방향을 알려준다. 2.1km 떨어진 금남정맥 마루금에 이어 200m 더 진행하자 분기봉에 도착했다(9:43). 여름날 절정을 이룬 수풀 속에서 지맥답사를 시작한다. 그래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설 때면 큰 시혜라도 베푸는 양 간간히 주변 산세도 볼 수 있게 조망을 허락했다. 금산군에서는 열두봉길 등산로를 정비했지만 이용자가 많지 않은지 날머리와 들머리는 잡풀로 우거져 있다. 열두봉길 특징은 열두 개의 봉우리를 거쳐서 진행하는 게 아니고 전부 우회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이 길을 따라 우회하다 보니 이 구간 최고봉인 583봉을 놓치고 말았다.
10시 27분 열두봉재에 도착했고, 옛 열두봉재는 30분 더 가야 했다. 월봉산에 다가갈수록 오래전 산불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몇 년이 더 지나면 그 흔적도 거의 사라질 것 같다. 그만큼 자연은 놀라운 속도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11시 17분 월봉산에 도착했다. 대전둘레산길을 모방하여 금산둘레산길이 월봉산을 지나가고 있다. 30분을 더 가자 월봉(498.7m)을 만난다. 누군가 평평한 큰 돌을 두개 갖다 놓아서 식탁과 같은 모습이다. 지나치기 아까워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했다.
서낭당과 같은 돌무더기가 쌓인 월봉재를 지나 350.7봉을 넘어섰다. 68번 지방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칡넝쿨과 환삼덩굴이 어우러져 통행을 방해하자 오른쪽으로 우회했다. 묘지가 있었고 도로 근처에는 뭘 지킬 게 있는지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다. 첫 번째는 문을 열어서 나갈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월장을 해야 했다. 묘지에 출입문을 두 개나 설치한 곳은 처음 본다.
13시 정각, 4번 군도가 지나는 화림고개에 내려섰다. 넘어가야 할 마루금을 보니 엄청난 규모의 칡넝쿨을 도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구간 처음으로 도로따라 우회해서 가기로 한다. 화림2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마을을 관통하자 13시 15분 마루금을 만났다. 급경사라 바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능선을 보며 조금 더 진행했다. 희미한 족적이 보이는 지점에서 사면을 치고 100미터를 올라가자 마루금과 만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행히 가시덤불과 조우하지는 않았다.
13시 32분 소리니재에 도착하여 길 건너 손가네 만물상 뒤로 잡목과 키보다 더 자란 잡풀을 헤치며 숲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희미한 족적을 따르자 마루금은 조금씩 선명해졌다. 310.5봉을 넘어 328.7봉을 지나자 14시 30분 철조망을 만난다. 마루금은 훼손된 철조망 넘어 이어졌고 옛 채석장의 깎아지른 직벽을 경계에 두고 올라서자 TJB 대전방송금산중계소가 위치한 380.6봉에 이른다. 임도를 따르다 다시 숲길로 가야 하지만 엄청난 잡목과 가시덤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게 뻔해서 계속 임도로 진행하자 큰고개에 이르렀다(15:05).
선답자의 후기에 의하면 여기서부터는 수리넘어고개까지는 숱하게 가시덤불과 잡목과의 전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도로 따라 우회하기로 한다. 여름날이 아니면, 또 가시덤불 트라우마(?)만 아니면 돌파했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수리넘어고개까지 장령지맥 분기점과 채석장이 있는 금성산을 건너뛰는 것이 안타깝긴 해도 어쩔 수 없다. 도로 따라가는 것도 고역이다. 뜨거운 햇살에 아스팔트 지열로 무척 괴롭다. 거기다 날파리들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16시 7분, 도로 우회 1시간만에 수리넘어고개에 이르렀다. 마트가 보이길래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사서 그 자리에서 다 해치웠다. 지나치면서 들머리를 찾아봤지만 족적이 전혀 보이질 않아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해주오씨행정공묘소 입구" 비석 뒤편에 등산로가 있다고 했다. 칡넝쿨로 덮여서 그런 건지 아무리 봐도 등산로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른 길은 찾을 수 없어 일단 들어섰지만 희미한 족적은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여러 번 칡넝쿨과 환삼덩굴에 포위되어 진퇴양난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악전고투 끝에 벗어났지만 완전한 해방은 아니고 잊을만하면 훼방을 놓았다. 분명히 대전둘레산길임에도 왜 그냥 방치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어렵사리 달기봉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 지 1시간도 더 지난 17시 20분이었다. 임도를 만나며 범민련등 이적단체가 세운 민족자주통일비(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이들의 속내는 결국 북한과 같다)를 만난다. 나는 이들의 사상과 이념을 혐오하는 지라 왜 이런 자들이 산줄기에다 저따위 비석을 세우도록 방치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17시 35분 만인산 삼거리에서 만인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마루금에서 600m 벗어나 있지만 만인산은 반드시 다녀와야 하는 곳이다. 나무테크 계단으로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오름길은 어렵지 않다. 만인분맥 분기점을 지나 17시 49분 만인산에 도착했다. 정상에서는 서대산이 제대로 전망이 되었다. 장령지맥 답사할 때면 서대산도 꼭 들러봐야 한다.
20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태조태실 방향으로 진행하여 태봉재에서 버스 타고 귀가하려고 했다. 그러나 온몸이 땀에 절고 풀먼지를 뒤집어쓴 행색이라 중부대학교 구내로 내려서서 씻고 가기로 한다. 네이버 지형도를 따라 내려섰지만 급경사길은 무척 희미했다. 바로 아래 대학이기 때문에 길을 놓치지는 않겠지만 네이버 지도가 실제 현장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날이기도 했다. 내려서자마자 빨간색 건물이 보였고 안에 들어가자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대학입구에 이르자 대전역 가는 501번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