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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스캔들] 05 - 가끔은 니가 그리웠다
S#1. 절 (4회 엔딩)
검은 양복을 입은 수현이 민의 위패를 바라보며 서있다. 그 눈가가 서서히 붉어진다.
형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던 완, 수현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동상처럼 얼어붙는다.
기척을 느낀 수현이 뒤를 돌아본다. 완을 발견한 수현이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한순간 얼어붙는다.
완, 그런 수현을 관찰하듯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어느 순간 담담한 표정으로 시선 외면하고 움직이는 수현. 완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완 : 한 가지만 묻자.
수현 : (멈춰 선다)
완 :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야.
수현 : (무슨 말을 할 지 알기에 심정이 떨린다)
완 : 니가 뭐라고 대답하든, 무조건 믿는다. 설령 그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무조건 믿을 거야. 이게 무슨 뜻인지, (사이) 알아?
(*거짓말이라도 해달라는 뜻, 그러면 용서하겠다는 뜻)
수현 : (괴로워진다)
완 : 정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 너냐?
수현 : (심장이 떨어진다)
완 : (용기 내어 또박또박) 형을 밀고한 사람이 정말, 너야?
수현, 완을 바라본다. 완을 바라보는 수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완, 수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순간 결심한 듯 완을 바라보는 수현의 표정에서.
S#2. 해화당 (낮)
여경, 책상 위에 턱을 올려놓고 앉아 노트에 끄적끄적 낙서를 하고 있다. 말도 없이 사라진 완이 생각으로 심난한 것이다.
문득 문소리가 들린다. 여경, 반사적으로 돌아본다.
화사하게 차려입은 송주가 들어선다.
송주 : 어머...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나봐요?
여경 : (당황해서) 아....아니예요.
송주 : (관찰하듯 흥미롭게 바라보고) 무지 실망하는 표정인데요?
여경 : (그 시선 부담스러워 얼른 말 돌리려) 근데, 영랑씨 수업은 다음 주 부터 하기루 하지 않았나요?
송주 : 아, 오늘은 나 혼자 왔어요. 심심해서 책이나 두어 권, 살까 하구요.
여경 : 네에... 그럼 천천히 둘러보세요.
송주 : 그럴까요, 그럼? (우아하게 웃으며 서가로 간다)
여경 : (책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송주 : (서가에서 백경을 꺼내 책장을 넘기며) 해당화 핀 언덕에 잠든, 흰 고래는...
여경 : ! (순간 책상 위를 치우던 손이 정지 되고)
송주 :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경 : ! (순간 송주 쪽을 확 돌아보는)
송주 : ... (책을 탁, 덮고 여경을 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여경 : .... (보다가, 긴장된 호흡을 삼키고) 흰 고래는 잠에서 깨어나,
(이내 결연한 눈빛이 되며 침착하게) 바다로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송주 : (천천히 미소 생기더니) 아아....그것 참 다행이군요.
여경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는 송주. 긴장감과 비장함으로 송주를 보는 여경.
그런 두 여자의 모습 위로,
수현 : (E) 조국해방 투쟁에 청춘을 바쳤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S#3. 절 (1씬 연결/낮)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는 수현. 일말의 희망으로 수현의 말을 듣고 있는 완.
수현 : 형에게도 여러 번 이야기 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 강자가 약자를 이끌어주는 것이
사회진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룬 일본과 함께 해야 한다,
내선일체만이 조선의 민중들이 살아갈 길이다 (비식 웃으며) 콧방귀도 안 뀌더군.
완 : (아직도 믿음을 꺾지 못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수현 : 그러나 한 번 둘러봐. 수많은 청춘들이 뜨거운 피를 바쳤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했나?
민중들은 여전히 무식하고, 미개하고, 무능해. 지식인들은 여전히 피해의식과 열패감에 빠져있지.
무지한 그들과 뭘 할 수 있겠나. 열등감에 빠져있는 그들이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완 : (서서히 눈가에 분노가 차오른다)
수현 : (눈빛 변하며) 일본을 인정하고 그들의 적자가 되는 길만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완 : (분노를 누르며 간신히) 그래서.... 형을 팔았냐?
수현 : (가만히 바라본다)
완 : (기어이 터지며) 대답해! 그래서 형을 밀고했냐고 묻잖아!!!
수현 : 가망 없는 조선에 아까운 청춘을 바치는 노릇,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완 : !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수현 : (건조한 말투로 담담하게) 믿기 어렵겠지만, 형에 대한 애정이었다. 결과가 비극적이어서 유감,(이었지만)
완 : (순간 퍽! 수현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수현 : (쓰러진 채로 담담히 상처를 닦는다)
완 : 그래도 나는... (울컥 참으며) 가끔은 니가 그리웠다, 이 개자식아!
수현 : (표정이 정지된다)
완 : 뭔가 폼 나는 사연이 있었겠지, 들을 준비가 되면 들어줘야지, 들어주고 위로해줘야지,
그런 다음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이 개자식아!!!
수현 : (홀로 심장이 찢어진다)
완 : 사는 동안 다시는 만나지 말자. (눈빛 살벌해지며) 너는 오늘, 내 안에서 죽었다. (차갑게 확 돌아서서 간다)
수현 : ...
S#4. 절 일각 (낮)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는 완. 이를 악 물며 분노를 참고 있는 모습 위로,
(F.C) 전차와 경주를 하고 전차 꽁무니에 매달려 환호하던 두 사람. (2부 6씬)
(F.C) 일본 학생들과 난투극을 벌이던 두 사람. (2부 7씬)
(F.C) 수현에게 윙크를 해보이던 완, 피식 웃는 수현의 모습. (2부 9씬)
완, 떠오르는 추억에 심장이 아려오지만 고집스럽게 이를 악물고 걸어간다.
S#5. 절 (낮)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자조적으로 비식 웃는 수현. 그 모습 위로 떠오르는,
(F.C) 망을 던져 낚시하고 고기를 잡던 완과 수현, 민. (2부 12씬)
(F.C) 매운탕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던 세 사람. (2부 12씬)
(F.C) 숟가락을 들고 함께 노래 부르며 춤추는 세 사람. (2부 12씬)
수현, 이제는 아픔이 되 버린 추억에 눈가가 붉어지지만 절대 울지 않는다.
S#6. 해화당 서점 앞 거리 (낮)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완, 문득 걸음을 멈추고 보면 해화당 서점 근처다.
여기는 왜 왔지? 피식 웃으며 돌아서는 완, 어떤 느낌에 다시 돌아본다.
닫혀있는 서점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남자 아이. 필성이다.
기척을 느낀 필성이 돌아본다. 완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환해진다.
필성 : 아저씨! (달려온다) 안 그래도 선생님한테 아저씨 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러 왔는데....
완 : 나를? 왜?
필성 : (헤, 웃고는 품안에서 검정 고무신을 꺼내 내민다)
완 : (받으며) ...?
필성 : (천진한) 솥단지 팔아서 샀어요. 그 날은 너무 고마웠습니다.
완 : ...! (순간 어쩐지 멍해지는 심정으로 고무신을 바라보는 위로)
수현 : (E) 무지한 그들과 뭘 할 수 있겠나. (5부 3씬)
필성 : (콧물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얼굴로 천진하게 웃는 위로)
여경 : (E) 오늘 당신은 그 아이한테 세상 전부를 갖게 해주셨어요. (3부 61씬)
필성을 바라보며 어쩐지 눈가가 확 붉어지는 완의 모습에서.
S#7. 풍경이 좋은 한적한 야외 (낮)
송주의 차가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
S#8. 달리는 송주의 차 안 (낮)
근덕이 운전하고 있는 차 안에 앉아있는 송주와 여경.
여경, 긴장하여 기합이 잔뜩 들어간 표정이다.
근덕 : (매서운 눈빛으로 룸미러에 비친 여경을 보며 진지하게) 애물단의 조직원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나선생님.
여경 : 애물단.... (되 뇌이고는 비장하게) 어떤 뜻의 약자인가요?
송주 : (근덕에게) 말씀드려.
근덕 : (올 것이 왔군....준비하듯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조선의 혼을 고취하고, 민족 대단결을 촉구하며, 식민 지배를 타파하고,
자주독립을 실현하며, 충의와 희생정신으로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여경 : ! (과연 외울 수 있을까, 기가 질려 보는 위로)
근덕 : (연결)(E) 민중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자유평등국가의 건설을 지향하며,
송주 : (추임새 넣듯) 덧붙여,
근덕 : 애!국은 물!론 해야 하며 단! 열심히 해야 한다!
송주 : 줄여서, 애물단이랍니다.
여경 : (황당해서) 아니... 앞 문장에 좋은 말이 더 많은데 왜 하필 뒷 문장에서....
송주 : (진지하게) 앞 문장에서 이것저것 조합해봤는데, 다른 조직들이 이미 다 갖다 썼더군요.
뜻만 좋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수장의 지시가 있어서, 제가 카리스마를 좀 발휘했어요. (뿌듯하다)
근덕 : (새삼 화난다는 듯 진지하게) 그러게 구구단이 훨씬 낫다고 했잖아! ‘구하고 구하면, 구하리라, 조선의 독립을!’
얼마나 좋아. 간결하고!
송주 : (매섭게) 이미 끝난 얘기잖아! 자꾸 집착할꺼야?
여경 : (정말 조직원들이 맞나 의심스러운데)
송주 : (그런 여경을 보며) 어머, 설마 정말로 믿는 건 아니겠죠?
여경 : 그럼 농담.....?
송주 : 빙고! (그제서야 진지하게) 애국, 애족, 애민을 넘어 만물을 사랑하는 단체. 그게 바로 애물단의 정체성이예요. (생긋)
여경씨가 너무 긴장하는 거 같아서 농담 좀 해봤어요.
여경 : (에휴....기운이 빠진다)
S#9. 낡은 창고 안 (낮) (*이하 애물단 아지트로 표기)
제법 잽싼 손놀림으로 장총을 조립해나가고 있는 인호!
잠시 헷갈리는 듯 머리 긁적이며 송주에게 배웠던 것을 떠올려보는 인호.
아! 생각난 듯 조립을 완성하고는 스톱워치를 눌러보는데, 느리다.
실망하는 인호인데, 밖에서 들리는 기척.
순간 매서운 눈빛으로 재빠르게 문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인호. 눈빛만큼은 이미 반쯤은 킬러가 된 듯 매서운데,
문이 열리고 여경을 앞세운 송주와 근덕이 들어온다.
인호 : ! (멍한 표정으로 총을 내리며) 선생님....
여경 : 인호야! (달려오며) 무사했구나아. 선생님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몸은 건강한 거야?
인호 : (씩 웃으며) 전 괜찮아요. (총 옆에 놓여있던 책을 들어 보이며) 그동안 못했던 공부도 많이 했구요.
여경 : (눈물 그렁해져서) 다행이다...정말 다행이야....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송주와 근덕.
S#10. 선술집 (낮)
다 마신 막걸리 잔을 거칠게 탕! 내려놓는 강구.
강구 : (살벌한 눈빛으로 이 갈듯) 나여경. 이 여우같은 년. 두 남자를 후려서 미꾸라지같이 빠져나가?
(비웃듯이) 허! 여자 치마폭에 놀아나는 멍청한 새끼들.
망치 : (술잔 채워주며) 잘 됐어요.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왕 근신처분 받은 거, 저랑 낚시나 다니면서 좀 쉬세요.
인생 생각보다 짧습니다.
강구 : 뻘소리 말고 나여경이나 잘 감시해. 너 요즘 너무 뺀질대.
망치 : (찌그러져서) 예.... (하고는) 근데요 나리, 제가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강구 : (마시며) 뭔데.
망치 : 나리는 왜 그렇게 그 계집에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강구 : (멈칫 보며 날카롭게) 집착?
망치 : (눈치 없이) 두 사람이 한 고향에서 자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제가.
동향이라면 덮어놓고 도와주고, 사정 봐주는 게 우리 인심인데, 나리는 어째 쫌 다른 거 같아서,
강구 : (O.L) 망치.
망치 : 예?
강구 : (살벌하게) 너 많이 컸다?
망치 : (찔끔해서 고개 팍 숙이며) 죄...죄송합니다.
강구 : 건방진 새끼. (막걸리 사발 확 뒤집어엎고 나가버린다)
망치 : ...
S#11. 경성 거리 (낮)
망치 말에 확 열 받아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는 강구.
문득 발에 채여 걸리적거리는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려다가 보면, 흙투성이로 구겨진 강인호의 탐인 광고 초상화다.
다 잡은 수사를 놓치게 된 것이 새삼 분한 강구, 탐인현상광고를 와락 움켜쥐는데,
쌀이 실린 자전거를 몰고 강구 쪽으로 달려오던 쌀집 주인, 강구를 발견하고는 헉! 겁에 질려서 얼른 시선 피해 간다.
자전거 손잡이를 확 잡아채서 멈추게 하는 강구.
쌀주인 : (겁먹어서 보며) 왜...왜 그러세요. 순사 나으리.
강구 : (괜히 시비) 왜 피해.
쌀주인 : 피....피한 게 아니라....
강구 : (살벌하게 떠보는) 강인호한테 연락 왔지.
쌀주인 : 아, 아닙니다요 나으리.
강구 : (막무가내다) 강인호 이 자식 지금 어딨어.
쌀주인 : 저....정말 모....모릅...
강구 : 연락 왔잖아! 말해, 강인호 이자식 지금 어딨어!!! (윽박지르는데서)
S#12. 산 속 야외 일각 (낮)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한적한 산 속. 나란히 앉아 그 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경과 인호.
인호 : 제 총은...어떻게 처리하셨어요?
여경 : 잘 숨겨놨으니까 염려하지 마. 근데... 그 총은 어디서 난거야 도대체.
인호 : 사건이 있기 얼마 전 날, 명빈관으로 쌀배달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터진 쌀가마니 속에서 총이 나왔어요.
여경 : 그걸 훔쳤단 말이야?
인호 : 그 총을 보는 순간 신이 내게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동안 간신히 참고 있던 살기가 꿈틀대는 걸 느꼈어요.
여경 : 감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이건.
인호 : 알아요. 안 그래도 감정을 다스리고 냉정해지는 법을 배우는 중이예요, 여기서.
여경 : (걱정스럽게 보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 인호야.
인호 : ? (본다)
여경 : 힘들고 위험한 일이야. 계속 쫓겨야 될 지도 모르구.
인호 : 힘들고 위험하지만 꼭 가야만 하는 길, 그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송주 누나가 그랬어요.
여경 : (본다)
인호 : 저도 조선 사람으로서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요 선생님. 여기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선의 민중이,
조선의 혼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구 싶어요.
여경 : ... (보다가 미소 지으며) 강해졌구나.
인호 : (씩 웃으며) 다 선생님 가르침 덕분이죠 뭐.
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여경. 힘든 길을 택한 제자를 보며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데.
송주 : (E) 민환식은 일제의 밀정이었어요.
S#13. 애물단의 아지트 (낮)
여러 종류의 총을 늘여놓고 서서, 하나하나 상태를 점검해보고 있는 송주.
적당한 곳에 앉아 그런 송주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여경. (근덕, 인호는 없고)
송주 :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밀고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죠.
여경 : (조심스럽게) 애물단은...그러니까, 이를테면 암살집단인가요?
송주 : 으음으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음....뭐랄까. 뭐, 차차 말씀 드리겠지만 일단은 비밀결사대쯤으로 해두죠.
아 물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일곱 종류로 분류해서 분리수거합니다. 이른바 칠필살.
여경 : ! (긴장된 표정으로 보고)
송주 : 어머, 겁먹지 말아요. 여경씨한테 암살 명령이 내려오진 않을테니까. 암살자는 나 하나로 충분하거든요.
(하더니 빈총을 찰칵! 쏴본다)
여경 : ! (흠칫 놀란다)
송주 : (피식 웃으며) 친일 세력 한두 명을 처리한다고 조국이 해방되나... 그런 생각했죠, 방금?
여경 : ! (흠칫해서) 독심술도 하세요?
송주 : 독심술은 아직 연마 중이구, 독순술은 수준급이죠.
여경 : (같은 여자지만 좀 무섭다) 재...재주가 참 다양하시네요.
송주 : 물론 암살 대상 몇 명을 죽인다고 갑자기 조국해방이 되진 않겠죠.
하지만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징적인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여경 : (되뇌이듯) 상징적인 가치....
송주 : 자신의 이름이 살생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벌벌 떨고 있을 그들을 생각해봐요.
(눈빛 변하며)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아요? (에서)
S#14. 후미진 골목 (낮)
툭! 땅바닥 위로 떨어지는 피투성이가 된 각목!
강구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쌀집 주인,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강구를 바라보고 있다.
강구 : 어때, 이제 정신이 확 들지? 생각나는 거 있으면 다 꺼내 놔.
쌀주인 : 왜...왜 이러세요 나으리.
강구 : (O.L) 강인호 그 자식, 수상한 놈들이랑 내통하고 있었지?
쌀주인 : 저는 정말 아무 것도....
강구 : (O.L) (상관없이 몰아간다)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수상한 낌새 같은 거 안 풍겼어? 하나라두 숨기는 게 있으면 너두 죽어.
쌀주인 : (애원하듯) 나으리....
강구 : (각목을 치켜들며 살벌하게) 말 안 해 새끼야!!!
쌀주인 : (O.L) (얼른 손으로 가드 올리며) 그, 그놈 때문에 작은 소동이 있긴 했습니다!!!
강구 : (눈빛) 소동? 무슨 소동.
쌀주인 : 벼...별건 아니구요. 인호 그 놈이 순사부장님한테 피떡이 되게 맞구는, 다음날 바루 가게를 관뒀는데,
그 다음 날인가.....? 명빈관에서 사람이 하나 찾아와서 인호를 찾드라구요.
강구 : ! (순간 눈빛 변하며) 명빈관? 명빈관에서 강인호를 왜 찾아.
쌀주인 : 싸...쌀이 잘못 배달됐다고 하더라구요. 고관대작들 상에만 올리는 거라고
최상품으루다가 이천에서 별도로 실어온 쌀이었는데.... 그 쌀이 아니라면서....인호를 좀 만나고 싶다고....
강구 : ! (뭔가 동물적 육감)
S#15. 고리대금업자의 집 (낮)
언젠가 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살해현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강구.
쌀주인 : (E) 제 생각에는 인호 그 자식이 민환식이네 집으로 갈 쌀을 명빈관으로 보내고,
오히려 명빈관 쌀을 빼돌린게 아닌가 싶은데....
매서운 눈빛으로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추리를 해나가는 강구.
강구 : (중얼중얼) 강인호... 죽은 민환식에게 원한이 있었고, 민환식에게 갈 쌀을 명빈관으로 잘못 배달했다...
(F.C) 퍽! 강구의 발길질에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인호. 쌀가마니와 함께 바닥에 뒹굴고 있던 자전거.(1부 13씬)
강구 : 사건 당일, 얼굴 없는 용의자는 명빈관으로 도주를 했다...
(F.C) 명빈관으로 뛰어드는 여경 (2부 1씬)
강구 : 그 시각 명빈관 기생 차송주는 자리를 비웠고...
(F.C) 망치의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던 송주. (2부 28씬)
강구 : 나여경은 명빈관에서 선우완과 함께 밤을 보냈다...
(F.C) 완의 입을 막고, 머리에 총을 겨누던 여경 (1부 엔딩)
강구 : 나여경은 강인호의 야학선생이다...강인호...다시 원점... 강인호...명빈관...차송주...나여경...선우완...명빈관....
분명 뭔가가 있다! 눈빛이 매서워지는 강구에서.
S#16. 해화당 서점 앞 거리 (낮)
생각에 잠긴 진지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는 여경.
여경 : (E) 근데 왜 조직의 존재를 숨기고 활동하죠?
S#17. 애물단의 아지트 (낮)
(S#13 에서 이어지는)
여경 : 조직의 존재와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하는 편이 훨씬 더 파급효과가 있을텐데요.
송주 : 이유는 간단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한테 당해야, 공포감이 더 하니까.
따라서, 우리 조직의 최대 전술은, (사이) 비밀과 위장이에요.
여경 : (보고)
송주 : 조만간 두 번 째 암살지령이 내려올거예요. 여경씨한테두 뭔가 지령이 전달 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S#18. 해화당 앞 거리 (낮)
여경 : (조금은 겁도 나고, 잔뜩 긴장 되는 심정인데)
최학희 : (간식거리가 담긴 광주리를 들고 오다가 딸을 발견하고) 여경아.
여경 : (퍼뜩 보고는) 어머니. (달려가서 광주리 받아들며) 이게 뭐예요?
최학희 : 으응. 애들 간식 좀 하라구 미숫가루랑 감자 좀 쪘어.
여경 : (반사적으로 문 닫힌 서점을 돌아보며) 애들이 벌써 왔어요?
최학희 : 그게 아니구, (문득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어젯밤에 그 청년 말이다, 필성이랑 뭐가 통했는지,
둘이 신나게 의기투합이 되가지구는 야학 애들 죄 불러 모아 운동장으로 데려갔잖니.
여경 : (이건 또 무슨 꿍꿍인가 싶어) 그 사람이 우리 애들을 왜요?
최학희 : 낸들 아니? 암튼 재미있는 청년이야. (웃다가) 근데, 어디 갔다 오는 길이니?
여경 : ... (대답 못하고 가만...히 어머니를 보는 위로)
송주 : (E) 우리 조직의 최대 전술은, 비밀과 위장이에요.
최학희 : (표정 살피며 걱정) 왜 그래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여경 : (이내 밝은 표정으로)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최학희 : ....? (심상찮게 보다가 퍼뜩해서) 아이구 내 정신 봐라 참. 너 그거 니가 들구 가야겠다.
(이미 반쯤은 돌아서서) 대화정(필동) 사모님이 옷에 문제가 생겼다구 온다잖니. 얼른 들구 가. 응?
여경 : ... (어머니 뒷모습 보며 왠지 짠해지고)
S#19. 운동장 (낮) (*또는 풍경 좋은 야외)
광주리를 들고 걸어오는 여경, 문득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에 돌아본다.
그 곳에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는 완의 모습.
아이들 사이를 누비며 날쌔게 공을 차고 있는 흰 와이셔츠 차림의 완,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공을 쫓으며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고 있다.
골을 집어넣고는 약올라하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는 완.
천진한 완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가 생기는 여경인데, 문득 한 쪽에 벗어놓은 완의 양복저고리에 시선이 간다.
완의 양복을 가만히....바라보는 여경의 모습 위로,
완 : (E) 형.....
S#20. 4부 67씬의
여경 : (멈칫! 본다)
완 : (아프게) 혀엉... (눈가에 물기 맺히며) 죽지 마, 형...
S#21. 운동장 (낮)
여경 : ... (직감적으로 완의 검은 양복이 상복임을 알겠다)
완을 바라보는 여경.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밝게 뛰고 있는 완의 모습이 오히려 더 짠해 보인다.
여경의 모습을 발견한 완이 뻥! 여경 쪽으로 공을 찬다. 완이 찬 공이 여경의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진다.
여경, 아얏! 한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보면,
완 : (두 손 번쩍 들더니) 와우, 드디어 복수했다!
여경 : (짠했던 감정 싹 사라지고 얄미워서 째려보는)
완 : (아이들 향해 신나서) 니들, 니네 선생님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모르지? 꺼떡하면 주먹질에, 발길질에, 박치기에,
여경 : !! (당황해서 큰소리로) 얘들아, 그 판만 끝내구 간식 먹구 놀아! 힘드니까!
아이들 : 네!!
여경 : (아이들에게 파이팅을 보내주고 웃으며 돌아서는데)
완 : (여경을 향해 큰소리로) 같이 한 판 뛰자!
여경 : (그럴 기분 아니다, 가는 채로) 싫어요.
완 : (더 큰 소리로) 그러지 말고 같이 뛰자, 마자야!
여경 : !!! (기겁해서 확 돌아보면)
아이들 : (이미 깔깔깔 배 아파 죽겠다고 웃고 있고)
여경 : (부들부들 노려보다가)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요!!!
하고는 우다다 달려가, 완을 향해 공을 뻥 차는 여경에서.
S#22. 몽타쥬 (낮)
여경까지 합세한 축구판이 벌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공을 쫓아 신나게 달리고 있는 완과 여경.
상대방이 골을 잡으면 사정없이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아이들 보다 더 하다.
서로의 더티 플레이에 항의하며 맞붙기도 하고.
골을 넣자 와이셔츠 자락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달려가며 골 세레머니를 하는 완.
분하다는 듯이 보고 있던 여경, 드디어 한 골을 넣는다.
너무나 좋아하며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활짝 웃는 여경.
그런 여경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완.
S#23. 운동장 일각 + 송주의 차 안 (낮)
차 안에 앉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송주와 근덕.
근덕은 아예 쌍안경까지 동원해서 보고 있다.
송주 : 우리 나선생,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린 모양인데?
근덕 : 절대 불가능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잘 어울리는 커플이군.
여경의 공을 뺏으며, 여동생을 놀리는 오빠처럼 천진하게 웃고 있는 완.
송주 : ... (두 사람을 바라보며 피식) 조국은 왜놈에게 짓밟혀 신음해도, 청춘은 언제나 봄인가....? 왠지 서글프네....
S#24. 경성 거리 (낮)
축구를 끝내고 함께 걸어오고 있는 여경과 완.
여경 : 형님 되시는 분은 잘 보내주구 왔어요?
완 : ...! (멈칫 본다)
여경 : 어제 잠꼬대 하는 거, 들었어요. (완의 옷 보며) 그 옷 상복 맞죠?
완 : (좀 당황스럽다) 잠꼬대 까지 했어, 내가? 뭐, 뭐라고 했는데?
여경 : 안 가르쳐 주겠습니다.
완 : 내 잠꼬대를 내가 좀 알겠다는데, 니가 무슨 권리로.
여경 : 뒤끝이 찜찜해야, 인사불성 될 때까지 마셔대는 술버릇을 고칠 거 아니예요.
완 : ...(가는데, 너무 찜찜하다) 아, 무슨 말 했는데 내가!
여경 : (재밌다) 안 가르쳐줍니다.
완 : (기막혀서) 허! 별 생색을 다 내네 진짜.
여경 : 억울하면 이제부터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그러다 몸 망치면 어쩌려구 그래요. 술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로 몰라요?
완 : (본다)
여경 : 밤새 끙끙 앓아대기나 하고, 중얼중얼 헛소리나 해대고, 사람 걱정 시키고,
이기지도 못하는 술, 기어이 먹어서 무슨 득 봤어요.
완 : (보며) ....
여경 :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술로 풀지 말구, 문제와 정면 대결해서 푸세요. 힘들어도 그게 옳아요.
완 : (피식 웃는)
여경 : 왜 웃어요? 남은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완 : 바가지 긁는 마누라 같아서.
여경 : ! (얼굴 화끈) 마, 마, 마누라는 누가,
완 : (놀리는) 어제 내 걱정 디게 많이 했구나?
여경 : ! (또 화끈) 거, 거, 걱정은 무슨,
완 : (어깨로 어깨를 툭 치며) 에이, 뭘 부끄러워하구 그래. 밤새 옆에서 간호해준 거 내가 다 아는구만.
여경 : (얄미워서) 됐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진지함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사람한테.
앞으로 다시는 술 먹고 찾아오지 마세요! (하고는 횅하니 간다)
완 : (뒤에 대고) 술 안 먹고 찾아오는 건 된다는 얘기네 그럼?
여경 : (가는 채로) 먹거나 안 먹거나 오지 마세요! 먹거나 안 먹거나 늘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행동하잖아요.
완 : (놀리는) 에이, 내가 보이다 안 보이면 또 심난해 할 거면서.
여경 : (더는 못 참고, 홱 돌아서서 부들부들) 무슨 잠꼬대를 했는지 절대로 안 가르쳐 주겠습니다! (하고는 간다)
완 :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바라보는데)
여경 : (E)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술로 풀지 말구, 문제와 정면 대결해서 푸세요. 힘들어도 그게 옳아요.
완 : (생각해보는 표정에서)
S#25. 선우관의 사무실 (낮)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넘겨보고 있다가 보는 선우관인데, 노크소리 들린다.
문이 열리고 완이 들어온다.
선우관 : (좀 의외여서 보며) 니가 여긴 웬일이냐.
완 : (대답 없이 보며) ...
선우관 : (이상해서 살피며) 돈 필요 하냐?
완 : (좀 미안해져서 피식 웃으며) 그래 보여요 제가?
선우관 : (비죽이는 거 아니고, 떠보듯) 돈 말구 니가 나 볼 일이 뭐있어. 그거라두 줘야 얼굴 뵈주잖아. 얼마나 필요한데.
완 : 저랑 술 한 잔 하시겠어요?
선우관 : ? (보는데서)
S#26. 술 집 (낮)
선우관과 완이 함께 술상을 놓고 앉아있다.
선우관 : 너 아버지 회사루 안 들어올래?
완 : (혼자 생각에) ....
선우관 : 우리 회사에도 해모루라고 사보잡지가 있다. 일단은 거기 들어가 일 하면서 몸 좀 풀구,
중장비쪽 일은 내가 사람 하나 붙여서 천천히 가르쳐줄, (생각인데)
완 : (OL) 수현이 만났어요.
선우관 : ! (순간, 본다)
완 : 형한테 왔드라구요.
선우관 : 물어봤냐?
완 : (끄덕이는) 고문이.... 심했었나봐요.
선우관 : ! (보고)
완 : (준비해온 거짓말을 풀어놓는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혹독한 고문이었대요. 자기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구....
선우관 : (짠해지고)
완 : 죄책감 때문에 쭈욱 괴로웠대요. 위악이라도 떨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더래요.
차라리 총독부 직원이 되구 나니까 맘이 편하드래요.
선우관 : 못난 놈....
완 : 앞으로 서루 남인채로 살아가자구...그래야 지 맘이 편할꺼 같다구.... 자기가 위악을 떨어두 너무 상처받지 마시라구...
그렇게 전해달래요.
선우관 : 내심...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구 있었다 내가...
완 : (보며) ...
선우관 : (눈가 붉어지며)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그런 고문을 견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오죽했으면....오죽했으면....불쌍한 놈....
완 : (그런 아버지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S#27. 수현의 하숙집 앞 (밤)
수현, 평상심을 되찾은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다.
자신의 하숙집 쪽으로 향하던 수현, 맞은 편 집에서 불쾌한 표정으로 대문을 열고 나오던 코우지와 마주친다.
수현 : (목례한다)
코우지 : 하루 종일 어디 쳐 박혔다가 이제야 나타나는 건가! 보안과 직원은 24시간 비상근무라는 거 모르나!
도대체가 연락이 돼야 지시를 전달할 거 아냐!!
수현 : 사건입니까?
코우지 : 지금 당장 명빈관으로 가 봐.
수현 : 명빈관이요?
코우지 : 근신중인 이강구가 차송주를 만나겠다고 행패를 부리는 모양이야. 자네가 가서 수습해. (하고는 들어가려는데)
수현 : 보안과에서 그런 일까지 맡아 해야 됩니까?
코우지 : (확 돌아보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나하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니까
결국 뒤탈이 생기는 거 아니야!
수현 : 이강구의 근신처분은 선배님도 원하셨던 일 아닙니까.
코우지 : (이 악물고 노려보며) 한마디도 안 지는군. 한마디도. (확 들어가고)
수현 : (성가시게 됐다는 표정)
S#28. 명빈관 마당 (밤)
손님방 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루루 모여서있는 동기들.
마당으로 들어서는 송주와 근덕을 발견하고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한 표정으로 달려온다.
난향 : 언니, 왜 이제 와요. 큰일 났단 말이예요.
송주 : 큰일이라니.
월선 : 지금 손님방에 이강구가 들어있는데요,
송주 : (멈칫 눈빛) 그런데?
월선 : 자꾸 언니를 찾길래 언니는 고관대작들을 모시느라 바쁘다, 모자라지만 즈이가 성심으루 모시겠다, 그랬거든요?
송주 : 몸통만 얘기 해 몸통만.
월선 : 그랬더니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쨌는지, 괜히 영랑이를 붙잡구 행패잖어요.
다시 들리는 영랑의 비명소리.
근덕 : (들어가 보려는데)
송주 : (가볍게 막으며) 알았으니까. 니들은 들어가서 일 봐.
동기들 :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흩어지고)
송주 : (강구의 방 쪽을 살벌한 눈빛으로 보는데서)
S#29. 명빈관 손님 방 (밤)
방구석에 쳐 박힌 채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고 있는 영랑이고,
강구 : (영랑 앞에 버티고 서서) 다시 한 번 말해 봐.
영랑 : 죄...죄송합니다.
강구 : (손만 치켜들어도 영랑은 비명) 그거 말구!
영랑 : (공포에 질려 울먹울먹) 차....차송주는, 겨....경성 최고의 기생이라.... 만나시기 좀 어, 어렵습니다.
강구 : (다시 패기 시작하며) 건방진 년. 기생 년 주제에, 감히 나를 졸로 봐?
영랑 : (비명 지르는데)
이때 방문 벌컥 열고 들어서는 송주.
송주 : 그만 하시죠 손님.
강구 : (기다리고 있었던 듯 비죽이는) 이야....이게 누구십니까. 경성 최고의 기생 차송주씨 아니십니까.
이렇게 알현을 하게 되니 영광입니다. (시선은 송주를 보며 영랑에게) 넌 이제 됐으니까 나가 봐.
영랑 : (슬슬 뒷걸음질 치다가, 후다닥 울면서 뛰쳐나가고)
송주 : (눈빛은 살벌하지만, 말투는 어디까지나 정중하게) 술이 좀 과하셨네요 손님.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마시면 안 되시죠.
강구 :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차송주씨 얼굴을 뵐 수가 있어야지요 어디.
송주 : 저런,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수치라고 해야 하나?
강구 : 최근에 강인호 본 적 있지.
송주 : 근신 처분 중에 공권력을 이용한 수사는 위험한 행동 아닌가요?
강구 : 난 공권력을 이용한 적 없어. 내 육감을 이용할 뿐이지.
송주 : 영업 방해는 해당되는 거죠 그럼. (나가버린다)
강구 : (표정 살벌해져서 쫓아나간다)
S#30. 명빈관 마당 (밤)
흔들림 없는 도도한 표정으로 방으로 향하는 송주.
강구 : 차송주!
송주 :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는 문은 저쪽에 있네요.
강구 : (확 잡아채며) 고관대작들만 상대했더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송주 : (웃으며) 튀어나올 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기생이라는 게 원래 간 빼구, 쓸개 빼야,
손님 같은 분도 접대할 수 있거든요.
강구 : (이 갈며) 니가 나를 만만히 보는 모양인데,
송주 : (말 자르며) 어머, 설마요. 열등감은 쓸데없는 자기비하라던데,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면 즐거운가요?
강구 : (멱살을 와락 움켜쥐며) 건방진 년. 몸 팔아 얻은 권력 등에 업구, 눈에 뵈는게 없는 모양인데.
괜히 나 자극해서 명 재촉하지 마. 돈만 주면 아무 남자 앞에서나 치맛자락 걷어 올리는 천한 기생 년 주제에, 어디서 건방,
송주 : (O.L) (살벌한 눈빛으로) 죽구 싶어?
강구 : (띵해서) 뭐....야?
송주 : (눈에 살기) 쥐도 새도 없이 조용히 없애줘 내가?
강구 : (순간 눈이 뒤집혀서 손을 치켜들려는 순간)
수현 : (그 손을 낚아채서 뒤로 꺾고는 강구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송주 : ! (보고)
강구 : ! (본다)
수현 : (강구를 보며) 자네에겐 도무지 경고라는 게 먹혀들지 않는군.
강구 : (노려 보고)
수현 : 상부에 보고를 올려봐야 조선인의 수치밖에 안 될 테니, 오늘일은 못 본 걸로 해두지.
같은 조선인으로서 베푸는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야. 조선 땅에서 순사노릇 계속 하고 싶거든 지금 당장 꺼져!
강구 : (수현을 노려보다가 확 털고 일어나 나가고)
송주 : (분노하고 있는 수현의 눈빛을 보며) ....
S#31. 명빈관 앞 거리 (밤)
거칠게 상처를 닦으며 안에서 나오는 강구. 살기 띤 눈으로 명빈관 쪽을 확 노려보는 표정에서.
S#32. 명빈관 마당 (밤)
수현 : 괜찮으십니까?
송주 : 보다시피요.
수현 : (송주에게) 부하직원을 대신해서 사과드리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럼....
송주 : 감사의 표시루 제가 술 한 잔 사도 될까요?
수현 : 마신 걸루 해두죠.
송주 : 받아만 놓으세요 그럼. 마시는 건 내가 할테니까. (피식 웃으며) 제가 빚 지구는 못 사는 체질이라서요.
수현 : ....
S#33. 명빈관 손님방 (밤)
수현과 송주가 술잔을 놓고 마주 앉아있다.
송주 : (술잔 채워주며) 아까 눈빛 좋던데요?
수현 : (본다)
송주 : (웃으며) 주먹도 꽤 멋졌어요. 자존심이 심하게 다치는 중이었는데, 제법 치료가 됐거든요 덕분에.
수현 : 일본 경찰을 상대로 너무 위험한 발언을 하시더군요.
송주 : 위험한 발언....? (생각난 듯) 아아....쥐도 새도 모르게 없앤다는 말이요? 진상 손님들을 제압할 때 늘상 쓰던 말이라,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네요. 상대가 일본 순사라는 사실을 깜빡 했군요. 앞으론 주의하죠.
수현 : 주시하겠습니다.
송주 : (보다가 피식) 총독부 관리가 예전에 독립 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 꽤나 곤란하겠죠?
수현 : (여유 있게 피식) 협박 하시는 겁니까?
송주 : 뭐, 서로 덮어주자는 얘기예요. 이를테면, 비밀 거래 정도?
수현 : (만만치 않군...보는데)
송주 : 아참, 예전에 명빈관을 오가며 같이 활동했던 그 선배 분은 어떻게 됐나요?
수현 : (표정 굳는데)
송주 : 우리 동기들한테도 꽤 인기가 많았었는데. 교복에 박혀있던 이름이 뭐였더라... (생각난 듯) 아, 선우민. 맞죠?
수현 : 알고 싶은 게 뭡니까 도대체.
송주 : 선우 완과 선우 민...두 사람이 형제인가요?
수현 : ! (표정 더 굳어지고)
송주 : (그 반응에 피식) 맞나보군요. 대충 끼워 맞춰 본건데. 하긴 그리 흔한 성은 아니니까...
수현 : ...
송주 : 미안해요. 저번에 완이랑 하는 얘기를 엿들었어요. 민이형이 지금 니가 사는 모습을 보면 꽤나 기뻐하겠군....맞나요?
수현 : (받아만 놓았던 술잔을 들어 마신다)
송주 :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재미있는 인연으루 얽혀있네요, 우리.
수현 : ...
S#34. 명빈관 앞 거리 (밤)
명빈관을 나서는 수현. 명빈관을 향해 걸어오던 완과 마주친다.
잠시 눈이 마주치지만, 이내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외면하며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
S#35. 여경의 방 (밤)
이불 위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여경. 어느 순간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칫하더니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여경.
(F.C) 한손을 들어 올려 붉어진 눈가를 가리던 완의 모습. (4부 71씬의)
여경 : 도대체...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여경의 표정에서 F.O
S#36. 명빈관 외경 (아침)
S#37. 명빈관 완의 방 (아침)
잠들어 있는 완인데, 누군가 완의 이마에 손을 올려 짚어본다.
그 기척에 희미하게 눈을 뜨는 완. 그 흐릿한 시선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경의 모습.
고마운 마음에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여경의 손을 잡아보는 완인데,
근덕 : ! (완에게 손 잡힌 채로 당황해서) 왜, 왜, 왜 그러세요 도련님.
완 : ! (순간 헉!해서 손을 확 뿌리치고는 벌떡 일어나 앉는) 니,니,니가 왜 여기 있어! 남의 방에 들어와서 뭐하는 짓이야 이게!
근덕 : 아, 아니, 저는 도련님이 밤새 끙끙 앓으시길래, 고뿔이라도 걸린게 아닌 게 싶어서 이렇....게 (완의 이마에 손 올려보는,
완 그 손을 질색해서 탁 쳐내는) 열을 짚어본 건데, 갑자기 도련님이 이렇게.... 느끼한 미소를 지으셔갖구,
완 : (쪽팔려서 에잇! 나가고)
근덕 : (알만하다는 듯이 씨익 웃는)
S#38. 명빈관 마당 (아침)
씩씩대며 나오던 완, 허걱! 해서 멈춰 선다.
저만치 흰 저고리, 검정치마를 입은 여경이 단아한 모습으로 세숫물을 들고 걸어오고 있다.
여경 : 세숫물 대령했습니다. 씻으시지요.
헉! 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다시 보면,
소홍 : (세숫물을 들고 서서 멀뚱멀뚱) 왜 그렇게 놀라세요 오라버니?
완 : (퍼뜩) 어? 여...영랑이가 아니라, 니, 니가 세숫물을 들고 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워서....
소홍 : (세숫물 내려놓으며 샘나서) 영랑이 당분간 오라버니 세숫물 심부름 못해요.
해화당에 글공부 하러 다니느라 바쁘잖아요 요즘.
완 : 해화당?
S#39. 해화당 서점 안 (아침)
책상 앞에 앉아 여경에게 한글을 배우고 있는 영랑. 여경을 열심히 따라하는 모습이 귀엽다.
여경 :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영랑 : (여경이 부르는 대로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고 있다)
여경 : (영랑이 쓴 노트 들여다보며) 세상에. 영랑씨는 얼굴만 고운게 아니라, 글씨도 참 예쁘게 쓰네요.
영랑 : (좋아서) 정말요?
여경 : (끄덕이고) 쉬운 글자는 조금 읽을 줄 아니까, 열심히만 하면 금방 한글을 뗄 수 있을 거예요.
영랑 : (눈빛 반짝해서) 저... 그럼, 연애소설도 읽을 수 있어요?
여경 : 그럼요. (작게) 연애편지도 쓸 수 있을 걸요?
영랑 : (좋아서 수줍게 웃는데)
여경 : 영랑씨가 볼만한 쉬운 책이 하나 있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하고는 책을 찾으러 서가 쪽으로 향하는 여경.
영랑, 여경의 칭찬에 고무돼서 다시 노트에 글자를 쓰기 시작하는데,
수현이 서점 안으로 들어선다.
영랑 : 어? (알아보고 얼른 일어서며) 총독부 나으리가 (부끄러워서 얼른 자신의 노트를 등 뒤로 감추며) 여긴 어쩐 일루....
여경 : (소리에 돌아보고는 표정 싸늘하게 굳는)
S#40. 해화당 앞 거리 + 완이 차 안 (낮)
완의 차가 와서 선다. 흐믓한 표정으로 차문을 열고 내리려다가 어쩐 일인지 갑자기 차문을 다시 쾅! 닫고 앉으며,
완 : 아니 근데, 내가 왜 여기에 온 거지? (본인도 무척 궁금하다) 그렇지, 내기! 내기! 내기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함이지.
(하고는 다시 흐믓한 표정으로 내리려다가 다시 차문을 쾅 닫고 앉으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랬는데, 찾아가면 싫어할래나?
(하다가 퍼뜩) 아니 뭐가 문제야? 영랑이를 데리러 온 거잖아 나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얼마나 힘들겠어?
(고개 끄덕끄덕) 그럼, 오라버니가 돼서 만학의 꿈을 펼치는 여동생을 도와줘야지. 암... 도와줘야 하고말고.
흡족한 결론을 내린 듯 호기롭게 문을 탕 닫고 해화당 서점으로 향하던 완,
서점 안에 수현과 함께 서있는 여경을 보고는 우뚝 멈춰 선다. 표정 굳어서 보는 완.
S#41. 해화당 안 (낮)
여경과 수현이 날카로운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둘레둘레 쳐다보는 영랑.
여경 : (차갑게 노려보며) 이강구 순사부장님을 왜 여기서 찾으시죠?
부하직원이 어디 있는지는, 저보다 총독부 나으리(강조)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수현 : 그 친구, 공권력을 이용해 강압 수사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어서 조사 중입니다.
부하 직원의 실책을 수습하는 것도 저의 책임이니까요.
여경 : 종로서에서 나온 뒤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수현 : 선우완이라는 사람과는 정말 연인 사이가 맞습니까?
여경 : (노려보며) 취조는 이미 끝나지 않았습니까?
수현 : (피식 웃으며) 취조가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S#42. 해화당 문 앞 (낮)
문가에서 듣고 서있던 완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점 안을 노려본다.
여경 : (E)(우습다는 말투로) 개인적인 관심이라니요?
S#43. 해화당 안 (낮)
수현 : (웃으며) 뭐...두 사람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고, 여경씨 개인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겠죠.
두 사람이 정말 연인 사이가 맞습니까?
여경 : 우리 사이를 다시 설명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까?
수현 :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습니까?
여경 :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가증스럽게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거짓으로 사람에게 접근하지를 않나,
사람의 호의를 이용해 감시를 하지 않나, 내가 왜 그런 사람에게 내 시시콜콜한 연애사를 이야기 해야 하죠?
수현 : 제가 거짓말을 했던 기억은 없는데요.
여경 : (기가 막혀서) 기억이 없어요? 그때 분명 제가 뭐 하시는 분이냐 물었을 때,
수현 : (말 자르며) 알게 되면 실망하실 거라고 대답했었죠.
여경 : (말문이 막히고)
수현 : 신분을 속인 적 없습니다. 좀 더 친해지면 말씀 드리겠다구 했을 뿐이지.
완 : (E) 이 여자랑 더 이상 친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여경 : ! (보고)
완 : (들어와 수현 앞에 서더니 보란 듯 여경의 어깨를 안으며) 이번 기회에 분명히 경고해두겠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같은 일로 이 여자를 힘들게 하면, 저도 가만히 보고만은 있지 않겠습니다.
영랑 : ! (총독부 관리한테 저 시건방진 태도! 하얗게 질리고)
완 : (시선은 수현을 노려보는 채로 보란 듯 여경의 손을 잡으며) 영화 상영 시간에 늦겠어. 그만 가지.
당황스런 표정의 여경을 끌고 그대로 나가버리는 완.
흥미진진한 상황 전개에 눈빛 반짝이며 보고 있는 영랑.
S#44. 해화당 서점 앞 (낮)
여경의 손을 끌고 나온 완, 세워둔 차 조수석으로 여경을 밀어 넣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여경의 눈앞에서 차문을 탕 닫아버리고는 운전석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며 서점 안에서 나오는 수현을 바라보는 완.
완 : (노려보며, 들으라는 듯) 영화 보고 나서 어디 야외로 드라이브나 갈까 우리?
여경,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완을 바라본다. 완, 무시하고 차를 그대로 출발시킨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혼자 피식 웃는 수현.
빼곰이 서점 문을 열고 내다보는 영랑의 호기심 가득찬 시선.
S#45. 달리는 완의 차 안 (낮)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완.
완의 험악한 분위기 모르는 채로, 뒤를 돌아 서점 쪽을 바라보는 여경.
그 시선에 모자를 눌러쓰며 서점 앞을 떠나는 수현의 모습이 보인다.
여경 : (운전석의 완을 툭툭 치며) 갔어요. 갔어. (휴우....안심하며 돌아앉고는) 아우, 들키는 줄 알고 조마조마해서
죽는 줄 알았네. (기특하다는 듯이) 근데 어떻게 알구 그때 딱 나타났어요?
완 :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운전만) .....
여경 : (모르는 채로 통쾌해서) 연애는 조국 해방 투쟁의 가장 강력한 위장전술이라고 하더니, 오늘 그 말을 온 몸으로
절감했습니다 진짜. 아, (손가락으로 앞쪽 길을 가리키며) 조기 조 앞에서 차를 돌려서 서점 앞에 다시 내려주세요.
완 : (그대로 유턴 지점을 통과해버리는)
여경 : 어? 여기서 돌려야 한다니까요! 어디 가는 거예요 지금?
완 : (굳은 표정인 채로 내뱉듯이 툭) 드라이브 간댔잖아.
여경 : 그 사람 이제 가구 없다니까요.
완 : 없어도 가.
여경 : (화나서) 이 분이 진짜! 가려거든, 저는 서점 앞에 내려 주구 혼자 가세요.
영랑씨 공부도 아직 안 끝났고, 야학 수업도 준비해야 되고,
완 : (OL) (버럭 터지며) 그냥 좀 따라와 주면 안 되냐!
여경 : ! (흠칫 놀라서 보면)
완 : (괜히 화풀이) 어디 가는 거예요, 뭐하는 거예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언제까지 그럴거야 도대체! 꼭 그렇게 이유가 필요해?
가면 가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여경 : ! (뻥....해서) (*처음 보는 완의 마초적인 모습)
S#46. 릿샤 앞 (낮)
맨손으로 할랑할랑 나오는 사치코. 양손 가득 옷가방을 들고 나오는 허영화.
허영화 : 옷은 맘에 드세요?
사치코 : 뭐... 그럭 저럭이요. 근데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걸까? 조선에서는 뭘 받으면 딱 그만큼 뱉어내야 한다던데?
허영화 : (찔끔하지만) 아우,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 너무 섭섭해요 사모님.
사치코 : 알았어요. 그럼 사주는 거니까 고맙게 입지. 디자인은 좀 후지지만.
허영화 : 근데, (본론) 미유키상이 경성에 온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사치코 : 아, 신랑감 후보랑 맞선도 보게 할 겸 해서 운은 떼어 놨어요. 선우상도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라고 하세요.
허영화 : (눈빛 빛나는데)
사치코 : (하다가) 아참, 그런데 선우상이 여러 여자 울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혹시 바람둥이 계열인가?
나는 그 계열은 못 참는데?
허영화 : (찔끔하지만) 아우, 무슨 말씀이세요. 아들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요즘에 보기 드문 순정파,
하는 순간, 두 여자의 앞으로 지나가는 완의 차.
여경과 함께 있는 완을 보고는 기겁해서 사치코를 바라보는 허영화.
사치코 : (확 맘 상해서) 선우상 정말 실망이군요. 여자 보는 눈이 아주 저질이에요. (하고는 확 가버리고)
허영화 : 사모님. 사모님! (쫓아간다)
S#47. 깔패디엠 (낮)
기분 상해서 고개 외로 꼬고 앉아있는 사치코.
그런 사치코를 아부성 발언으로 열심히 달래고 있는 허영화.
허영화 : 근데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사모님은 어쩌면 그렇게 젊어 보이세요?
이런 말 참으로 외람되지만 미유키상이랑 자매지간이래도 믿겠어요.
사치코 : (심드렁하게) 자매지간은 무슨. 그런 말 가끔 듣긴 하지만.
허영화 : 네에, 그러실 거 같드라구요.
사치코 : (아부성 발언에 약간 기분 풀렸다) 뭐...한때 내가 사교계를 주름 잡긴 했죠.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내 얼굴 한번 보구 가겠다구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 경찰에게 잡혀간 청년들이 기십은 될걸 아마.
허영화 : 대단하세요... (하고는 슬쩍 본론으로) 참, 자서전은 잘 진행되고 계세요?
사치코 : 적당한 출판사를 물색해놓으라고 명령(!)해놨어요.
허영화 : 어머, 그러세요? 그럼 우리 완이 다니는 출판사는 어떠세요?
사치코 : 선우상은 고등문관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허영화 : 젊지만 워낙 속이 깊어서 공부하는 틈틈이, 선배 일을 돕구 있거든요, 객원기자루.
이참에 함께 일하면서 우리 아들이랑 친해져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은데.....
사치코 : (솔깃해서) 출판사 이름이 뭐죠?
S#48. 총독부 외경 (낮)
코우지 : (E) 월간 지라시의 뜻이 뭐지?
S#49. 취조실 (낮)
책상 위에는 지라시들이 널려 있고,
어두침침한 백열등 불빛 아래 거듭된 밤샘 취조에 초췌해진 탁구를 압박하며 취조하는 코우지.
탁구 : (지쳤다)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팔다리 지, 붙잡을 라, 시선 시. 지,라,시... 온몸을 붙잡는 뜨거운 시선이라고요.
수현 : (들어온다)
문득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지라시 한권을 집어 드는 수현. 기사 속의 완의 사진들을 보고는 피식 웃는 위로,
코우지 : (E) 그거 말고 숨겨진 뜻이 있잖아! 땅 지, 햇빛 없을 라, 때 시!
이 땅에 빛이 없는 시대, 즉 식민치하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떠들고 다녔다며!
탁구 : 아니이...그건 술김에 농담으로다가...
코우지 : (살벌해져서) 농....담....? 농담으로 그런 악질 발언을 해!
탁구 : (헉! 쫄아서 납작 엎드리고) 자...잘못했어요...머리가 홱 돌아서 그만...
수현 : 의도적인 혐의도 없어 보이는데 그만 내보내시죠.
탁구 :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밝아지는데)
코우지 : 무슨 소리야. 대일본제국을 우습게 아는 이런 놈들은 따끔한 맛을 봐야,
수현 : (OL) 훈방조치 시키라는 우에다 과장님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코우지 : (손에 쥔 지라시를 테이블 위에 탁 던지고는 화를 삭이는 데서)
S#50. 총독부 앞 (낮)
초췌한 몰골로 총독부 대문을 통과해 걸어 나오는 탁구.
두부 부침개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세기와 왕골, 탁구를 발견하고 달려간다.
세,왕 : 탁구 형!
세기 : (소금 뿌려주며) 사무실도 완전히 쑥대밭이 됐더구만, 형도 폐인 다 됐네.
왕골 : (두부 부침 내밀며) 자, 먹어. 형이 생두부 싫어한대서 계란 입혀서 부쳐 왔어.
탁구 : (울먹울먹) 고맙다....
두부를 먹다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뒤를 돌아보는 탁구.
건물 입구에 서서 탁구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는 마모루.
마모루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탁구.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OK 싸인을 해 보이는 마모루.
그런 두 사람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기와 왕골. 혹시 탁구가 쁘락치라도 된 것일까? 덜컹 불안해지는 모습 위로,
세,왕 : (E) (기겁해서) 뭐어? 자서전?
S#51. 깔패디엠 (낮)
기겁한 표정으로 탁구를 바라보고 있는 세기와 왕골.
탁구 : 응. 자기 부인 자서전만 써주면 폐간은 막아주겠대.
세기 : 이거 뭔가 구린데? 뭐 다른 얘기는 없고?
탁구 : 아무 한테도 소문 내지 말고, 절대 절대 비밀리에 진행해야 한대. 책이 완성되더라도 절대 발간하지 말래. 절대!
왕골 : 그게 뭐야? 그럼 책은 뭐하러 만들어?
세기 : 가만...보안과장 싸모라면 (퍼뜩해서) 설마 그 악명 높은 사치코?
탁구 : (끄덕끄덕)
왕골 : (불길함이 충만한 마음으로 애써 웃으며) 설마 하겠다고 한 건 아니겠지.
탁구 : (불쌍한 표정으로 본다)
세,왕 : 형, 미쳤어!!!
탁구 : (울먹울먹) 안 그러면 폐간시키겠다는 데 어쩌겠냐.
왕골 : 수많은 출판사 중에 왜 하필 우리야, 왜! 왜! 왜!!!
세기 : 난 못해. 차라리 누드화보집을 찍으면 찍었지, 죽어도 못해!!
탁구 : 한 가지 다행인건.....
세,왕 : 다행인건?
탁구 : 그 여자가 우리 완이를 무지 이뻐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거지.
세,왕 : .....? (했다가) ....! (하하하! 웃고)
세기 : (완전히 여유를 되찾고) 완이 이 자식 여러모로 쓸모가 참 많어 응?
일동 : (어둠의 늪을 벗어나 홀가분해진 심정으로 커피잔으로 건배하고는) 하하하하하!!!!
S#52. 명빈관 마당 (낮)
안으로 들어서는 세기와 왕골, 완의 방을 향해 걸어가며.
세기 : 완아! 엉아들 왔다.
왕골 : 문 열어라. 엉아들이 끝내주는 일거리 하나 따왔다니까!
세,왕 : (키득키득 재밌는데)
영랑 : (나오며) 완이 오라버니 지금 방에 없어요.
왕골 : ! (얼른 얼굴 환해지며) 영랑아, 완이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에게 말해주겠니?
영랑 : 완이 오라버니, 여경 언니랑 같이 영화보구, 드라이브까지 하고 오면 꽤 늦을 걸요?
세기 : !! 완이가, 누구랑, 뭘 해?
S#53. 풍경 좋은 야외 일각 (낮)
굳은 표정으로 혼자 생각에 빠져 운전하고 있는 완이고,
살벌한 완의 기색을 살피며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 여경.
여경 : (조심스럽게) 저기....
완 : (갑자기 운전대를 팍! 치며 버럭) 재수 없게 진짜!!
여경 : !!! (흠칫 놀라고)
완 : (혼잣말) 겨우, 생각을 정리했는데, 왜 자꾸 끼어드는 거야 왜!
여경 : (무서워서) 안 끼어들겠습니다. 계속 생각 정리하십시오....
완 : (혼자 생각) ....
탁구 : (E) 완이가 여자를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갔다...?
S#54. 깔패디엠 (낮)
새삼 완이의 작업 정신에 경탄 하며 앉아있는 세기와 왕골, 탁구.
탁구 : (탁자를 탕 치며) 그건 곧! 오늘이 바로 디데이란 소리지.
세, 왕 :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끄덕)
왕골 : 어쩌면 해화당 서점 앞에 버려졌던 그날, 이미 만리장성은 쌓였는지도 몰라.
세기 : 그렇다면 벌써 이별 여행?
왕골 : 그렇지. 여자를 꼬셔 품에 안은 다음엔 이별! 그게 바로 선우완의 연애 법칙 아니겠냐.
내기의 끝이 보이고 있어.... 세기 너 옷 벗을 준비해둬야겠다.
세기 : !!! (헉해서) 아, 아니야. 조마자씨의 절개가 그렇게 쉽게 꺾일 리가 없어!
막말루, 그 날은 집에 최마자씨도 같이 있었잖아? 내가 그거까지 다 계산해서 시나리오를 쓴건데에!
왕골 : 그날 못 쌓았으면 오늘 쌓겠지. (세기 보며) 옷 벗어 임마!
세기 : (옷자락을 움켜쥐며,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천하의 조마자씨가 늦은 밤까지 짐승같은 남자와 함께 할 리 없다고!
탁구 : 차가 고장 나서, 발이 묶인다면 얘기는 또 달라지지.
세기 : 무슨 소리야! 완이 차는 쌩쌩 잘 나가잖아?! (소리치는데서)
S#55. 달리는 완의 차 안 (낮)
쿨럭! 불길한 배기음 소리와 함께 잘 나가다가 갑자기 멈춰서는 완의 차!
완 : !!! (시동을 다시 걸어보지만, 걸리지 않는)
여경 : 왜 그래요? 왜 안가요?
완 : (에이 씨, 난감한) 기름이...떨어졌어. 이렇게 멀리 나오게 될 줄은 몰랐거든.
여경 : !!! (기겁해서) 뭐예요? 그럼 집에는 어떻게 가요!
완 : 되는 일 하나두 없구만 진짜! (에잇, 해서 차에서 내리더니 여경을 향해) 뭐해? 내려서 밀어!
여경 : (기막혀서) 예에?
왕골 : (E) 희망을 버려 세기야.
S#56. 깔패디엠 (낮)
왕골 : 완이의 승부근성 알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차 하나 고장 못 내겠냐?
세기 : (인정하기 싫은, 아니 옷 벗기 싫은!) 좋아, 차가 고장났다고 쳐, 그래!
하지만, 마자씨가 어떤 사람이야. 어떤 고난과 역경을 뚫고서라도 집으로 돌아올 위인이야!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져 발이 묶인다면 또 몰라, 오늘은 날씨도 이렇게 쾌청하잖아! (하는 순간)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우루루루 쾅!!!! 천둥 번개소리!!!
헉! 그 놀라운 타이밍에 하늘을 바라보는 세기의 얼굴 위로, 불길한 먹구름의 그림자가 흐르고.
S#57. 야외 일각 (밤)
쏟아지는 빗속에서 끙끙대며 차를 밀고 있는 여경과 완. 이미 꽤 오랫동안 차를 밀고 온 듯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여경 : (지쳤다. 이 악물며) 어디까지 밀고 가야 돼요?
완 : (역시 지쳤다) 민가가 보일 때까지!
여경 : (차에서 손 떼고, 버럭) 보일 생각을 안하잖아요!
완 : 보여. 보일꺼야!
여경 : (헤게모니 장악, 다다다) 내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매사에 그렇게 즉흥적입니까!
행동을 할 땐 앞뒤 판단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완 : (할 말 없다)
여경 :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차를 출발시키더니,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습니까? 왜 그렇게 사람이 감정적입니까?
완 : (내가 왜 그랬을까 반성중이다)
여경 : 제가 몇 번을 말했습니까. 서점으로 돌아가봐야 한다고. 영랑씨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공부하러 왔다가 그냥 돌아간 야학 아이들은 또 어떻구요. 저는 드라이브나 다닐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완 : (슬슬 짜증난다) 아, 내가 일부러 그랬냐!
여경 : 어쨌든 저는 오늘밤 안에 경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완 : (터지며) 날 더러 어쩌라고 그럼! 이 차를 내가 이구 가리! 업구 가리! (지쳐서 차 미는 거 포기하고 멈추며)
어차피 오늘 안으론 못 가! 오늘밤은 옷도 말릴 겸 여기서 머물자!
여경 : 제 정신입니까? 민가도 안 보이는데 어디서 묵는단 말입니까!
완 : (손가락 척 내밀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서!
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
우루루 쾅! 쏟아지는 빗속에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서있는 낡은 폐가!
여경 : 헉! (놀라는 위로)
탁구 : (E) 그렇지, 이야기의 흐름상 언제나, 늘! 숙박업소의 방들은 딸랑 하나!
S#58. 낡은 폐가 안 (밤)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오돌오돌 떨면서 들어오는 완과 여경.
탁구 : (E) 그렇게 젊은 두 남녀는 밀폐된 공간 안에 갇히게 되는 거지.
완 : (머쓱해서) 별로 쾌적한 공간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하다가 흠칫! 멈추는.
목에 감기는 섬뜩한 느낌에 비명지르는) 으아악--!!! 이게 뭐야?
여경 : (놀라서) 왜 그러세요?
완 : (어둠 속에서 지포 라이터를 켜보면, 거미줄이고)
여경 : (어이가 없는 듯) 무슨 남자가 거미줄을 무서워해요! (하면서 손으로 거미줄을 둘둘둘 감아서 버려주고)
완 : (쪽팔리니까 괜히 버럭) 무서워서 그러냐! 기분이 나빠서 그렇지! (하며 라이터를 홱 뺏어서 돌아서는 순간
벽에 걸린 빗자루가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헉! (벽에 달라붙고)
여경 : (라이터 뺏어서 비춰보면 빗자루고) 진짜, 무슨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아요!
완 : 너는, 무슨 여자가 그렇게 겁이 없냐!
여경 : 엣취! (재채기)
완 : 뭐야, 감기 걸린 거야? (여경 또 재채기) 안 되겠다. 일단 젖은 옷부터 벗어서 말려야,
여경 : (순간 옷자락을 움켜쥐며) 돼, 됐습니다. 그냥 이대로 말리면 됩니다.
완 : 어련하시겠습니까. (하고는) 잠깐 기다리구 있어. 무서운 거 없는 애니까, 잠깐 혼자 있어도 괜찮지?
여경 : 당신이랑 같이 있는 게 더 무섭습니다.
완 : 저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어! (쯧! 째리고는 나간다)
완이 나간 폐가 위로 우르르 쾅!!! 천둥번개소리!
순간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귀를 막고, 주저앉는 여경. 두 눈을 꼭 감고 무서움을 참아내는 여경의 모습에서.
S#59. 야외 일각 (밤)
빗속에 세워진 시보레 안에서 가방을 꺼내드는 완. 다시 빗속을 뚫고 폐가 쪽으로 향한다.
완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는 의문의 가방 위로,
왕골 : (E) 완이의 작업가방 알지, 니들도?
S#60. VIP룸 (밤)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지라시팀들.
절망적인 표정의 세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술만 마시고 있다.
탁구 : 완이가 여자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가서, 그 가방을 열었다! 그럼 십중팔구, 여자들은 다 완이한테 넘어가는 거야!
S#61. 낡은 폐가 안 (밤)
완의 가방이 덜컥 열린다. 그 안에 구비되어 있는 와인병과 와인잔, 양초 등등...
여자와 함께 분위기를 잡을 때 쓰는 물건이란 물건은 다 들어있다.
성냥불을 켜 양초에 불을 붙이는 완.
여경 : (추위에 오돌 오돌 떨면서 보며) 이게 다 뭐예요?
완 : (흐뭇해서) 내 비장의 무기들이지..
여경 : 비장의 무기?
완 : 언제 어디서 작업에 들어갈지도 모르니, 비상시를 대비해 상비 (하다가, 멈칫)
여경 : 무슨 작업이요?
완 : 어,어쨌든! 봐봐! 이럴 때 유용하게 쓰이잖아. 촛불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여경 : 그러네.... (촛불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이쁘다아....
완 : (그런 여경을 보고 픽 웃고는 와인을 따서 잔에 따라서 내민다) 마셔. 와인이야.
여경 : (펄쩍 뛰며!) 됐습니다. 저는 술은 안 마십니다.
완 : 누가 취하래? 약으로 마셔둬. 몸이 좀 따뜻해질 거야. 아까부터 계속 떨고 있잖아.
여경 :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갈등으로 보는) ....
S#62. VIP룸 (밤)
탁구 : (와인잔 치켜들며) 와인과 촛불... 분위기 잡는 데는 최고지... 설령 거기가 당장에 무너져 내릴 듯한 폐가라 할지라도...
촛불에 흔들리는 그녀의 유혹적인 실루엣, 와인 잔에 아롱지는 그녀의 뇌쇄적인 미소가....
왕골 : 형, 조마자씨가 그런 스타일은 아닌 듯 싶은데?
탁구 : 시끄러! 창작의 세계를 건드리구 있어. 쯧! (하고는 다시) 어쨌든 알콜의 향기가 뜨거운 청춘을 자극하는 순간....
오묘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거지....(음흉한 미소되는 데서)
S#63. 낡은 폐가 안 (밤)
오묘한 분위기는 커녕, 와인 한 모금에 취한 여경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고, 허걱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완.
(*이하 여경의 주정은 평소의 진지한 모습과는 달리 좀 풀어진 모습으로 귀엽게)
완 : 너 진짜 경제적인 인간이다. 어떻게 와인 한 모금에 인격이 변하냐?
여경 : 네? 제 인격 말입니까? 하하하하.
완 : (허, 기가 막혀서 보는)
여경 : 나는요...술 마시는 거 싫습니다...왜냐면...마음이 약해지니까... 무서워도 불안해도 억지로 참고 있던 걸....
참지 못하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완 : (의외여서) 니가 무서운 게 다 있어?
여경 : (헤...웃으며) 예에. 무서운 거...많습니다...경찰도 무섭고, 취조도 무섭고, 고문도 무섭고...쫓기는 것도 무섭고...
숨는 것도 무섭고... 들킬까봐 무섭고...연행 당하는 것도 무섭고...
완 : ...
여경 : 어머니 눈에 눈물 나게 할까봐 무섭고...내가 과연... 흔들리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무섭고...
무엇보다 (고개 푸욱 숙이며) 마음이 약해질까봐 무섭습니다...
완 : ... (보다가 짐짓 웃으며 놀리듯) 천둥도 무서워하잖아 너.
여경 : (고개 발딱 들고) 아닙니다. 천둥은 안 무섭습니다...
완 : 안 무섭기는... 아까부터 천둥소리만 나면 달달 떠는 구만...
여경 : 아니라니까요. 그 딴 거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완 : (피식 웃고는) 오후 내내 차를 밀구 왔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드러눕는데)
여경 : (순간 술이 확! 깨는 느낌으로) 설마 여기서 주무시겠다는 말입니까?
완 : 그럼, 저 빗속에 나가 노숙하리?
여경 :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한 방에서...
완 : 이봐, 우린 공식적으로 함께 밤을 보낸 사이야.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위증죄로 잡혀간다 나?
여경 : 그...그럼, 제가 차에서 자겠습니다.
완 : 그러시든가요 그럼. (홱 돌아눕고)
여경 : (나가려는 순간, 쾅! 터지는 천둥소리에 엄맛! 귀를 감싸 쥐고 주저앉는)
완 : (한숨 내쉬고) 졌다 그래, 내가, 졌어. (하며 돌아서 나가려는 순간)
여경 : (앉은 채로 손만 뻗어 완의 와이셔츠 자락을 잡는다)
완 : ! (느낌)
여경 : (민망해서 시선은 내린 채로) 실은 천둥소리 무서워합니다. 나가지 말아주세요....
완 : ! (멍하니 보는데서)
우루루 쾅! 천둥번개 소리에 이어지는,
S#64. 송주의 방 (밤)
송주와 근덕이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근덕 : 두 번 째 사냥감이 정해졌어.
송주 : (차 마시다가 멈칫)
근덕 : 오늘 밤 탐색전을 벌이라는 수장의 명령이야. 마작약속을 잡아놨으니 준비해.
송주 : (입가에 미소)
근덕 : 사냥방법이 정해질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수장의 별도 지시가 있었어. 조심하는 게 좋을꺼야.
송주 : 엄청 소심한 수장이군. 맘에 안 들어.
근덕 : (걱정스러워서 보는)
S#65. 고관대작의 집 (밤)
고관대작들과 함께 마작을 하고 있는 송주.
고관2 : 언제 다 같이 공이나 치러 가지.
고관1 : 햇볕에서 땀 흘리는 건 질색이야. 여름엔 밤낚시가 최고지.
고관2 : 하여튼 이 친구는 올빼미 체질이야. 밤에 하는 건 다 좋아하잖나. 술, 여자, 마작...
그런데 그보다 돈을 더 좋아하지. 하하하....
고관1 : 이거 왜 이래? 난 돈보다 송주를 더 좋아한다구.
송주 : 정말요? 고맙기도 하셔라...
고관2 : 그러고 보니 칠필살 예고살인 말이야. 그거 범인이 잡혔던가?
고관3 : 아직 못 잡았을 걸.
송주 : 비밀 독립운동 조직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일까요?
고관1 : 사실이면 또 어쩔 거야? 지들이 무슨 구국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설쳐대는데...가당치도 않아.
그런 놈들은 싸그리 잡아넣어 총살시켜야 돼.
송주 : 리치! (패 집어드는 표정 위로)
고관1 : (E) 독립은 무슨 얼어죽을! 우리가 이만한 선진문물의 혜택을 받게 된 것도 다 누구 덕인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말야.
고관2 : 하긴...옛날 같으면 서당 근처도 얼씬 못할 천것들이 이젠 유학까지 다녀오는 세상이니, 참 세상 좋아졌지.
고관1 : 이렇게 세련되고 모던한 모습의 송주야말로 그 증거 아니겠어?
고관들 : (하하하! 웃어젖히는데)
송주 : (살벌하게) 다 죽었어요...
고관들 : (섬뜩, 분위기 싸해져서 돌아보면)
송주 : 츠모! (패를 촤락 뒤집고) 콕시무쏘!
고관들 : ! (한숨 섞인 탄성)
송주 : 그러니까 방심했다간 소리소문 없이 죽을 수도 있다니깐요. (미소 짓는데)
우르르 쾅!!!! 번갯불에 비친 송주의 그로테스크한 얼굴에서.
S#66. 고관대작집 앞 + 송주의 차 안 (밤)
안에서 나오는 송주, 대기하고 있다가 얼른 송주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근덕.
송주가 차에 올라탈 때 까지 우산 계속 들고 있고 있다가, 운전석에 오른다.
근덕 : 탐색전은 어땠어.
송주 : 조선 땅엔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너무 많아. 칠필살이 아니라 칠백필살로도 모자라겠어.
근덕 :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수행원도 여럿이고,
송주 : 술 좋아하구, 돈 좋아하구, 여자 좋아하구, 성격도 행동반경도 단순해서,
타이밍만 잘 맞추면 오늘밤 안으루 해치울 수두 있겠어. 말 나온 김에 오늘 해치워버릴까? 날씨가 딱인데.
근덕 : (질려서 고개 절레절레 젓는)
S#67. 명빈관 앞 (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송주의 차가 도착한다.
차 안에서 내리는 송주, 근덕과 함께 명빈관으로 향하다가 멈칫 선다.
명빈관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며 서있다가 송주를 바라보는 남자, 수현이다.
수현 : (송주를 보며) 잠깐 여기서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송주 : (근덕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
근덕 :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가고)
송주 :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셨을까? 설마 또 임의동행인가요? 아님 취조?
수현 : (대답 없이 관찰하듯 가만히 바라보기만)
송주 : (혼잣말처럼 피식) 지겨워. 살인자가 빨리 잡혀야 발 뻗구 잘 수 있겠네.
수현 : (OL) 십년 전...한 남자 살해됐습니다. 피해자는 머리에 둔기를 맞아 살해된 채 다음날 아침, 강가에서 발견됐죠.
송주 : (애써 여유 있게 피식) 추리 소설 이야긴가요?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
수현 : 읽는 재미를 위해, 힌트를 하나 드릴까요?
송주 : 어우, 고맙죠.
수현 : 피해자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던 친일파 지주로, 살해되던 날 밤 명빈관에서 묵었습니다.
그리고...같은 날 밤, 명빈관의 동기었던 소녀 한 명이 실종됐습니다.
송주 : (표정 굳고)
수현 : (읽듯이 보며) 실종된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지금....어디에 있을까요.
송주 : (표정 흔들리는데)
수현 : 차송주씨. 십년 전, 러시아에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왔습니까?
표정 싸늘하게 굳는 송주의 모습 위로, 우르르 쾅! 번개와 천둥소리!
여경 : (E) 십년 전.... 만주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S#68. 낡은 폐가 (밤)
타들어가고 있는 촛불 앞에 무릎을 감싸 안고 앉아있는 여경이고. 저만치 떨어진 벽 쪽에 돌아 누워있는 완.
여경 : 어머니는 울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거니까요. 그래서 나도 울지 않았습니다.
완 : ...
여경 :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처음 울었던 날은, 오늘처럼 천둥이 치던 날이었습니다.
(좀 웃으며) 실은 나.... 어렸을 때부터 천둥을 엄청 무서워해서, 그런 날은 꼭 아버지 품에 안겨야만 잠이 들었거든요.
완 : ...
여경 : 그런데 이제 아무리 무서워도 나 혼자 견뎌야 하는 구나.... 외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나를 품에 안아줄 사람이
이제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왠지 외롭고 서글퍼져서....바보같이 울었습니다.
완 : ....
여경 : 근데 이제는 안 웁니다. 아버지와 나는 이제,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될테니까요.
피워놓은 촛불 속에 일렁이는 여경의 모습을 바라보는 완.
붉어진 눈으로 촛불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여경.
바라보며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짠해지는 완......
S#69. 풍경 좋은 야외 (아침)
비갠 후의 맑은 풍경.
S#70. 낡은 폐가 안 (아침)
맑은 새소리.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폐가 안.
햇빛에 눈이 부신지 부스스 눈을 뜨던 완, 어떤 느낌에 흠칫해서 시선을 내려 보면,
완의 가슴팍에 머리를 갖다 대고 아기처럼 잠들어있는 여경의 모습.
여경 : (E) 그런데 이제 아무리 무서워도 나 혼자 견뎌야 하는 구나.... 외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나를 품에 안아줄 사람이
이제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왠지 외롭고 서글퍼져서....바보같이 울었습니다.
여경을 가만히....바라보는 완.
어느 순간 가만히 여경의 머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에 안기게 하는 모습에서....